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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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김재영 논설위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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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1-06~2025-12-06
칼럼100%
  • [횡설수설/김재영]세계 첫 5000척 건조 신화 쓴 HD현대

    불가능에 도전해 왔던 한국 경제의 역사 속에서 조선업만 한 ‘맨땅의 헤딩’도 없었다. 1970년대 초 정주영 당시 현대그룹 회장이 거북선이 그려진 500원짜리 지폐와 조선소가 들어설 울산 미포만 모래사장 사진을 들고 투자자들과 선주들을 설득한 일화는 유명하다. 1974년 맨몸으로 만들어낸 유조선 1척이 51년 만에 5000척이 됐다. 조선 역사가 긴 유럽과 일본의 어떤 회사도, 2000년대 이후 물량 공세에 나선 중국의 국영회사들도 해내지 못한 세계 최초의 금자탑이다. ▷HD현대는 19일 울산 HD현대중공업에서 ‘선박 5000척 인도 기념식’을 열었다. 딱 5000번째로 넘긴 선박은 필리핀 초계함 ‘디에고 실랑’이었다. 그동안 HD현대가 건조한 선박은 총 68개국 700여 개 선주사에 납품됐다. 선박들의 길이를 평균 250m로 잡고 5000척을 일렬로 늘어놓으면 총 길이가 1250km에 달한다. 서울에서 일본 도쿄까지의 직선거리(약 1150km)보다 길다. 수직으로 세우면 8848m 에베레스트산 높이의 141배에 이르는 어마어마한 규모다. ▷전설의 시작은 1971년 정 회장이 그리스에서 수주한 26만 t급 초대형 유조선이었다. 조선소도 없는 상황에서 조선소와 유조선을 동시에 짓는 불가능한 시도였다. 하지만 1974년 6월 28일 울산조선소 준공과 함께 유조선을 성공적으로 물에 띄웠다. 건조 기간 동안 다섯 차례나 사양을 변경할 정도로 까다로웠던 그리스 선주는 “지금까지 내가 본 것 중 가장 잘 만들어진 배”라고 칭찬했다. 가칭 ‘7301호선’이던 배에 고 육영수 여사가 ‘애틀랜틱 배런(대서양의 남작)’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첫 항해에 성공한 HD현대는 이후 새로운 역사를 계속 써내려 갔다. 1980년 최초의 국산 전투함 ‘울산함’을 건조하며 K-방산의 시작을 알렸고, 1983년 선박 건조량 기준 세계 1위에 올라섰다. 이후 글로벌 조선 수요가 컨테이너선, 액화천연가스(LNG) 수송선, 친환경 선박 등으로 변화할 때마다 HD현대는 시장을 선도하며 선두 자리를 내놓지 않았다. 인공지능(AI), 자율주행 선박 등 미래 해양 혁신의 최전선에서 활약하고 있다. ▷HD현대의 첫 배가 인도된 날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쓴 ‘조선입국(造船立國)’ 휘호는 현실이 됐다. 수출 한국의 최전선에서 활약해 왔을 뿐 아니라 최근엔 ‘마스가(MASGA) 프로젝트’를 통해 한미 동맹의 상징으로 부상했다. 50여 년 전 500원짜리 지폐의 거북선 그림은 금빛 거북선 모형으로 바뀌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전달됐다. 과거 50년간 그랬던 것처럼 앞으로 50년도 ‘K-조선’이 한국 경제 앞에 놓인 거친 파도를 헤치고 힘찬 항해를 이어가길 기대한다.김재영 논설위원 redfoot@donga.com}

    • 2025-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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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김재영]서른 살 민노총, 이젠 어른의 책임감을

    한국 노동계에 11월은 각별한 달이다. 한국 노동운동의 상징인 전태일 열사가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는 절규와 함께 분신한 날이 1970년 11월 13일이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의 생일도 이때다. 1995년 11월 둘째 주 토요일이던 11일 창립대의원대회를 열고 공식 출범했다. 다음 날인 11월 12일 서울 여의도광장을 가득 메운 7만 명의 노동자·시민들이 노동운동의 새 역사를 선언했다. 피날레는 노동운동의 대표곡 ‘철의 노동자’ 합창이었다. 1987년 ‘노동자 대투쟁’으로 촉발된 민주노조 운동을 이어받은 민주노총은 30년 동안 양적으로 크게 팽창했다. 출범 당시 41만6000명이던 조합원은 지난해 106만 명으로 두 배 이상으로 늘었다. 법외단체로 출발했지만 1999년 합법단체가 됐고, 지금은 한국노총과 함께 제1노총 자리를 놓고 엎치락뒤치락하고 있다. 하지만 질적 성장은 더디다. 연대와 책임의 열사 정신은 잘 보이지 않는다.‘낙수효과’ 주장하는 그들만의 운동 민주노총의 주력은 여전히 대기업과 공공기관의 정규직, 중장년층 조합원이다. 노동운동 초기에는 조직화가 용이한 대기업 공장이 투쟁을 선도했고, 전체 노동자들의 임금과 근로조건을 함께 끌어올린 측면도 있다. 하지만 지금은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격차가 커지면서 그들만의 운동이 되고 있다. 평균 연봉 1억 원이 넘는 노조가 “빼앗긴 우리 피땀을 투쟁으로 되찾자” 하고 “하루를 살아도 인간답게 살고 싶다”고 외치는 상황이 됐다. 기득권화된 노조는 여전히 노동운동 초기의 ‘낙수 효과’를 믿는다. ‘우리가 잘돼야 전체가 잘된다’는 논리다. 정년 65세 연장, 주 4.5일제 도입 등도 우리가 선도하겠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결과적으론 노조의 보호를 두껍게 받는 상위 노동자들만의 잔치로 그칠 공산이 크다. 노동시장 이중 구조의 벽을 더욱 견고하게 해 비정규직·중소기업 노동자들의 상향 이동과 청년들의 일자리 진입 자체를 막을 것이란 우려가 높다. 최근 민주노총 택배노조가 촉발한 ‘새벽배송 금지’ 논란은 민주노총이 대중과 현장의 생각과 얼마나 괴리돼 있는지 보여준다. 새벽배송이 막히면 소비자는 물론 영세 소상공인, 납품 농가 등의 피해가 불가피한데도 거칠게 문제를 제기했다. 당사자인 택배 기사들도 일자리와 생존권을 위협한다고 반대한다. 민주노총이 새벽배송을 걸고 넘어지는 데는 다른 이유가 있다는 의혹도 나온다. 쿠팡노조 측은 “민주노총 탈퇴에 대한 보복으로 보인다”며 성명서를 냈다.결과 책임 회피하는 선택적 참여 노동시장 이중 구조 개선 등 노사정이 함께 머리를 맞대야 할 노동 개혁 사안에서는 정작 책임을 회피한다. 민주노총은 1999년 2월 노사정위원회(현 경사노위)를 탈퇴한 후 아직까지 복귀하지 않고 있다. 노동계의 양보가 필요한 사안에서 결과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기 위해 장외투쟁만 고집하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 당시 민주노총 출신인 문성현 위원장을 임명했을 때도 참여를 거부해 당시 문 위원장이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잃을 것 없는 자리에는 참석한다. 주 4.5일제 도입을 논의하는 정부 주도의 ‘실노동시간 단축 로드맵 추진단’에 들어가 연내 입법하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대정부 투쟁을 해 오면서도 사무실 임차보증금은 정부로부터 받아 왔다. 최근 정부가 6대 구조 개혁 가운데 하나로 내건 노동 개혁을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노동계의 협력이 필수적이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일률적 법정 정년 연장, 임금 감소 없는 근로시간 단축만 고집해서는 한 발짝도 나아갈 수 없다. 배곯는 어린 ‘시다’들에게 차비를 털어 풀빵을 사주고 자신은 집까지 걸어갔던 청년 전태일의 마음을 기억해야 한다. 더는 약자라고 볼 수 없는 민주노총이 이제 노동계의 대표로서 어른의 책임을 다해야 할 때다. 김재영 논설위원 redfoot@donga.com}

    • 2025-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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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김재영]33세 젠슨 황을 부른 29년 전 이건희 편지

