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용

김기용 부장

동아일보 산업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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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김기용 부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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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분야

2025-11-05~2025-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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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김기용]‘오픈마켓’, ‘로켓배송’ 이을 이커머스 혁신이 필요하다

    1996년 6월 1일은 한국 이커머스사(史)에서 중요한 날이다. 이날 인터파크가 문을 열며 한국 이커머스의 시작을 알렸다. ‘인터넷 테마파크’의 줄임말인 인터파크는 소비자들에게 일상의 다양한 욕구를 온라인으로 해결하는 새로운 경험을 제공했다. 이후 이커머스 시장은 지금까지 성장하고 있다. 대체로 10여 년마다 혁명적 변화를 선보이며 성장에 가속도를 더했다.韓 이커머스 10여 년 주기 대변혁인터파크 등장 이후 1996∼2000년 온라인쇼핑몰이 우후죽순 생겨났다. 롯데인터넷백화점, 신세계몰이 만들어졌고 삼성몰, 옥션 등도 뒤를 이었다. 온라인서점 예스24와 알라딘도 등장했다. 그리고 2000년 4월에는 인터파크의 사내 회사였던 지마켓이 독립해 출범했다. 지마켓은 기존 온라인쇼핑몰과 달리 판매자와 구매자 모두에게 열려 있는 오픈마켓 모델을 도입했다. 오픈마켓에서는 누구나 쉽게 판매자가 될 수 있고 소비자들은 유통마진이 줄어든 물건을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게 됐다.지마켓이 등장하면서 이커머스 시장은 본격적으로 양적 팽창을 시작했다. 2000년 약 6000억 원 수준이었던 이커머스 거래 금액은 2002년 약 6조 원으로 10배로 늘어났다. 지마켓은 설립 3년 만인 2004년 거래액이 2003년 대비 420% 성장한 2300억 원에 달했다. 2003년 12월 한 달간 9만 건이었던 판매 건수는 2004년 11월에 100만 건을 기록하기도 했다. 지마켓 등장 이후 10년이 흐른 2010년 이커머스 시장은 쿠팡의 등장으로 격변을 맞는다. 쿠팡은 2010년 소셜커머스로 시작했다. 소셜커머스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기반으로 물건을 판매하는 방식이다. 쿠팡은 처음에는 티몬, 위메프 등 다른 경쟁사처럼 소셜커머스에 집중했다. 하지만 2014년부터 ‘로켓배송’을 앞세워 이커머스 시장까지 영역을 확대했다.신흥 강자, 기존 판 흔들며 성장쿠팡은 이른바 ‘계획된 적자 전략’을 통해 대규모 투자를 진행했다. 물류센터를 확충하고 시스템을 근본부터 바꿨다. 2014년 3월 국내 최초로 직매입 기반 익일배송 서비스인 로켓배송을 시작했다. 이후 쿠팡은 급속 성장하며 2021년 미국 뉴욕증권거래소에 성공적으로 상장했다. 2023년에는 연 매출 30조 원을 돌파하며 국내 유통업계 1위에 올라섰다. 쿠팡발(發) 대변혁 이후 10여 년이 지났다. 하지만 아직 한국 이커머스 시장에 큰 변화는 없는 것 같다. 압도적 1위 쿠팡을 후발 주자인 네이버쇼핑이 쫓아가는 양태가 반복되고 있다. 네이버쇼핑은 ‘패스트 팔로어’라는 평가를 받고 있지만 아쉽게도 시장의 판도를 바꿀 ‘퍼스트 무버’라는 분석은 없어 보인다. 이러는 동안 중국 이커머스 업체들은 한국 시장에 도전장을 내밀고 있다. 알리익스프레스, 테무 등은 적극적인 광고·마케팅을 펼치며 인력도 증원하고 있다.이제 한국 이커머스 시장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어야 할 때가 됐다. 무섭게 쫓아오는 중국 업체들을 따돌리기 위한 혁명적 변화도 필요하다. 2000년 ‘오픈마켓’, 2014년 ‘로켓배송’처럼 판을 뒤흔들 만한 그런 변화가 있어야 한다. 답은 인공지능(AI)에 있어 보인다. 이커머스에 AI를 접목해 AI가 고객과 대화하며 맥락에 맞는 제품을 제안하는 것이다. 고객 개인의 경험을 바탕으로 사야 할 물건을 발견해 가며 쇼핑하는 ‘디스커버리 커머스(Discovery Commerce)’를 구현할 수도 있다. 마침 한국은 ‘AI 3대 강국’을 선언하고 국가적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이커머스 시장의 필요와 정부의 의지가 결합해 시너지를 낼 수 있는 기회인 셈이다. 김기용 산업2부장 kky@donga.com}

    • 2025-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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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김기용]집값 급등보다 더 무서운 정책 신뢰 추락

    2010년대 초까지 ‘남미의 부국(富國)’이었던 베네수엘라가 세계 최빈국 수준으로 떨어지는 데는 10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세계 최대 원유 매장국인 베네수엘라의 2011년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1만2688달러로 러시아(1만3236달러), 브라질(1만2917달러)과 비슷했다. 하지만 2020년에는 1567달러까지 떨어졌다. 카메룬(1577달러), 캄보디아(1545달러)와 비슷해진 것이다. 베네수엘라는 2020년 이후에는 자료조차 공개하지 않고 있다.국민 신뢰 잃은 베네수엘라 나락으로 요즘 베네수엘라 얘기가 한국 정치권에서 자주 등장하고 있다. 정부와 여당을 비판하는 측에서는 “한국이 베네수엘라의 길을 따라가고 있다”고 주장한다. 경제적으로는 포퓰리즘에 기반한 과도한 복지정책, 정치적으로는 사법부를 장악하기 위해 대법관 증원을 추진하고 있다는 등의 지적이다. 이런 주장은 사안을 바라보는 시각에 따라 갑론을박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논란의 여지 없이 베네수엘라로부터 배울 수 있는 한 가지를 꼽는다면 ‘정부 정책이 신뢰를 잃으면 나라가 무너진다’는 것이다. 베네수엘라는 우고 차베스 정권(1999∼2013년) 시절 원유 수출 통제권과 복지 프로그램 운영 권한을 가진 고위 관료들이 부정부패를 일삼으며 막대한 부를 축적했다. 국민들은 정부가 추진하는 정책 목적이 공익이 아닌 고위 관료들의 사익 추구에 있다고 인식하기 시작했다. 정책에 대한 신뢰가 무너진 것이다. 베네수엘라 정부는 2003년 외환을 통제하기 위해 공식 환율을 달러당 고정환율로 설정했다. 하지만 정부 정책을 신뢰하지 않는 국민들은 암시장에서 더 높은 가격으로 달러를 거래하기 시작했다. 국민들이 경쟁적으로 달러를 사들이면서 베네수엘라 화폐 가치는 폭락했다. 여기에 더해 정부는 부족한 재정을 메우기 위해 화폐 발행을 남발했다. 뉴욕타임스(NYT) 등은 올해 베네수엘라의 물가상승률을 최대 600%로 예상하고 있다.韓 부동산 정책 신뢰 상실 위험 징조 한국에서도 위험 징조가 보인다. 부동산 정책을 총괄하는 이상경 전 국토교통부 1차관은 33억 원이 넘는 아파트를 전세 끼고 매입(갭투자)해 놓고 다른 국민들은 못 하도록 막는 정책을 내놨다. 그리고 국민들에게는 “돈을 더 모은 뒤 집값이 떨어지면 사라”고 말해 분노를 자아냈다. 이찬진 금융감독원장도 만만찮다. 그는 다주택·비(非)실거주 논란에 휩싸이자 서울 서초구 아파트 두 채 중 한 채를 매물로 내놨다. 그런데 매도 가격을 한 달 전 실거래가보다 4억 원 높게 책정했다. 집값을 잡겠다는 정부 정책과는 반대로 행동한 셈이다. 대통령실 주요 참모 중에서도 최근 26억 원짜리 서울 강남 아파트를 갭투자로 매입했거나, 40억 원 상당의 강남 다세대주택을 6채 보유한 이도 있다. 정부 고위 관료들의 행동이 정책의 목표와 상충될 때, 국민은 정책의 의도와 정당성 자체를 의심하게 된다. 이렇게 신뢰가 상실되면 정책에 대한 순응 의지가 사라진다. 법과 제도를 따르지 않는 국민들이 많아지면서 결국 정책은 실패하고 심각하면 민주주의의 위기로까지 이어지게 된다. 반면 정부 정책에 대한 국민의 신뢰는 정부가 어려운 개혁 정책을 추진할 수 있는 정치적 자본이 된다. 정책 신뢰는 민주 정권의 필수적인 통치 자원인 셈이다. 지금 정부와 여당은 조금씩 금이 가고 있는 정책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비상한 노력을 해야 한다. 마침 김윤덕 국토부 장관은 고위공직자들의 부동산 백지신탁, 다주택자 승진 제한 등을 검토하겠다고 했다. 또 전현희 최고위원은 육군사관학교와 태릉골프장 이전을 포함해 서울 아파트 공급을 확대하겠다고 말했다. 정책 신뢰 회복을 위한 노력들은 평가할 만하다. 다만 이번에도 말의 성찬에만 그친다면 집값 급등이 아니라 나라가 흔들릴 수도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베네수엘라처럼 말이다. 김기용 산업2부장 kky@donga.com}

    • 2025-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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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김기용]더 분명한 공급확대 정책이 필요하다

