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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바지로 치닫는 윤석열 전 대통령 공판에서 연일 이례적인 상황이 펼쳐지고 있다. 내란 우두머리 혐의 피고인인 윤 전 대통령이 증인들을 직접 신문하면서 12·3 비상계엄 관련 질문들을 쏟아내고 있는 것이다. 피고인도 증인을 신문할 수 있지만, 자주 연출되는 장면은 아니다. 본인에게 불리한 증언이 나올 수 있어 하더라도 최소한으로 하는 게 보통이다. 윤 전 대통령은 증인 답변이 마음에 들지 않거나 검사 질문이 부적절하다고 생각되면 “재판장님, 제가 한마디 해도 되겠습니까”라며 수차례 마이크를 잡는다. 검사 시절 특별수사로 이름을 떨쳤고, 검찰총장과 대통령까지 지내는 등 최고의 ‘전관(前官)’이라 할 수 있는 본인이 직접 증인들을 압박해 재판을 유리하게 끌고 가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법원이 영상으로 공개하는 윤 전 대통령의 신문 모습은 흡사 특수부 검사가 서울중앙지검 조사실에 불려나온 피의자를 상대로 조서를 받아낼 때와 비슷하다. 카메라를 전혀 의식하지 않는 듯 특유의 고압적인 자세와 어투, 몸짓을 여과 없이 드러내며 증인들을 압박한다. 그중에서도 홍장원 전 국가정보원 1차장을 상대로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을 언급하면서 “사령관이라는 놈이 수사의 시옷(ㅅ) 자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나”라고 묻는 장면이 압권이었다. 자신에게 충성을 다하다가 수감 중인 3성 장군을 ‘놈’으로 지칭하며 정치인 체포조 혐의를 떠넘기려는 듯한 질문에 홍 전 차장은 “피고인, 부하한테 책임 전가하는 것 아니죠?”라고 되물었다. 곽종근 전 특전사령관도 윤 전 대통령의 압박이 계속되자 괴로운 듯 “지금까지 차마 제가 말씀 안 드렸다”면서 “한동훈하고 일부 정치인을 호명하시면서 당신 앞에 잡아 오라고 그랬다. 당신이 총으로 쏴서라도 죽이겠다고 했다”고 반박했다. 곽 전 사령관은 윤 전 대통령의 지시를 따랐다가 재판을 받고 있고, 홍 전 차장은 정치인 체포 의혹을 폭로했다가 경질당했다. 계엄에 깊숙이 가담한 혐의를 받는 여 전 사령관도 유죄가 선고되면 중형이 불가피하다. 한 법조인은 “전직 대통령이 자신 때문에 고초를 겪고 있는 부하들에게 ‘2차 가해’를 하고 있는 것”이라며 혀를 찼다. 국민의힘도 2차 가해 비판에서 자유롭지 않다. 장동혁 지도부는 비상계엄 1년이 임박한 상황에서도 사과 메시지와 수위를 고민 중이다. 11월 28일 대구 집회에서 장 대표는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계엄을 통해 민주당의 무도함이 드러났고, 대한민국의 현실을 볼 수 있었다”는 단서를 달았다. 다음 날 대전 집회에서도 “하나가 되어야만 싸울 수 있다”며 투쟁에 방점을 찍었다. 반면 양향자 최고위원이 “반성해야 한다”고 하자 당원들은 고성을 지르고 커피를 집어던졌다. 현장엔 ‘계엄은 정당했다’ 등의 팻말이 등장했다. 증인들에 대한 윤 전 대통령의 2차 가해는 중단돼야 한다. 필요하다면 재판부가 윤 전 대통령의 신문 태도를 바로잡아야 한다. 국민의힘도 지금의 어정쩡한 태도가 계엄 피해자인 국민들에 대한 2차 가해라는 점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사과 메시지의 수위를 고민한다는 것 자체가 제1야당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것이다. 어떠한 변명과 단서도 달지 않고 진심 어린 사과를 해도 시원찮다는 점을, 국민의힘은 유념해야 한다. 유성열 정치부 차장 ryu@donga.com}

《“서울, 부산을 수성하고 충청 절반을 지켜낼 수 있느냐가 승부의 관건이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서울 여의도 국회 집무실에서 동아일보와 인터뷰를 갖고 내년 지방선거 목표에 대해 “강원까지 수성하면 그래도 잘 싸웠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을 것”이라며 이렇게 밝혔다. 장 대표는 15일로 취임 50일을 맞았다. 장 대표는 “당성(黨性·당에 대한 충성도)이 확실해야 공천을 받을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 것”이라며 “당을 위해서 열심히 해 온 분들, 그리고 일할 사람들을 공천하는 게 원칙”이라고 말했다. 정치 신인의 공천 문턱도 대폭 낮춰야 한다고 강조한 장 대표는 개혁신당과의 연대에 대해선 “일단 우리 힘을 최대한 키우는 게 맞다”며 “그때 가서 정할 일”이라고 했다. 다음은 일문일답.》―취임한 지 50일 가까이 지났다. 소회나 어려웠던 점은….“와닿지 않는다. 한 1년 한 거 같다. 상대의 무차별 공격을 막아내면서 앞으로 전진해야 한다는 게 가장 어려웠다. 하루에 폭탄이 두세 개 터질 정도로 파상 공세를 해대지 않나.” ―취임 후 부산과 충청을 방문했다.“내년 지방선거의 승패 기준은 부산, 충청, 서울이다. 충청 민심은 수도권하고 거의 일치한다. 부산은 민주당이 전재수 장관을 앞세워 해양수산부를 이전하면서 엄청 공을 들이고 있다. 두 지역은 전략 지역으로 생각해서 현장 최고위를 했다. 충청은 (광역단체장) 4곳 다 이기기는 여든 야든 쉽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절반을 지켜낼 수 있느냐가 승부의 관건이다.” ―목표치를 더 높일 생각은 없나.“강원이 충청하고 비슷한 민심과 결을 가지고 있다. 강원까지 수성하면 그래도 어려운 여건 속에서 잘 싸웠다는 평가는 받을 수 있을 것 같다.” ―전략 공천도 고민하나.“기초의원과 광역의원, 기초단체장까지는 원칙적으로 경선이다. 광역단체장은 전략적 선택도 할 수 있다. 가능성을 열어두겠다.” ―서울, 부산, 충청도 전략공천을 할 수 있나.“경선에 충분히 경쟁력 있는 분이 포함돼 있다면 경우에 따라 전략공천이 없을 수도 있다. 누가 봐도 가장 경쟁력 있는 분이 경선을 하다 보면 우리가 생각하는 대로 결론이 안 나올 수도 있지 않나. 그럴 땐 전략공천을 고려할 수도 있겠다.” ―당 대표로서 생각하는 공천의 대원칙이 궁금하다.“당성, 당을 위해서 열심히 해 온 분들, 그리고 일할 사람들을 공천하는 게 원칙이다. 가장 중요하게 봐야 될 것은 당성이다. 당성이 확실해야 공천을 받을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려고 한다. 그리고 돈 들고 쫓아다니는 사람들, 당 대표와 사진 찍은 거 가지고 이름 팔고 다니는 사람들은 공천에서 배제하면 좋겠다. 그렇게 되면 공천은 망하고 우리는 지방선거 지는 것이다.” ―공천마다 현역 의원 페널티와 신인 가산점이 항상 논란이 되는데….“신인의 문턱을 대폭 낮출 필요가 있다. 신인에게 (가산점을) 20% 준다고 해도 득표 수의 20%라면, 20%를 득표해도 24%밖에 되지 않는다. 아예 15%포인트 정도는 줘서 35%를 인정해줘야 (현역과) 경쟁이 되고 싸울 맛이 나지 않겠나.” ―개혁신당과의 연대 가능성은….“연대든 뭐든 국민들에게 감동을 줘야 한다. 단순한 ‘더하기’ 이상으로 플러스알파의 시너지가 있어야 한다. 연대를 지금 얘기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일단 우리 힘만 가지고 싸워보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우리 힘을 최대한 키우는 게 맞다. 나머지는 그때 가서 정할 일이다.” ―격전지에서 이기려면 중도층을 잡아야 한다.“상처가 완전히 아물고 다시 이전의 신뢰관계를 회복하려면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장동혁 지도부’가 이끄는 국민의힘에 대해 믿음을 가지고 다시 마음이 돌아오는 데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뜀틀을 넘기 위해서는 돋움판(구름판)이 필요하지 않나. 배를 띄우려면 부두도 필요하다. 중도로 나아가려면 확실히 흔들리지 않는 지지 기반이 필요하다. 지지층을 회복하는 게 우선이다. 그게 부두고 돋움판이다.” ―이재명 정부 4개월에 대해선 어떻게 평가하는가.“처음엔 ‘분식 정치’라고 표현했다. 지금은 그냥 ‘포기 정치’다. 얼마 전 민노총 간부가 간첩죄로 징역 9년 6개월형이 확정됐는데 판결문을 보면 대한민국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보일 것이다. 민주당이 내년 지방선거에서 이기면 개헌을 하려 할 것이다. 대통령 4년 중임제는 겁나지 않는다. 민주당이 개헌하려는 내용은 사회주의다. 곳곳에 독소 조항을 넣어서 사회주의 헌법으로 만들려고 하는 것이 최종 목표다. 대한민국을 사회주의로 바꾸려고 하는 세력들에게 대통령은 도구에 불과하다.” ―추석 민심은 어땠나.“우리 보고 ‘너무 못 싸운다’고 하셨다. 또 하나는 ‘불안’에서 ‘공포’로 변해가는 단계란 생각이 든다. 대한민국이 법치국가가 맞나 하는 공포, 안보가 무너지는 공포, 국민과 재계가 우려하는 법안을 막 통과시키는 공포, 사법부·검찰 해체에 대한 공포다.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도 뚜렷한 대책과 원인 규명이 없다. 중국인 무비자 입국 불안도 공포 수준으로 넘어가고 있다. 유괴·강력사건에 캄보디아에선 한국 타깃 범죄가 계속 일어나고 있다.” ―국민의힘이 못 싸우는 이유는 뭐라고 보나.“우리 당은 겁이 많다. 외부의 공격에 너무 취약하다. 추석 때 ‘건국전쟁2’를 봤다. 역사적 사실은 검증의 대상이지 ‘입틀막’의 대상이 아니다. 역사·문화·체제전쟁을 할 생각이 없다면 정당이 존재해야 할 이유는 없다. 우리는 여지껏 제대로 싸우지 못했다. 민주당, 좌파가 이런 프레임으로 공격하면 우리는 얼른 칼 집어넣고 그냥 도망가기 바쁘다. 이미 보이지 않는 전쟁은 시작됐다. 문화전쟁에서 95 대 5 정도로 패하고 있다. 역사전쟁도 마찬가지다. 문화·역사전쟁이 체제전쟁의 본질이다.” ―대표가 되기 전엔 신사적이란 평가를 많이 받았는데….“리더는 지위·상황에 맞는 역할을 해야 한다. 참모는 늘 뒤에서 받쳐주는 역할만 해야 하지만 리더는 욕 먹고 바람을 막으면서 앞에서 뚫고 가는 역할을 해야 한다. 온화하고 합리적인 리더십으로는 이 위기 상황을 뚫고 가거나 극복할 수 없다. 정치인은 여러 모습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국감에선 어떤 부분에 더 화력을 집중할 생각인가.“‘안전’이 화두다. 국민들의 불안과 공포는 자유민주주의는 안전한가, 우리의 생명은 안전한가, 우리의 체제는 안전한가에 대한 문제다. 김현지 대통령제1부속실장도 결국 안전의 문제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왜 탄핵당했나. 대통령이 아닌 사람에게 권력을 맡겼다는 이유 하나였다. 김현지라는 사람은 정체도 알 수 없다. 국감에서 확인하자고 했더니 안 나온다고 한다. 안 나오는 곳으로 도피도 했다.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없다는 게 더 불안하지 않나.” ―김 실장이 국감에 꼭 나와야 한다는 것인가.“장관 후보자들이 지명 철회되거나 사퇴할 때 김 실장이 통보했다는 얘기가 나오니 사실인지 확인해야 한다. 김 실장은 대장동에 아파트가 있다. 미분양이 맞는지부터 시작해서 기가 막힌 장면마다 계속 등장하니 확인해야 한다. 인사 문제는 총무비서관 되고 난 이후의 문제라서 나오라고 했더니 갑자기 제1부속실장으로 발령을 내버렸다. 총무비서관 출석은 한 번도 예외가 없었다. 그걸 부정하니까 전 국민의 의혹으로 커졌다. 국민적 의혹을 풀어드리는 게 정치의 역할 아닌가.” ―민주당이 이 대통령의 예능 출연 비판과 관련해 형사고발했는데….“국감에서 계속 확인하겠다. 시간 단위별로 자료 제출을 요구하겠다. 경찰이 경호할 때 따라붙었을 테니 언제부터 언제까지 작전 수행했는지만 밝히면 된다. 고발 시점이 되게 재밌다. 내가 페이스북에 ‘김현지를 부탁해’라고 적었더니 긁혔는지 그 다음 날 바로 고발하더라. 내 생각엔 ‘장동혁 입 막아’ 이런 느낌이다.” ―이 대통령과의 회담을 다시 추진할 것인가.“대통령이 그래도 지난번(여야 대표 회동)에 ‘주식 양도세 강화 철회’를 받아줬다. 어떻게 보면 작다고 할 수도 있지만, 나는 크다고 생각한다. 대통령이 받든 안 받든 여야가 대화하다가 안 풀리는 문제가 하나라도 풀릴 수 있다면 언제든지 만날 준비가 돼 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와는 만날 계획이 있나.“협치할 생각이 있다면 만나겠다. 의사일정 하나 제대로 협의한 적 있나? 법제사법위원회 (야당) 간사 1명도 (협조) 안 해주지 않나? 소위 위원은 추미애 법사위원장이 마음대로 꽂았다. 대통령이 ‘여당이 많이 가졌으니까 좀 양보하라’고 했는데도 1도 양보 안 하지 않나. 대통령실은 민심을 생각해서 조금이라도 협치하고 속도도 조절할 생각이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여당은 전혀 없는 것 같다.” ―당 일각에선 쇄신 논의가 사라졌다는 지적도 있다.“과거와의 절연은 우리가 어떤 점에서 잘못했는지 정확히 파악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죄송합니다’ ‘잘못했습니다’ 하면서 과거에 계속 머무르면 그냥 절망하는 것이다. 제대로 싸우는 게 혁신이다. ‘싸우지 않는 사람은 배지 떼라’는 게 혁신이다. 더 좋은 전략과 여당보다 유능한 정책을 가지고 싸우는 게 쇄신이다. 지금 쇄신이 사라졌다고 얘기하는 사람들은 쭉 달려서 한 50m 왔더니 다시 대기실로 가서 옷 갈아입고 나오자고 하는 것이다. 전략과 정책이 아직 부족하다는 건 인정한다.” ―한동훈 전 대표 가족 연루 의혹이 있는 ‘당원 게시판’ 문제는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끝나지 않은 사건이다. 반드시 처리하고 넘어가는 게 맞다. 동일한 문제가 또 발생해도 사실관계를 밝히고 당원들에게 반드시 해명하고 가야 한다. 이때 다르고 저때 다르면 리더로서 신뢰를 받을 수 없다.” ―대표 임기 동안 꼭 처리하고 싶은 법안은….“민노총에 사로잡힌 이재명 정부와 민주당은 코스피 5,000 달성 절대 못 한다. 국민의힘이 앞장서겠다. 그래서 배당소득 분리과세를 파격적으로 제안했다. 민주당도 추진하고 있으니 조율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외국인의 선거권과 부동산·의료 구입 3개 분야 상호주의도 반드시 관철시키겠다. 재정준칙도 도입해야 한다. 미래 세대를 위한 가장 강력한 보험이다.”국민의힘 장동혁 대표△1969년 충남 보령 출생△1991년 행정고시 35회△2001년 사법시험 43회△2006년 대전지법 판사△2019년 광주지법 부장판사△2022년∼현재 21, 22대 국회의원(충남 보령-서천)△2023년 국민의힘 사무총장△2024년 국민의힘 수석최고위원△2025년 국민의힘 대표유성열 정치부 차장 ryu@donga.com김준일 기자 jikim@donga.com이상헌 기자 dapaper@donga.com}