    15년 만에 한국을 찾은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는 한국에 대한 애정을 아낌없이 드러냈다. 지난달 30일 ‘깐부’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과 소맥 러브샷을 하며 “한국 프라이드치킨이 최고”라 했고, 엔비디아 그래픽카드 ‘지포스’ 한국 출시 25주년 행사에선 “모든 것은 한국에서 시작됐다”고 했다. 그는 “e스포츠, PC방, PC 게이밍 문화가 없었다면 오늘의 엔비디아도 없었을 것”이라며 29년 전 한국과의 첫 인연을 소환했다. ▷황 CEO는 “1996년 한국에서 모르는 사람으로부터 매우 아름다운 편지를 받았다”고 했다. 그는 “발신인은 편지에서 ‘한국에 대한 세 가지 비전이 있다’고 썼다”고 했다. 한국 전역을 초고속 인터넷으로 연결하고 싶다. 비디오 게임이 한국 기술 성장을 이끌 것이다. 세계 최초의 비디오 게임 올림픽을 열고 싶다…. 이 꿈을 위해 황 CEO가 도와달라고 발신인은 제안했다. 황 CEO는 “그 편지 때문에 한국에 처음 오게 됐다”며 “제이(이재용 회장)의 아버지가 보낸 편지였다”고 털어놨다. 당시 54세였던 고 이건희 삼성 선대회장이었다. ▷편지를 받은 황 CEO는 33세의 청년 엔지니어에 불과했다. 그의 엔비디아는 창업 4년 차의 신생 기업이었고, 그래픽카드 개발 실패로 파산 위기에 몰려 있었다. 이 선대회장이 꿰뚫어 본 엔비디아는 1999년 지포스를 선보이며 일어섰고, 여기에 삼성전자의 D램이 들어가며 양사의 협력이 시작됐다. 이 선대회장의 비전도 현실이 됐다. 초고속 인터넷으로 한국은 정보통신기술(ICT) 강국이 됐고, 게임은 한국의 대표 산업으로 성장했다. 비디오 게임은 ‘e스포츠’로 인정받아 각종 국제 대회가 열리는 것은 물론이고 아시안게임 정식종목까지 됐다. ▷두 거인의 인연은 애플 창업자 스티브 잡스와 이병철 삼성 창업회장의 일화를 떠올리게 한다. 1983년 당시 이미 태블릿PC를 구상하던 잡스는 부품 공급 가능성을 타진하려 반도체 후발 업체 삼성을 찾아왔고, 73세의 이 창업회장이 직접 그를 맞았다. ‘미래는 모바일에 있다’고 설파하는 28세 청년의 이야기를 들은 이 창업회장은 “잡스는 IBM에 맞설 인물이 될 것”이라 평했다고 한다. 모바일 패권을 둘러싼 삼성과 애플의 협력과 경쟁의 역사는 여기에서 시작됐다. ▷아이들의 장난 같던 게임에서 인공지능(AI) 기술이 꽃피웠듯, 멀리 내다보는 선견지명과 이를 이루기 위한 꾸준한 실천이 미래를 만들어낸다. 허황되게 보이는 꿈을 알아주는 지음(知音)도 필요하다. 엔비디아와 ‘AI 동맹’을 맺고 글로벌 AI 혁명에 올라탄 한국이 쫓아가기에 급급하지 않고 미래를 주도하려면 다음을 내다보는 상상력과 혁신이 필요하다. 거인의 어깨라도 빌리고 싶은 심정이다.김재영 논설위원 redfoot@donga.com}

    • 2025-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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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김재영]전 부처의 경찰화… 감시-엄벌이 능사일까

    내년에 정원을 20%가량 늘릴 예정인 ‘경제 검찰’ 공정거래위원회의 최대 화두는 밀가루다. ‘빵플레이션’(빵+인플레이션) 문제를 해결하겠다며 밀가루 제조업체들을 상대로 가격 담합 조사에 착수했고, 설탕 업체의 담합 혐의도 들여다보고 있다. 국세청도 생활물가 밀접 업종에 대한 고강도 세무조사로 가세했다. 지난달 이재명 대통령이 식료품 물가가 너무 높다며 “고삐를 놔주면 (기업은) 담합하고 독점하고 횡포를 부리고 폭리를 취한다”고 비판한 이후부터다. 고용노동부는 ‘노동경찰’로 불리는 근로감독관을 현재의 3000명 수준에서 3년 뒤 1만 명까지 늘릴 계획이다. ‘산업재해와의 전쟁’에 대응한다는 명분이다. 보건복지부는 불법 사무장병원을 척결해 건강보험 재정을 지키겠다며 국민건강보험공단에 특별사법경찰(특사경)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금융감독원은 자본시장 불공정거래 대응에 대해 민생금융범죄도 근절하겠다며 전담 특사경 신설과 인지수사권, 강제조사권을 요구하고 있다.수사 조직 늘려가는 행정부처들얽히고설킨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는 하나의 방법은 단칼에 끊어내는 것이다. 소위 ‘고르디우스의 매듭’이나 ‘쾌도난마’ 같은 해법이다. 최근 정부가 난제에 대응하는 방식이 바로 이렇다. ‘나쁜 놈들’을 설정하고 강력한 단속과 수사, 엄벌을 강조한다. 이를 위해 기존 경찰 조직 외에 각 행정부처까지 전방위로 동원된다.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을 선포한 정부는 10·15 대책을 통해 전쟁을 지휘할 전담조직 신설을 선언했다. 국무총리 직속으로 ‘부동산 감독기구’를 만들어 ‘집값 띄우기’ 등 시장 왜곡에 대해 직접 조사·수사하고, 국토교통부 내 별도의 부동산 특사경도 두기로 했다. ‘부동산판 금융감독원’ 같은 기구는 집값이 급등하던 문재인 정부 때도 도입을 검토했다. 하지만 정상적인 거래까지 위축시키고 과도한 재산권 감시로 이어질 수 있다는 논란 속에 백지화됐다. 범죄를 척결하겠다는데 반대할 이유는 없겠지만, 사안을 단순화시켜 진짜 원인을 도외시할 수 있다는 게 문제다. 빵값이 오른 데는 환율 상승과 원자재 수급 불안, 인건비 상승, 복잡한 유통 구조 등 다양한 원인이 있을 텐데 식품업계의 탐욕 탓으로 간단히 돌려버린다. 근로감독관 증원에 앞서 과거 정부에서 근로감독관을 1000명 늘렸는데도 산재와 임금체불이 줄어들지 않은 이유부터 따져봐야 한다. 건보 재정 문제도 안정적 재원 확보 방안을 찾고, 사무장병원 개설을 사전에 차단하는 방법을 고민하는 게 먼저다.정책 실패 감추는 핑계 아니어야최근 국토부는 2023년 3월부터 올해 8월까지 집값 띄우기 정황이 있는 425건을 기획 조사 중이며 이 중 위법성이 짙은 8건을 경찰에 수사 의뢰했다. 비리가 만연한 듯 보이지만 같은 기간 서울 아파트 거래량 24만여 건에 비하면 0.2% 수준인데, 이를 근거로 투기꾼들이 집값을 끌어올린 주범이라고 주장하긴 어렵다. 부동산 정책에 대한 오랜 불신, 수요자들의 불안을 잠재우기엔 턱없이 미흡했던 정부의 공급 대책 등부터 돌아봐야 한다. 문제가 생기면 규제·감독기관부터 설치하고, 대국민 서비스가 주 업무인 행정부처들을 감시와 통제, 처벌 강화에 동원하는 방식으로는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새로운 조사·수사기관이 만들어지면 조직의 존재를 정당화하기 위해서라도 실적 만들기에 급급해 자칫 국민의 기본권을 제약할 수 있다. 모든 것을 ‘카르텔’ 탓으로 돌렸던 윤석열 정부에서 보듯 대중이 분노할 대상을 만들어 처벌하는 삼청교육대식 접근은 답이 아니다. 감시와 처벌을 강조하는 진짜 이유가 정책 실패를 가리려는 의도는 아닌지 의심할 필요가 있다. 김재영 논설위원 redfoot@donga.com}

    • 2025-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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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김재영]‘매력’으로 인구 절벽 넘는 도시들

    한때 취리히 제네바에 이은 스위스 제3의 금융 중심지였던 루가노는 스위스의 금융 비밀주의가 흔들리며 시들어 갔다. 활력을 되찾기 위해 루가노는 ‘비밀금고’에서 ‘가상자산’으로 도시의 색깔을 바꿨다. 도심 공원에 비트코인 창시자의 동상을 세울 정도로 가상자산에 진심이다. ‘알프스 소녀 하이디’ 시절부터 있었을 것 같은 노포에서도 가상자산으로 결제가 가능하고 세금도 코인으로 낸다. 최근 3년간 유치한 가상자산 관련 스타트업만 100여 개에 달하면서 새로운 사업 기회를 찾아 청년들이 몰려들고 있다. ▷세계 휴대전화 시장을 석권하던 노키아 공장이 문을 닫은 이후 침체에 빠졌던 핀란드 북부 도시 오울루는 이제 ‘노키아 도시’라는 꼬리표를 완전히 뗐다. 다만 한때 노키아의 상징이던 혁신의 정신만은 그대로 남겼다. 통신 분야의 연구개발(R&D) 역량을 바탕으로 산학협력을 다양한 산업으로 확대했다. 친환경 에너지 & 클린테크, 교육, 소비재, 헬스케어, 게임, 인공지능(AI), 핀테크 등의 스타트업이 활동하며 시 전체가 신기술 테스트베드로 거듭났다. ▷호주의 산업도시 질롱은 ‘러스트벨트’에서 ‘실리콘밸리’로 변신했다. 자동차 공장이 속속 폐쇄되며 위기를 맞았던 질롱은 도시의 엔진을 자동차에서 장갑차, 자주포 등 방위산업으로 갈아 끼웠다. 과거 양모산업이 발달했던 지역의 강점을 이용해 탄소섬유 등 신소재 개발에 적극 나섰다. ‘말뫼의 눈물’로 유명한 스웨덴 말뫼도 조선업 등 기존 산업의 몰락에 좌절하지 않고 재생에너지 등 미래 산업으로 과감하게 전환하는 데 성공했다. ▷골칫거리였던 빈집을 지역의 효자로 만든 도시들도 있다. 이탈리아 시칠리아주의 소도시 무소멜리는 버려진 집을 단돈 1유로(약 1650원)에 판매해 낙후된 지역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18개국에서 온 외국인들이 ‘1유로 주택’을 사들여 개조한 뒤 영구 거주하고 있고, 관광객도 10배로 늘면서 인구 감소세가 멈췄다. 지역 특유의 끈끈한 유대감과 환대 문화 덕분에 외지인들이 지역에 잘 녹아들 수 있었고 도시는 활기를 되찾았다. ▷인구절벽 위기를 극복한 해외 도시들의 공통점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려 하지 않았다는 데 있다. 기존에 가지고 있던 전통과 인프라를 변화의 출발점으로 삼았다. 전통금융을 가상자산으로, 통신 연구개발(R&D)을 스타트업으로 바꿔내는 식이다. 남들이 성공한 모델을 그대로 베낀다고, 정착지원금을 뿌리거나 ‘기업 하기 좋은 도시’를 표방한다고 해서 저절로 인구와 일자리가 느는 게 아니라는 얘기다. 지역의 자산을 바탕으로 특화 전략을 찾아내고 매력을 극대화하는 것, 인구 소멸 위기를 겪고 있는 한국 지방 도시들이 해외 도시의 성공 사례에서 배워야 할 진짜 교훈이다.김재영 논설위원 redfoot@donga.com}