    추석 연휴 눈길을 끈 뉴스 중 하나는 서울에서 15억 원이 넘는 고가 아파트 거래가 늘고 있다는 것이었다. 특히 강남·서초·송파구 등 강남 3구가 아닌 마포·성동·광진구 등에서 거래가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른바 ‘비(非)강남 한강벨트’를 중심으로 아파트 가격이 다시 들썩이고 있는 것이다.두 차례 대책 불구 가격 들썩 일부에선 이재명 정부의 두 가지 부동산 대책(6·27 대출 규제, 9·7 공급 대책)이 실효를 거두지 못한 신호라는 분석도 나온다. 이재명 정부는 6월 27일 수도권에서 주택담보대출을 6억 원으로 제한하는 등의 초강력 대출 규제를 발표했다. 과거 문재인 정부의 모든 대출 규제를 합한 것보다 더 강력하다는 평가가 나올 정도였다. 주택 구매 희망자들 사이에선 ‘내 집 마련 불가능 대책’이란 하소연까지 나왔다. 일단 서울 아파트 가격은 진정됐다. 아파트 거래는 규제 직전보다 70% 가까이 감소했고 가격 상승 폭도 둔화됐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공급 대책이 뒤따르지 않으면서 대출 규제 효과가 오래가지 못했다. 공급이 늘지 않으면 가격이 더 오를 것이라는 심리가 초강력 대출 규제까지 감내하게 만든 것이다. 8월부터 꿈틀거리던 집값은 ‘똘똘한 한 채’ 바람을 타고 곳곳에서 기존 최고가를 넘어섰다. 정부는 9월 7일 부랴부랴 공급 대책을 발표했다. 앞으로 5년간 135만 채를 공급하겠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맹탕’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공급 대책이 효과를 내려면 수요자에게 집을 살 기회가 늘어날 것이라는 확신을 줘야 한다. 이미 포화 상태로 보이는 서울에서 어떻게 새집을 공급할 것인지를 명확히 밝혀야 하는 것이 핵심이다. 하지만 이 핵심이 빠졌다. ‘9·7 무공급 대책’이라는 조롱이 나올 정도였다. 공급 대책에서 ‘공급’이 빠지면서 집값이 더 오를 것이라는 확신만 심어준 셈이 됐다. 연휴 직전 한국부동산원이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9월 다섯째 주(9월 29일 기준) 서울 아파트 매매 가격은 직전 주 대비 0.27% 올랐다. 9·7 공급 대책 발표 이후인 9월 둘째 주(9월 8일 기준)부터 오름폭이 계속 커지고 있는 것이다. 특히 광진구의 주간 상승률은 관련 통계 작성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하기도 했다. 부동산 시장은 규제와 공급이 조화를 이루지 못하면 과거 정부의 실패를 되풀이할 수밖에 없다. 문재인 정부는 28차례 부동산 대책을 발표했지만 규제 일변도의 정책으로 아파트 가격 급등을 초래했다. 이 과정에서 정부 정책은 신뢰를 상실했고 그대로 역풍을 맞았다.규제 일변 정책 반드시 역풍 9·7 공급 대책 당시 정부는 토지거래허가구역 확대를 시사하는 내용의 법 개정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집값을 잡기 위한 정책이었지만 수요자들 사이에선 ‘추가 규제 도입 전 집을 사야 한다’는 분위기가 커졌다. 아직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되지 않은 ‘비강남 한강벨트’에서 집값이 들썩이는 이유다. 정부 정책이 역풍을 맞은 사례이기도 하다. 서울 아파트 가격이 다시 요동치면서 다음 대책 발표가 불가피해졌다. 시장도 이재명 정부의 세 번째 부동산 대책 발표를 주목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6·27 대출 규제가 ‘현금 부자’에게만 유리하게 작용하고, 내 집 마련을 원하는 무주택 서민과 청년의 사다리를 걷어찼다는 비판을 경청해야 한다고 말한다. 생애 최초 주택 구매 등 실수요 계층은 선별적으로 완화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또 규제 지역을 확대하면서도 아파트 공급을 늘릴 것이라는 분명한 신호를 보내야 한다고도 말한다. 어떤 대책을 내놓든 분명한 건 과거 문재인 정부의 전철을 밟지 않아야 한다는 점이다. 부동산에서 어른거리는 ‘문재인 시즌2’를 분명하게 지워내야 한다.김기용 산업2부장 kky@donga.com}

    • 2025-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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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김기용]‘법 밖의 담배’에 관한 불편한 진실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담배는 ‘가짓과의 담배 따위를 통틀어 이르는 말’이다. 고려대 한국어대사전에서는 ‘담배의 잎을 말려서 가공해 피우는 물건’이라고 돼 있다. 담배사업법 제2조는 ‘담배란 연초의 잎을 원료로 전부 또는 일부로 하여 피우거나, 빨거나, 증기로 흡입하거나, 씹거나, 냄새 맡기에 적합한 상태로 제조한 것’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담배사업법이 사전(辭典)보다는 구체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다. 법이 기술 발전을 따라가지 못하는 전형적 ‘규제 지체’가 담배의 정의에서부터 나타나고 있다.담배의 법적 정의 현실 못 따라가 담배 업계와 전문가들은 법에 ‘연초의 잎’만으로 담배를 정의한 것이 문제라고 지적한다. 기술 발전으로 담배의 주성분인 니코틴을 연초의 잎이 아닌 화학적으로도 만들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이른바 ‘합성 니코틴’이다. 연초의 잎에서 추출한 ‘천연 니코틴’과는 반대되는 개념이다. 천연 니코틴은 연초를 원료로 하기 때문에 명실상부한 담배다. 반면 합성 니코틴은 성분이나 소비자들의 이용 양태는 분명히 담배지만 법적으로는 담배가 아니다. 니코틴을 액상으로 전환한 뒤 전자기기를 통해 담배처럼 이용하게 만든 것이 액상형 전자담배다. 그런데 이것도 합성 니코틴으로 만든 액상을 이용하면 담배가 아니다. 이런 ‘법 밖의 담배’에는 흉측한 경고 그림도 없고 섬뜩한 경고 문구도 없다. 멜론 초코 민트 등 다양한 향을 첨가할 수도 있다. 제품을 여러 색깔로 예쁘게 만들어 내기도 한다. 광고와 온라인 판매 제한도 없고, 누구나 사고팔 수 있으며 담뱃세 부과 대상에서도 빠져 있다. 네이버 쇼핑 웹사이트에서 ‘액상 담배’를 검색하면 1만8000개가 넘는 제품 판매 정보가 등장한다. 액상형 전자담배 판매업체는 4000개가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국회에서 담배 관련 논의 뒤로 밀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합성 니코틴을 이용한 액상형 전자담배를 사용하는 청소년들이 크게 증가하고 있다. 7월 질병관리청 발표에 따르면 지난해 액상형 전자담배를 이용한 고등학교 2학년 남학생 비율은 3.57%(2023년 1.19%), 여학생은 1.54%(2023년 0.94%)였다. 모두 전년보다 크게 증가했다. 특히 지난해 여학생들의 액상형 전자담배 사용률은 관련 조사 후 처음으로 일반 담배 사용률(1.33%)을 앞질렀다. 규제의 공백이 청소년 흡연 확산을 방치하고 있는 셈이다. 합성 니코틴으로 만든 액상은 성분이 불투명하다는 것도 문제다. 법의 규제를 받지 않기 때문에 타르, 니코틴 함량 등을 표기할 의무가 없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합성 니코틴으로 만든 액상 제품 대부분은 중국에서 만들어지고 있다고 한다. 위험성이 더 커지는 셈이다. 소비자는 자신이 흡입하는 물질이 뭔지 전혀 알 수 없다. 상황이 이런데도 법을 정비해야 할 국회는 사실상 손을 놓고 있다. 2016년 합성 니코틴을 담배의 정의에 포함하자는 법안이 처음 발의됐지만 10년째 제자리다. 청소년들의 흡연 확산이 문제가 되면서 올해 초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경제재정소위원회에 개정안이 상정되기도 했다. 하지만 판매업자들의 생존권이 위협받는다는 일부 의원들의 반대로 심사조차 이뤄지지 못했다. 8월 임시국회에서는 “시급히 처리할 필요가 없다”는 이유로, 9월 정기국회에서는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 논란 속 여야 정쟁이 격화하면서 합성 니코틴 규제안은 아예 뒷전으로 밀렸다. 규제가 늦어지는 사이 합성 니코틴은 변이를 거듭하고 있다. 최근에는 ‘유사 니코틴’, ‘무(無) 니코틴’까지 등장하고 있다고 한다. 합성 니코틴의 분자 구조를 바꿔 니코틴 같은 효과를 내면서도 니코틴이 아닌 물질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담배를 담배라고 규정하는 것부터 빨리 시작해야 할 것 같다.김기용 산업2부장 kky@donga.com}

    • 2025-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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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데스크가 만난 사람]“익산 고구마-창녕 마늘 버거로 재탄생… K농산물 수출 플랫폼 될 것”