‘조국 사태’가 정국을 뒤흔들던 2019년 가을.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은 광장으로 나갔다. 황교안 당시 대표는 제1야당 대표로선 처음으로 삭발을 감행했고, 청와대 앞에 천막을 치고 단식 투쟁을 이어갔다. 매주 광화문에서 ‘문재인 퇴진’을 외치던 태극기 부대도 자유한국당 집회에 적극 호응했다. 진보의 전유물이라 여겼던 광장에 연일 수만 명이 모이자 보수 진영은 전에 없던 기대감에 부풀었고, 현역 의원 상당수가 집회에 나가 색깔론으로 군중을 자극했다. 그해 12월 16일 공수처법·선거법 날치기 저지 규탄대회에 참여했던 일부 시위대가 여의도 국회의사당에 난입해 의원들을 폭행하고 난장판을 벌이는 사태도 벌어졌다. 황 전 대표는 “여러분 들어오신 거 이미 승리하신 것”이라며 “자유가 이긴다”고 소리쳤다. 국회의장이던 “문희상을 처단하자”는 구호까지 등장했다. ‘광장의 힘’을 확인한 자유한국당은 보수 대통합을 명분으로 바른미래당을 끌어안으며 미래통합당으로 당명을 바꾸고 21대 총선의 필승을 다짐했다. 그러나 103석에 그쳤다. 보수 정당 역사상 최악의 참패였다. 국민의힘은 21일 동대구역 광장에서 ‘야당탄압·독재정치 국민 규탄대회’를 열었다. 2020년 1월 이후 5년 8개월 만에 다시 광장으로 나간 것이다. 당 자체 추산 결과 7만 명이 모였다고 한다. “이재명을 끌어내자” “이재명 당선 무효” 구호가 이어졌고 윤석열 전 대통령의 이름을 연호하는 군중도 적지 않았다. 집회 열기에 고무된 지도부는 27일 서울역에서 대규모 집회를 또 열기로 했다. 광장을 다시 찾은 국민의힘에서 2019년의 데자뷔가 느껴진다. 당장 당내에서조차 당 지지율이 20%대로 추락한 상황에서 집회의 명분이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소장파 김재섭 의원은 그래서 집회에 참석하지 않았다. 그는 “국민의 불신이 남아 있는 상황에서의 장외 투쟁은 실효성이 없다”며 “장기화되면 ‘황교안 시즌2’가 된다”고 꼬집었다. 국민의힘이 더 걱정인 건 종교까지 그들을 휘감고 있다는 것이다. 통일교원 당원 가입 의혹은 특검 수사가 진행될수록 국민의힘의 목을 옥죄고 있다. 당원 명부까지 특검이 가져갔지만, 당 지도부는 특검 수사가 잘못됐고 사실이 아니라는 주장만 반복하고 있다. 그러는 사이 권성동 의원과 한학자 총재는 구속됐고 특검은 수사를 더 확대하고 있다. 국민의힘이 특정 종교와 밀착하고 있다는 느낌도 지울 수 없다. 독실한 크리스천으로 알려진 장동혁 대표는 올 3월 개신교 단체 집회에 나가 “계엄에도 하나님의 계획이 있다”고 했다. 22일 조계종 총무원장 진우 스님을 만나서는 합장을 하지 않아 불필요한 논란을 일으켰다. 역시 기독교인인 황교안 전 대표도 부처님오신날 법요식에서 합장을 하지 않은 데 이어 조계종에 설 선물로 육포를 보내 불교계의 강한 반발을 샀다. 정당에 광장과 종교는 무척 솔깃하다. 신념과 믿음으로 뭉친 광장과 종교의 힘을 그 안에서 느끼면 쉽게 압도당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광장의 군중과 종교는 국민의 일부일 뿐 전체는 아니다. 정권 획득을 목표로 하는 대의민주주의 정당이라면 광장과 종교의 솔깃한 유혹에서 말끔히 벗어나야 한다. 제1야당이라면 더더욱 그렇다.유성열 정치부 차장 ryu@donga.com}

“‘허니문(honeymoon) 효과’와 ‘위기 결집(rally around the flag) 효과’로 지지율이 높게 유지되고 있다.” 여론조사 전문업체 리서치앤리서치(R&R)의 노규형 대표(72)는 9일 서울 서초구 사옥에서 가진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11일로 취임 100일을 맞는 이재명 대통령의 지지율을 이렇게 분석했다. 취임 초 국민들이 가진 새 정부에 대한 기대감이 유지되고 있는 가운데 미국과의 관세 협상 과정에서 나타난 위기 의식에 따른 결집 효과로 높은 지지율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대통령의 취임 100일 지지율은 한국갤럽 조사(2∼4일 18세 이상 1002명·휴대전화 안심번호·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 ±3.1%포인트·응답률 12.1%·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홈페이지 참조) 기준 63%로 김영삼(83%) 문재인(78%) 전 대통령에 이어 세 번째로 높다. 노 대표는 1980년대부터 선거여론조사에 첨단 조사 기법을 도입한 여론조사 전문가다. 다음은 일문일답. ―취임 100일 대통령 지지율을 어떻게 분석하나. “취임 초기는 기대심리가 작용하고 언론이나 야당도 크게 반발하지 않는 허니문 효과가 있다. 계엄 이후 나라가 혼란에 빠졌으나 대선 이후 정치 안정을 찾은 것에 대해 국민이 안심하는 분위기도 있다. 무엇보다 미국과의 관세 협상에 대해 국민들은 외환위기에 버금가는 공포와 불안, 위기의식을 느꼈는데 국가 위기 상황에 지도자를 중심으로 지지하고 뭉치는 위기 결집 효과가 있었다.” ―대통령이 되기 전엔 보수층의 비토 정서가 매우 강했는데…. “뺄셈이 아니라 덧셈 정치를 하고 있는 게 이유라고 본다. 지지하지 않았던 중도층이나 보수층에서도 지지자가 유입되고 있다. 지난 대선에선 ‘상대 후보나 상대 당이 싫어서 투표했다’는 혐오 투표가 상대적으로 많았다. 하지만 선거가 끝나면, 극렬 당원이 아니라면 대부분은 선출된 대통령이 잘되길 바라고 기다려 준다.” ―R&R 정기 조사에선 ‘경제 상황’에 대한 긍정 평가 비율이 상승하고 있다. 대통령 지지율과 상관관계가 있나. “아직은 이렇다 할 경제 성과가 가시화되지 않아 경제 때문이라고 할 수는 없다. 다만 증시 부양 정책 등 경제 정책에 대해선 긍정 평가 여론이 높아졌다. 장기적으로는 경제 성과가 지지율에 매우 유의미하게 영향을 미칠 것이다.” ―국민의힘 지지율이 낮은 반사효과도 있나. “더불어민주당은 지지 기반 확대를 위해 많은 노력을 해왔다. 출향(出鄕) 호남인을 중심으로 수도권·충청권에도 교두보를 확보해 지지세를 넓혔다. 청년기에 노무현을 체험한 4050세대의 확고한 지지와 여성·환경·교육 등 이슈에서 2030 여성들의 지지까지 확보하고 있다. 대기업·공공기관 노조의 지원까지 든든한 우호적 기반도 갖췄다. 그에 비해 국민의힘은 그동안 배제와 뺄셈 정치로 지지 기반과 지역 기반을 스스로 축소시켰다.” ―조국 전 조국혁신당 대표 사면으로 지지율이 하락했는데…. “진보층은 변화가 없었으나 중도에서 4%포인트, 보수에서 7%포인트 정도 지지를 철회했다. 특히 20대 남성 지지율이 가장 크게 출렁거렸다. 20대는 조 전 대표 사면을 ‘공정을 해치는 탈법’과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로 본 것 같다. 대통령실도 조 전 대표 사면으로 지지율이 4∼5%포인트 떨어질 것으로 예상했다고 하던데, 꼭 해야 할 이유가 있었던 게 아닌가 싶다.” ―청년층, 특히 20대 남성층에선 이 대통령 지지율이 낮다. “2025년의 20대가 겪는 현실은 2000년대 20대였던 현재 40대가 겪었던 현실과는 많이 다르다. 지난해 ‘자기 생애에 영향을 미친 정치사회적 사건’을 조사했는데 20대는 10위 안에 광주 민주화운동이나 노무현 탄핵이 없었다. 그 대신 n번방 사건(7위), 이태원 참사(8위), 미투운동(9위)을 꼽았다. 40대는 노무현 탄핵이 8위, 50대는 광주 민주화운동이 8위였다. 20대는 노무현이나 광주 민주화운동의 영향력이 4050에 비해 크지 않은 것이다. 이런 기억이 구조화돼 투표 행위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20대 지지율을 단기간에 올리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부실 인사 논란이 지지율에 미친 영향은 어떻게 보나. “100일을 돌이켜 보면 한미·한일 정상회담 등 대외 이슈가 많았다. 대통령은 외교와 민생 등으로 언론 노출을 많이 했고, 인사나 인사청문회는 주로 민주당이 나섰다. 첫 인사에서 다수의 국회의원들을 임명하고, 국회 다수를 차지하는 여당이 든든히 받쳐주면서 인사청문회를 무리 없이 치르기도 했다. 대통령이 인사를 전횡하는 듯한 모습은 보이지 않았고 ‘강선우 자진 사퇴’ 등도 비교적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이뤄졌다.” ―지난주 갤럽 조사에선 긍정·부정평가 이유 1, 2위에 외교와 경제·민생이 모두 들어갔다. “대통령 평가 기준은 조사 당시의 국정 현안이다. 같은 사안을 두고 한쪽에선 긍정적으로, 다른 쪽에선 부정적으로 평가한다. 다만 복잡한 정치 사안에 대해 자기가 좋아하는 지도자의 행보에 동조하는 현상, ‘리더 단서 효과(leader cueing effect)’도 있다. 6월 R&R 조사에서 대통령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에 참석해야 하느냐고 물었더니 63%가 참석해야 한다고 답했다. 진보층도 64%였다. 대통령이 불참한 이후 참석했어야 하느냐고 다시 물었더니 진보층에선 18%만 그렇다고 답했다. 대통령 결정에 따라 자신의 태도를 바꾼 것이다.” ―이 대통령은 “지지율이 (임기를) 마칠 때 더 높아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친인척·측근 비리는 지지율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촉발 사건(triggering event)’도 단기적 변화를 일으킨다. 세월호 참사나 윤석열 정부 때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가 대표적이다. 가장 중요한 관건은 경제다. 경제 평가는 개인적·국가적 차원, 성과에 대한 회고적 평가, 전망적 평가로 나뉘는데 ‘나라 경제가 그동안 나아졌는가’라는 회고적 평가가 지지율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 정파적 성격이 약한 유권자들에겐 그런 경향성이 더 뚜렷하다. 따라서 국가 경제 상황을 호전시킬 정책을 추진하는 게 중요하다. 다만 중요한 변수 중 하나는 ‘사건’이 아닌 ‘시간’이다. 거의 모든 역대 대통령이 시간이 지나며 지지율이 하락했다. 긍정보다 부정이 앞서는 교차 현상이 일어나면 긍정이 부정을 다시 앞서기는 매우 어렵다.”유성열 정치부 차장 ryu@donga.com}