    • 2025-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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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김재영]오리무중 관세 협상, ‘예언서’ 다시 보기

    7월 말 큰 틀에서 타결됐던 한미 관세 협상이 이후 조율 과정에서 오리무중에 빠지면서 안도감은 이제 막막함으로 바뀌었다. 대출·보증 형태로 생각했던 대미 투자 3500억 달러에 대해 미국 측이 ‘현금 선불’이란 억지를 부리고 있어서다. 마스가(MASGA·Make American Shipbuilding Great Again) 프로젝트 등을 통해 한국은 상호 윈윈을 꿈꿨지만, 미국 측은 이를 ‘미국만 위대하게(Solely Great)’로 생각하는 듯하다. 답답한 마음을 풀기 위해 예언서를 다시 펼쳐볼 때가 됐다. 지난해 11월 나온 ‘국제 무역체제 재구조화를 위한 사용설명서’라는 제목의 보고서로, 보통 ‘미런 보고서’ ‘미란 보고서’ 등으로 부른다. 연방준비제도(Fed·연준) 내에서 홀로 ‘빅 컷’을 외치며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을 지원 사격하는 스티븐 ‘마이런’ 연준 이사가 썼다. 보고서가 나왔을 땐 우리가 이름조차 제대로 발음하지 못했을 정도로 무명이었던 저자의 제안대로 협상이 흘러가고 있다.‘현금 선불’로 현실화된 ‘100년 국채’ 보고서는 “경제 불균형의 근원은 지속적인 달러 과대평가에 있다”고 지적한다. 미국 제조업 경쟁력을 강화하고 재정·무역 적자를 줄이려면 달러 약세를 유도해야 한다. 통화 조정을 유도하는 지렛대는 고율의 관세다. ‘징벌적 관세’를 매긴 이후 관세 완화를 조건으로 다른 나라들을 협상 테이블로 끌어낸다. 미국의 안보 우산을 제거할 수 있다는 위협도 병행한다. 문제는 달러 약세로 기축통화의 지위가 흔들리고 국채 금리가 급등할 수 있다는 점이다. 보고서는 각국이 보유한 미 국채를 100년 만기 초장기 국채로 전환하도록 하면 이자 부담 없이 돈을 마음껏 쓸 수 있다고 제안했다. 유동성 부족을 우려하는 국가엔 통화 스와프를 당근으로 줄 수 있다. 운동도 하지 않고 마음껏 먹으면서 살은 빼겠다는 마법의 다이어트약 같은 처방이다. 4월 초 미국이 전 세계에 상호 관세를 선언한 이후의 진행 과정은 보고서의 주장과 비슷하다. 고율의 관세부터 던져 놓고 미국을 만족시킬 제안을 들고 오면 낮춰 줄 수 있다고 했다. 총선을 앞두고 정치적으로 급했던 일본이 먼저 손을 들었고, 한국도 일본의 합의를 기준점 삼아 협상을 서둘렀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3500억 달러 대미 투자는 알고 보니 말도 안 되는 족쇄였다. 전액 현금으로 받아 미국이 원하는 곳에 투자하고 수익의 90%를 미국이 갖겠다는 것은 남의 돈을 맘대로 쓰겠다는 100년 만기 국채 아이디어의 다른 버전이다. 일각에선 패전국에 부과된 전쟁 배상금보다 가혹하다며 협상을 엎어버리자는 주장까지 나온다. 상호 관세 25%를 적용받아도 한국 전체 수출은 4% 정도 줄어드는 데 그칠 것이며, 미국에 줄 돈으로 차라리 피해 기업에 지원하는 게 낫다는 것이다. 하지만 관세를 세수 확보를 넘어 협박의 수단으로 보는 미국이 더 높은 ‘징벌적 관세’를 매길 가능성도 있다. 게다가 수출로 먹고사는 한국이 미국 시장을 아예 포기하는 도박을 하긴 어렵다.미국 요구 부당해도 판 엎을 순 없어 지금으로선 판을 깨지 않으면서 신중하게 협상을 이어갈 수밖에 없다. 최소한의 방어장치인 통화 스와프를 포함해 투자 규모와 조건을 바꾸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일본의 움직임도 다시 확인할 필요가 있다. 차기 일본 총리를 예약한 다카이치 사나에 자민당 총재가 재협상 가능성을 시사했고, 아카자와 료세이 경제재생상은 “5500억 달러 중 실제 투자금은 1∼2%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대출과 보증”이라고 주장하는 상황이다. 이번엔 7월 협상 때처럼 데드라인에 쫓겨 디테일을 놓치면 안 된다. 정치권도 정부와 협상팀에 대한 정치적 공세와 압박을 자제하고 차분히 기다려 주는 여유가 필요하다.김재영 논설위원 redfoot@donga.com}

    • 2025-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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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김재영]트럼프의 ‘황금주 1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사업가로 유명해진 계기가 된 1970년대 뉴욕 코모도어 호텔 재개발은 손에 없는 것을 파는 ‘봉이 김선달’식이었다. 호텔 인수를 전제로 뉴욕시로부터 세금 탕감을 받고, 뉴욕시 참여를 전제로 가격을 협상한 뒤 계약서만 들고 융자를 받았다. 인수 및 재개발 비용 8000만 달러 중 트럼프가 부담한 건 50만 달러뿐이었다. 대통령이 되고도 변함이 없다. ‘절대 주식’ 딱 한 주를 들고 20조 원 가치의 회사 경영권을 쥐고 흔든다. ▷6월 미국 철강회사 US스틸 지분 100%를 인수한 일본제철은 최근 미국 일리노이주의 제철소 한 곳을 폐쇄하려다 미국 정부의 반대에 부딪혔다. 2023년부터 철강 생산은 하지 않고 외부에서 생산된 강판을 압연만 하던 곳이었다.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이 직접 회사에 전화를 걸어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고, 일본제철 측은 계획을 철회했다. 미국 내에서 새 제철소를 짓되 비효율적 설비는 정리하는 최소한의 구조조정마저 벽에 막혔다. ▷일본제철을 굴복시킨 미국 정부의 카드는 ‘황금주’였다. 단 한 주로도 핵심 경영 사항에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는 특별 주식이다. 미국 내에서 반대 여론이 높던 일본제철의 US스틸 인수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은 황금주 부여와 110억 달러 신규 투자 등을 조건으로 승인했다. 황금주는 미 정부가 아닌 트럼프 대통령 ‘개인’에게 주어졌다. 황금주에 대해 일본제철 측은 “상징적 의미일 뿐이며 경영 자율성은 보장된다”고 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생각은 달랐다. ▷‘기업 사냥꾼’ 같은 트럼프 대통령의 행보는 처음이 아니다. 지난달 미 정부는 정부 지원금을 대가로 자국 반도체 기업 인텔의 지분 10%를 인수해 최대 주주가 됐다. 반도체뿐 아니라 조선, 방산 기업의 지분에도 군침을 삼킨다. 엔비디아와 AMD의 반도체 대중 수출을 허용하는 조건으로 중국 내 매출의 15%를 일종의 ‘수출세’로 걷었다. 최근 미 월스트리트저널은 미 정부가 중국 동영상 공유 플랫폼 틱톡의 미국 사업 매각을 주선하는 대가로 투자자들로부터 수십억 달러의 수수료를 챙길 예정이라고 보도하기도 했다. ▷국가 간에도 막무가내식 거래는 그치지 않는다. 일방적으로 관세를 올리곤 협상을 통해 깎아줬다며 생색낸다. 한국이 미국과 합의한 3500억 달러(약 486조 원) 대미 투자펀드도 한국은 당연히 대출·보증 방식일 거라 생각했지만, 미국 측은 ‘현금으로 내놓으라’고 한다. 이재명 대통령이 “내가 동의하면 탄핵당할 것”이라고 할 정도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요구다. 역량을 총동원해 최대한 국익을 지키는 방향으로 협상해야 한다. 눈뜨고 코 베이지 않으려면 바짝 긴장할 수밖에 없다. 김재영 논설위원 redfoot@donga.com}

    • 2025-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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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김재영]‘최후 보루’ 국민연금엔 손대지 마라