    《“한국의 농촌에는 한국인은 물론 세계인이 좋아할 훌륭한 식재료가 많습니다. 한국맥도날드가 이런 걸 발굴해 버거를 만든 겁니다. 이 과정에서 맥도날드는 현지화를, 농촌은 소득 증가라는 상생을 이뤄낸 것이죠.” 김기원 한국맥도날드 대표(51)는 “맥도날드의 로코노미(로컬+이코노미)가 농촌 활성화를 통해 지방 소멸을 막는 대안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지역 농산물을 활용한 한국맥도날드의 현지화 전략은 지난달 31일 막을 내린 국내 최대 창농·귀농 박람회 ‘2025 A FARM SHOW(에이팜쇼)’에서도 주목받았다. 에이팜쇼 관람객들은 처음엔 맥도날드가 행사에 참가한 것을 의아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부스를 방문해 설명을 듣고 난 후에는 대부분 고개를 끄덕였다. 한국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아 ‘국민 브랜드’가 되는 것을 꿈꾸는 김 대표를 만나 그의 생각을 들어 봤다. 인터뷰는 3일 오후 서울 종로구 한국맥도날드본사에서 진행됐다.》―2025 에이팜쇼에서 한국맥도날드가 차린 부스에 관심이 많았다.“에이팜쇼는 창농, 귀농을 전면에 내세운 행사였다. 그래서 관람객들이 농촌과의 진정성 있는 협업 사례에 관심이 많았던 것 같다. 한국맥도날드는 ‘한국의 맛’ 프로젝트를 통해 매년 지역 특산물을 활용한 버거를 선보이고 있다. △창녕 갈릭 버거(2021년) △보성 녹돈 버거(2022년) △진도 대파크림 크로켓 버거(2023년) △진주 고추 크림치즈 버거(2024년) △익산 고구마 모짜렐라 버거(2025년) 등이다. 부스를 찾은 방문객들 가운데 1400여 명이 내년 협업 지역과 특산물을 제안할 정도로 이 프로젝트에 대한 관심이 컸다.” ―‘한국의 맛’ 프로젝트는 성공했나.“프로젝트 결과를 수치화해 보니 617억 원 정도 사회경제적 효과가 있었다. 농가의 실질 소득 증대 외에도 ‘익산 고구마’, ‘창녕 마늘’ 등의 브랜드 가치 상승 효과가 567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다른 기업들이 이들 농가와 협업을 추진하고 있다는 얘기도 들었다. 글로벌 본사에서도 이 사실을 주목하고 있다. 우리가 직접 조사한 수치와 별개로 조만간 본사가 영국 경제 연구소인 ‘옥스퍼드이코노믹스’와 공동으로 프로젝트 성과를 정교하게 다시 측정할 계획이다.” ―농촌 활성화에도 많이 기여했다는 얘기인가.“전북 익산이 대표적이다. 익산에서는 9월 6∼7일 이틀간 ‘고구마축제’가 개최된다. 올해 최초로 열리는 행사다. 익산 고구마는 국내 고구마 유통량의 60%를 차지한다. 하지만 그동안 제대로 된 브랜딩 기회를 갖지 못했다. 익산 출신으로 서울에 사는 사람들도 고향이 고구마로 유명한 것을 모르는 경우도 있다. 이런 식으로 지역이 활성화되고 브랜드 가치가 높아지게 된다.” ―지역과 특산품은 어떻게 선정했나.“무엇보다 식재료의 품질이 가장 중요하다. 전국 각 지역에서 추천받은 식재료들을 일일이 점검했다. 한국의 거의 모든 농촌에서 제안이 들어오고 있다. 다음으로 충분한 공급 능력이다. 한국맥도날드에는 하루 평균 40만 명 정도 방문한다. 재료 수급이 보통 일이 아니다. 품질과 충분한 공급 능력을 갖췄다면 마지막으로 적극적인 협업 의지를 평가한다. 농가의 의지가 있어야 하고 또 해당 농가를 지원하는 지방자치단체의 협업 의지도 중요하다. ‘한국의 맛’으로 선정된 농가와 지자체들이 우리보다 더 좋은 아이디어를 내고 열심히 뛰는 것을 보고 협업 의지도 매우 중요한 평가 요소라는 확신을 얻었다.” ―‘한국의 맛’ 프로젝트는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오랜시간 마케터로 일해 온 경험이 주효했다. 마케팅에서 중요한 건 고객에게 어떤 경험을 선사하는가이다. 오래 기억되는 경험이 남으면 성공한 마케팅이다. 여기에 최근 한국 소비자들이 ‘가치 소비’ 경향을 보이면서 이 두 요소를 결합한 결론이 ‘한국의 맛’ 프로젝트였다.” ―현지 지역명을 제품 이름에 넣은 사례는 한국맥도날드가 유일하다고 들었다.“익산, 창녕 등 제품에 지역명을 넣은 것은 우리가 유일하다. ‘현지화’는 전 세계 맥도날드가 공유하는 중요한 전략적 방향이다. 한국맥도날드는 다른 외국 기업들보다 상대적으로 높은 자율성을 갖고 현지화 노력을 줄곧 펼쳐 왔고 그 결과로 나타난 것이 ‘한국의 맛’ 프로젝트다.” ―‘한국의 맛’이 다른 나라로 수출될 수도 있나.“최근 ‘한국의 맛’ 프로젝트가 널리 알려지면서 중국·싱가포르·홍콩 등의 국가에서 레시피를 요청하고 있다. 과거에도 우리가 개발한 불고기버거, 김치버거 레시피가 해외로 수출된 사례가 있긴 하지만 이번 요청은 더 광범위하고 더 적극적이다. 최근 글로벌에서 ‘K컬처’ ‘K푸드’ 열풍이 불고 있는 영향으로 보인다. 이런 기회를 잘 활용할 필요가 있다. 다음 달 아시아 10여 개국 맥도날드 임원들이 한국에 모인다. 이때 ‘한국의 맛’ 제품을 시식할 예정이다. 임원들이 좋은 평가를 내리면 수출로 이어질 수도 있다. 이렇게 되면 익산 고구마, 창녕 마늘이 맥도날드라는 버거 플랫폼을 이용해 해외로 수출되는 것과 똑같은 효과를 내게 된다.” ―한국맥도날드의 수익도 늘어났나.“구체적인 수치를 말할 순 없지만 ‘한국의 맛’ 버거가 잘 팔리는 것은 분명하다. 과거에는 전체 판매량에서 신제품이 차지하는 비중이 10% 내외였다. 그런데 ‘한국의 맛’ 버거는 두 배인 20% 정도다. 매출이나 수익도 중요하지만 우리가 주목하는 건 한국맥도날드 직원들의 자부심과 성취감이 과거보다 훨씬 높아졌다는 점이다. 회사 분위기가 예전보다 더 좋아졌다.” ―직원들의 변화를 구체적으로 설명해 달라.“일하는 보람을 더 크게 느끼는 것이다. 우리가 열심히 일할수록 한국 농촌이 잘살게 되고, 지역 소멸도 막을 수 있으니 뿌듯해지는 것이다. 한국맥도날드는 글로벌 기업이지만 직원들은 한국 기업이라는 생각으로 일하고 있다. 대표인 나부터도 한국 사회에 더 많은 기여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한국맥도날드는 올해 초 산불 피해 지역과 여름 집중호우 피해 지역에 자원봉사자, 군 장병, 이재민 등을 위해 ‘행복의버거’와 ‘맥카페’를 지원했다. 다른 경쟁사들은 이런 활동을 적극적으로 하지는 않는다. 대표로서 내 꿈은 한국 국민들의 마음을 얻어 맥도날드를 ‘국민 브랜드로’ 만들고 싶다는 것이다.” ―다른 외국기업과 달리 한국맥도날드는 왜 사회공헌활동을 더 많이 하는가.“물건을 판매해 이윤을 남기는 것은 기업이라면 다 하는 일이다. 그런데 여기서 멈추지 않고 우리가 속한 사회의 발전에도 기여할 수 있다면 더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맥도날드는 글로벌 전체에서 브랜드 목표로 ‘고객에게 기분 좋은 순간(Feel Good Moment)을 제공하는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기본적으로 훌륭한 먹거리를 통해 기분 좋은 순간을 제공하는 것이지만, 한국맥도날드가 가진 브랜드 이미지 자체만으로도 고객을 기분 좋게 할 수 있다면 금상첨화다.” ―한국맥도날드의 다른 사회공헌활동도 소개해 달라.“한국맥도날드는 어린이 환자 가족들이 병원 옆에서 지내며 아이를 돌볼 수 있도록 ‘로날드맥도날드하우스(RMHC)’를 확대하고 있다. 또 응원과 격려가 필요한 곳에 ‘행복의 버거’를 보내는 활동을 13년째 꾸준히 이어 가고 있다. 포장재를 친환경 소재로 전환하는 등 탄소발자국을 줄이기 위한 활동, 아시아국가 최초로 시각장애인을 위한 음성 안내 키오스크를 설치하는 활동도 하고 있다. 매년 5월 패밀리 캠페인을 하면서 ‘해피 워크’라는 고객 참여 행사도 한다. 걷는 만큼 기부로 이어지는 행사다.” ―채용 규모도 상당히 큰 것으로 알고 있다.“기업의 채용은 그 자체로 일종의 사회공헌이다. 일자리가 가장 좋은 복지인 셈이다. 한국맥도날드는 전체 400여 개 매장 가운데 80%가 직영으로 운영된다. 직원만 1만8000여 명이다. 한국에 들어와 있는 외국 외식 브랜드 가운데 가장 큰 규모일 것이다. 한국맥도날드는 대졸 신규 직원뿐만 아니라 시니어, 경력 전환 여성,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 채용도 꾸준히 이어오고 있다.” ―앞으로 ‘한국의 맛’을 통해서 더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다면….“한국에 이렇게 훌륭한 특산품이 많다는 사실을 전 세계에 알리는 데 기여하고 싶다. 맥도날드는 100여 개국에 진출해 있고 매장 수가 4만2000개가 넘는다. 그만큼 기회가 충분히 있다. 지금 ‘한국의 맛’ 프로젝트를 10년 이상 이어갈 수 있다면 이 프로젝트를 거쳐 간 지역들로 일종의 ‘맥도날드 특산품 지도’가 탄생할 수 있을것 같다. 이러한 꾸준한 움직임이 농가의 활력과 지역의 발전, 더좋은 메뉴 개발로 인한 소비자들의 만족으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 수 있기를 희망한다.”김기원 한국맥도날드 대표(51)△1974년 서울 출생△1993년 미국 조지타운대 수학과△2000∼2010년 피앤지 마케팅 부장△2011∼2013년 SBS 미디어 홀딩스 차장△2013∼2020년 코카콜라 마케팅 이사△2020∼2022년 한국맥도날드 마케팅 상무△2022년 5월∼현재 한국맥도날드 대표 이사김기용 산업2부장 kky@donga.com}

    • 2025-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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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김기용]‘케데헌’ 열풍이 남긴 씁쓸한 현실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Kpop Demon Hunters·케데헌)’ 열풍이 식지 않고 있다. 케데헌 누적 시청 수는 2억3600만 회로 지금까지 넷플릭스 영화 가운데 가장 많이 본 영화 1위에 올랐다. 수록곡 ‘골든(Golden)’은 미국 빌보드 메인 싱글차트 ‘핫100’에서 1위를 차지했다. 국내외 유명 가수들은 잇따라 골든을 부르는 동영상을 소셜미디어(SNS)에 올리고 있다. 누리꾼들은 세계에서 골든을 가장 잘 부르는 사람을 뽑자며 ‘천하제일 골든 대회’를 열고 있을 정도다. 케데헌의 인기로 K팝뿐만 아니라 케데헌에 등장한 갓, 김밥, 라면, 남산타워, 낙산공원 성곽길 등도 덩달아 인기를 끌고 있다. 낙산공원 주변 상인들은 “외국인 관광객이 체감상 10배는 증가한 것 같다”고 말했다. 美 넷플릭스 케데헌 지식재산권 보유 외국인들이 한국에 많은 관심을 보이는 것은 고무적인 일이다. 하지만 케데헌으로 많은 수익을 가져가는 것은 한국이 아닌 미국 기업 넷플릭스다. 케데헌의 모든 지식재산권(IP)을 넷플릭스가 갖고 있기 때문이다. 케데헌이 만들어내는 IP 가치는 현재 10억 달러(약 1조3900억 원) 정도로 추산된다. 케데헌 같은 콘텐츠를 ‘슈퍼 IP’라고 부른다. 하나의 강력한 원천 콘텐츠가 영화, 드라마, 게임, 애니메이션, 상품(굿즈) 등 다양한 형태로 확장돼 지속적인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것이다. 슈퍼 IP는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나 ‘포켓몬’처럼 거대한 세계관을 만들고 캐릭터를 중심으로 팬덤이 구성되기도 한다. 여러 산업에 걸쳐 활용될 수 있고, 시간이 지날수록 가치는 증가한다. 최근 대한상공회의소가 ‘글로벌 슈퍼 IP 50’을 조사한 결과 미키마우스, 트랜스포머, 배트맨 등 32개를 보유한 미국이 가장 많았다. 지난해 미국은 슈퍼 IP를 통해 약 338조 원을 벌어들였다. 한국 국내총생산(GDP)의 13%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일본은 포켓몬, 헬로키티 등 7개, 중국도 ‘양과 회색늑대’라는 슈퍼 IP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한국은 하나도 없었다. ‘제2의 케데헌’은 한국의 것으로케데헌의 인기와 별개로 현재 한국 콘텐츠 산업은 극심한 위기에 직면해 있다. 업계에 따르면 K드라마 제작 편수는 2019년 120여 편에서 2023년 70여 편으로 약 40% 감소했다. 반면 같은 기간 평균 제작비는 4배 이상 증가했다. 넷플릭스 같은 거대 자본을 앞세운 글로벌 제작사들이 제작비를 밀어 올리면서 양질의 콘텐츠 시장을 독점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올해 초 많은 국민을 웃고 울린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의 경우 국내 한 제작사가 제작비로 300억 원 정도를 제시했다고 한다. 하지만 넷플릭스는 2배 많은 600억 원을 제시하면서 한국 제작사를 제치고 IP를 가져갔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면서 K콘텐츠가 세계적으로 주목받는데도 불구하고 한국은 오히려 ‘IP 빈곤국’이 되는 아이로니컬한 상황이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케데헌의 성공 근간에는 한국 기업들이 30년 동안 힘들게 쌓아온 K컬처가 있다. 최근 영화, 음악, 뷰티, 푸드 등에서는 이런 K컬처를 양분 삼아 좋은 성과를 내고 있다. 하지만 여기서 만족할 일이 아니다. 이제 케데헌 같은 슈퍼 IP를 우리가 직접 만들기 위해 노력할 필요가 있다. 자본력이 부족한 한국 제작사를 위해 ‘IP 주권 펀드’를 조성해 제작사를 지원하고 IP를 공유하는 방안도 검토할 만하다. 또 IP 수출 시 발생하는 비용을 정부가 지원하는 정책도 필요해 보인다. 30년 내공의 K컬처 토대 위에 탄생할 ‘제2의 케데헌’마저 다른 나라에 내어 줄 수는 없지 않은가.김기용 산업2부장 kky@donga.com}