이명박 전 대통령의 다스(DAS) 사건. 박근혜 정부의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 방해 사건. 문재인 정부 통일부의 블랙리스트 사건. 이재명 대통령의 ‘친형 강제입원’ 사건. 그리고 윤석열 전 대통령의 12·3 비상계엄 선포 관련 내란 사건. 이 사건들은 모두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혐의가 적용돼 공무원이 기소됐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현재 특검 수사와 재판이 진행 중인 비상계엄 사건을 제외한 나머지 사건의 또 다른 공통점은 무죄 판결을 받은 공무원이 있었다는 것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과 이재명 대통령도 본인이 기소된 다스, 강제입원 사건에서 직권남용 혐의는 무죄가 확정됐다. 형법 123조는 직권남용죄를 “공무원이 직권을 남용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하거나 사람의 권리행사를 방해한 때에는 5년 이하의 징역, 10년 이하의 자격정지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상당수의 법률이 1·2·3조 밑에 ①·②·③항 등을 둬서 내용을 구체화하지만 직권남용은 이 문구 딱 한 줄뿐이다. 과거 직권남용죄는 검찰이 기소한 인원이 연간 10명 안팎일 정도로 사실상 사문화됐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2016년 박근혜 정부 국정농단 사건 당시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적극 활용하면서 대표적인 ‘권력형 범죄’로 떠올랐다. 이후 검찰도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적폐 청산을 명분으로 전(前) 정부 인사들을 직권남용 혐의로 대거 기소하면서 고위공무원 상당수가 줄줄이 재판을 받았다. 직권남용죄로 공무원을 처벌해 달라는 고소·고발도 2020년 2만 건을 돌파하더니 지난해는 상반기만 2만7000건에 육박할 정도다. 직권남용죄는 국가의 기능과 권력이 공정하게 행사돼야 한다는 법익을 보호하기 위해 제정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조항이 단 한 줄뿐이어서 ‘직권을 남용하여’ ‘의무 없는 일’ 등의 문구가 모호하고 해석이 제각각인 데다 대법원 판례마저 구체적이지 않다 보니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라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2020년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건 판례를 통해 ‘의무 없는 일’에 대해선 명확한 기준을 제시했지만, ‘직권의 남용’에 대해선 구체적인 판단을 내놓지 않았다. 권성 전 헌법재판소 재판관은 2006년 헌법소원에서 “모호한 직권남용죄 조항은 정권 교체 후 정치적 보복을 위해 전 정부의 고위공직자들을 처벌하는 데 이용될 우려가 있다”며 유일하게 위헌 소수의견을 냈다. 이 우려는 실제 일부 현실화됐으며 정치 보복 수단으로 악용되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는 지적이 커지고 있다. 직권남용이 명백한 사건도 모호한 조항 때문에 무죄가 나오는 상황을 보완해야 한다는 주장도 동시에 제기된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달 24일 수석·보좌관 회의를 주재하면서 “없는 잘못을 억지로 만들어 내거나 정치적인 목적으로 열심히 일하는 공무원들의 업적을 훼손하는 일이 절대로 있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자 대통령실은 ‘직권남용의 남용’을 막는 입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윤석열 정부의 집권당이었던 국민의힘도 직권남용죄 개정은 협의할 동력이 있어 보인다. 극한 대치 중인 여야가 이 부분만큼은 협치해 단 한 줄뿐인 조항부터 구체화하길 바란다. 유성열 정치부 차장 ryu@donga.com}

《12·3 비상계엄 이후 7개월 넘게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를 가동 중인 국민의힘이 8월 22일 전당대회를 열고 새 지도부를 선출한다. ‘송언석 비대위’는 전당대회에 앞서 혁신위원회를 출범시키고 윤희숙 여의도연구원장을 지난달 9일 위원장으로 임명했다. 윤 위원장은 계엄·탄핵 사죄 등 3개 혁신안을 발표하면서 나경원 윤상현 장동혁 의원과 송 비대위원장을 인적 쇄신 대상으로 지목했다. 그러나 “혁신이 내부 총질이냐”는 비판에 직면했고, 지도부는 혁신안 수용 여부를 정하지 않고 있다. 지난달 24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만난 윤 위원장은 “단 한 명도 계엄과 대선 패배에 이르기까지 책임이 있다고 말하는 의원이 나오지 않았다”면서 “우리끼리 앉아서 스크럼 짠다고 우리를 지킬 수 없다”고 강조했다. 전화와 서면으로 진행한 추가 인터뷰에서도 그는 “죽어야 산다는 마음으로 반성해야 길이 열린다”고 호소했다.》―당이 지지율 7%의 길로 가고 있다고 진단했다. “8년 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때 지지율 7%가 나왔다. 박 전 대통령이 파면되고 아무 쇄신 없이 전당대회로 가는 루트였다. 전당대회는 어마어마한 투자를 해서 ‘컨벤션 효과’를 노리는 건데 ‘디컨벤션 효과’가 됐고 지지율은 7%까지 떨어졌다. 쇄신하지 않으면 그때 루트 그대로 간다.” ―혁신안 3개 중 1안(계엄·탄핵 사죄문 당헌·당규 명시)조차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그것도 안 하면 큰일난다. 최선이 아니라 최소다. 혁신위를 시작할 때 김용태 전 비대위원장이 ‘전당대회가 이렇게 가까이 왔는데 지금 징검다리 혁신안 만드는 건 코미디’라고 표현했고, 나도 같은 생각이었다. 그런데 당 지도부는 혁신위원장을 제안하면서 ‘선(先) 혁신 후(後) 전대’를 약속했다. 혁신안을 빠르게 확정하고 당헌·당규를 고쳐서 전당대회를 치르겠다는 약속이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과정을 보면 빨리 하려는 의지는 없어 보인다. 계엄 후 8개월이 지났는데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고 제대로 된 사죄도 한 적이 없다. 사죄도 안 하고 전당대회로 그냥 넘어가면 결과가 뻔히 보인다.” ―1안도 ‘숙의’가 필요하다는 게 의원총회 결론이었다. “호준석 혁신위 대변인이 지난달 10일 브리핑에서 (계엄·탄핵 관련) 사죄문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었다. 2주가 지났는데 이제부터 숙의를 한다고 하더라. 왜 이렇게 시간이 걸리는 것인지, 우리가 내용을 빨리 확정한 것도 그(숙의) 때문이었는데….” ―이른바 ‘나윤장송’을 쇄신 대상으로 지목하면서 ‘쌍권’(권영세 권성동 의원)에 대해선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았다. “현재의 문제가 너무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우리 당은 지금 극우와의 싸움이 돼버렸다. 전한길 씨와 결합돼 있기 때문에 전당대회 주자들한테까지 (극우가) 옮겨붙어 있다. 이 당을 건전한 보수로 돌이킬 것이냐, 아니면 극우로 가게 둘 것이냐의 큰 흐름이 이미 형성돼 버렸다.” ―‘쌍권’은 과거, ‘나윤장송’은 현재의 문제라는 뜻인가. “그렇다. 혁신위가 당을 이 지경으로 만든 ‘8대 사건’을 지목한 다음 사과를 제안하고 기다리고 있는데 ‘나윤장송 사건’이 벌어졌다. 그들은 ‘사과할 필요 없다’, ‘언제까지 사과만 할 거냐’ 등등 정면으로 반발했다. (송 비대위원장 등) 당 지도부도 미온적인 태도를 비쳤다. 나는 과거에 대해선 칼을 휘두를 생각이 없다. 사안에 대한 경중 판단이 모두 다르지 않나. (과거는) 당원 판단에 맡길 생각으로 당원소환제(혁신안 3안)를 제안한 것이다. 하지만 ‘나윤장송’은 현재의 문제다. 국민들 눈엔 ‘쟤네들 웃기네’ 할 거 아닌가.” ―지도부와 상의 후 발표했다면 반발이 적지 않았을까. “그건 기본 원칙을 혼돈하는 것이다. 지난달 9일 혁신위원장 임명 후 의원총회에 가서 ‘혁신위 역할은 국민 눈높이에 맞는 걸 만드는 것이고 지도부는 수용해야 성공한다’고 분명히 말했다. 혁신은 국회의원과 조율하고 논의하는 게 아니다. 혁신위는 어떻게 하면 국민 눈높이를 맞출까 고민하는 사람들이다. 당이 이렇게 누란지위(累卵之危)인 상황에서 지도부와 미리 조율하지 않았다고 지적하는 건 국민 눈높이에 맞는 혁신안을 낼 자세가 안 돼 있는 것이다.” ―쇄신보다 통합을 강조하는 주장도 많다. “지난주 전국지표조사(NBS)의 당 지지율 17%는 ‘강선우 파동’ 중에 나왔다. (강선우에 대한) 부적절 여론이 60%를 넘었지만 국민의힘이 얻은 건 아무것도 없다. 대여 투쟁을 아무리 해도 이쪽으로 오지 않는다. 강선우는 국민의힘이 아니라 언론과 국민이 낙마시킨 것이다. 우리끼리 앉아서 스크럼 짠다고 (당이) 지켜지지 않는다. 우릴 지켜줄 수 있는 건 국민밖에 없다. 당장 김건희 여사 소환이 임박했다. 악재가 계속 드러날 것이다. 우리 스스로 정말 ‘죽을 각오가 돼 있습니다’ 정도로 반성, 사죄하지 않으면 국민들이 돌아봐 주지 않을 것이다.” ―김문수, 장동혁 등의 당권 주자들은 혁신위를 ‘내부 총질’이라고 비판했다. “내부 총질이라는 말 자체가 윤석열 전 대통령의 언어다. ‘체리 따봉’과 한 세트로 유행돼 국민의힘의 풍토병이 됐다. 건전한 비판도 자신한테 불리하면 내부 총질이란 딱지를 붙여 ‘입 닥치라’는 것이다. 다양한 주장을 짓누르는 고압적 태도, 권력에 줄 세우는 정치를 답습하는 그들은 윤 전 대통령의 계승자들이다.” 2022년 7월 원내대표였던 권성동 의원은 윤 전 대통령이 텔레그램으로 “내부 총질이나 하던 당 대표(이준석 전 대표)가 바뀌니 달라졌다”고 하자 “대통령님의 뜻을 잘 받들어 당정이 하나 되는 모습을 보이겠다”고 답했고, 윤 전 대통령은 ‘체리 따봉’ 이모티콘을 보냈다. ―전한길 씨는 어떻게 조치해야 하나. “본명(전유관)으로 입당해 (지도부가) 몰랐다는 점은 인정하겠다. 하지만 부정선거 음모론과 윤 전 대통령 옹호 발언은 입당해서도 지속했다. 윤 전 대통령을 옹호하는 당 대표를 뽑기 위해 영향력을 행사하겠다고 한 것도 당원 가입 이후 행적이다. 지도부가 단호하게 대처해야 한다. 하지만 굉장히 미온적으로 갈팡질팡했다.” ―전 씨의 영향력은 미미하다는 주장도 있다. “그분은 지금 윤 전 대통령과 거의 한 몸으로 인식된다. 밖에서 그냥 떠드는 게 아니라 당원으로 가입했고, 당이 안방(국회)으로 불러들여서 이틀 연속 행사(토론회)까지 했다. 윤 전 대통령과 절연하느냐 마느냐가 우리 당의 존폐의 문제인데, 윤 전 대통령과 한 묶음으로 보이는 사람을 옹호하는 게 국민에게 어떤 인상을 주겠나. 잘못된 과거와 단절하는 게 탄핵의 바다를 건너는 첫걸음이다. 윤 전 대통령과 제대로 절연하지 않고는 바다를 건널 길이 없다. 그분은 단순한 자연인이 아니다. 당과 윤 전 대통령의 관계를 보여주는 중요한 인물이다. 현직 의원과 당권 주자들까지 ‘끌어안고 가야 한다’면서 옹호하고 있지 않은가.” ―윤 의원은 전 씨 논란과 관련해 ‘다양성을 포용하는 덧셈 정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히틀러나 스탈린도 다양성으로 끌어안고 가야 한다고 주장하는 게 맞나? ‘극(極)’이란 말을 쓰는 건 민주주의가 용인하는 범위를 벗어날 때다. 다양성이라는 가치를 파괴하는 사람들을 두고 민주주의가 용인하는 보편적인 선을 넘었다고 하지 않나. 더불어민주당은 윤 전 대통령 때 서른 번 탄핵을 시도했다. 나는 그걸 강하게 비판했고, 우리나라 민주주의가 절망스러운 수준으로 떨어졌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걸 계엄이란 수단으로 쓸어버리겠다? 이미 ‘계엄은 안 된다’고 국민 대부분이 판정을 내렸다. 그걸 계속 옹호하는 걸 다양성으로 덮어씌우면 안 된다.” ―스스로 쇄신하려는 당내 움직임이 지금은 잘 보이지 않는다. “우리 스스로 책임지는 게 제일 중요하다. 보수 정치에서 제일 중요한 덕목이 책임이다. 언제부턴가 책임정치가 약해졌다. 내가 주장하는 혁신은 ‘책임정치 회복’과 같은 얘기다. 물론 민주당도 똑같다. (양당이) 서로가 서로를 여태까지 지켜줬다. 하지만 이제 그런 ‘거울 정치’로는 안 된다. 국민들에게 아무리 ‘쟤들이 더 나빠’라고 얘기해도 ‘너네가 제일 나쁘다’며 아무도 안 들어준다. 우리가 스스로 새로워지지 않으면 출구는 없다.” ―신한국당, 한나라당 당시 소장파 같은 그룹도 실종됐다. “당 구조가 경직돼 있고, 민심을 파악하고 빠르게 반응하는 기제가 약해졌다. 소장파가 막 개겨도 머리를 짓누르지 않는 중진그룹도 중요하다. 불이익이 없게 하는 지도부의 열린 마음도 중요하다. 그런 건 당내가 아니라 국민을 쳐다보게 하는 ‘민감성’의 문제에서 나온다.” ―22일 전당대회는 어떤 전당대회를 모델로 삼아야 하는가. “지금과 똑같은 상황이 2004년이다. ‘차떼기 정당’으로 망할 지경이었다. 그때 전당대회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을 뽑았고, 총선에서 121석을 가져왔다. 열린우리당이 152석이었지만 우리가 이긴 선거였다. 박 전 대통령이 정말 진솔하게 사과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천막당사는 물론 당 재산도 국가에 헌납했다. 진솔하게 사죄하고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이런 위기 때 가장 중요한 지도자의 모습이다.” ―혁신위가 사실상 좌초됐다는 평가가 있다. “혁신위는 진정성 있는 사죄로 탄핵의 바다를 건너고 당 체질을 개선해 보수 정당을 살리려는 몸부림이었다. 그러나 국민 눈높이가 아닌 국회의원 눈높이에 맞추길 바란 지도부 기대치와 부딪쳤다. 그럼에도 소기의 성과로 꼽을 수 있는 것은 혁신 대상을 명확히 했다는 것, 당을 더한 위기로 밀어넣으며 정치적 이득을 꾀하는 극우 세력의 실체를 드러냄으로써 이를 막기 위한 연대가 태어나게 했다는 점이다. (혁신을 주장한) 김용태 안철수 윤희숙의 이야기들은 앞으로도 정당 혁신의 모델로 남을 것이다. 의미 없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제일 아쉬운 점은…. “단 한 명도 계엄과 대선 패배에 이르기까지 책임이 있다고 말하는 의원이 나오지 않았다. 죽어야 산다는 마음으로 반성해야 길이 열린다. 지금 변화와 통합으로 가는 길에 가장 절실한 것은 의원들의 용기와 동참이다. 의원 임기가 3년이나 남았다고 감춰질 일이 아니다.”국민의힘 윤희숙 혁신위원장(55)△1970년 서울 출생△2003년 한국개발연구원(KDI) 부연구위원△2015년 KDI 재정·복지정책연구부장△2016년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2016년 최저임금위원회 공익위원△2020년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 입당△2020∼2021년 21대 국회의원(서울 서초갑)△2024년 22대 국회의원 후보(서울 중-성동갑)△2025년 국민의힘 여의도연구원장유성열 정치부 차장 ryu@donga.com이지운 기자 easy@donga.com}