    이달 들어 코스피가 뜨거운 불장을 이어가고 있지만 개미투자자들로선 아쉬운 부분도 있다. 국민연금 등 연기금의 움직임이 미지근하기 때문이다. 현 정부 출범 이후 6∼8월 3개월 연속으로 순매도를 했다. 국민연금이 밀어줬으면 주가가 더 올랐을 텐데, ‘코스피 5,000 시대’도 빨리 올 텐데.‘개미 중에 좀 큰 개미’였다는 이재명 대통령도 의문을 제기했다. 11일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연기금들은 국내 주식투자 비중이 왜 그렇게 낮으냐”며 “설명을 들어도 이해가 안 된다”고 했다. 들어도 모르겠다던 설명은 이랬다. 20∼30년 뒤에 기금 잔액이 줄어든다. 그때 현금화를 위해 주식을 팔아야 하는데 주가가 폭락할 염려가 있다. 대통령은 이상하다고 했다. “그때 안 팔기 위해 지금 주식을 아예 안 산다? 30년 뒤 일 아닌가.”“韓 주식 더 사라” 난감한 요구 이 대통령은 “국내 시장에 대한 불신 때문”일 것이라 했지만 사정이 있다. 국민연금은 2048년 적자로 전환되고, 2064년 기금이 소진된다. 먼 훗날처럼 보이지만 주식·채권 등을 팔아야 하는 시기는 훨씬 빠르다. 장부상 흑자라도 당장 이달 연금 줄 돈이 부족한 시점, 보험료 수입보다 연금 지급액이 커지는 때부터다. 2027년부터로 예상됐던 ‘보험료 수지 적자’는 다행히 3월 국민연금법 개정으로 늦췄지만 그래 봐야 5, 6년 남았다. 장기적 관점의 적절한 ‘엑시트 플랜’이 필요하다. 국민연금이 국내 주식을 적게 사는 것도 아니다. 6월 말 현재 전체 자산 1269조2000억 원 중 14.9%인 189조1000억 원을 국내 주식으로 들고 있다. 전체 주식 중 29.8%가 국내 주식인데, 글로벌시장에서 한국의 비중이 2%도 되지 않는 점을 고려하면 상당한 ‘자국 편향’이다. 이미 웬만한 대형주의 7∼10%를 들고 있는데 지분율을 더 높이면 진짜 ‘주식회사 대한민국’이 될 판이다. 국내 주식 비중을 점점 낮추는 추세지만 투자액이 줄어드는 것도 아니다. 아직은 전체 적립금 자체가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 대통령은 순수한 의문이었을 수도 있지만 기자회견에서 밝힌 건 적절치 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당장 국민연금이 압박을 느낄 수 있다. 실제로 외부의 성화에 운용 원칙을 바꾼 적이 있다. 2021년 ‘동학개미’들이 연기금의 국내 주식 매도 중단을 청와대에 청원하자 그해 국민연금은 국내 주식 보유 한도를 확대했다. 정부와 정치권도 호시탐탐 노린다. 국민연금을 활용해 기업 지배구조에 영향을 미치려 하거나, 공공임대주택이나 정책 펀드에 동원하려는 시도가 많았다.외풍 차단하고 연금 곳간 지켜야 외압을 견뎌내기엔 국민연금의 독립성과 전문성은 취약하다.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기금운용위원회는 정부 당연직 6명, 사용자·근로자 대표 각 3명, 지역가입자 대표 6명 등 20명으로 구성돼 있어 정부가 손쉽게 과반을 점할 수 있다. 직능대표 성격이 강해 투자 전문가도 찾아보기 힘들다. 회의록엔 “국내 노동자 돈으로 왜 해외투자를 하냐”는 등의 황당한 발언도 있다. 캐나다 연금투자위원회(CPPIB)처럼 정부와 정치권으로부터 독립한 투자 전문가 중심으로 기금운용 지배구조를 재편해야 한다는 주장이 계속 나오지만 바뀌지 않고 있다. 최근 2년도 안 돼 총리가 네 명이나 사임하고, 국가신용등급이 하락한 프랑스의 위기는 2023년 연금개혁을 둘러싼 갈등에서 시작됐다. 국민연금이 파탄에 이르면 한국도 피할 수 없는 혼란이다. 그런데도 4월 발족한 국회 국민연금개혁특별위원회 활동은 지지부진하다. 수익률과 구조적 안정성을 높여 국민의 소중한 노후자금을 제대로 지키는 것에 최우선 목표를 둬야 한다. 국민연금을 다른 목적을 위한 종잣돈으로 활용하려는 유혹에 빠져선 절대 안 될 것이다.김재영 논설위원 redfoot@donga.com}

    • 2025-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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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김재영]‘범죄 떴다방’ 아지트 된 도심 공실 상가

    속이 구린 사기꾼일수록 겉으로 보기엔 때깔이 좋은 경우가 많다. 온몸에 명품을 휘감고 좋은 차를 몰면서 성공한 사업가 행세를 한다. 그럴듯한 명함을 뒷받침하는 화려한 사무실도 운영한다. 갈취형을 벗어나 기업형으로 진화한 조폭(조직폭력배)들도 도심에 멀쩡한 사무실을 두고 있다. 경기 침체로 빈 사무실이 남아돌다 보니 싸게 빌려 범죄의 아지트로 이용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고 한다. ▷투자사기를 전담으로 수사하는 서울경찰청 형사기동대는 지난해부터 올해 7월까지 정상적인 회사인 양 사무실을 운영하며 비상장주식 및 코인 거래, 가짜 주식 사이트 운영 등으로 투자사기를 벌인 8개 범죄단체를 검거했다. 서울 강서, 인천, 경기 고양 부천 등 역세권 및 도심지역에서 이들이 임차한 사무실만 24곳에 달했다. 서울 강서구에선 한 건물에서 두 개의 범죄조직이 연달아 적발되기도 했다. 주로 단기 임대를 활용한 ‘떴다방’ 수법을 썼다. 보증금 없이 몇 개월 치 임차료를 한 번에 미리 내는 ‘깔세’로 사무실을 빌리고 투자자들을 끌어들여 한몫 챙긴 뒤 잠적했다. ▷서울 강남의 화려한 빌딩 숲속에도 범죄의 소굴이 생겨나고 있다. 강남 테헤란로 일대를 중심으로 단기 임대 사무실을 이용한 불법 금융 다단계 행위가 기승을 부려 5월 서울시가 피해 주의보를 발령하기도 했다. 깔끔한 사무 공간과 전문 강사를 내세워 유망 스타트업처럼 꾸미고 투자한 사람들에겐 ‘센터장’, ‘지점장’ 등 직책까지 줬다. 은퇴자, 주부, 고령층 등 피해자들은 강남 한복판에 사무실을 둔 멀쩡한 회사가 사기 집단일 줄은 몰랐다고 했다. ▷이처럼 도심 사무실을 활용한 ‘범죄 떴다방’이 기승을 부리는 것은 경기 침체와 오피스 공급 증가, 온라인 중심의 소비문화 등으로 인해 상가 공실률이 크게 늘었기 때문이다. 안정적 임차인을 구하지 못한 건물주들은 제대로 따져보지 않고 단기 임대로 사무실을 돌린다. 올해 2분기(4∼6월) 집합상가 공실률은 10.5%로, 집계가 시작된 2022년 4분기(10∼12월) 이후 가장 높았다. ‘아파트형 공장’으로 불리며 한때 수익형 부동산으로 각광받던 지식산업센터는 전국에 40%가량이 공실로 남아 있다. ▷범죄 심리학에 ‘깨진 유리창’이라는 이론이 있다. 도시 변두리에 유리창이 한 장 깨진 집을 방치하면 행인들이 버려진 집으로 생각하고 돌을 던져 나머지 유리창까지 모조리 깨뜨린다는 것이다. 상가 공실을 방치하면 생활과 주거가 밀집한 도심 한복판에서 각종 범죄조직이 똬리를 틀고, 강력범죄 등 2차 범죄도 늘어날 수 있다. 트렌드에 맞게 상업시설을 리모델링하거나 주거시설로 전환하는 등 다양한 활용법을 고민해 봐야 할 것 같다.김재영 논설위원 redfoot@donga.com}

    • 2025-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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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김재영]‘복지병 혼란’에 빠진 프랑스

    “정치 분열과 양극화가 심화됐다. 몇 년 새 재정 상황이 나아질 전망이 안 보인다.” 긴축재정에 대한 반발로 내각이 붕괴되는 등 ‘국가 마비’ 위기를 겪고 있는 프랑스가 엎친 데 덮친 격이 됐다. 국제신용평가사 피치가 12일 프랑스의 국가 신용등급을 ‘AA-’에서 ‘A+’로 낮췄다. 독일 등 다른 유럽 선진국은 물론 한국(AA-)보다 낮다. 충격적인 성적표에도 재정 개혁은 뒷걸음질 치고 있다. 세바스티앵 르코르뉘 신임 총리는 ‘공휴일 이틀 축소’ 정책을 여론에 밀려 결국 포기했다. ▷최근 프랑스 정치는 프랭클린 루스벨트 전 미국 대통령이 “프랑스는 총리가 너무 자주 바뀌어 이름을 기억할 수 없다”고 했던 제3공화국 시절을 연상케 한다. 지난해 1월 엘리자베트 보른 총리 사임을 시작으로 9월 가브리엘 아탈, 12월 미셸 바르니에, 이달 8일 프랑수아 바이루 등 개혁을 추진하던 총리들이 줄줄이 물러났다. 7월 정부 지출 동결, 공휴일 이틀 축소 등으로 440억 유로(약 72조 원)를 절감하는 내년도 긴축 예산안을 내놨던 바이루 전 총리는 야당과 갈등을 빚다가 8일 하원의 불신임을 받았고, 내각은 해산됐다. ▷프랑스 정치 혼란을 부른 재정위기는 심각한 수준이다. 프랑스의 국가부채는 지난해 기준 3조3000억 유로(약 5200조 원)로, 국내총생산(GDP) 대비 113%에 이른다. 2000년대 초까지만 해도 50%대 수준이었지만 금융위기와 코로나, 우크라이나 전쟁 등을 거치며 급격하게 증가했다. 에리크 롱바르 재무장관이 국제통화기금(IMF)의 개입 위험을 경고할 정도다. 지난해 12월 신용평가사 무디스가 신용등급을 내렸고, 12일 피치에 이어 S&P도 신용등급 강등을 저울질하고 있다. ▷1시간마다 1200만 유로(약 200억 원)씩 국가부채가 늘어나는 상황에서도 프랑스 정치권은 ‘우리는 희생할 수 없다’며 ‘네 탓’ 공방만 하고 있다. 증세에는 우파가 반대하고, 복지 축소, 노동 개혁엔 좌파가 반대한다. “더 열심히 일해서 위기를 넘자”는 공휴일 축소와 연금 동결 호소에는 좌우파 모두 등을 돌렸다. 10일부터 프랑스 전역에선 긴축 재정에 반대하며 ‘모든 것을 막아라’는 구호를 내세운 ‘국가 마비 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최근 프랑스 등 선진국들이 ‘파멸적 악순환’을 겪고 있다고 진단했다. 재정 적자 확대→금리 급등→긴축 재정→국민 반발→포퓰리즘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한 번 늘린 복지 지출은 여간해선 줄일 수 없는 구조적 경직성 때문이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한국의 국가채무비율도 40년 뒤에는 현재의 3배인 156.3%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마약 같은 재정 포퓰리즘의 지독한 끝을 경계해야 한다.김재영 논설위원 redfoot@donga.com}