    • 2025-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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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김기용]일터 사망사고 이번엔 근본까지 살펴보자

    식품회사 SPC와 건설회사 포스코이앤씨에서 발생한 잇단 노동자 사망 사고에 대해 이재명 대통령이 보인 강한 개선 의지는 공감할 만하다. SPC에서는 최근 3년 동안 3명, 포스코이앤씨에서는 올해만 4명이 사망했다. 지난달 SPC 공장을 직접 찾은 이 대통령이 “한 달 월급 300만 원 받는 노동자라고 해서 그 목숨값이 300만 원은 아니다”라고 말한 부분은 적잖은 울림도 있었다. 대통령이 관심을 보이자 SPC는 강력한 개선책을 내놨다. 사후약방문이지만 그래도 진일보한 모습이었다.사망사고 낸 기업에 ‘면허 취소’ 경고 며칠 뒤 사망 사고가 발생한 포스코이앤씨를 대하는 이 대통령의 언사는 사뭇 달라져 있었다. 이 대통령은 “심하게 얘기하면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며 “해당 기업의 주가가 폭락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엿새 뒤 다시 사고가 발생하자 이 대통령은 “건설 면허 취소, 공공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으라”고 서슬 퍼런 지시를 내렸다. 건설 면허 취소는 최고 수위의 징계로 1994년 성수대교 붕괴로 32명의 사망자를 낸 동아건설산업이 유일하다. 같은 사업장에서 연달아 사고가 발생하는 것에 대한 대통령의 분노가 이해된다. 대통령이 화를 내야 기업들이 적극적으로 대책을 내놓을 것이라는 주장도 일리는 있다. 하지만 우리가 늘 대통령만 바라볼 수는 없다. 또 건설 면허를 취소해 버리는 ‘사이다식 제재’가 근본 해결책인지도 더 따져 봐야 한다. 기업을 본보기로 처벌하겠다는 식의 접근도 위험해 보인다. 포스코그룹의 자회사인 포스코이앤씨는 국내 건설 순위 7위 대기업으로 지난해 매출 9조4687억 원을 기록했다. 직접 고용 직원 6000여 명, 도급·파견 등 간접 고용까지 합하면 2만4000여 명에 달한다. 가족까지 고려하면 최소 4만∼5만 명의 생계가 걸려 있다. 이 회사는 2022년에는 사망 사고가 없었고 2023년에는 1명뿐이었다. 포스코이앤씨보다 순위가 높은 A기업은 2022년 5명, 2024년 3명, 올해는 지금까지 3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역시 규모가 더 큰 B기업은 지난해에만 7명이 사망했다. 통계 산출 기간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사망자가 발생했다고 면허를 취소하면 10대 건설사 중 면허를 유지할 수 있는 곳은 없다.기업이 해결 못하는 근본 문제도 있어 사망 사고를 낸 기업을 두둔하자는 얘기가 아니다. 건설산업은 규모가 클뿐더러 원청과 하청, 노사 문제, 정부의 인허가 문제 등이 다층적으로 복잡하게 얽혀 있다. 1차원적 처벌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사망 사고를 줄이려면 근본적인 문제 해결에 정부와 기업이 함께 나서야 한다. 우선 사고를 낸 건설사 공개가 필요해 보인다. 국토교통부는 2023년 3분기까지 기업별로 사고 현황을 공개했다. 하지만 법적 근거 미비로 중단했다. 이후 지금까지 미적거리면서 시장에 ‘안전은 후순위’라는 잘못된 시그널을 보낸 측면이 있다. 공기(공사기한)를 연장시키는 사회·정치적 요인을 해결하는 데 정부가 나설 필요도 있다. 대규모 공사 현장에서 크레인 비율을 놓고 노조 간 세력 다툼으로 공사가 중단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레미콘 노조가 운송을 거부하면서 공사가 멈춘 사례도 있다. 기업들은 사태가 더 커질 것을 우려해 감히 나서지도 못한다. 이렇게 늘어난 공기를 맞추려 공사를 강행하면 사고 확률이 더 높아진다. 현장 근로자가 고령화하고 외국인 근로자가 증가하는 것도 안전에 위협이 되는 요인이다. 이런 사안들은 모두 정부의 도움 없이는 해결하기 어렵다. 정부가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하는 이유다. 사고를 낸 기업을 제재하는 1차원적 압박과 근본 문제까지 해소하려는 고차원적 대응이 동시에 이뤄질 때 건설현장에서 안전한 일터를 만들 수 있다.김기용 산업2부장 kky@donga.com}

    • 2025-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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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김기용]‘안전 상비약’ 약국 외 판매 늘려야

    편의점에서 약을 구매해 본 경험이 있다면 “왜 약이 이것밖에 없을까”라고 느꼈을 수 있다. 현재 한국 편의점에서 살 수 있는 약은 11개뿐이다. 처음엔 13개였는데 2022년 2개가 생산 중단되면서 줄어들었다. 편의점 구매 가능 약품은 ‘안전상비의약품’으로 불리며 제조사와 브랜드, 용량까지 정해져 있다. △소화제는 대웅제약의 베아제정(3정) △해열진통제는 삼일제약의 어린이부루펜시럽(80mL) △감기약은 동아제약의 판피린티정(3정) △파스는 신신제약의 신신파스아렉스(4매) 등이다. 만약 편의점에서 신신제약의 다른 파스인 ‘플렉스’를 달라고 요청한다면 받을 수 없다. 편의점에서 판매하는 신신제약의 파스는 4매가 들어있는 신신파스아렉스뿐이기 때문이다. 파스에 무슨 큰 차이가 있길래, 이 파스는 되고 저 파스는 안 되는지 모를 일이다. 美 30만 개, 英 1500개 非약국서 판매 편의점 의약품 판매 제도는 2012년에 도입됐다. 주변에 약국이 없거나 약국이 쉬는 심야 시간대와 공휴일에도 의약품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였다. 다만 의약품 오남용에 따른 국민 건강 저해를 막기 위해 엄격한 법률적 제한 장치를 뒀다. 약사법에 안전상비의약품을 20개 품목 이내에서 지정하도록 한 것이다. 상황이 변하면 안전상비의약품 지정심의위원회를 열어 품목 확대 등을 논의할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제도 도입 15년이 되도록 품목 확대는 한 번도 이뤄지지 않았다. 심지어 위원회는 2018년 이후 7년째 열리지 않고 있다. 연도별로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한국에서는 1년에 2000개 내외의 새 의약품이 허가 또는 신고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15년이면 3만 개 정도의 의약품이 새로 나왔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도 편의점에서 판매하는 의약품은 단 1개도 추가되지 않았다. 쉽게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다. 한국과 달리 미국에서는 30만 개, 영국은 1500개, 일본은 930개 이상의 의약품이 약국이 아닌 곳에서 판매된다. 안전성만 확인되면 약국 외 판매가 가능하도록 적극적으로 확대하고 있는 것이다. 국내 약사단체는 편의점 의약품 판매가 확대되면 오남용으로 국민 건강에 심각한 영향을 줄 수 있다며 편의점 의약품 확대를 강력히 반대하고 있다. 약사단체의 주장대로라면 미국, 영국, 일본은 정부가 국민들의 의약품 오남용을 조장하면서 국민 건강을 방치하고 있다는 해석도 가능하다.안전상비의약품 품목 확대 불가피 한국편의점산업협회 조사에 따르면 편의점 전체 매출 가운데 의약품 매출 비중이 가장 높은 시간대는 밤 9시부터 새벽 1시다. 약국이 문을 닫았을 때 편의점에서 약을 많이 산다는 얘기다. 이 조사만으로도 아픈 사람들의 다급한 심정이나 고통이 느껴진다. 이런 사람들의 수는 계속 증가하고 있으며 편의점의 의약품 매출은 2015년 503억 원 수준에서 2023년에는 832억 원까지 올랐다. 이제 안전상비의약품 품목 확대를 막을 수 없어 보인다. 지사제, 제산제, 화상연고, 알레르기약 등 안전성이 검증된 약품은 과감하게 허용할 필요가 있다. 편의점에서 의약품을 판매한 지 15년이 지났지만 지금까지 오남용으로 인한 부작용 사례가 보고된 것이 없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물론 약사단체가 주장하는 오남용 문제는 반드시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이번 기회에 품목 확대를 넘어 완전한 패러다임 전환도 고민할 필요가 있다. 편의점에서 절대 판매하면 안 되는 약품만 정한 뒤 나머지는 모두 허용하는 네거티브 규제 방식이다. 미국, 일본, 영국 등은 이미 이 원칙에 따라 편의점 등에서 다수의 상비약을 판매하고 있다. 이 국가들에서의 ‘경험적 증거’는 상비약의 약국 외 판매가 심각한 공중보건 위기로 이어지지 않았음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도 충분히 그렇게 할 수 있다.김기용 산업2부장 kky@donga.com}

    • 2025-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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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김기용]권력의 규제 본능 눌러야 경제가 산다