《“윤석열 전 대통령은 한마디로 남남이다.” 국민의힘은 1일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를 출범시켰다. 12·3 비상계엄과 윤석열 전 대통령의 파면, 초유의 대선 후보 교체 시도 파동과 대선 패배로 이어진 7개월을 되돌아봐야 할 과제가 비대위 앞에 놓여 있다. 20%대로 주저앉은 당 지지율과 무너져가는 보수의 혁신을 이뤄내고, 제1야당의 존재감을 회복해 거여(巨與)에 맞설 체급을 키워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난파선의 키를 쥔 송언석 비대위원장 겸 원내대표는 2일 안철수 의원을 당 혁신위원장으로 내정하고 쇄신의 닻을 올렸다. 이날 오후 국회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송 비대위원장은 윤 전 대통령과의 ‘절연’ 요구에 대해 “윤 전 대통령은 탈당한 자연인”이라고 강조했다. 당 혁신을 둘러싼 내홍 우려엔 “좌파는 분열해서 망하고 우파는 부패해서 망한다고 했는데 거꾸로 됐다”며 “특정 집단이 다른 집단을 배제해선 안 된다”고 했다. ‘본립도생(本立道生·기본에 충실해야 길이 열린다)’을 강조한 그는 “정상적이지 않은 것에 대해선 목소리 높이고 투쟁하고 싸우는 게 야당”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3대 특검이) 우리 당을 어떤 이유로 고리를 걸어서 직접적으로 (수사를) 한다면 강하게 대응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음은 일문일답.》―당 지지율이 많이 내려갔다. 보수 지지층도 이탈하는 모습이다. 원인이 무엇인가.“대선이 끝난 후 한 달도 채 안 됐다. 한 달에서 100일 정도는 허니문 기간이다. 새로운 정부에 대한 기대나 새 정부 정책에 대해 우호적 여론이 형성되는 시기라 그쪽으로 지지율이 쏠릴 수밖에 없다. 다만 대선 패인에 대한 분석과 혁신에 대한 의지가 국민들이 원하는 수준만큼 보여지진 않았다고 본다.”―김용태 전 비대위원장이 “국민의힘 개혁점수는 빵점”이라고 했다.“다양한 의견이 있을 수 있다. 혁신 과제가 100개라면 (김 전 비대위원장 발언은) 그중 일부에 불과하다고 본다. 그걸 하면 혁신이 되고, 안 하면 혁신이 안 되는 거라고 두부 자르듯 얘기하는 건 적절치 않다는 의견도 있다. 그것이 우리 당의 유일한 혁신 과제인가에 대해선 동의하지 않는 의견이 훨씬 많다.”―‘윤 전 대통령 함께 간다는 생각이 없다’는 말을 했는데 무슨 의미인가.“윤 전 대통령은 탈당한 자연인이 됐다. 자연인에 대해 계속 단절하라고 하는데, 우리 당 사람도 아닌데 어떻게 단절하라는 건지 이해를 잘 못하겠다. 윤 전 대통령과는 한마디로 남남인 것이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체포한다고 할 때는 윤 전 대통령을 지키기 위한 것보다는 내란죄 수사권 논란, 영장 쇼핑 논란 등 절차적 문제에 대해 법치주의를 살려야 한다는 취지였다. 잘못을 단죄하는 건 좋지만 단죄하는 과정에서 법치주의 정신에 따라서 절차적으로 문제가 없도록 해야 하지 않겠나.”―윤 전 대통령 시절 대통령실과 당의 관계가 수직적이고, 당내 민주주의가 무너졌다는 지적이 많았다.“혁신위가 당내 민주주의를 포함해 여러 방안을 논의할 것이다. 그러나 당내 민주주의가 무너졌다는 건 개인적으로 동의하기 쉽지 않다. 우리 당은 계파가 있다고 할 정도로 다양한 목소리가 살아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어떤 하나가 생기면 그냥 한 180명이 쭉 (같이) 간다. 거기가 당내 민주주의가 없는 것이다. 우리는 사안별로 다른 목소리가 계속 상존하고 있다. 그 목소리가 나오는 것은 당연히 민주주의가 살아 있다는 거로 봐야 한다. 야당은 더 시끄러워야 한다. 내가 볼 땐 우리가 (민주당보다) 훨씬 민주적이다.”―과거 혁신위는 전권이 없는 경우가 많았다. 혁신안을 지도부가 추인하지 않을 때도 있었는데….“혁신을 어떤 계파, 특정 부류, 어떤 개인에 편향적으로 하면 절대 성공할 수 없다. 혁신은 공감을 얻어야 한다. 절대적으로 중요한 건 대화와 소통, 설득이다. 계파는 엄연히 실체를 가지고 있는 집단이다. 혁신한다고 해서 특정 집단이 다른 특정 집단을 배제하고 린치하고 처벌하는 방식으로 가는 것은 성공하기 쉽지 않다.”―안 의원을 혁신위원장으로 내정한 것도 그런 차원인가.“여러 부분을 종합적으로 고려하고 많은 분을 접촉해 추천도 들었다. 안 의원이 제일 적임자였다. 반대하는 의견도 여전하지만 당내 여러 의견을 종합해 보면 지금으로서는 그렇게 갈 수밖에 없었다. 혁신해야 한다는 입장에선 (안 의원에 대해) ‘별로 뭐가 없지 않느냐’고 생각할 수 있고, 당내 소위 주류라고 하는 분들에게선 부정적인 견해도 존재한다. 그걸 다 끌고 가야 하는 게 지금 내 숙명이다.”―송 비대위원장이 생각하는 ‘혁신’은 무엇인가.“다양한 목소리를 어떻게 받아서 갈 건지 고민하는 게 혁신 과제가 될 수 있겠다. 그리고 의정 활동이나 당 활동에서 힘을 결집할 때 전체가 다 같이 가야 한다. 대화와 토론으로 논쟁할 때는 치열하게 하지만, 최종 결정된 사안에 대해선 같이 가야 한다. 최근엔 그러지 못했던 부분들이 있었다. 이런 부분을 개선하는 것도 혁신이다.”―분열을 통합하는 것도 혁신이라는 뜻인가.“좌파 유튜버들은 자기들이 어젠다를 가지고 뒤에서 민주당을 도와준다. 민주당이 공식적으로 제기하기 어려운 것들을 끌고 간다. 우파 유튜버들은 당에 욕을 한다. 옛날엔 좌파는 분열해서 망하고 우파는 부패해서 망한다고 했는데 거꾸로 됐다. 이건 꼭 말씀드리고 싶다. 우리가 반성을 많이 하고 있다. 행동으로 보여 드리지 못한 점은 굉장히 송구하다. 다만 큰 배가 한 번에 방향을 180도 바꿀 수는 없지 않은가. 진통을 겪으면서도 다양하게 의견을 수렴해서 변화해 가는 과정으로 이해해 줬으면 좋겠다.”―전당대회 룰을 바꿔 민심을 더 반영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룰을 바꿔야 할 이유가 있나. 전당대회 하고 선거할 때마다 룰을 바꾸는 건 안타깝다. 룰 자체에 대해 나한테 심각하게 문제 제기를 한 분도 별로 없었다.”―혁신위도 룰 논의를 안 하나.“(8월로 예정된) 전당대회 날짜를 감안하면 현실적으로 그게 가능할지 모르겠다.”―국민의힘의 노선이나 정책 방향이 오락가락한다는 지적도 있다.“오늘 아침 현충원을 참배하면서 방명록에 ‘본립도생(本立道生)의 마음으로 다시 시작하겠다’고 적었다. 기본에 충실해야 길이 열리고 우리가 살아날 방법이 생긴다는 뜻이다. 자유우파의 기본 철학에 충실해야 생존할 수 있는 길이 열리지 않겠나. 기본을 튼튼히 해놓고 확장하는 건 그 다음이다. (그동안) 중도를 지향하는 생각을 가지고 확장하다 보니까 우리 컬러나 철학에 맞지 않는 부분이 발생하다 보니 그런 얘기가 나온 거 아닐까 싶다. 자유민주주의, 법치주의, 시장경제 등 헌법이 가진 기본적 가치에 충실하게 법안이나 정책이 가야 한다. 거기에 플러스알파로 중도층, 청년, 4050세대 부분들을 타기팅 해서 정책을 만들어야 한다.”―원내대표 취임 후 ‘야당다운 야당’을 많이 강조했다. 민심을 되찾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게 그것인가.“그 역시 근본으로 되돌아가자는 것이다. 우리 당이 지향하는 철학과 비전에 맞춰서 가야 한다. 정책이나 입법에서 협치하는 쪽으로 (여당과) 합의해서 가는 것도 있겠지만, 정상적이지 않은 것에 대해선 목소리 높이고 투쟁하고 싸우는 게 야당이다.”―상법 개정안 입장을 바꾼 이유는….“경제계에서 안 하면 좋지만 해야만 하는 상황으로 가고 있다는 의견을 줬다. 두 번째는 주식 투자자들 입장에서 주주들을 조금 더 우대해 주는 정책이 필요하고, 우리가 완전히 그걸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반대만 하고 있다가 민주당이 일방적으로 가는 것보다는 민주당과 경제계의 가운데 선에서 조정하는 것도 정치권이 해야 할 일이라고 판단했다.”―여당과 합의 처리할 수 있는 법안이 또 있을까.“상속세 개편은 조금만 노력하면 합의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지난해 정기국회까지도 기획재정위원회에서 논의하자고 했는데 당시 당 대표였던 이재명 대통령이 논의할 대상으로 인가를 안 해줬다. 이제 민주당도 정권을 잡으니 상속세는 손대야 한다고 생각하는 거 같다. 문제는 방송 3법이다. 틀 자체를 완전히 허물어뜨리는 거라 동의하기 어렵다.”―3대 특검 수사가 본격화됐다.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아직 본격적으로 진행된 게 없지 않나. 우리 당을 어떤 이유로 고리를 걸어서 직접적으로 (수사를) 한다면 강하게 대응할 것이다. 태스크포스(TF)를 만들자는 의견도 있는데, 국민들이 볼 때는 ‘특검에 그렇게 반대하더니 그거 봐라. 너희들은 그런 놈들 아니냐’는 의견이 나올 수도 있다. 여러 의견들을 종합해서 대응하겠다.”―3대 특검이 수사하는 사건에 대해 사과할 생각은 없나.“정상적인 당 지도부가 구성됐을 때 입장을 내는 게 타당할 것 같다. 지금은 전당대회까지 당을 추스르고 혁신 과제들을 발굴해서 대안을 만드는 쪽으로 치중해야 되는 거 아닌가 싶다. (특검 수사가) 지금 당장 어떤 결과가 나온 것도 아니고 기소가 된 것도 아니지 않나.”―이재명 정부의 협치 수준을 점수로 평가한다면….“평가할 수가 없다. 아직까지 점수를 주기 민망한 수준이다.”―이 대통령과 여당의 한 달은 어떻게 평가하나.“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면 이념적인 색채가 그렇게 강한 것 같지는 않다. 본인은 실용이라고 치장하지만 민주당의 주류도 이념적인 색채가 덜한 분들이 형성하고 있는 것 같긴 하다. 하지만 법사위원장을 가져간 것은 법원과 검찰을 장악해서 이 대통령의 사법리스크를 어떻게 해보겠다는 의도로 해석된다. 김민석 국무총리도 어떤 분들은 조국 사태보다 더 심각하다고 지적한다. 그래서 내가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고 얘기해 왔던 것이다. 협치나 민생 얘기를 하면서 대외적인 데커레이션일 뿐이고 양보할 생각이 없다. 대화의 상대방인 우리 당을 인정할 생각이 별로 없어 보인다.”국민의힘 송언석 비상대책위원장 겸 원내대표(62)△1963년 경북 김천 출생△1985년 29회 행정고시 합격△2014년 기획재정부 예산실장△2015년 기획재정부 2차관△2018년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 입당△2018년∼현재 20·21·22대 국회의원(경북 김천)△2020년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 전략기획부총장△2022년 국민의힘 원내수석부대표△2024년 국회 기획재정위원장유성열 정치부 차장 ryu@donga.com김준일 기자 jikim@donga.com이상헌 기자 dapaper@donga.com}