    • 2025-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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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김재영]“노조원의 고용 세습은 불공정의 대명사”

    “이래서는 안 되겠죠? 불공정의 대명사 아닙니까?” 9일 생중계된 국무회의에서 이재명 대통령은 일부 노동조합의 노조원 자녀 우선 채용 요구에 대해 작심 비판했다. “취업시장은 어느 분야보다 투명하고 공정한 경쟁이 필수”라고 했다. 산업재해와 임금 체불에 대한 엄벌을 강조했던 대통령이 노조의 잘못된 관행에 대해서도 공개적으로 지적한 것이다. 노와 사 사이에 균형 맞추기에 나선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이 대통령의 발언은 최근 KG모빌리티 노조가 사측에 ‘고용 세습’을 요구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나왔다. 이 회사 노조는 1968년 이후 출생한 기술직 직원이 자진 퇴사하면 해당 직원의 ‘아들’이 같은 직군에 지원할 수 있게 하는 ‘기술직 트레이드’를 제안했다. 불공정한 고용 대물림이자 성평등에 어긋난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노조의 요구를 수용해 시행을 준비하던 회사는 결국 제도를 전면 백지화했다. ▷‘현대판 음서제’로 불리는 우선·특별채용은 수년 전까지만 해도 완성차업체 등 산업 현장에서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었다. 2022년 고용노동부는 100인 이상 사업장의 단체협약 1057개를 조사했는데 기아, 현대제철, STX엔진, 현대위아 등 63곳에서 고용 세습 조항이 확인됐다. 정년퇴직자, 장기근속자 등의 직계가족을 우선 채용하는 경우가 가장 많았다. 공채 시 정년퇴직자 자녀나 형제·자매에게 가산점을 주거나, 노조·직원의 추천자를 채용하는 기업도 있었다. 시정명령을 받은 기업 대부분은 관련 조항을 고치거나 없앴다. ‘노조 탄압’이라며 거부하던 기아는 형사입건된 이후에야 2023년 해당 조항을 삭제했다. ▷고용 세습 외에도 노조의 지나친 요구나 불법 행위가 사회적 문제가 된 적도 있었다. 노조의 채용 강요, 공사 방해, 월례비 등 금품 요구 등이 발생한 건설 현장에 대해 정부가 단속에 나서기도 했다. 일부 노조의 ‘깜깜이 회계’도 문제로 지적됐다. 최근에는 많이 개선됐지만 여전히 상식에 어긋나는 요구도 적잖다. 기본급의 17배에 달하는 성과급도 너무 적다며 반대하거나, 회사가 적자가 났는데도 성과급을 달라고 하는 노조도 있다. 퇴직한 이후에도 계속 차량 할인을 해주는 ‘평생사원증’을 요구한 경우도 있었다. 노란봉투법에 대한 불안감이 큰 데는 전투적 강성 노조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이 한몫한다. ▷이 대통령은 4일 양대 노총 위원장을 만나 기업과 노동 모두 중요하다며 “노동존중 사회와 기업 하기 좋은 나라는 충분히 양립할 수 있고, 양립해야 된다”고 했다. ‘양 날개론’이 성공을 거두려면 노사 모두 상호 존중을 바탕으로 책임을 다해야 한다. 그러자면 국민 상식에 맞지 않는 낡은 관행부터 끊어내야 할 것이다.김재영 논설위원 redfoot@donga.com}

    • 2025-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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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김재영]은행 잘못 없어도 ‘피싱’ 배상… 개인 탓만 할 수 없는 현실

    경찰 수사를 총괄하는 박성주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장의 취임식. 첫 일정으로 보이스피싱과의 전쟁을 선포하는 순간, 박 본부장의 휴대전화가 요란하게 울렸다. “서울중앙지검 김민석 검사입니다. 박성주 님 명의의 통장이 보이스피싱 범죄에 이용된 사실이 확인돼….” 실제 상황은 아니고 경찰이 제작한 홍보 영상의 일부다. 누구나 표적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인공지능(AI) 전문가인 배경훈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도 쓰레기 무단 투기를 했다는 문자메시지를 받고 악성 링크를 누를 뻔한 적이 있다고 털어봤다. ▷최근 보이스피싱은 어눌한 목소리로 실소를 자아내는 수준이 아니다. 개인정보를 탈취해 정교하게 시나리오를 짜고, AI 딥페이크 기술로 가족의 얼굴과 목소리까지 복제하니 여간 주의를 기울여도 빠져나가기 쉽지 않다. 이에 28일 정부는 은행 등 금융회사도 보이스피싱 피해에 책임을 지도록 하는 강력한 처방을 내놨다. 금융사의 고의나 과실이 없어도 배상하는 ‘무과실 배상책임제’다. 이상거래탐지시스템(FDS) 등 전문성과 인프라를 갖춘 금융사가 좀 더 책임감을 갖고 대응해 달라는 주문이다. ▷금융사들이 지난해부터 자율배상이란 이름으로 피해 보상을 시작했지만,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많았다. 금융사들이 예방 노력이 부족했음을 인정했을 때만 가능했는데 비밀번호·인증서가 위·변조된 경우, 제3자가 피해자 몰래 송금·이체한 경우 등 몇 가지로만 제한됐다. 피해자가 사기나 협박에 당했더라도 직접 송금했다면 구제받을 수 없었다. 영국은 소비자가 속아서 송금한 경우에도 최대 8만5000파운드(약 1억6000만 원)까지 은행의 피해 배상을 의무화했다. 싱가포르는 과실 정도에 따라 은행, 통신사, 소비자가 책임을 나눠 진다. ▷금융사의 책임을 강화할 필요는 있지만 부작용에 대한 우려도 있다. 소비자가 주의하지 않아도 금융사가 배상해 준다는 인식이 확산되면 보이스피싱에 대한 경각심이 무뎌질 수 있다. 보험사기처럼 보이스피싱 피해를 위장한 허위 신고 범죄가 늘어날 수도 있다. 정부와 금융권이 긴밀하게 협의해 배상 요건 및 한도, 금융사 면책 기준 등을 구체화해야 한다. ▷국내에서 처음으로 신고된 보이스피싱 피해는 2006년 5월 인천에서 국세청 직원을 사칭한 전화로 돈을 가로챈 사건이다. 800만 원으로 시작된 피해는 올해 상반기에만 7766억 원에 이를 정도로 급증했다. 철저한 수사와 강력한 처벌로 뿌리를 뽑아야 한다. 정부, 금융사, 통신사 등이 공조해 예방 시스템도 구축해야 한다. 보이스피싱은 개인과 가정을 파탄낼 뿐만 아니라 사회적 불신을 조장하는 참 나쁜 범죄다. ‘오죽 허술하면 속느냐’는 식으로 개인의 탓으로만 돌릴 때는 이미 지났다. 김재영 논설위원 redfoot@donga.com}

    • 2025-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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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김재영]주식 시세표 대신 일자리 지표를 보라