    24일 국무회의에서 나온 이재명 대통령의 ‘파초선’ 얘기는 구구절절 옳다. 이 대통령은 권력을 손오공의 파초선에 비유했다. 파초선을 한 번 부치면 천둥 번개가 치고, 두 번 부치면 태풍이 부는 것처럼 권력도 작은 움직임만으로 세상에 격변을 일으킨다고 말했다. 공직자들이 권력을 신중히 사용해야 한다는 경고를 옛이야기에 담아 내놓은 것이다. 이 대통령의 말에서 ‘권력’을 ‘규제’로 바꾸면 의미가 좀 더 뚜렷해진다. 통상적으로 공직자들의 권력 사용은 규제를 통해 이뤄지기 때문이다. 규제 연구로 유명한 미국 경제학자 고든 털럭 교수는 “공직자들은 자신의 권력을 확장하고 재량권을 늘리며 자신들이 통제하는 영역을 확대하려는 경향이 있다”며 “이런 관료적 본능의 결과물이 규제”라고 분석하기도 했다. 규제는 권력의 본능인 셈이다. 규제는 권한 확대 원하는 권력의 본능 입법·사법 권력이 행정 권력을 견제해야 한다는 삼권분립 측면에서 공직자의 규제 본능을 제어하는 것은 정치인의 몫이어야 할 것 같다. ‘공공의 이익’이라는 선의의 목표를 가진 정치인들이 앞장서 합의와 타협을 이뤄내면 규제가 강화될 여지가 줄어들게 된다. 심지어 바위처럼 단단해 보이는 ‘암반 규제’도 깰 수 있다. 하지만 극단적 진영논리에 빠진 한국 정치인들은 오히려 공직자들의 규제 본능을 부추기는 듯한 모습이다. 지지층의 표를 얻기 위해 공공의 이익을 버리고 반대 집단을 규제로 옭아매는 형국이다. 특정 지지층은 표를 앞세워 정치인을 장악하고, 이런 정치인들이 공직자의 규제 본능을 자극해 규제를 강화하고 있는 것이다.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미국 시카고대의 조지 스티글러 교수는 이런 상황을 ‘규제 포획(regulatory capture)’이라고 설명했다. 월 2회 휴업을 강제하고 있는 대형마트 규제는 논란이 많다. 일부에서는 대표적인 규제 포획 사례로 꼽기도 한다. 전통시장 보호를 위해 도입됐지만 시행 13년이 지나도록 별다른 효과를 내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4월 한국경제연구원이 분석한 결과 2022년 주말 대형마트 의무휴업일에 전통시장 평균 식료품 구매액은 610만 원으로 대형마트가 영업한 일요일(630만 원)보다 오히려 낮게 나타났다. 게다가 최근 유통 시장은 대형마트와 전통시장의 경쟁이 아니라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경쟁으로 이미 변모했다. 대형마트를 규제한다고 전통시장이 살아나는 게 아니라는 얘기다. 상황이 이런데도 지지층의 표를 노린 정치인과 권한 확대를 원하는 공직자들의 본능이 맞아떨어지면서 규제는 요지부동이다. K뷰티는 규제 개혁의 산물 나쁜 규제가 사라지면 산업이 살아난다. 2012년까지 한국에서는 화장품 제조와 판매를 동일 기업이 해야 했다. 또 정해진 원료만 사용하도록 하는 ‘포지티브 리스트’ 규제도 있었다. 하지만 법 개정을 통해 제조와 판매를 분리했고, 금지 원료만 명시하고 나머지는 모두 허용하는 ‘네거티브 리스트’ 방식으로 개선도 이뤄졌다. 이후 한국콜마, 코스맥스 같은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기업이 성장했다. 이들과 함께 에이피알, 아누아, 조선미녀, 티르티르, 브이티 등 중소 브랜드들이 세계에서 주목받게 됐다. 규제 개혁의 순간이 K뷰티의 탄생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재 많은 기업들이 심각한 경기침체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 어느 때보다 심각한 위기라고 한다. 정부의 현금 지원만으로는 이 난관을 극복할 수 없다. 기업들이 자신의 능력을 펼 수 있도록 규제를 없애주는 것이 필요하다. 공직자들이 손에 쥔 파초선을 휘두르려는 본능을 억제할 수 있을 때 경제가 살아나고 산업이 커진다. 스스로 그 본능을 제어하긴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 어느 때보다 대통령과 정치인들의 역할이 중요한 이유다.김기용 산업2부장 kky@donga.com}

    • 2025-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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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데스크가 만난 사람]“규제개혁 요청하니 ‘장기검토과제’로 지정… 이러다 ‘암반 규제’ 된다”

    《10일 김민석 국무총리 후보자는 후보 지명 후 첫 기자간담회에서 규제 개혁을 언급했다. 김 후보자는 “규제 개혁은 매우 중요하다”며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대통령의 어젠다 세팅이 마무리되면 곧바로 규제 개혁을 다룰 것”이라고 말했다. 규제 개혁에 대한 강한 의지를 밝힌 것이다. 하지만 역대 어느 정부를 막론하고 규제 개혁을 외치지 않은 경우는 없었다. 그만큼 어렵다는 얘기다. 소상공인과 중소·중견기업인들로부터 규제 개혁 건의를 청취하는 최승재 중소기업 옴부즈만(58)은 “기관장끼리 없애기로 합의한 규제가 시간 끌기로 버티다 살아난 경우도 봤다”며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꺼진 규제’도 다시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규제를 없애기 어려운 이유가 무엇인가.“정부 부처와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 등이 적극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공무원들이 나서질 않는다는 얘기다. 규제 하나를 없애려면 해당 규제에 관련된 모든 이해 관계자를 설득해야 한다. 매우 귀찮고 어렵다. 그동안 해 오던 대로만 하면 공무원에게 불이익이 없는데 어떤 공무원이 나서겠나. 규제를 없애려면 규제를 움켜쥔 공무원들이 움직여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대통령이나 국무총리가 관심을 갖고 계속 독려하는 게 중요하다. 규제 개혁에 과감한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때로는 채찍도 들어야 한다.” ―‘귀찮고 어렵다’는 것만으로는 설명이 부족해 보인다.“규제에는 두 가지 뜻이 있다. 첫째는 뭔가를 보호하고 더 잘하게 하려는 긍정적 의미의 ‘제도’다. 둘째는 뭔가를 못 하게 하고 발전을 가로막는 ‘협의의 규제’다. 규제가 처음 만들어질 때는 긍정적인 제도에 방점이 찍힌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환경과 조건이 바뀌면 협의의 규제로 변질된다. 이건 필연이다. 공무원들이 규제를 세밀하게 관찰해야 하는 이유다. 그런데 상황이 바뀌었는데도 관성에 따라 제도의 측면에서만 규제를 바라본다면 개혁은 불가능하다.” ―‘꺼진 규제도 다시 보자’는 말은 무슨 뜻인가.“얼마 전 중소기업 옴부즈만을 통해 접수된 규제 개혁 건의를 해당 공공기관에 전달했다. 문제점을 인식한 기관장이 개선을 약속했다. 그런데 6개월 후에 현장을 확인해 보니 규제가 그대로 남아 있더라. 담당자는 규제를 없앨 시기를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전형적인 시간 끌기다. 이러다가 기관장이 바뀌면 없었던 일이 될 수 있다. 해결했다고 생각한 규제가 다시 살아나는 순간이다.” ―규제를 없애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현장이라고 생각한다. 규제의 시작과 끝을 모두 현장에서 확인해야 한다. 특히 규제를 없애거나 개선한 뒤에도 현장에 잘 적용되고 있는지를 반드시 살펴야 한다. A라는 규제를 없앴지만 현장에서는 여전히 A1, A2의 형태로 남아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규제 개혁이 아니라 오히려 ‘규제 개악’이 된다. 개선을 다시 요청해도 해당 공무원들은 이미 개선했다는 이유로 또 들여다보지는 않기 때문이다.” ―규제 신고를 받고 처리하는 과정에서 어려움이 있다면….“소상공인과 중소·중견기업인들로부터 규제 개혁 신고를 접수하면 중소기업 옴부즈만이 1차로 검토한 뒤 해당 부처에 보내고 답신을 받고 있다. 그런데 요즘 부쩍 담당 공무원들의 답변 가운데 ‘앞으로 시간을 두고 검토하겠다’는 내용이 많다. 이른바 ‘장기 검토 과제’로 선정하겠다는 것이다. 규제를 없애야 하는 우리에게는 장기 검토 과제가 가장 무서운 말이다. 차라리 ‘개선 불가’라고 답변이 오면 그 논리를 깨기 위해 토론이라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시간을 두고 검토하겠다’는 답변에는 더 이상 할 말이 없다. 담당 공무원들과 원활한 관계가 필수이기 때문에 ‘빨리 처리하라’고 압박하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중소기업 옴부즈만을 통해 얼마나 해결되나.“지난해 접수된 규제 개혁 신고 건수는 5093건이다. 이 가운데 2183건에 대해 해당 기관으로부터 개선을 검토하겠다는 답변을 받았다. 중소기업 옴부즈만의 규제 개혁 노하우가 쌓이면서 개선 건수도 계속 올라가고 있다. 지난해 8월부터 지금까지 총 70회의 현장 간담회를 가졌다. 일주일에 평균 2, 3일은 전국 곳곳을 돌아다닌다.” ―기억에 남는 규제 개선 사례가 있나.“얼마 전까지 노래연습장에서 손님이 주류를 몰래 반입한 경우에도 업주가 처벌을 받아야 했다. 실제 현장에서 손님이 가방이나 옷 속에 주류를 숨겨 들어오는 것을 업주나 직원이 사전에 확인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 경우 업주가 억울하게 처벌받지 않도록 예외 조항이 마련됐다.” ―다양한 애로 사항도 해결한다고 들었다.“한국에 들어오는 외국인이 많아지면서 이들이 한국 정부와 공공기관의 공고, 안내, 신청서 등을 이메일로 받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외국인이 읽는 문서인데도 한국에서만 사용하는 ‘¤글(hwp) 파일’로만 제공하는 경우가 많았다. 외국인은 파일을 열어보는 것조차 어렵게 된다. 행정 편의적 관행이었다. 외국인들로부터 이 애로사항을 접수한 뒤 ¤글 파일 외에 다른 범용 파일 형식도 병행 제공해야 한다고 권고해 결국 개선됐다.” ―지금 처리 중인 규제를 소개한다면….“지난달에 전남 목포 김 양식장을 갔다. 김은 ‘검은 반도체’라 불릴 정도로 산업 전체가 성장하고 있다. 반면 숙련된 인력 수급은 너무 어려운 상황이다. 과거 소규모 산업일 때는 ‘노동의 질’이 문제 되지 않았지만 지금은 거대한 기계와 때로는 첨단 장비까지도 다룰 줄 알아야 하는 상황이 됐다. 그런데 정부 정책상 비전문직 외국인 노동자들은 3년만 체류할 수 있다. 일을 깨칠 만하면 돌아가야 하는 것이다. 김 산업은 더 이상 농촌으로 시집온 외국인 며느리에게만 의존할 수는 없는 상황이 됐다. 조선업이나 건설업 등 거대 산업군 말고 김 산업에도 이런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리면서 정부의 여러 부처와 함께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림자 규제’, ‘암반 규제’란 말도 있다.“법률에 근거가 없는데도 지방정부의 조례나 규칙 등에 숨어 잘 드러나지 않는 규제를 ‘그림자 규제’라고 한다. 그림자 규제는 그대로 세월이 지나면 더욱 견고해져 바위 같은 ‘암반 규제’가 된다. 이런 규제를 풀기 위해서는 지방 공무원들이 규제에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 중앙정부에서 규제를 풀었는데도 지방에서 모르고 있는 경우도 있다. 모텔 등 숙박업소를 도로에서 50m 떨어져 영업하도록 한 것이 대표적이다. 중앙정부가 이 규정을 완화해 지자체에서 조례로 정할 수 있도록 했다. 이에 따라 J시는 곧바로 관련 규제를 없앴는데, 바로 옆 I시는 이 사실을 몰랐고 최근까지 이 규제가 남아 있었다.” ―지금 당장 규제 개혁이 시급한 분야는….“인공지능(AI)과 신재생에너지 관련 분야다. 이 분야의 기술은 빠르게 진화하고 있지만 법과 제도는 여전히 과거 산업 중심에 머물러 있다. 이런 상황은 기반이 튼튼한 대기업보다 ‘체력’이 약한 중소기업과 스타트업에 치명적일 수 있다. 예를 들어 최근 주목받고 있는 파도를 활용한 파력 발전은 신재생에너지 공급 인증에서도 제외돼 있는 상태다.” ―새 정부도 규제 개혁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규제 개혁에 뾰족한 수는 없다. 일단 집권 초기 강력한 리더십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 대통령이나 국무총리가 관심을 가지면 일정 부분까지는 좋아질 수 있다. 이런 성공 경험이 누적되면 시스템이 만들어지고 일선 공무원들도 시스템에 따라 움직일 수 있게 된다. 이렇게 되면 규제 개혁이 일상적으로 진행될 수 있다.” ―규제 개혁 시스템을 갖추기 위해 첫 번째로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모든 국민이 ‘이것이 규제다’라고 얘기할 수 있는 확실한 통로를 만들어야 한다. 중소기업 옴부즈만도 그중 하나다. 숨은 규제를 찾아내 공론화시킬 수 있는 것만으로도 규제 개혁의 절반은 성공한 셈이다.” ―새 정부에 바라는 바가 있다면….“정부 전체가 나서서 해결해야 할 큰 전봇대 같은 규제들도 있지만 일상생활에서 더 아픈 규제는 ‘손톱 밑 가시’다. 이런 규제를 해소하려면 대통령이 임기 내내 규제 개혁에 대한 의지를 가져야 한다. 집권 초기 ‘태산명동서일필(泰山鳴動鼠一匹·태산이 떠날 듯이 요동하게 하더니 뛰어나온 것은 쥐 한 마리뿐)’로 끝나서는 안 된다.”중소기업 옴부즈만옴부즈만은 행정기관에 제기된 민원을 조사하고 해결하는 ‘대리인’을 뜻하는 스웨덴어에서 유래한 명칭이다. 중소기업 옴부즈만은 중소·중견기업과 소상공인을 대상으로 현장 중심의 규제 개선과 애로 해소 업무를 전담한다. 중소벤처기업부 소속이지만 독립적으로 업무를 수행하며 차관급 대우를 받는다. 임기는 3년이며 한 차례 연임할 수 있다.최승재 중소기업 옴부즈만(58)△1967년 출생△2011∼2015년 중소기업중앙회 이사△2014∼2020년 소상공인연합회 회장△2015∼2016년 최저임금위원회 위원△2015∼2017년 중소상공인희망재단 이사장△2015∼2019년 동반성장위원회 위원△2020~2024년 제21대 국회의원△2020~2022년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위원△2020~2023년 국민의힘 소상공인위원장△2022~2024년 국회 정무위원회, 여성가족위원회 위원김기용 산업2부장 kky@donga.com김다연 기자 damong@donga.com}