헌법재판소는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심판 변론을 2월 25일 종결했다. 과거 대통령 탄핵심판은 통상 변론 종결 2주 안에 선고가 내려졌지만, 한 달이 지나도 선고 일정이 잡히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비상계엄은 사법 심사 대상이 아니라 각하될 것”이란 예측부터 ‘재판관 9인 완성체’가 될 때까지 선고할 수 없을 거란 ‘5 대 3 데드록’ 설까지 각종 추측이 난무했다. 그중 한 법조인이 설명해준 분석에 관심이 갔다.“데드록 설은 근거가 없다고 들었다. 다만 ‘5 대 0’ 구간이 있어 시간이 걸리는 것 같다.” 헌재는 4월 4일 윤 전 대통령을 파면했다. 재판관 8명 전원이 파면에 동의하면서 헌재 결정의 수용력이 극대화됐고, 우리 사회 구성원 다수가 승복했다. 자연스레 구체적인 평의 과정에 관심이 쏠렸다. 헌재는 국가적 혼란을 줄이기 위해 평의 과정을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는다. 다만 문형배 전 헌재소장 권한대행의 최근 강연에서 살짝 유추할 수 있었다.“어떤 사람은 여름이 오기도 전에 반팔을 입는 사람이 있고, 여름이 다 지나갈 때까지 긴팔을 입는 사람도 있다. 그걸 가지고 ‘너는 내 속도에 못 맞춰 주냐’ 이렇게 할 순 없다.” 문 전 권한대행은 지난달 27일 KAIST 과학기술정책대학원 강연에서 “표결이란 건 끝까지 해보고 정말 안 될 때 하는 것”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대통령 파면을 당연하다고 생각했는데, ‘다른 것’을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상당히 있었다”는 질문에 대한 답이었다. 탄핵 인용론과 기각론을 모두 써둔 다음 각각의 입장에서 상대를 비판하면서 수정본을 계속 내다 보니 의견이 모아져 전원일치 결정을 내릴 수 있었다는 설명이었다. 문 전 권한대행이 특히 강조한 것은 ‘시간’이었다. 그는 “헌법이라는 공통 분모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시간만 주어진다면 틀림없이 한 지점으로 모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시간이 좀 걸린 것”이라며 “설득에는 그렇게 시간을 아낄 필요가 없다”고 했다. 문 전 권한대행의 강연과 그 법조인의 분석은 일부 맞닿아 있었다. 법조인은 분석의 근거를 대지 않았고, ‘5 대 0’ 구간이 정말 있었는지도 확인되진 않았다. 하지만 두 사람이 공히 무게를 두고 강조하고 분석한 것은 ‘시간’이었다. 재판관 다수가 설사 의견을 정했더라도 소수 재판관이 의견을 정하거니 만장일치가 될 때까지 시간을 들여 기다리며 설득해야 한다는 의미로 읽혔다. 그리고 문 전 권한대행은 마지막으로 이렇게 강조했다.“우리 사회에서 가장 부족한 게 설득이라고 본다. 짐짓 ‘너와 나는 생각이 다르다’고 하는데 며칠을 계속 얘기해 보면 별로 다른 것도 없다.” 행정·의회권력을 모두 거머쥔 정부·여당에 시간은 사치일지도 모른다. 소수 야당이 된 국민의힘은 투쟁만이 유일한 무기일 수도 있다. 다행히 이재명 대통령과 여야 모두 통합의 필요성엔 뜻을 같이 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 대통령과 여야 모두 설득에는 시간을 아끼지 않았으면 한다. 계속 얘기하고 설득하다 보면 별로 다른 게 없다는 걸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유성열 사회부 차장 ryu@donga.com}

“대통령 측근과 형 이런 분들을 구속을 할 때 상당히 쿨하게 처리했던 기억이 난다.” 윤석열 전 대통령은 검찰총장이던 2019년 10월 국회 국정감사에서 이렇게 말했다. “검찰의 중립성과 독립성이 어느 정부에서 그나마 보장됐느냐”고 이철희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묻자 이명박 정부를 지목한 것이다. 실제 검찰은 2008년 공천 대가로 돈을 받은 혐의로 김윤옥 여사의 사촌 언니를, 2010년 알선수재 혐의로 이 전 대통령의 측근인 천신일 세중나모여행 회장을 각각 구속했다. 이명박 정부 초기 검찰이 ‘쿨’하게 처리했다는 사건들이다. 2010년 민간인 불법 사찰 사건이 불거졌다. 이 전 대통령을 희화한 동영상을 블로그에 올렸다는 이유로 국무총리실의 공무원 감찰 부서인 공직윤리지원관실이 김종익 씨를 사찰하고 해임되도록 압력을 가했다는 의혹이었다. 김 씨는 공무원이 아니었기 때문에 의혹이 사실이라면 정권을 뒤흔들 불법 행위였다. 뉴욕타임스는 훗날 이 사건을 워터게이트 사건과 비교했다. ‘왕차관’으로 불린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2차관과 이영호 전 대통령고용노사비서관 등 이른바 ‘영포라인’의 비선이 가동된 초대형 게이트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검찰은 이 사건에선 쿨하지 않았다. 윗선은 규명하지 않은 채 꼬리만 잘라냈고, 2012년 3월 내부 폭로가 나온 뒤에야 다시 수사에 나서 민간기업 불법 사찰 혐의까지 밝혀낸 뒤 박 전 차관 등을 재판에 넘겼다. 이 전 대통령의 형 이상득 전 국회부의장이 저축은행 비리로 구속된 것도 정권 말기인 2012년 7월이었다. 박근혜 정부 때도 검찰은 쿨하지 않았다. 2007년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 때부터 최순실 일가 문제가 거론됐고, 국가정보원이 최순실 문제를 다룬 첩보 문건을 만들 정도로 국정농단 의혹은 정권 초부터 위험 수위에 다다랐다. 2014년 ‘정윤회 문건’ 유출 사건, ‘청와대 문고리 3인방’ 의혹 등이 전주곡으로 나왔음에도 수사에 적극적이지 않던 검찰은 2016년 10월 최순실의 태블릿PC가 공개된 후에야 대대적인 수사에 들어갔다. 문재인 정부 초기 때도 검찰은 적폐 청산에만 앞장서며 탈원전 등 정권을 겨냥한 수사엔 미온적이었다. 지난달 검찰은 김건희 여사의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 연루 의혹에 대한 재수사에 착수했다. 지난해 7월 검사들이 대통령경호처 부속청사로 가 휴대전화도 반납한 채 김 여사를 조사하고 무혐의 처분하더니 지금은 다시 수사할 필요성이 생겼다는 게 검찰의 논리다. 공교롭게도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되자 입장이 바뀐 것이다. 김 여사 계좌가 주가 조작에 사용된 것은 2010년, 김 여사에 대한 고발장이 접수된 것은 2020년이었다. 검찰이 처음부터 제대로 수사했다면 김 여사 문제가 이렇게까지 커지고 윤석열 정권에 부담이 되진 않았을 것이다. 기소권을 가진 검찰의 수사는 늘 정확하고 공정해야 한다. 그러나 정권마다 반복되는 부실 수사를 지켜보는 국민들은 물을 수밖에 없다. 검찰의 수사는 왜 지금은 항상 맞고, 그때는 늘 틀렸다는 것인지. 검찰이 신뢰를 회복하려면 이 질문부터 답해야 할 것이다. 유성열 사회부 차장 ryu@donga.com}

헌법재판소는 2004년 5월 14일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국회의 탄핵소추를 기각하면서 “대통령은 국민 모두에 대한 ‘법치와 준법의 상징적 존재’”라고 밝혔다. 대통령이 헌법과 법률을 어떻게 지키고 수호해야 하는지 결정례(2004헌나1)를 제시한 것이다. 당시 헌재는 “대통령은 헌법을 수호하고 실현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할 뿐만 아니라, 법을 준수하여 현행법에 반하는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며 “나아가 입법자의 객관적 의사를 실현하기 위한 모든 행위를 해야 한다”고 결정문에 적시했다. 이 결정례는 윤석열 전 대통령의 탄핵심판에도 그대로 인용되며 파면 결정의 근거로 쓰였다. 대법원 판례는 그 자체로 법률적 성격을 갖는다. 정부의 정책과 처분은 이와 어긋나지 않아야 한다. 헌재 결정도 그 자체로 헌법적 기능을 갖는다. 헌재 결정을 이행하지 않는 것은 위헌행위다. 대법원과 헌재를 ‘최고사법기구’라고 부르는 이유다. 헌재법은 헌법소원·권한쟁의심판 결정과 관련해 ‘모든 국가기관과 지방자치단체를 기속한다’는 규정도 두고 있다. 헌재의 결정은 각 기관이 무조건 따라야 한다는 취지다. 그러나 정부와 국회는 대법원과 헌재의 결정을 존중하지 않거나 심지어 이행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지난달 13일 대법원은 방송통신위원회가 이진숙 김태규 ‘2인 체제’로 방송문화진흥회의 새 이사 6명을 임명한 처분에 대한 집행정지 결정을 확정했다. 2인 체제의 적법성을 심리 중인 본안 판결이 확정될 때까지 새 이사가 취임하면 안 된다는 취지다. 서울행정법원이 심리한 본안 사건 1심도 방통위가 패소해 2심이 진행 중이다. 대법원 결정 후에도 방통위는 신동호 EBS 이사를 EBS 신임 사장으로 임명했고, 서울행정법원은 7일 집행정지 결정을 또 내렸다. 대법원 판단이 이미 나온 만큼 집행정지 결정이 충분히 예상되는 상황이었는데도 방통위는 이를 무시하고 2인 체제에서의 임명을 또 강행한 것이다. 헌재는 국내 거주지를 신고하지 않았거나 주민등록이 없는 재외국민은 투표권을 주지 않는 국민투표법 조항에 대해 2014년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형법상 낙태죄 조항과 관련해서도 2019년 같은 결정을 내렸다. 헌재는 두 법률을 각각 2015년과 2022년까지 개정하라고 주문했지만 국회는 여전히 개정하지 않고 있다.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았던 최상목 부총리는 마은혁 헌재 재판관을 임명해야 한다는 헌재의 권한쟁의심판 결정을 이행하지 않았고,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은 마 재판관을 8일에야 임명했다. 헌재 결정이 나온 지 40일 만이다. 한 권한대행은 윤 전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를 앞두고 “어떠한 결정이 내려지더라도 우리는 법치주의 원칙에 따라 결과를 차분하고 냉정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밝혔다. 헌재 결정을 40일 만에 이행한 대통령 권한대행은 국민에게 승복을 요구할 자격을 상실했다. ‘법치와 준법의 상징적 존재’라는 헌법이 부여한 역할도 저버렸다. 정부와 국회도 법치와 준법을 말하기 전에 자신들부터 되돌아보길 바란다.유성열 사회부 차장 ryu@donga.com}