    역대 정부마다 국정 최우선 과제로 내세운 것은 일자리 창출이었다. ‘일자리 정부’를 표방한 문재인 정부는 대통령 1호 업무지시로 일자리위원회를 만들고 대통령 집무실에 일자리 상황판까지 설치했다. 문 정부를 ‘가짜 일자리 정부’로 칭한 윤석열 정부는 민간 주도 경제를 통한 양질의 일자리 창출을 내세우며 노동 개혁의 기치를 들었다. 의도한 만큼의 성과는 거두지 못했다. 정부가 고용주 역할을 자임했던 문 정부는 단기 일자리와 공공 일자리만 만들다 끝났고, 윤 정부는 구체적 실행 없이 노동 개혁 구호만 되풀이하다 마쳤다.정부 핵심 정책에서 사라진 ‘고용’과거 정부의 실패를 반면교사로 삼는 것인지 현 정부와 여당의 일자리 접근법은 다르다. 일자리 창출 목표를 강하게 내걸지 않고 잘 언급조차 하지 않는다. 관심은 일자리 지표가 아니라 주식 시세표에만 쏠려 있다. 지난달 말 주식 양도소득세 부과 기준 강화 발표 이후 주가가 급락하자 더불어민주당은 발칵 뒤집혔다. 의기양양하던 여당 내에서 처음으로 ‘정책 재검토’란 말이 나왔다. 하지만 ‘1분기 일자리 증가 폭 역대 최소’, ‘그냥 쉰 청년 역대 최대’ 같은 참담한 고용 지표엔 별다른 언급이 없다.일자리 정책을 담당하는 고용노동부에서도 ‘고용’은 잘 보이지 않는다. 2010년 부처 명칭이 현재처럼 바뀐 이래 약칭은 늘 고용부였는데, 현 정부 들어 부처 보도자료에선 노동부라 칭한다. 민노총 위원장 출신의 김영훈 고용부 장관은 산재 근절에 직을 걸고, 노란봉투법 등 노동 현안에만 몰두하고 있다. 국정기획위원회가 발표한 123대 국정과제에서도 일자리는 후순위다. 96번째 과제가 ‘통합과 성장의 혁신적 일자리 정책’인데 어떻게 하겠다는 건지 각론은 불분명하다.일자리 문제에 대한 정부의 이해도 부족해 보인다.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반기업 법안 통과에 따른 국내 기업들의 해외 이탈 우려에 대해 “기업이 해외에 투자하는 게 꼭 불리하다고 볼 수 없다. 국내 노동의 질이 더 좋아질 수도 있고 일자리가 늘어날 수도 있다”고 했다. 기업들이 해외로 나가는데 왜 국내 고용이 좋아진다는 건지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다.22일 정부가 발표한 ‘경제성장전략’에도 일자리 고민은 빠져 있다. 정부가 역점을 두고 있는 인공지능(AI) 대전환 과정에서 고용시장 불안이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지만 정부의 대답은 “일자리가 줄어드는 부분도 있고 늘어나는 부분도 있을 것이다. 마찰적 실업 문제는 대안을 만들어 보겠다”는 수준에 그치고 있다.‘반드시 가야 할 길’은 일자리 창출오히려 정부가 주도적으로 추진하는 정책들은 일자리 감축을 부추기고 있다. 센 상법에 더 센 상법, 더 더 센 상법까지 몰아치는 상황에서 기업들의 투자와 고용이 제대로 이뤄질 것으로 기대하기 어렵다. 근로자 개인에 대한 과도한 손해배상 청구를 제한하자는 취지로 시작된 노란봉투법은 기업들을 경영 불가 상태로 내모는 ‘검은봉투법’이 됐다. 정부가 주시하는 개미투자자들의 집단지성은 노란봉투법의 본질을 꿰뚫었다. 노란봉투법이 국회를 통과하자 자동화 확대와 일자리 감소를 예상하고 로봇 관련주에 투심이 쏠렸다.정부와 여당이 주식 시세표만 들여다보는 것은 이해할 만하다. 정책 발표에 대해 시장이 즉각적으로 반응해 정책 효능성이 좋고 단기간에 큰 성과를 보일 수 있다. 반면 일자리 정책은 열심히 해도 당장 표가 나지 않고, 오히려 노동시장 개혁 과정에서 반발과 저항에 시달릴 수 있다. 하지만 우리 경제의 지속적인 성장을 위해 진짜 ‘반드시 가야 할 길’은 양질의 일자리 창출이다. 5년 뒤 현 정부의 경제정책에 대한 평가는 수시로 오르내릴 주가가 아니라 일자리 성과로 판가름 날 것이다. 김재영 논설위원 redfoot@donga.com}

    • 2025-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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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김재영]법망 피해 고가 아파트 쓸어 담은 ‘검은 머리 외국인’들

    수도권 주택담보대출을 6억 원으로 제한한 6·27 대출 규제 이후 주택 거래가 급감하며 과열 양상이 진정되고 있다. 정부는 사업자 대출 등 우회로까지 틀어막으며 바짝 돈줄을 죄고 있다. 하지만 바늘구멍으로 황소바람 들어온다고 정작 새는 곳은 따로 있었다. 해외 은행에서 자금 조달이 가능해 대출 규제에서 자유로운 외국인들이 아파트를 쓸어 담고 있다. 외국인의 자금 출처나 가구원 파악이 어렵다는 허점을 노린 탈세도 광범위하게 이뤄지고 있다. ▷국세청은 서울 강남 3구(강남·서초·송파구), 용산구 등에서 고가 아파트를 편법 취득한 외국인 49명에 대한 특별 세무조사에 착수했다. 대부분 미국·중국 국적이고, 대상자의 약 40%가 한국계, 이른바 ‘검은 머리 외국인’이다. 이들이 산 주택 230여 채 가운데 70%가 강남 3구에 몰려 있고, 시세 100억 원이 넘는 아파트도 있다. 외국 국적자들은 거래 과정에서 외국인등록번호와 여권번호를 섞어 쓸 수 있어 과세 감시망을 피하기 쉬웠다. 금융·과세 당국이 해외 계좌에 접근하기 쉽지 않다는 점도 악용했다. ▷국내 사업체에서 탈루한 소득으로 부동산을 사들인 경우가 많았다. 국내에 전자부품 무역업체를 설립한 외국 국적의 A 씨는 해외에 만든 페이퍼컴퍼니로부터 물품을 매입해 대금을 지급하는 것처럼 꾸며 법인 자금을 해외로 빼돌렸다. 이후 조세회피처에 숨긴 돈을 국내로 들여와 서울 용산구의 최고급 아파트, 토지 등을 사들였다. 해외 은닉 자금을 국내로 들여오는 과정에서 자금 출처를 숨기기 위해 가상자산이나 불법 환치기를 한 경우도 있었다. ▷‘아빠 찬스’ 역시 빠지지 않았다. 미국 국적의 B 씨는 국내에 사는 부친의 분양전환권을 무상으로 넘겨받아 본인 명의로 수십억 원대 아파트를 샀지만 증여세를 내지 않았다. 아파트를 사서 외국계 회사 주재원 등에게 임대해 수억 원의 임대료를 받고도 신고하지 않은 경우도 있었다. 외국인은 전입신고를 잘 하지 않고 소득 확인이 어렵다는 점을 노렸다. 허위 양도 계약으로 1주택자로 위장하거나, 외국에 살면서도 국내 거주자에게 적용되는 세금 감면을 받기도 했다. ▷적발된 사례는 극히 일부일 수 있다. 2022년부터 올해 4월까지 외국인은 국내에서 총 2만6244채, 거래금액으로 7조9730억 원어치의 아파트를 매입했다. 특히 서울 강남 3구에선 외국인 집주인이 실제 거주하는 비율이 40% 정도에 그쳐 투기로 의심되는 사례가 많다. 최근 정부와 국회는 내국인 역차별 논란이 일고 있는 외국인 부동산 쇼핑을 규제하기 위한 입법을 논의하고 있다. 규제 사각지대의 외국인 투기 자금이 부동산 시장을 교란하지 않도록 허점을 메워야 할 것이다. 김재영 논설위원 redfoot@donga.com}

    • 2025-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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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김재영]막무가내 트럼프 넘으니 요지부동 민주당

    관세 협상이란 큰 산을 넘은 뒤 돌이켜 생각하니 이런 막무가내 협상이 어디 있나 싶다. 뒷골목에 끌려가 양쪽 호주머니 탈탈 털렸는데 그래도 남들보단 덜 뜯겼다고, 양말 속에 숨겨둔 돈은 지켰다고 안도해야 하는 처지가 씁쓸하다. 미 백악관이 공개한 단체 기념사진은 상징적이다. 한미 각각 5명씩 10명이 ‘엄지 척’을 하고 있는데 이를 드러내며 활짝 웃는 사람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 등 3명, 모두 미국 측이다.미국에선 원팀, 돌아오니 남남 한국 협상 대표단은 “전쟁과 같은 협상 과정” “피가 마른다는 말을 실감했다”고 했다. 수틀리면 “그냥 관세 25%로 가자”며 자리를 박차는 미국 측의 바짓가랑이를 붙들어야 했다. 다행히 ‘마스가(MASGA·미국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 카드 등을 앞세워 물꼬를 텄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 등 재계도 총출동해 힘을 보탰다. 선방했다는 평가를 받는 관세 협상 과정에서 정부·여당과 기업은 ‘원팀’이었다. 하지만 워싱턴에서 돌아오자마자 원팀은 해체됐다. 국가대표 소집이 끝나고 각자 소속팀으로 돌아간 선수들처럼 갈라섰다. 완고한 미국을 상대로 진땀 흘리던 정부·여당이 우리 기업을 상대로 강경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상법 개정에 이은 ‘더 센 상법’, 노란봉투법, 법인세 인상 등을 쉴 새 없이 몰아치고 있다. 어떤 읍소나 설득도 통하지 않는다. 기업들은 트럼프 대통령을 상대할 때만큼이나 막막한 벽 앞에 서 있는 심정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타국을 바라보는 태도와 더불어민주당이 기업들을 대하는 방식은 묘하게 닮아 있다. 핵심 지지세력의 이익이 우선이다. 트럼프에게 ‘미국’과 ‘백인’이 중심이라면, 한국엔 ‘개미’와 ‘노조’가 있다. 우리에게 도움이 된다면 상대가 입을 타격은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관세가 자유무역을 위축시키고 결국 소비자에게 피해가 돌아간다” “기업 경영이 위축되면 경제 성장이 어려워진다” 같은 교과서적인 설득이 통하지 않는다.피 말리는 기업 심정도 알아주길 한편으론 잦은 변주로 ‘희망고문’을 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때론 “나는 관대하다”며 양보할 듯했지만 사실은 답은 정해져 있었다. 우호적인 협상 분위기에 방심하던 인도와 스위스가 뒤통수를 세게 맞았다. ‘기업이 성장의 중심’이라며 스킨십을 확대하는 정부·여당에 경제계는 ‘혹시나’ 하고 기대를 걸었지만 ‘역시나’였다. 6월 30일 민주당은 경제단체들과 상법 개정안 간담회를 갖고는 사흘 뒤에 바로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지난달 14일에도 노란봉투법과 관련해 경제단체들의 우려를 경청한 뒤 다음 날 “늦어도 내달 처리”를 공언했다. 관세 25%가 15%로 되니 뭔가 이득을 본 것 같지만, 기업들 입장에선 0%에서 15%로 부담이 커진 것이다. 2분기 사상 최대 매출을 거두고도 영업이익은 급락한 현대차·기아처럼 하반기 전 산업을 강타할 관세 폭풍의 여파는 가늠하기조차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 경영권 불안과 자금 경색(상법), 노사 관계 불안(노란봉투법), 비용 증가(법인세) 등까지 한꺼번에 얻어맞으면 웬만한 기업은 버티기 어려울 수 있다. 각국의 관세 협상이 얼추 마무리되면서 기업들은 각자 받은 관세 성적표를 들고 글로벌 시장에서 전쟁을 펼쳐야 한다. 훌륭한 군대는 병참으로 이긴다는데, 지금으로선 본국으로부터 보급은 기대하기 힘든 상황이다. 지금부터라도 기업의 과도한 부담을 줄이고 불합리한 규제를 해소하기 위해 머리를 맞대야 한다. 양보할 생각은 추호도 없는 미국과 마주했던 답답한 심정을 떠올려주기 바란다. 실용주의를 표방한 이재명 정부와 여당은 막무가내 트럼프 정부와 달라야 한다. 그럴 거라고 믿고 싶다. 김재영 논설위원 redfoot@donga.com}