    • 2025-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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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김기용]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한강

    서울 시민의 절반가량은 한강을 서울의 랜드마크라고 생각한다. 서울시가 만 15세 이상 서울 시민 5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2024 서울서베이’에 따르면 응답자의 50.1%가 서울의 랜드마크로 한강을 꼽았다. 특히 20대(62%)와 30대(54.7%)가 뚜렷하게 높았다. 전문가들은 자전거, 달리기, 공원 데이트, 가족 나들이 등 젊은층이 상대적으로 더 많이 한강을 즐긴 경험의 차이에서 나온 결과라고 분석한다. 한강에 대한 긍정 경험이 많을수록 한강을 서울의 랜드마크라고 생각할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한강 접근성 매우 떨어져반대로 한강을 서울의 랜드마크라고 생각하지 않는 나머지 절반은 ‘한강 경험’이 부족했다는 의미다. 한강을 쉽게 갈 수 있어야 한강 경험이 늘어날 텐데 아쉽게도 한강 접근성은 매우 떨어진다. 한강변 북쪽은 강변북로가, 남쪽은 올림픽대로가 가로막고 있어서다. 왕복 8차로, 폭 40m짜리 거대 도로를 가로질러 한강에 갈 수는 없다. 강변북로와 올림픽대로 지하로 뚫어 놓은 나들목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나들목은 ‘토끼굴’이라는 별칭으로도 불린다. 통로가 어둡고 좁으며 굴처럼 생겼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서울시는 시민들의 한강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나들목을 62개까지 늘리고 환경도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아무리 많은 나들목을 만든다 한들 ‘땅굴’을 통해 한강에 가야만 하는 근본적 불편함을 해소할 수는 없어 보인다.이런 상황에서 올림픽대로 위 ‘덮개 공원’ 아이디어가 주목받고 있다. 한강변에 접해 있는 아파트를 재건축할 때 올림픽대로에 덮개를 씌워 공원으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덮개 위는 공원으로 조성되고, 이곳을 통해 한강에 쉽게 접근할 수 있게 된다. 아파트 재건축 계획 심의 권한을 가지고 있는 서울시는 적극 찬성하고 있다. 하지만 한강 주변 건축물을 제한할 수 있는 환경부 한강유역환경청은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한강유역환경청은 홍수 방어 기능 약화, 환경 파괴, 안전성 확보 미흡 등의 이유를 대고 있다. 특히 공공성 부족도 강하게 지적하고 있다. 특정 재건축 아파트 단지에 특혜를 주게 될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이 아파트들이 재건축 이후 외부 사람들의 통행을 막아버리면 기껏 조성해 놓은 덮개 공원은 ‘그들만의 앞마당’이 될 수 있다는 우려다.경험하고 즐길 수 있는 한강 돼야한강유역환경청의 우려도 일리가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반대만 고집할 일은 아니다. 전문가들은 덮개 공원을 통해 한강의 환경을 보호하고 동시에 일반 시민들의 접근성을 높이는 방안이 충분히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덮개 공원을 모두 공공개방구역으로 설정하고 이를 위반할 경우 큰 금액의 과태료를 부과하는 방법도 제시되고 있다.이번 기회에 덮개 공원을 넘어 올림픽대로와 강변북로를 지하화하는 방안도 적극 검토해 볼 만하다. 올림픽대로 길이는 약 42km이며 폭은 40m다. 올림픽대로 면적을 단순 계산하면 약 1.68km², 축구장 224개를 만들 수 있는 공간이다.한강변에 이 정도 규모의 땅이 만들어진다면 서울은 완전히 새로운 모습으로 탈바꿈할 수 있다. 각종 체육시설과 다양한 박물관, 도서관 등이 즐비하고 세련된 카페와 음식점들이 늘어선 한강변을 즐길 수 있다. 한강 접근성이 좋아지면 현재 유명무실한 수상 택시, 수상 버스 등을 통한 교통 분산 효과도 노릴 수 있다. 서울시에서 한강본부장을 지낸 인사에 따르면 이미 기술적 검토는 충분히 이뤄졌다고 한다. 오세훈 서울시장도 2023년 ‘그레이트 한강 프로젝트’를 추진하며 “더 이상 한강을 ‘보는 강’으로 둘 수 없고 ‘경험하고 즐기는 강’으로 만들겠다”고 말한 바 있다. 특혜 우려에 막혀 규제와 반대만 하기엔 한강이 너무 아깝다.김기용 산업2부장 kky@donga.com}

    • 2025-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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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김기용]지도를 달라는 구글의 요구가 마뜩잖은 이유

    미국 초거대기업 구글이 한국 정부에 고정밀 지도를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2007년, 2016년에 이어 세 번째다. 실제 거리 5000㎝(50m)를 지도에 1㎝로 표시하는 1:5000 지도를 해외로 가져가겠다는 것이다. 고정밀 지도는 국가 중요 자원이기 때문에 해외로 반출하려면 정부 허가가 필요하다. 국토교통부·과학기술정보통신부·외교부·통일부·국방부·행정안전부·산업통상자원부·국가정보원 등 8개 부처가 참여하는 협의체에서 만장일치로 결정해야 한다. 협의체는 ‘국가 안보’를 이유로 과거 두 차례 구글의 요구를 모두 거부했다. 14일 열린 회의에서는 최종 결정을 8월로 연기했다.美정부 등에 업은 구글의 지도 반출 요구 협의체가 구글의 요구를 ‘거부’하지 못하고 ‘연기’를 결정한 것은 상황이 복잡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금까지 구글은 지도상에 중요 보안시설을 가림(블러) 처리하라는 한국 정부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이를 수용하면서 한발 물러섰다. ‘국가 안보’ 문제를 희석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여기에 미국 정부도 가세했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3월 한국의 지도 반출 제한을 대표적인 ‘비관세 장벽’으로 지적하면서 이 사안을 ‘국가 안보’가 아닌 ‘통상·외교’ 문제로 치환시켰다. 이 과정에서 국내 일부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국가 안보’를 내세운 정부의 거부 논리가 조선 말기 ‘쇄국 정책’과 비슷하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복잡해 보이지만 사실 구글이 한국에 데이터센터를 건설하면 문제는 바로 해결된다. 고정밀 지도를 국내에 있는 데이터센터에 보관하면서 사용하는 건 제약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구글은 특정 국가 데이터를 특정 국가 데이터센터에만 보관하긴 어렵다는 이유로 데이터센터를 한국에 건설하지 않고 있다. 여기에는 그들이 얘기하지 않는 불편한 진실도 있다. 세금 문제다. 한국에 있는 구글코리아는 매출과 납세가 불투명한 측면이 있다. 2023년 10월 한국재무관리학회 보고서에 따르면 구글코리아는 매출 12조 원, 이에 따른 법인세만 5180억 원을 납부해야 하는 것으로 추정됐다. 하지만 실제 신고된 매출액은 3652억 원, 세금 납부액은 172억 원에 불과했다. 구글코리아 설립 이후 20년간 추산되는 매출은 97조∼242조 원, 추정 법인세는 7.7조∼19.3조 원이라는 조사도 있다. “한국에서 번 돈 한국에 세금 내야” 국세청은 한국에서 발생한 매출은 모두 구글코리아의 매출이라는 입장이다. 하지만 구글코리아는 데이터센터가 싱가포르에 있기 때문에 한국에서 발생한 매출이더라도 싱가포르 소재 구글아시아퍼시픽 매출로 잡아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만약 구글이 한국에 데이터센터를 건설하게 되면 자신들의 논리에 따라 막대한 세금을 한국에 내야 하는 것이다. 기업이 돈을 많이 벌고도 이익을 사회에 환원하지 않거나 심지어 국민·국가와 동반 성장할 의지도 없다면 문제가 될 수 있다. 외국 기업도 마찬가지다. ‘현지화’가 중요한 이유다. 그런 사회 환원 활동의 기본이자 최소한이 세금 납부다. 구글 정밀 지도 서비스가 가능해지면 한국을 방문하는 외국 관광객은 편리해질 것이다. 구글도 한국 사업을 성장시킬 수 있다. 하지만 막대한 예산을 들여 구축한 고정밀 지도를 최소한의 사회 환원도 제대로 하지 않는 기업에 내어 준다는 여론이 커지면 한국 정부도 이를 무시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글로벌 초거대기업 구글이 한국에 세금 172억 원을 내는 동안 네이버와 카카오는 각각 3902억 원, 1590억 원을 냈다. 그 밖에 다른 사회공헌 활동은 비교할 수도 없다. 한국에서 큰돈을 벌고도 한국에 환원할 생각이 없는 기업이라는 인식은 한국 정부가 아니라 구글 스스로 만든 ‘비관세 장벽’이다. 구글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은 안 하면서 남 탓만 해서는 안 된다.김기용 산업2부장 kky@donga.com}