12·3 비상계엄 이후 ‘헌정사상 초유의 일’이 계속 벌어졌다. 현직 대통령에 대한 내란 우두머리(수괴) 혐의 수사와 출국금지, 법원의 체포·구속영장 발부와 검찰의 구속 기소 모두 1948년 7월 17일 제헌헌법 공포 이후 처음 벌어진 사건이었다. 초유의 일은 7일 또 추가됐다. 법원이 현직 대통령 구속을 취소하는 결정을 내린 것이다. 법조인들은 요즘 “형사소송법과 해설서를 다시 공부해야 할 판”이란 말을 많이 한다. 국회의 탄핵소추로 직무가 정지됐지만, 여전히 국가 기밀에 접근하며 대통령경호처의 24시간 밀착 경호를 받는 현직 대통령에 대해 형사사법 절차를 진행한 전례가 없어서다. 사실상 사문화됐다는 평가를 받던 구속 취소를 윤석열 대통령 측이 청구하고 법원이 인용한 것도 대다수 법조인들은 예측하지 못했다. 일부 윤 대통령 지지자들은 “사실상 무죄를 받은 것”이란 주장도 펼치고 있다. 하지만 윤 대통령의 ‘내란 수괴 혐의 피고인’ 신분은 변하지 않았다. 불구속 상태로 형사재판을 받는다는 것만 달라졌다. 논란이 되고 있는 공수처의 내란죄 수사권도 법원은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 “명확한 규정이 없고 대법원의 해석이나 판단도 없어 절차의 명확성을 기하고 수사 과정의 적법성에 관한 의문을 해소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밝혔을 뿐이다. 당연히 윤 대통령의 유무죄도 결론이 난 게 아니다. 사유가 엄격히 제한되지만 법원은 윤 대통령을 다시 구속할 수 있다. 중요한 증거가 더 나오면 재구속 사유가 된다. 즉시항고를 포기한 검찰도 “본안에서 바로잡겠다”고 밝혔다. 재판부 직권으로 구속영장을 발부하는 것도 가능하다. 2023년 법원이 직권으로 발부한 구속영장은 검찰 청구로 발부된 것보다 1만146건이나 많았다. 법원이 구속 취소 청구를 인용하면서 직권으로 구속영장을 발부한 사례도 있다. 재판부가 유죄를 선고하고 법정 구속하면 윤 대통령은 다시 수감된다. 구속 취소 한 번으로 영원한 자유를 얻는 건 아니란 얘기다. 윤 대통령 수사도 내란 혐의로 끝나는 건 아니다. 국민의힘 공천 개입 의혹은 검찰이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여권은 핵심 관련자 명태균 씨가 ‘제2의 김대업’으로 정치공작을 펼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증거가 없던 김 씨와 달리 명 씨는 ‘황금폰’을 검찰에 제출했다. 황금폰엔 윤 대통령이 김영선 전 의원에게 공천을 주라고 윤상현 의원(공천관리위원장)에게 얘기하겠다는 발언이 담겨 있다. 윤 대통령이 “공관위원장이 정진석 비서실장인 줄 알고 있었다”며 의혹을 부인한 것과 배치되는 증거다.‘채 상병 순직 사건’을 조사하던 해병대 수사단에 외압을 행사한 의혹은 공수처가 수사 중이다. 채 상병 사건 이첩 보류 명령을 거부한 박정훈 대령은 1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경찰도 윤 대통령을 특수공무집행방해 혐의로 입건하고 체포영장 집행 방해 혐의를 수사 중이다. 헌법재판소가 윤 대통령을 파면하지 않더라도 현직 대통령은 공소시효가 정지되는 만큼 세 사건 모두 퇴임 후 기소가 가능하다. 윤 대통령 수사는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유성열 사회부 차장 ryu@donga.com}

동아일보 취재팀이 명태균 씨를 처음 만난 건 지난해 10월 5월 경남 창원에서였다. 3시간 30분의 인터뷰에서 명 씨는 윤석열 대통령 부부의 서울 서초동 자택을 셀 수 없이 방문해 각종 정치적 조언을 건넸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당시 명 씨는 윤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에 대한 결정적인 폭로는 내놓지 않았다. 대통령 부부와 주고받은 메시지나 통화 내용도 공개하지 않았고, 김 여사의 국민의힘 공천 개입 의혹도 부인했다. 2022년 5월 10일 대통령 취임식 이후 1년간 접촉하지 않았다는 말도 했다. 23일 후 가진 2차 인터뷰에서도 비슷한 태도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명 씨는 윤 대통령 부부를 보호하겠다는 생각이 강했던 것으로 보인다. “나를 감옥에 넣으면 가만히 있지 않겠다”는 경고성 인터뷰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명 씨의 태도가 달라진 건 김영선 전 국민의힘 의원 공천을 알선한 뒤 돈을 받은 혐의로 지난해 11월 15일 검찰에 구속되면서다. 공교롭게도 명 씨가 구속기소된 지난해 12월 3일 밤 윤 대통령은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이후 명 씨는 야당 의원을 만나 “‘황금폰’에 쫄아서” 윤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고 주장하더니, 부친 묘소에 파묻었다던 황금폰을 스스로 검찰에 제출했다. 윤 대통령 부부와 주고받은 메시지 일부도 만천하에 공개됐다. 20일엔 김 여사가 김상민 전 대전고검 검사 공천을 위해 김 전 의원에게 불출마를 종용하고 장관 또는 공기업 사장 자리를 약속했다고 주장했다. 단순한 공천 거래로 보였던 사건이 권력형 게이트로 비화됐는데도 검찰 수사는 진전이 없었다. 경남도선관위가 김 전 의원과 명 씨의 돈거래를 포착해 고발한 것은 2023년 12월. 김 전 의원의 회계담당자 강혜경 씨가 녹음파일 4000여 개를 제출한 것은 지난해 초였다. 그러나 창원지검은 검사도 없는 수사과에 사건을 배당하고 수사를 진행하지 않았다. 강 씨가 언론을 통해 김 여사의 공천 개입 의혹을 폭로하자 뒤늦게 압수수색에 나섰고, 지난해 11월 초에야 검사들을 파견받아 전담수사팀을 꾸렸다. 전국 최정예 특별수사 인력을 갖춘 서울중앙지검이 수사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지만 검찰은 창원지검에 계속 수사를 맡겼다. 비상계엄 이후 한동안 잠잠하던 명태균 게이트는 야당이 특검을 추진하고 황금폰 포렌식이 마무리되면서 다시 정국을 뒤흔들기 시작했다. 그러자 검찰은 17일 서울중앙지검으로 사건을 뒤늦게 이송했다. 윤 대통령과 김 여사를 수사하기 위해서라지만, 그렇다면 왜 지금까지 창원지검에 맡겨뒀는지 의문만 더 커졌다. 3개월 동안 전담수사팀이 새로 밝혀낸 건 김 전 의원이 창원 국가산단 정보를 미리 알고 부동산을 취득한 혐의 정도였다. 검찰은 디올백 사건도 밍기적대다가 뒤늦게 김 여사를 검찰청사가 아닌 경호처 부속청사에서 조사해 논란을 자초했다. 명태균 게이트 역시 검찰이 진작에 진상을 규명했어야 할 사안이다. 검찰이 이 사건마저 디올백 수사에서 저질렀던 과오를 답습한다면 실추된 명예를 회복하는 길을 영영 잃을 것이다. 유성열 사회부 차장 ryu@donga.com}

19일 새벽 윤석열 대통령 지지자들이 서울서부지법에 난입해 판사실을 수색하고 집기를 부수던 시점. 보수 성향 인터넷 커뮤니티에 ‘1·19 자유민주항쟁 선언문’이란 글이 올라왔다. ‘국민저항권’이 발동됐다는 글이었다. 작성자는 “종북 반국가 세력들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질서를 지키기 위해 ‘1·19 자유민주항쟁’이 시작되었음을 선포한다”며 “현직 대통령을 구속한 사법부와, 헌법재판소를 비롯한 기타 헌법기관 전체가 더 이상 국민을 대표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어 “우리의 자유민주항쟁 선언과 이에 따르는 개인 및 단체의 행동은 우리가 직면한 위기와 국가의 파멸 위험성을 고려하였을 때 반드시 필요한 것으로 여겨진다”고 적었다. 법원 난입 상황을 담은 영상에서도 “이제 국민저항권이야!”라고 외치는 소리가 곳곳에서 들렸다.국민저항권 담았다는 ‘자유민주항쟁 선언문’ 같은 날 서울 광화문 집회에서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는 “이미 국민저항권이 발동된 상태이고 국민저항권은 헌법 위에 있다”고 주장했다. 7일 국민의힘 조배숙 의원도 국회에서 “(헌재가 헌법을 위반하면) 국민이 저항권을 발동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아스팔트 우파를 넘어 제도 정치권에서도 국민저항권이 언급되고 있는 것이다. 국민저항권. 우리 헌법에 적시된 개념은 아니다. 130조에 이르는 헌법 어디에도 국민저항권이란 말은 없다. 다만 헌법학자들은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하고”라고 적힌 헌법 전문에 국민저항권의 근거가 담긴 것으로 분석한다. 4·19는 국민이 스스로 들고일어나 정권을 무너뜨린 시민혁명이었기 때문이다. 헌재는 2014년 통합진보당에 대한 해산 결정을 내리면서 결정문(2013헌다1)에 저항권의 개념과 행사 요건을 구체적으로 적시했다. 통진당이 집권 방안 중 하나로 저항권을 제시했던 만큼 저항권이 무엇이고, 어떻게 행사될 때 헌법적 정당성을 갖출 수 있는지 판례로 명확히 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헌재는 저항권을 “공권력의 행사자가 민주적 기본질서를 침해하거나 파괴하려는 경우 이를 회복하기 위하여 국민이 공권력에 대하여 폭력·비폭력, 적극적·소극적으로 저항할 수 있다는 국민의 권리이자 헌법수호제도”라고 규정했다. 저항권은 ‘실력적 저항’이어서 ‘질서 교란’ 위험이 수반된다는 점도 인정됐다. 여기까진 윤 대통령 지지자들과 생각이 같다. 그러나 행사 요건으로 들어가면 얘기가 달라진다. 헌재는 저항권의 요건을 3가지로 엄격히 제한했다. 먼저 ‘단순 위헌’을 넘어 민주적 기본질서의 중대한 침해나 이를 파괴하려는 시도가 있어야 하고, 저항권 외에는 유효한 구제 수단이 없어야 한다. 무엇보다 저항권 행사는 ‘민주적 기본질서의 유지와 회복’이라는 ‘소극적인 목적’에 그쳐야 하고, 정치·경제·사회 체제를 개혁하는 수단으로는 이용될 수 없다.尹 지지자 저항권은 헌재 판례와 어긋나 백번 양보해서 윤 대통령 탄핵안 의결과 구속으로 민주적 기본질서가 중대하게 침해됐다고 인정해 보겠다. 하지만 윤 대통령은 구제 수단이 충분하다. 비상계엄이 정당했다면 탄핵심판에서 이기면 되고, 석방을 원한다면 구속적부심이나 보석이 있다. 내란죄도 무죄를 받아낼 기회가 3차례나 주어진다. 하지만 윤 대통령 지지자들은 바로 법원을 침탈하고 판사를 겁박해 사법부 기능을 마비시키려 했다. ‘소극적 목적’으로 민주적 기본질서를 회복하려 한 게 아니라 아예 파괴하려 했던 것이다. 헌재는 통진당의 저항권을 ‘폭력’으로 규정짓고 위헌정당으로 판단했다. 윤 대통령을 돕는 법조인들이 진정으로 지지자들을 걱정한다면, 헌재 판례부터 제대로 알려주는 게 맞다. 유성열 사회부 차장 ryu@donga.com}