    • 2025-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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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실상 마지막이 될 민노총의 ‘불법 파업’[오늘과 내일/김재영]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노총)이 반노동 정책 폐기를 촉구하며 16일 총파업에 돌입했다. 근로조건의 결정과 관계없는 정치적 요구를 앞세운 파업은 불법이다. 하지만 이번이 민노총의 마지막 불법 파업이 될 가능성이 높다. 민노총의 투쟁 기조가 변해서가 아니다. 정부와 여당이 밀어붙이는 노조법 2·3조 개정안(‘노란봉투법’)이 현실화하면 파업의 대상과 명분이 크게 확대돼 불법 파업이 될 여지가 줄어들기 때문이다.불법 파업 족쇄 풀어줄 노란봉투법 경제계는 사용자의 범위를 대폭 확대하는 노조법 2조 개정에 따른 후폭풍을 특히 우려한다. 현행 노조법에선 사용자의 범위를 ‘근로계약 체결의 당사자’로 한정하지만, 노란봉투법은 ‘근로조건을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자’로 넓혔다.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노란봉투법 법안은 5건인데, 그중에선 단순히 업무를 위탁한 경우에도 사용자로 볼 수 있다는 법안까지 있다. 사용자 범위가 무한정 확대되는 것이다. 노란봉투법이 통과하면 하청업체 근로자들은 “이게 다 원청 책임”이라며 단체교섭을 요구할 수 있다. 원·하청 구조가 복잡한 조선, 철강, 건설, 자동차 등의 업종에서 특히 갈등이 커질 것이다. 많게는 수천 개의 협력사를 둔 대기업들은 1년 내내 교섭 요구에 시달릴 수 있다. 공공부문 노조들은 “대통령이 책임지라”고 목소리를 높일지도 모른다. 기업들은 사용자성 여부를 가려달라며 법원으로 달려갈 것이다. ‘진짜 사장’을 가리는 솔로몬식 재판이 이어지는 동안 법적 불확실성으로 기업 경영은 크게 위축될 수밖에 없다. 노조법 2조 개정의 진짜 폭탄은 노동쟁의 개념의 확대다. 노동쟁의가 있어야 파업 등 쟁의행위를 할 수 있다. 현행 노조법은 노동쟁의를 ‘근로조건의 결정에 관한 주장의 불일치’로 정의하는데, 노란봉투법은 ‘결정’이라는 표현을 뺐다. 단 두 글자지만 차이는 엄청나다. 지금은 임금 협상 등 단체교섭 대상에 대해서만 파업을 할 수 있는데 근로조건 전반으로 분쟁이 확대되면 해고자 복직, 부당 노동행위 철회 등을 이유로도 파업을 할 수 있다. 더 나아가면 정부 정책 등 근로조건에 영향을 미치는 모든 사안이 파업의 명분이 될 수 있다. 물론 사용자의 처분 권한 밖인 정치파업은 법원에서 불법으로 판단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노조엔 큰 부담이 없다. 노조법 3조가 개정되면 불법 파업에 대해서도 손해배상 책임을 묻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노동계는 노란봉투법으로 하청노조가 원청과 교섭할 수 있게 되면 불필요한 분쟁과 파업이 오히려 줄어들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함부로 휘두르지 않을 것이라는 구두 약속만 믿고 무작정 칼자루를 쥐여 줄 순 없다.최저임금처럼 사회적 합의로 풀어야 하청 근로자에 대한 차별을 막고 노동 3권을 보장하겠다는 노란봉투법의 취지는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처럼 법적 정합성과 현실 적합성이 부족한 채로 처리하기는 곤란하다. 시기도 좋지 않다. 김기승 부산대 경제학부 교수는 노란봉투법이 시행되면 지난해 기준으론 경제성장률이 0.4%포인트 정도 하락할 수 있다고 추산했다. 성장률 0.2%포인트를 끌어올리려고 1, 2차 추가경정예산안을 합쳐 45조 원을 쏟아부었는데 더 이상의 경제적 도박은 무리다.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는 노란봉투법이 “반드시 가야 할 길”이라고 했다. 16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선 장관이 되면 곧바로 추진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반드시 가야 할 길’은 노동시장 이중구조 해소이지 노란봉투법 그 자체는 아닐 것이다. 17년 만에 내년도 최저임금을 노사공 합의로 결정한 것처럼 노조법 개정도 사회적 대화를 통해 충분히 논의해야 한다. 좋게 봐도 수단일 뿐인 노란봉투법을 절대화하는 우를 범해선 안 될 것이다.김재영 논설위원 redfoot@donga.com}

    • 2025-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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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김재영]117년 만의 ‘7월 더위’, 논밭-공사장 덮친 ‘살인 폭염’

    비가 오는 둥 마는 둥 짧은 장마가 지나고 예년보다 빨리 더위가 덮쳤다. 이른 아침 출근 시간대부터 기온이 30도를 넘어 숨이 막혀 온다. 8일 경기 광명과 파주에선 낮 기온이 한때 40도를 넘었다. 근대 기상 관측이 시작된 이래 7월 초순이 이렇게 덥기는 117년 만에 처음이라고 한다. ‘20세기 최악의 더위’였던 1994년에서 ‘21세기 최악’이라던 2018년까지 20여 년이 걸렸는데, 이젠 지난해에 이어 올해까지 치명적 여름이 연이어 찾아오고 있다. ▷체온보다 높은 불볕더위에 사람이 온전할 리 없다. 일사병, 열사병 등 온열질환자가 속출하고 있다. 8일 하루 환자가 200여 명에 달했고, 올해 누적으론 1200명을 넘어서 지난해의 배가 넘는다. 본격적 한여름 더위가 시작되지 않았는데도 벌써 온열질환으로 8명이 사망했다. 7일 경북 구미의 한 아파트 공사장에서 베트남 국적 일용직 근로자가 앉은 채로 숨을 거뒀다. 8일 충남 공주와 서산에서는 논에서 일을 하던 노인들이 숨진 채 발견됐다. 이젠 ‘살인 더위’가 단지 비유적 표현이라고만 보긴 어렵다. ▷폭염에 쓰러지는 건 작업장의 근로자나 노약자들만이 아니다. 오히려 서울에선 상대적으로 선선한 오전 시간에 야외에서 운동하던 30, 40대 청장년층 온열질환자가 더 많았다. 햇볕이 뜨거운 오전 11시부터 오후 5시까지는 최대한 야외 활동을 피하고, 30분마다 10분 이상 그늘에서 휴식해야 한다고 질병관리청은 권고한다. 전국 시도교육청과 대구시 등 지방자치단체들은 양산 쓰기 캠페인을 펼치고 있다. 양산을 쓰면 체감온도를 최대 10도까지 낮춰주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일찍 시작돼 더 길게 영향을 미칠 폭염은 우리 일상을 짙게 할퀸다. 폭염에 농작물이 타들어 가면서 수박 등 여름 과일·채소류 가격이 벌써 들썩이고 있다. 가축이 쓰러지고 양식장 어류도 폐사하니 축산물과 수산물 가격도 걱정이다. 에어컨 사용이 늘면서 시민들은 벌써 전기요금 폭탄을 걱정하고 있다. 일일 최대 전력 수요가 이미 7월 말∼8월 중순 수준인 90GW(기가와트)를 넘어서 제대로 대비하지 않으면 자칫 대규모 정전이 발생할 우려를 배제할 수 없다. ▷폭염에 따른 피해는 평등하지 않다. 배달 기사, 건설 근로자, 농민 등은 아무리 더워도 땡볕에 일손을 놓기가 어렵다. 냉방기 가동이 쉽지 않은 쪽방촌 주민, 홀몸노인, 장애인, 노숙인 등에게 밤낮을 가리지 않는 무더위는 생존의 위협이 된다. 기초생활수급자 비율이 높을수록 온열질환자 밀도가 증가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폭염이 살인 무기가 되지 않도록 야외 근로자의 작업 환경을 개선하고 취약계층에 대한 보호 대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김재영 논설위원 redfoot@donga.com}

    • 2025-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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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김재영]평택·화성·용인… 도시를 살리는 기업의 힘