    • 2025-0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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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김기용]잘나가는 K푸드, 지키는 전략도 필요하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사는 박모 씨가 한국에 온 건 10년 만이다. 오랜만에 한국에 와서 하고 싶은 말이 많았을 그가 처음 꺼낸 얘기는 계엄도 탄핵도 아닌 ‘K푸드’였다. 라면·떡볶이·김밥·만두·김치 등 K푸드가 암스테르담을 휩쓸고 있다는 것이다. 네덜란드는 한국에서 비행기로 14시간 거리다. 국토 면적이 남한의 5분의 2, 전체 인구는 1835만 명이며 수도 암스테르담 인구는 92만 명이다. 2021년 기준 네덜란드에 사는 재외동포 수는 9473명에 불과하다. 미국에 있는 재외동포가 263만 명, 중국에 235만 명이 있는 것과 비교하면 매우 적다. 이런 곳에서 신라면, 비비고만두, 종가집김치, 메로나 등의 인기가 절정이라니 놀라울 뿐이다.암스테르담 휩쓸고 있는 K푸드 박 씨가 처음 암스테르담에 정착했을 때는 한국 라면조차 먹기 쉽지 않았다. 라면을 수입 판매하는 곳이 없어서 한국에 다녀온 지인들로부터 얻어먹는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때까지만 해도 한국은 네덜란드의 오랜 식민지였던 인도네시아, 네덜란드인들이 휴양지로 많이 찾는 태국보다도 덜 알려진 아시아 국가였다. 상황이 변한 건 불과 3, 4년 전이었다. 네덜란드 청소년들이 K팝과 K드라마를 즐겨 보기 시작하더니 곧 K푸드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네덜란드 최대 마트 체인점 ‘알버르트 헤인’ 냉장 매대에서 가장 눈에 잘 띄는 곳에 한국 만두와 김치가 있고 한국 라면 매대가 별도로 만들어졌다. 짜장라면, 초코파이, 아이스크림 메로나는 없어서 못 팔 정도이고 암스테르담 도심에 있는 카페테리아의 인기 메뉴가 김치샌드위치라는 게 박 씨가 전한 암스테르담의 K푸드 열기다. 식문화는 그 나라 문화상품 수출의 선봉대 역할을 한다. 서울에 일식당이 들어서고 일본어 간판이 늘어난 것처럼 암스테르담 중심가에도 ‘KOREAN BBQ(코리안 비비큐)’, ‘KOREAN BAR(코리안 바)’ 등으로 K푸드를 알리는 음식점과 한글과 태극기가 등장했다. K푸드 ‘짝퉁’ 위협… 수성전략 마련해야 식문화가 수출되면 동시에 현지화와 세계화가 이뤄진다. 이 과정에서 K푸드 정체성이 훼손되기도 한다. 암스테르담의 K푸드 식당 중에도 중국인 등 아시아인들이 운영하는 식당이 꽤 된다고 한다. 특히 자금력이 막강한 중국인들이 암스테르담 중심가를 장악하면서 한국인들이 운영하는 K푸드 음식점이 외곽으로 밀려나고 있다. 일부 K푸드 식당에서는 중국 등에서 널리 쓰이는 향신료인 고수 맛이 강한 변형 K푸드도 등장했다. 한국인인 박 씨는 맛을 구별할 수 있지만 현지인들은 이 음식을 한국의 맛으로 오해할 수도 있다. 세계 시장의 K푸드 상품 역시 ‘짝퉁 상품’의 위협을 받고 있다. 라면의 원조로 불리는 일본의 닛신식품은 지난해 세계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삼양식품의 불닭볶음면과 유사한 ‘볶음면’을 내놓고 한국풍(韓國風)이라는 문구를 넣어 짝퉁 논란이 일었다. 한국지식재산보호원에 따르면 2023년 중국 베트남 태국 인도네시아 싱가포르에서 303건의 한국식품기업 상표 무단 선점 사례가 확인됐다. 원조를 위협하는 짝퉁 제품은 문화 상품의 세계화 과정에서 발생하는 일이다. K푸드를 지키려면 해외 상표권 관리를 강화하는 동시에 제대로 된 한국의 맛을 알리기 위해 우리가 더 뛰는 수밖에 없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1, 2년이 골든타임이라고 한다. 지금까지는 해외 시장 공략에 열을 올렸지만, 앞으로는 해외에 있는 한국문화원이 한국의 맛을 인증하는 마크를 한국 식당에 부착하는 식으로 브랜드와 품질을 관리하는 수성(守城) 전략도 병행해야 한다. 그래야 공들여 키운 K푸드의 과실을 남에게 뺏기는 일을 겪지 않는다.김기용 산업2부장 kky@donga.com}

    • 2025-0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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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김기용]반기업 정서 덫에 걸린 한국 기업

    요즘 믿을 데라곤 기업뿐이라는 말을 많이 듣는다. 매번 당연하게 여겼던 기업들의 성금(誠金)이 달라 보이는 이유이기도 하다. 대한민국을 할퀸 ‘괴물 산불’이 지나간 뒤에도 기업들의 온정이 이어졌다. 삼성그룹 30억 원, SK·현대차·LG·포스코그룹은 각각 20억 원씩 냈다. 롯데·KT·HD현대는 10억 원, CJ·신세계·LS는 5억 원씩 냈다. 이 외에도 이름 대면 알 만한 거의 모든 기업이 정성으로 돈을 냈다. 기업들이 내는 돈은 ‘성금’이다. ‘세금’이 아니다. 세금 받으면서 일하는 정치인들이 산불 피해 주민들을 돕는 추경안을 놓고 다툼을 벌인 것과는 다른 모습이다. 이러니 믿을 데가 기업뿐이라는 것이다.“혼란한 정국 믿을 데라곤 기업뿐” 대형 재난 상황에서뿐만 아니다. 2021년 중국이 갑자기 요소 수출을 제한하자 한국에서 ‘요소수 대란’이 터졌다. 요소수는 화물차의 필수품인데 품귀 현상이 빚어지자 가격이 10배까지 뛰었다. 당시 한중 관계가 최악으로 치닫던 터라 정부는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었다. 이때 나선 것이 이름만 대면 다 아는 한국 A기업이다. A기업은 중국에서 다져둔 탄탄한 네트워크를 활용해 한국으로 보낼 요소를 대량으로 긴급 확보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었다. 한국 정부는 우선 급한 불을 끄고 시간을 벌 수 있게 됐다. 큰 칭찬을 받아 마땅하지만 A기업은 공치사를 하지 않았다. 오히려 모든 성과를 한국 외교관과 공무원들에게 넘겼다. “국민들이 힘들 때 기업이 나서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만 했다. 기업은 세금으로도 국민을 돕는다. 한국은 전체 세수 328조 원 가운데 법인세(62조5000억 원) 비율이 19%를 차지할 정도로 의존도가 높다. 기업이 비틀거리면 법인세 수입이 줄어 정부 재정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 믿을 데라곤 기업뿐인데도 한국에서는 이상하리만치 반(反)기업 정서가 강하다. ‘약자는 선(善)하고, 강자는 악(惡)하다’는 ‘언더도그마’에 빠져 있는 것 같다. 허리 굽은 노인과 덩치 큰 젊은이가 다투면 젊은이가 나쁠 것이라고 생각하는 오류다. 대중(大衆)은 기업이 돈이 많고, 규모가 크고, 능력이 좋으니 악할 것이라고 믿는 경우가 많다. 정치인들은 이런 대중을 따라 각종 기업 규제에 나선다.기업 노력에도 반기업 정서 강한 韓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가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해 입법은 막았지만 상법 개정안은 국회까지 통과했다. 이 과정에서 중소기업중앙회를 비롯한 8개 경제단체의 하소연은 통하지 않았다. 기업들은 “경영진 상대로 소송이 남발되고 투기 세력의 공격에 무방비로 노출될 것”이라고 호소했지만 소용없었다. 이미 시행되고 있는 중대재해처벌법도 있다. 사업장에서 사망 등 중대 사고가 발생하면 사업주나 최고경영자(CEO)가 처벌받을 수 있다. 하청업체에서 난 사고에 대해 원청 경영자에게 더 무거운 책임을 지우고 관련 규정도 모호하다는 지적이 많았지만 결국 시행 중이다. 기업과 기업인을 잠재적 범죄자 취급하며 처벌하고 규제하는 법률과 정책이 너무 많다. 기획재정부 등이 2023년 조사한 결과 414개 법률에서 형벌 규정은 5886개였다. “CEO가 되면 감옥 갈 각오부터 해야 한다”는 말이 흰소리가 아니다. 여기에 ‘트럼프발(發) 관세 폭탄’까지 떨어졌다. 안에서는 반기업 정서에 따른 각종 규제로 힘들고, 밖에서는 미국의 무자비한 관세까지 이겨내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한쪽 발에만 있던 족쇄가 양발에 채워진 형국이다. 이제 우리가 할 일은 분명해 보인다. 기업이 뛸 수 있도록 족쇄를 풀어줘야 한다. 날개까지 달아주면 더 좋다. 믿을 데라곤 기업밖에 없으니까.김기용 산업2부장 kky@donga.com}