2013년 10월의 일이다.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은 2012년 대선을 앞두고 야당을 비난하고 정부·여당을 옹호하는 글을 트위터에 올려 여론을 조작한 혐의로 국가정보원 직원 3명을 체포했다. 이를 뒤늦게 파악한 국정원이 “통보 절차를 전혀 거치지 않았다”고 반발하자 수사팀은 직원들을 15시간 넘게 조사한 뒤 석방시켰다. 국정원 직원을 구속하려면 국가정보원직원법에 따라 미리 국정원장에게 통보해야 한다. 수사팀은 지휘라인인 2차장검사와 서울중앙지검장에게 보고하지 않고 법원에서 체포영장을 발부받아 집행했다. 검찰은 지휘 체계를 무시한 항명으로 규정하고 수사팀장을 직무에서 배제했다. 그러자 수사팀장은 직후 열린 국회 국정감사에 출석해 ‘수사 외압’을 받아왔다고 폭로했다. 중앙지검장이 “야당 도와줄 일 있느냐”며 사실상 수사를 막은 탓에 자신의 전결로 영장을 발부받아 강제수사를 할 수밖에 없었다는 주장이었다. 국감에서 그는 “저는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말도 했다. 법무부는 수사팀장에게 정직 1개월의 중징계를 내린 뒤 대구고검으로 좌천시켰다. 그러나 법원은 수사팀이 이 같은 ‘비상 조치’를 동원해 수사한 국정원 여론 조작 의혹의 실체를 인정했다. 국정원법 위반 혐의는 물론이고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까지 유죄가 인정됐고, 국정원장(원세훈)은 2018년 대법원에서 징역 4년이 확정됐다. 당시 수사팀장은 윤석열 수원지검 여주지청장, 12·3 비상계엄을 선포한 현 대통령이다. 비상계엄 선포 사건에 대한 수사가 윤 대통령의 턱밑까지 진행되면서 윤 대통령이 약 1년 전부터 야당의 입법 폭주를 막고 부정선거 의혹을 규명하기 위한 ‘비상 조치’를 언급해 왔다는 진술이 이어지고 있다. 윤 대통령이 현행법을 어겼다는 비판을 받으면서까지 시도한 비상 조치 2개 중 하나는 끝내 성공해 최고권력자의 반열까지 오르는 발판이 됐다. 하지만 나머지 하나는 위헌·위법 비판 속에 국민 지지를 얻지 못하고 실패하면서 탄핵심판과 내란 우두머리 혐의 수사를 동시에 받는 처지가 된 것이다. 비상 조치로 흥한 대통령이 비상 조치로 몰락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국민들은 헌정질서가 한 달 가까이 회복되지 않는 상황에 고통을 겪고 있다. 검찰총장까지 지낸 법률가이자 일국의 대통령인 사람이 ‘송달 거부’라는 꼼수를 쓰는 모습을 봐야 하는 고통도 상당하다. 국민들은 국정원을 신속히 강제수사해야 한다며 상관에게 보고하지 않고 직원들을 체포해 온 그가, 검찰과 공수처의 출석 요구에는 일절 응하지 않는 모습도 생생히 목격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29일 공수처의 3차 출석 요구도 끝내 불응했다. 이제 윤 대통령이 자진 출석할 가능성은 사라졌다고 봐야 한다. 윤 대통령이 검사 시절 국정원을 수사할 때처럼, 윤 대통령에 대한 비상 조치가 시급한 상황인 것이다. 공수처는 체포영장 청구 등 강제수사 방안을 총동원해 증거 인멸을 신속히 막아야 한다. 그리고 대통령경호처는 공수처의 비상 조치를 막아서는 우를 절대 범하지 않길 바란다. 국민들은 지금 헌정질서 회복을 위한 비상 조치를 바라고 있고, 대통령경호처가 충성할 곳은 대통령이 아니라 국민이다. 유성열 사회부 차장 ryu@donga.com}

윤석열 대통령이 최근 의료, 연금, 노동, 교육 등 4대 개혁과 관련해 “회의만 말고 대통령령(시행령)으로 바꿀 수 있는 것들부터 빠르게 바꾸라”고 참모와 장관들에게 지시했다고 한다. 대통령의 지시에서 국정 과제의 미진한 성과에 대한 답답함과 국정 지지율 하락에 대한 위기의식이 동시에 읽혔다. 4대 개혁은 하나같이 각 분야의 구조를 뿌리부터 바꿔 내는 작업이다. 4대 개혁을 ‘구조 개혁’으로 일컫는 이유다. 윤 대통령이 개혁을 미루지 않고 정면으로 추진하는 것은 마땅히 응원할 만하다. 그러나 구조 개혁은 필연적으로 입법이 수반돼야 한다. 개혁의 방향과 목표를 법으로 못 박고 시행해야 개혁 열차가 출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시행령 국정’으로 개혁 추진하는 尹 윤 대통령의 지시는 거야(巨野)의 벽에 막혀 국정 방향에 맞는 입법을 뜻대로 할 수 없는 상황에서 내린 고육지책이겠다. 법률 시행에 필요한 세부 규정을 담은 시행령은 국회 동의가 필요 없고 대통령 뜻에 따라 정부가 개정할 수 있다. 하지만 시행령 개정으로 개혁까지 가기는 어렵다. 상위법의 범위를 넘어서는 안 된다는 법률적 한계가 분명해서다. 정권이 교체되면 언제든지 원상복구될 수 있어 지속 가능하지도 않다. 일정 수준의 개선은 되겠지만 4대 개혁의 본질인 ‘구조 개혁’이 시행령 개정만으로는 불가능한 이유다. 노동 개혁만 살펴봐도 그렇다. 얼마나 일했는지 측정이 어려운 연구원 등을 위해 근로기준법에 규정된 재량근로제를 예로 들어보겠다. 노사가 근로시간을 주 40시간으로 합의했다면, 60시간 일했더라도 40시간으로 간주하는 제도다. 정부는 시행령을 개정해 재량근로제 대상 업무를 늘릴 수 있다. 그러나 반도체 업계처럼 연구개발(R&D)에 사활을 거는 분야는 재량근로제를 넘어 미국의 화이트칼라 이그젬션(white-collar exemption) 같은 제도를 원한다. 연구개발자 등 고소득 근로자나 전문직은 근로시간 규제를 아예 면제시키는 제도로, 일본은 2019년 ‘고도(高度) 프로페셔널’이란 이름으로 노동기준법에 도입했다. 이처럼 개혁은 입법으로 제도를 만들거나 보완해야 동력을 확보할 수 있다. 법률과 시행령의 위계를 논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입법 없는 개혁의 한계를 보수 정권에서 이미 경험했다. 박근혜 정부도 노동 개혁을 강력하게 추진했다. 주 52시간제와 저(低)성과자 해고를 맞바꾸는 ‘노동 빅딜’을 모색했다. 한국노총을 참여시켜 2015년 노사정 대타협까지 도출했다. 여기까진 노동 개혁에 성공한 네덜란드나 아일랜드와 비슷했다. 하지만 법제화하기로 합의했던 저성과자 해고를 시행령도 아닌 정부 지침으로 밀어붙이는 강수를 뒀고 노동계의 합의 파기와 여당의 총선 패배, 국정농단 사태 등으로 개혁 동력을 상실했다. 그리고 저성과자 해고 지침은 정권이 교체되면서 폐기됐다. 저성과자 해고를 법제화하자는 노사정의 약속도 연기처럼 사라졌다.구조 개혁의 필수 조건은 국회 입법 국민의힘은 당론으로 준비 중인 반도체특별법에 화이트칼라 이그젬션 조항을 넣기로 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주 52시간제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다는 주장은 받아들이기 어렵다”며 반대한다. 반도체 업계의 요구를 담아 노동 개혁 열차를 출발시키려면 윤 대통령이 야당을 국정 파트너로 인정하고 설득해야 하는 상황인 것이다. 노동 개혁에 실패했던 박근혜 정부도 야당과 노조를 끊임없이 설득해 공무원연금 개혁 입법에는 성공했다. 임기 반환점을 앞둔 윤 대통령도 ‘시행령 국정’에서 벗어나 국회를 집요하게 설득하는 모습을 보여줬으면 한다. 그것이 윤석열 정부가 ‘구조 개혁’의 성과를 낼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유성열 사회부 차장 ryu@donga.com}

김건희 여사 공천 개입 의혹의 핵심 관련자인 명태균 씨 때문에 여권이 초긴장 상태를 이어가고 있다. 명 씨는 자신을 ‘명 박사’로 불렀다는 윤석열 대통령에게 최재형 전 감사원장을 국무총리로 추천했다고 주장하는가 하면, 김 여사에겐 “일을 시킬 땐 3명에게 하라”는 조언을 건넸다고 밝히는 등 무차별 폭로를 이어가고 있다. 여권을 긴장시키는 폭로는 이뿐이 아니다. 김영선 전 국민의힘 의원의 공천 거래 의혹을 폭로한 강혜경 씨는 명 씨가 윤 대통령에게 유리한 여론조사를 해주는 대가로 김 전 의원이 공천을 받았다고 국정감사에서 밝혔다. 인사 추천이나 정치적 조언이 정말로 이뤄졌다면 국민들의 실망감은 커지겠지만 불법 행위는 아니다. 하지만 공천 개입 의혹이나 여론조사 조작 의혹은 사실로 드러난다면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는 선거 범죄다. 그 파장을 가늠조차 할 수 없는 사안인 것이다. 명 씨와 접촉한 것으로 지목된 인사 20여 명이 담긴 ‘명태균 리스트’까지 등장하면서 여권은 날마다 명 씨의 입만 쳐다보는 처지가 됐다. 명 씨가 폭로를 뒷받침하는 ‘스모킹 건’을 숨기고 있다는 소문도 유령처럼 여의도를 떠돈 지 오래다. 명 씨와 접촉한 여권 인사들은 명 씨를 ‘정치 브로커’로 치부하면서 폭로가 사실이 아니라고 입을 모은다. 몇 차례 만나긴 했으나 허무맹랑한 얘기를 많이 해 관계를 단절했다는 해명도 이어진다. 윤 대통령도 21일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와의 면담에서 명 씨와 접촉한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문제가 있다고 판단해 단호하게 잘라냈다”고 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여권은 명 씨를 허위사실 유포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해 사실관계를 가려내고 명 씨가 처벌받도록 하면 된다. 하지만 명 씨가 고소됐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고소장까지 써놨다고 밝혔지만 실제 제출하진 않았다. 김병민 서울시 정무부시장에 따르면 본인 등이 적극 말렸다고 한다. 법적 조치를 하면 ‘명태균 이슈’에 매몰돼 계속 뉴스가 이어질 수 있어 말렸다는 것이다. 그러나 야권의 시각은 다르다. 실체적 진실이 규명되는 것 자체를 여권이 두려워하고 있다고 본다. 수사가 진행돼 명 씨의 폭로가 일부라도 사실로 밝혀진다면 향후 있을 지방선거나 총선에서 치명타를 입을 수 있기 때문에 여권이 명 씨를 고소하지 못하고 있다는 해석이다. 명 씨와 김 전 의원을 수사 중인 검찰 역시 공교롭게도 더딘 모습이다. 경남선거관리위원회가 수사를 의뢰한 건 지난해 12월, 강 씨가 통화 녹음 파일 4000여 개를 검찰에 제출한 건 올해 초다. 하지만 검찰은 최근에야 강제수사에 착수하고 검사 2명도 뒤늦게 파견했다. 검찰은 여론조사 자료가 있을 것으로 의심되는 경남 창원의 한 공인중개사무소를 이달 초 압수수색했지만 별다른 자료가 없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명 씨를 고소하지 못하는 여권과 수사에 미적댄 검찰을 지켜보면서, 국민들은 이 사태의 실체적 진실이 무엇인지 더 궁금해하고 있다. ‘명태균 논란’을 종식하는 것은 국민들이 바라는 대로 실체적 진실이 조기에 규명되는 것임을, 여권과 검찰은 이제라도 유념해야 할 것이다. 유성열 사회부 차장 ryu@donga.com}