    경기 화성시를 떠올릴 때 이젠 누구도 ‘살인의 추억’을 언급하지 않는다. 음울한 분위기의 농촌은 역동적인 반도체, 모빌리티 도시로 거듭난 지 오래다. 지난해 7200명이 태어나 전국에서 아기 울음소리가 가장 많이 들리는 지역이기도 하다. 경기 평택시는 지명 유래처럼 ‘평평한 땅과 연못밖에 없는’ 지역이 아니다. 세계 최대 규모의 반도체 생산 단지인 이곳으로 청년들이 몰리고 있다. 기업이 지역을 살린다는 말을 실증하는 사례다. ▷전영수 한양대 교수 연구팀과 이슈·임팩트 연구기업 트리플라잇이 전국 229개 시군구 기초자치단체 경쟁력을 평가해 보니 주요 기업의 유무가 지역의 성패를 갈랐다. 인구 성장, 경제 활동, 생활 기반 등 분야별로 55개 세부지표를 점수화해 ‘지역자산역량지수’를 매긴 결과 평택시가 1위를 차지했고 화성시, 경기 용인시 수원시 시흥시가 뒤를 이었다. 모두 반도체, 자동차, 바이오 등 국내 대표 기업들이 포진한 ‘기업도시’들이다. ▷평택은 한국 반도체 산업의 메카다. 2015년 삼성전자가 이곳에 반도체 공장 첫 삽을 뜬 이후 100조 원을 쏟아부었다. 수출 전진기지인 평택항을 바탕으로 수소, 미래차 등 첨단산업 육성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화성은 동쪽엔 삼성전자 ASML 등 세계적 반도체 기업들이, 서쪽엔 현대자동차 기아 등 모빌리티 기업이, 남쪽엔 바이오 기업들이 둥지를 틀고 있다. 차세대 반도체 수도인 용인에선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480조 원을 투자하는 반도체 메가 클러스터 사업이 진행 중이다. ▷전국 지방자치단체들이 인구 감소로 골치를 앓고 있지만 기업도시들은 양질의 일자리를 찾아 몰려드는 청년들에 힘입어 인구가 지속적으로 늘고 있다. 화성시는 2001년 시 승격 이후 20여 년 만에 인구가 5배로 불어났다. 시민 평균 연령은 39.6세로 전국 평균(45.6세)보다 6세 젊다. 결혼과 출산도 활발하다. 화성(1.01명), 평택(1.00명), 충남 당진(1.08명) 등 기업도시들의 합계출산율은 전국 평균(0.75명)을 훌쩍 뛰어넘는다. 일자리를 따라 인구와 소비가 늘어나고, 세수 증가로 지방 재정이 튼튼해져 인프라와 복지도 확충되는 선순환 구조가 갖춰지고 있다. ▷세계 각국 도시들은 기업과 인재를 유치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테슬라 본사를 비롯해 거대 정보기술(IT) 기업들이 밀집해 ‘실리콘힐스’로 불리는 미국 텍사스 오스틴이 대표적이다. 파격적인 세금 감면과 규제 완화로 기업들을 끌어모았다. 소멸 위기에 몰려 있는 한국 지방 도시들에 주는 시사점은 분명하다. 좋은 기업을 유치해 일자리를 늘리는 것이 도시의 운명을 바꿀 출발점이 될 것이다.김재영 논설위원 redfoot@donga.com}

    • 2025-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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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김재영]희토류가 바꿔 놓은 美-中 ‘협상의 룰’

    미국과 중국의 통상전쟁을 봉합한 10일 제2차 고위급 무역협상은 겉보기엔 사이좋게 하나씩 주고받은 모양새였다. 중국은 전기차 반도체 스마트폰 등에 필수적인 희토류 수출 제한을 해제했고, 대신 미국은 중국인 유학생 비자 취소 조치를 풀었다. 하지만 뜯어보면 미국의 판정패다. 희토류 수출 재개는 6개월의 한시적 조치일 뿐이고, 미국은 국가 안보 사항이라 절대 협상 불가라던 기술 수출 통제를 테이블에 올려야 했다. 미국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FP)는 “희토류가 협상 규칙을 크게 바꿔 놓았다”고 평가했다. ▷4월 미국이 중국에 145%의 초고율 관세를 물리자 중국은 곧장 보복관세와 함께 희토류 수출 금지에 들어갔다. 중국이 거의 독점하고 있는 디스프로슘, 사마륨 등 7종의 중(重)희토류를 틀어막았다. 당장 미국 제조업에서 곡소리가 났다. 전기차 모터가 돌아가지 않아 공장이 문 닫을 위기에 몰렸고, 휴머노이드 로봇의 팔이 움직이지 않았다. 제공권 장악의 핵심인 F-35 전투기도 뜨지 못했다. 관세 협상에서 교역 대상국들에 “최선의 제안을 가져오라”며 고자세를 보였던 미국도 다급해졌다. 협상의 물꼬를 튼 5일 미중 정상 통화는 트럼프 대통령이 먼저 요청해 성사됐다. ▷희토류(稀土類·Rare Earth Elements)는 사실 이름처럼 희소하진 않다. 하지만 자연 상태에서 단독으로 존재하지 않고 다른 광물과 섞여 있어 분리·정제가 어렵다. 이 과정에서 심각한 환경 오염도 유발한다. 1980년대부터 선진국들이 손을 떼기 시작하자 막대한 매장량을 보유한 데다 환경 규제, 노동 인권 문제에서 자유로운 중국이 시장에 뛰어들었다. 현재 중국은 전 세계 희토류 생산의 70%, 정제·가공의 90%를 장악하고 있다. ▷중국은 2010년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영유권 분쟁 당시 일본을 상대로 처음 희토류 수출 통제에 나섰다. 일본이 단 3일 만에 굴복하면서 전략무기로서 희토류의 힘을 실감했다. 이후 중국은 전략자원 공급망을 적극적으로 무기화하기 시작했다. 트럼프 1기 무역전쟁 당시도 희토류 수출 금지를 만지작거렸던 중국은 이번에는 참지 않고 회심의 카드를 꺼내 들었다. ▷미국도 손을 놓고 있었던 건 아니다. 미국 내 채굴·가공 기업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고, 호주, 캐나다 등과 함께 탈중국 공급망 구축에 나섰다. 우크라이나와 광물협정을 맺고 그린란드를 호시탐탐 노리는 것도 희토류와 관련이 있다. 하지만 공급망 전환이 단기간에 이뤄지기 어렵다는 게 문제다. 희토류를 얻으려고 심해와 달까지 노리는 시대다. 중국산 의존도가 높은 한국 역시 공급처 다변화, 희토류 저감·대체 기술 개발 등 공급망 독립 노력을 게을리해선 안 될 것이다.김재영 논설위원 redfoot@donga.com}

    • 2025-0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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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김재영]코스피 3년 5개월 만에 2900 돌파… ‘허니문 랠리’ 계속될까

    ‘코스피 5,000 시대’를 공언한 이재명 대통령이 11일 한국거래소를 방문했다. 현직 대통령이 임기 중 거래소를 찾은 건 이번이 세 번째다. 1999년 12월 김대중 전 대통령은 증시 폐장식에, 지난해 1월 윤석열 전 대통령은 증시 개장식에 참석했다. 이번엔 취임 후 일주일 만의 첫 외부 일정으로 주식 시장을 찾은 것이어서 기대감이 더 컸다. 이날 코스피는 3년 5개월 만에 2,900 선을 돌파했다. ▷이 대통령은 거래소에서 가진 현장 간담회에서 주식을 부동산에 버금가는 대체 투자 수단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민이 중간 배당도 받고 생활비도 벌 수 있게 하면, 기업의 자본 조달도 쉬워지고 국가 경제에도 선순환이 일어날 것”이라고 했다. 배당을 촉진하기 위한 세제와 제도 개편을 준비하고 있다고도 했다. 주식 시장을 교란하는 불공정 거래는 부당 이득을 환수하고 엄단하겠다며 한 번이라도 주가 조작에 가담하면 다시는 발을 들일 수 없도록 ‘원 스트라이크 아웃제’를 도입하겠다고 했다. ▷이 대통령은 꾸준히 주식 시장에 관심을 보여 왔다. 한때 자신이 ‘슈퍼개미’까지는 아니더라도 ‘중개미’ 정도는 되는 개인투자자였다고 했다. 이른바 ‘잡주’에 투자해 손해를 보기도 했고 선물·옵션에 손을 댔다가 전세금만 빼고 전 재산을 날린 적도 있다. 이후엔 우량주 장기 투자로 수익도 좀 남겼다고 한다. 대선 후보 때인 지난달 28일엔 코스피200과 코스닥150을 추종하는 상장지수펀드(ETF)를 4000만 원어치 사들이며 “1400만 개미와 한배를 탔다”고 했다. ▷역대 대통령들은 저마다 증시 부양 의지를 피력했다. 개인투자자들의 표심을 잡고 경제 성과를 상징적으로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내외 경제 상황에 따라 성과는 크게 달랐다. 직선제 대통령 시대 이후 주가 상승률이 가장 높았던 건 노무현 정부 때다. 저금리와 중국 특수에 힘입어 184.8% 상승했다. 이어 김대중(19.4%) 이명박(18.1%) 문재인(15.0%) 노태우(5.9%) 박근혜(4.4%) 정부 순이다. 반면 외환위기를 겪은 김영삼 정부 때는 주가가 17.5% 떨어졌고, ‘밸류업’을 외친 윤석열 정부는 별다른 위기가 없었는데도 5.1% 하락했다. ▷새 정부가 들어선 뒤 주식 시장에선 ‘허니문 랠리’가 이어지고 있다. 이 대통령 취임 직전과 비교하면 코스피는 5거래일 만에 7.7%나 올랐다. 과거에도 대선 직후엔 대체로 올랐지만 뒷심이 부족한 경우가 많았다. 장기적으로 주가를 끌어올리려면 부양책으론 부족하고 기업들이 도전과 혁신을 통해 경쟁력을 키울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기업 성장이 뒤따르지 않는 주가 상승은 결국엔 신기루로 끝나기 십상이다.김재영 논설위원 redfoot@donga.com}

    • 2025-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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