청탁금지법이 지난달 28일로 시행 8년을 맞았다. 청탁금지법은 2014∼2015년 국회 논의 과정에서 적용 범위 등을 두고 상당한 논란이 벌어졌다. 시행 두 달 전 헌법재판소가 합헌으로 결정했지만 일부 조항이 위헌이란 주장도 여전히 제기된다. 공직자가 아닌 언론사와 사립학교 임직원까지 적용하고, 배우자 금품 수수를 공직자가 신고하지 않을 때 처벌토록 한 조항 등은 헌법상 과잉 금지 원칙을 위반했다는 주장이다.“배우자 처벌 못 해”… 빈틈 보인 청탁금지법하지만 공직자들의 ‘부패 민감도’가 전반적으로 높아진 것은 청탁금지법의 성과로 꼽힌다. 모든 공직자를 깨끗하게 만들 수는 없어도, 최소한의 부패 방지책으로는 기능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른바 ‘스폰서 검사’ 등의 사건에서 직무 관련성이 없다는 이유로 금품을 수수한 공직자가 무죄를 받는 것을 지켜본 국민들도 청탁금지법이 ‘형법의 빈틈’을 메워 주리라 기대한다.청탁금지법의 효과는 국민권익위원회가 매년 국민과 공무원, 법조인 등 4000여 명을 상대로 벌이는 ‘부패 인식도’ 조사에서도 일부 확인된다. 지난해 조사에선 ‘공직사회가 부패하다’는 인식이 0.3%포인트(일반인)에서 2.1%포인트(전문가)까지 전년보다 감소했다. 한 장관급 공직자는 “마음의 자유를 얻었다”고 했다. “선물이 올 때마다 난감했는데 ‘고민의 고통’에서 해방돼 거절할 수 있게 됐다”는 설명이었다.그러나 최근 청탁금지법의 빈틈이 노출되면서 법조계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김건희 여사의 디올백 수수 사건이 검찰 고발 10개월 만에 무혐의·불기소로 처분되는 것을 지켜보면서다. 청탁금지법은 공직자 직무와 관련해 배우자가 금품을 수수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지만, 배우자 처벌 조항은 ‘과잉 규제’ 우려가 나오면서 법을 처음 만들 때부터 두지 않았다. 특히 검찰은 디올백이 공직자(대통령) 직무와도 무관하다고 판단하면서 김 여사의 알선수재 혐의 등도 모두 무혐의로 판단했다. 최재영 씨가 김 여사의 호의를 얻으려고 건넨 단순한 선물이란 것이다. 하지만 대통령부인이 300만 원 상당의 가방을 선물로 받아도 된다면, 우리 사회의 부패 수준이 권익위 조사처럼 개선되고 있다고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청탁금지법의 허점은 또 있다. 이 법은 공직자가 1회 100만 원이 넘는 금품을 받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공직자가 접대 자리에 동료들과 함께 나갔다면 1인당 수수 금액이 얼만지가 중요한 이유다. 각자 머문 시간과 인원까지 고려해 계산기를 두드려야 하는 것이다. 9일 대법원은 라임자산운용의 룸살롱 접대를 받은 혐의를 받는 나모 검사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파기했다. 룸살롱에 머문 시간과 인원 등을 토대로 나 검사가 93만9000원의 향응을 받은 것으로 본 1, 2심을 뒤집은 것이다. 대법원은 접대 상황을 더 세분화하면 나 검사의 수수액이 100만 원을 넘길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검찰은 나 검사와 같이 룸살롱에 있었던 다른 검사 2명은 1인당 수수 금액이 100만 원 미만이란 이유로 기소조차 하지 않았다.국회·정부가 ‘청탁금지법 개정’ 응답해야10년 전 청탁금지법의 원안을 만든 김영란 전 대법관은 “우리 사회 공공심(公共心·공공의 행복과 이익을 위하는 마음)과 신뢰 회복 방안에 대한 근본적 고민의 결과물”이라고 강조해 왔다. “공공심에 대한 신뢰는 생래적으로는 가질 수가 없고 사회 전반을 업그레이드시켜야 가능하다”고도 했다. 두 사건에 대한 검찰과 법원의 판단을 지켜보면서, 청탁금지법이 우리 사회 공공심을 증진시키고 있는지, 정부와 국회는 사회 전반을 업그레이드시키기 위해 청탁금지법 개정에 나설 생각은 없는지 묻고 싶어졌다. 마침 정기국회가 열리고 있는 만큼 국회와 정부가 응답하길 바란다.유성열 사회부 차장 ryu@donga.com}

언론은 오보를 내면 ‘바로잡습니다’ 같은 정정보도를 해야 한다. 초년 기자 시절 사람 이름을 잘못 써 ‘바로잡습니다’를 냈을 때 종일 얼굴을 들지 못했다. 지금도 이름과 숫자 등은 절대 틀리지 않도록 확인하고 또 확인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판사도 판결문을 잘못 쓰면 경정(更正·수정) 결정을 통해 수정한다.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잘못된 계산이나 기재’가 확인될 경우 주문(主文·결론)도 수정할 수 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이혼소송 2심 판결문도 오류가 발견돼 한 차례 수정됐다. 하지만 최 회장이 노 관장에게 1조3808억 원을 재산분할금으로 지급해야 한다는 주문은 바뀌지 않았다. 서울고법 가사2부(부장판사 김시철)는 지난달 30일 선고 당시 SK㈜의 모태인 대한텔레콤의 1998년 5월 주식 가치를 주당 ‘100원’으로 판결문에 적었다. 최 회장 측이 “100원이 아니라 1000원”이라고 반발하자 재판부는 이를 수용해 17일 직권으로 판결문을 수정했다. 이에 맞춰 재판부는 최 회장이 기업 가치를 2009년 11월까지 355배 키웠다고 판단했던 부분도 35.6배로 바로잡았다. SK 성장에 대한 기여도가 최종현 선대회장(125배)이 최 회장(35.6배)보다 많은 것으로 역전된 것이다. 주식 가치와 기여도를 잘못 계산한 만큼 재산분할금도 다시 산정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확산되자 재판부는 18일 설명자료를 배포했다. 2심 변론 종결 시점인 올해 4월 16일의 SK㈜ 주식 가치(16만 원)와 비교하면 최 회장의 기여도(160배)가 최 선대회장(125배)보다 크기 때문에 결론을 바꿀 이유가 없다는 내용이었다. 세기의 이혼소송으로 국민적 관심이 집중된 사건에서 판결문을 고친 것도 이례적인데, 재판부가 설명자료까지 배포한 것은 더 이례적이었다. 판결 취지를 이렇게까지 설명하는 모습도 선뜻 이해하기 어려웠다. 재판부가 판결문에 없던 내용을 설명자료에 담아 판결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새로 담긴 내용을 애초부터 판결문에 자세히 담았다면, 1000원을 100원으로 잘못 계산했다고 해서 이렇게까지 논란이 커지진 않았을 것 같다. 재판부는 또 판결 경정이 대법원 판례에 따른 것이란 입장도 밝혔다. 경정 자체를 이례적으로 보지 말라는 취지였다. 재판부 설명처럼 판결문 수정이 특별한 일은 아니다. 사법연감 최신판에 따르면 경정 신청(민사)은 2013∼2022년 연평균 1만8462건 접수됐다. 2022년 한 해만 전국 법원에서 1만4779건이 접수돼 1만1758건이 인용됐다. 서울고법 가사2부처럼 재판부가 스스로 귀책을 인정해 직권으로 수정한 것까지 포함하면 이보다 훨씬 많을 거라는 게 법조계 분석이다. 판사도 신(神)이 아닌 이상 오류가 있을 수 있다. 헌법이 3심제를 보장하고, 민사소송법이 경정 절차를 두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법원이 매년 1만 건 넘게 ‘바로잡습니다’를 쓰는 상황도 정상적이진 않다. 특히 기업의 지배구조까지 영향을 줄 수 있는 소송이라면 판결의 정당성을 떠나 한 치의 오차도 없어야 했다. 사법부가 더 이상 오류에 관대하지 않고 작은 팩트조차 틀리지 않는 판결문을 쓰길 기대한다. 유성열 사회부 차장 ryu@donga.com}

사단법인 아름다운서당은 ‘영리더스아카데미(Young Leaders Academy·YLA)’ 19기 프로그램에 참가할 대학생을 모집한다고 19일 밝혔다.비영리교육기관인 아름다운서당은 2005년 전남대 취업능력함양아카데미를 모델로 설립돼 서울, 광주, 제주 등 전국 각지에서 900여 명의 수료생을 배출했다. YLA는 대기업 임원, 금융회사·언론사 간부 등을 역임한 40여 명의 전문가들이 사회 진출을 앞둔 대학생들에게 자신들의 경험과 지식을 자원봉사로 교육하는 프로그램이다.커리큘럼은 인문학 고전과 사회 현실을 함께 분석해 각종 문제해결 방안을 모색하는 ‘케이스 스터디’로 마련됐다. 저출생 인구감소, 인공지능(AI), 이민, 국론 분열 등 현재 사회가 직면한 다양한 이슈를 학생 스스로 탐구하며 진단하고 해결방안을 모색한다. 교육은 역할극 방식의 토론이나 ‘팀플레이’ 방식으로 진행된다. 25주, 6개월 과정이며 교육 직전 1박 2일 오리엔테이션도 열린다. 매주 토요일 오전 9시 50분부터 오후 5시 반까지 서울 중구 장충단로 서울석유 7층 교실에서 강의가 진행된다. 수강료는 무료다.서울 경기 인천 등 수도권 소재 대학을 다니는 재학생이면 누구나 지원할 수 있다. 전공, 연령, 성별 등도 전혀 상관없지만 2, 3학년을 우대한다. 아름다운서당 홈페이지를 통해 7월 5일까지 지원서를 제출하면 된다. 서류전형 합격자는 7월 13일 개별 통보하며 7월 20일 면접을 거쳐 7월 24일 최종 합격자를 발표한다. 합격자는 8월 12~13일 1박 2일간 진행되는 오리엔테이션에 꼭 참석해야 한다. 개강은 8월 24일이다.나영돈 아름다운서당 이사(현 서울과학기술대 석좌교수)는 “아름다운서당은 대한민국의 내일을 열어갈 전인적인 인재 양성의 요람”이라며 “학벌과 스팩을 넘어서 진정한 역량을 키우는 교육을 받기 원하는 대학생이라면 누구나 지원하길 바란다”고 말했다.유성열 기자 ryu@donga.com}

“탈탈 털어도 탈탈 털 수가 없는 게 인사검증이죠.” 공직기강 업무에 정통한 전직 청와대 행정관은 문재인 정부 당시 고위공직자 인사검증 실패 사례가 이어지자 필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실이 사실상 ‘사찰’에 준하는 검증을 총괄하면서 검찰과 경찰, 국가정보원까지 총동원해도 한 인물의 모든 ‘서사’를 파악하기는 쉽지 않다는 지적이었다. 인사검증 실패는 역대 정부 내내 대통령의 발목을 잡았고, 이명박(17명), 박근혜(10명), 문재인(34명) 전 대통령 모두 국회가 인사청문보고서를 채택하지 못한 인사를 반복해서 임명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윤석열 대통령이 2022년 5월 취임과 동시에 민정수석실을 없애고 법무부에 인사정보관리단을 신설해 인사검증을 맡겼을 때, 기대와 불안이 동시에 교차했다. 법무부가 인사검증을 하는 게 적절하냐는 질문에 윤 대통령은 “미국이 그렇게 한다”고 답했다. 이어 “(대통령실은) 공직자의 비위 정보 수집하는 건 안 한다”면서 과거 정부마다 불거졌던 민정수석실의 ‘사찰 논란’도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기대감을 가졌던 이유는 윤 대통령이 자신 있게 모델로 제시한 미국은 인사검증의 역할 분담이 철저해서다. 미국의 인사검증 시스템은 공직후보자가 백악관의 사전 검증을 통과한 뒤 각종 질문에 대한 답변을 제출하면, 법무부 산하 연방수사국(FBI)이 이를 넘겨받아 탐문하는 구조다. FBI가 가족과 친척, 이웃과 직장 동료 등을 상대로 교차검증을 한 다음 백악관에 보고하면 최종 판단은 백악관이 내린다. 이 과정에서 FBI는 적합, 부적합 등의 판단이나 의견은 전혀 제시하지 않는다고 한다. 실제 검증은 FBI가 하지만 백악관이 인사검증을 주도하고 최종 결정을 내리도록 철저하게 역할이 분담돼 있는 것이다. 하지만 불안감은 결국 현실화됐다. 윤 대통령이 2대 국가수사본부장에 임명한 정순신 변호사는 아들의 학교폭력 논란으로 하루 만에 물러났고, 대법원장 후보자로 지명된 이균용 서울고법 부장판사는 비상장주식을 재산신고에서 누락한 의혹 등으로 국회에서 임명동의안이 부결됐다. 인사검증 부실 논란이 벌어질 때마다 법무부는 “인사검증 자료를 수집해서 대통령실에 넘기는 역할만 수행한다”고 해명해 왔다. 미국처럼 최종 판단은 대통령실이 내린다는 설명이었지만, 민정수석이 없는 대통령실이 최종 판단을 어떻게 내리는지, 법무부가 이 과정에 정말로 개입하지 않았는지 등은 여전히 베일에 싸여 있다. 인사검증 부실의 책임을 대통령실과 법무부 중 누가 질 것인지도 불분명한 상태가 계속되고 있다. 윤 대통령은 7일 “민심 청취 기능이 너무 취약했다”며 민정수석을 부활시켰다. 그러나 대통령실은 민정수석실의 가장 중요한 업무인 인사검증을 법무부와 어떻게 나눌 것인지는 밝히지 않고 있다. 법무부는 앞으로도 변화가 없을 거란 입장이지만, ‘왕수석’이라 불리는 민정수석이 부활한 상황에서 인사검증 역시 대통령실로 무게추가 쏠릴 거란 분석이 지배적이다. 그렇다면 대통령실은 법무부와 인사검증에 대한 ‘교통정리’부터 확실히 한 다음 국민에게 상세히 설명해야 할 것이다. 부실한 인사검증이 반복되는 것을 막으려면 일단 책임소재부터 분명해야 하기 때문이다.유성열 사회부 차장 ryu@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