    • 2025-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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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김기용]‘테무’와 중국 공산당

    나는 ‘테무’를 이용하지 않는다. 물건값이 아무리 싸다고 해도, 심지어 품질이 좋다고 해도 그럴 것이다. “물건이 싸고 좋으면 그만이지 유별나다”고 할지 모르겠다. 인정한다. 그렇게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중국 공산당과 테무를 더 알면 생각이 달라질 수 있다. 중국 공산당은 몇 년 전부터 기업에도 공산당위원회 설치를 의무화하고 있다. ‘당원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당 조직을 만들어야 한다’는 당장(黨章·당헌법)을 기업에까지 강제한 것이다. 비유하자면 삼성전자 안에 ‘국민의힘 위원회’, ‘더불어민주당 위원회’를 만든 셈이다. 테무 모회사 핀둬둬에 공산당위원회 테무의 모회사 ‘핀둬둬’에도 공산당위원회가 있다. 핀둬둬는 중국인이 9억 명 넘게 이용하는 쇼핑 플랫폼이다. 창업자 황정(黃崢)은 지난해 중국 최고 부자에 오르기도 했다. 핀둬둬는 테무를 설립했고 이를 통해 글로벌 영향력을 확장하고 있다. 거대 기업 핀둬둬의 공산당위원회 서기(書記·최고 책임자)는 중국 고위 공산당원이다. 이 사람은 핀둬둬에서 수석 부사장직까지 맡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중국 최대 검색사이트 바이두에 따르면 기업의 공산당위원회는 당의 노선·방침·정책을 기업에 전달해야 한다. 또 당의 지시가 기업에서 효과적으로 집행되도록 책임져야 한다. 쉽게 말하면 ‘공산당의 지시를 기업이 잘 따르도록 이끌어야 한다’는 얘기다. 기업이 공산당위원회 말을 듣지 않고 공산당에 반기를 들면 어떻게 될까. 2020년 10월 중국 최대 인터넷 기업 알리바바를 창업한 마윈(馬雲)은 “중국 금융 당국이 ‘전당포 영업’을 하고 있다”며 공산당을 정면으로 비판했다. 이후 그는 공식 석상에서 사라졌다. 실종·납치·사망설 등이 돌았는데, 1년 뒤쯤에야 모습을 드러냈다. 그사이 알리바바는 4조5000억 원 규모의 과징금을 맞았다. 세계 최대 기업공개(IPO)로 주목받던 자회사의 상장도 무기한 연기됐다. 또 일부 회사를 공산당에 헌납해야만 했다. 중국판 우버로 불리는 중국 최대 차량공유업체 ‘디디추싱’도 철퇴를 맞은 적이 있다. 디디추싱은 2021년 미국 증시에 입성한 지 5개월 만에 자진 상장 폐지를 결정해야만 했다. 중국 공산당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상장을 강행했던 탓이다. 중국에서는 이런 일이 ‘자업자득’으로 여겨지며 당연시되고 있다. 중국 기업 테무는 한국에서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치고 있다. 유튜브에서 테무 광고가 수도 없이 나온다. 테무의 한국인 월간 활성 이용자 수(MAU)는 이미 800만 명을 넘어섰다. 지난해 한국인 결제 금액은 6000억 원 이상으로 추산됐다. 아마도 이 수치는 계속 늘어날 것이다. 테무가 한국에서 영향력을 확대하면서 한국인의 개인정보를 무차별적으로 빨아들이고 있다. 입점을 원하는 한국 상인들에게 얼굴 사진 등을 요구했다. 또 사용자들이 휴대전화 번호, 이메일 등 개인정보의 해외 이전을 거부하면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도록 하기도 했다. 테무 이면까지 생각한 뒤 선택해야 한국의 공정거래위원회, 개인정보보호위원회 등이 조사에 나선 상황이다. 어떤 결과가 나올지 봐야겠지만 정부의 조치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거대 기업 핀둬둬를 등에 업은 테무가 한국 정부의 조치에 겁을 먹을 가능성도 적어 보인다. 결국 한국 소비자들의 현명한 선택이 중요하다. 눈앞에 현란하게 펼쳐지는 테무 광고만 봐서는 안 된다. 광고가 보여주지 않는 이면의 테무까지 생각해야 한다. 3년 8개월 동안 베이징에 머물며 중국 공산당을 취재했던 나는 그래서 테무를 이용하지 않는다.김기용 산업2부장 kky@donga.com}

    • 2025-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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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화문에서/김기용]전화벨에 놀라는 음식점… 정치가 살면 경제는 난다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됐다. 이로써 정치적 불확실성이 어느 정도 해소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하지만 헌법재판소 최종 결정을 전후한 앞으로의 혼란이 결코 작지 않을 것이다. 이런 정치 혼란은 필연적으로 경제에 악영향을 미친다. 서울 광화문 근처 음식점 A 사장은 요즘 가게 전화벨 소리가 울리면 깜짝깜짝 놀란다고 했다. 십중팔구 송년 모임 취소 전화여서다. A 사장의 가게는 홀 테이블 10여 개, 방 10여 개 규모다.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전까지는 저녁 예약이 70% 수준이라고 했다. 만족할 정도는 아니지만 다른 가게들에 비하면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계엄 선포 후 취소 전화가 폭주하면서 예약은 거의 다 사라졌다. 연말 특수는 고사하고 평상시보다 더 장사가 안되는 상황이 됐다. 정치 혼란이 그대로 실물경제에 전이된 것이다. 14일 우원식 국회의장이 윤 대통령 탄핵안 가결 직후 그 어떤 소회보다도 “국민 여러분, 취소했던 송년회를 재개하시길 당부한다”고 말한 것은 경제 위기를 압축적으로 표현한 말일 것이다. 직장인들의 송년회 취소는 기업의 위축 때문이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가 국내 기업 239개를 조사한 결과 49.7%가 내년 경영계획 기조를 ‘긴축 경영’으로 설정했다. 허리띠를 졸라매겠다는 것이다. 특히 임직원 300인 이상 대기업은 61%가 긴축하겠다고 답했다. 2016년 이후 가장 높은 수치다. 놀랍게도 이 조사는 윤 대통령의 계엄 선포(3일) 전인 1일 이뤄진 것이다. 정치적 혼란이 가중된 지금 단언컨대 수치가 더 높아졌을 것이다. 역사적으로 기업을 위축시키는 것은 정치였다. 알리바바, 디디추싱 등 세계적으로 승승장구했던 중국 빅테크는 2020∼2023년 중국공산당 눈 밖에 난 이후 기업공개(IPO)를 중단하는 등 시련을 겪고 있다. 일본은 1993년부터 2012년까지 20년간 총리 13명 중 12명의 평균 재임 기간이 426일에 불과했다. 정치 불안은 일본을 저성장으로 몰아갔다. 1994년 멕시코 페소화 위기는 유력 대통령 후보의 암살 등 정치 불안이 원인이었다. 한국이 외환위기를 맞았을 때도 정치 지도력 공백과 혼란이 있었다. 당시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은 “한국의 진정한 문제는 달러 부족이 아니라 정치 리더십의 부재”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정치 안정이 곧바로 경제 성장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정치적 안정 없이 경제 성장은 불가능하다. 국내 한 대기업 임원은 최근 불안정한 정치 상황을 보면서 “한국이 정치만 살아나면 경제는 날아다닐 것”이라고 했다. 정부는 윤 대통령 탄핵안 국회 통과 후 긴급경제관계장관회의, 대외관계장관간담회 등 주요 회의를 잇달아 개최했다. 정치적 혼란이 기업들의 투자 의지까지 꺾는다면 위기는 더 심화할 것이란 점을 알기 때문이다. 기업의 위축은 그대로 직장인들에게 이어지고 다시 가계 소비 심리 위축으로 전이돼 경제를 얼어붙게 만든다. 정부도 중요하지만 더 이상 정치가 기업의 발목을 잡아서는 안 된다. 정치가 할 일은 그리 대단한 게 아니다. 그저 상식선에서 예측 가능하기만 하면 된다. 가게에 전화벨이 울리면 사장이 좋아해야 하는 것이 상식이다.김기용 산업1부 차장 kky@donga.com}

    • 2024-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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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화문에서/김기용]자동차-철강 기업들의 ‘中엑소더스’ 숨은 의미

    자동차는 ‘제조업의 꽃’이라 불린다. 자동차 한 대에 들어가는 부품이 3만 개가 넘는다. 눈에 잘 띄지 않는 작은 스프링부터 이름도 생소한 스테빌라이저(차체 기울어짐 감소 장치)까지 정말 많다. 사용되는 소재도 철강과 비철금속, 고무, 유리, 플라스틱, 탄소섬유 등 다양하다. 철강은 ‘산업의 쌀’이라 불린다. 가장 중요한 기초 소재라는 얘기다. 철강 산업의 경쟁력은 제조업 전반의 성장과 고용 창출과도 직결돼 있다. 자동차, 건설, 조선, 가전, 기계 등 주요 산업의 안정적 발전을 위한 기본 소재가 철강이기 때문이다. 중국은 지난 30여 년 동안 전 세계 ‘꽃’과 ‘쌀’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이며 승승장구했다. 글로벌 자동차·철강 기업들이 중국에 몰려들면서 중국은 ‘세계의 공장’이 됐다. 이것이 중국 고도 성장의 토대가 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글로벌 자동차·철강 기업들의 ‘중국 엑소더스’가 이어지고 있다. 특히 한국 기업들이 먼저 빠져나오고 있다. 17일 현대제철은 2003년 설립한 중국 베이징 법인을 매각하기로 했다. 7일에는 포스코그룹이 1997년 세운 공장을 팔기로 했다. 앞서 지난해 초 포스코그룹은 중국 광둥성에 있는 공장도 처분했다. 동국제강은 지난해 7월 중국 법인 지분 90%를 중국 지방정부에 매각했다. 일본 철강기업인 일본제철도 7월 중국 기업과 20년 동안 진행해 온 합작 사업을 중단했다. 철강 기업들의 이런 움직임은 어느 정도 예견됐다. 이들의 핵심 고객인 자동차 기업들이 중국에서 먼저 발을 뺐기 때문이다. 현대차는 2016년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사태 이후 중국에서 판매가 급감하면서 2021년 베이징 1공장을, 올해 1월에는 충칭 공장을 매각했다. 일본 혼다자동차는 중국 공장 3곳의 가동을 중단하고 매각을 검토하기로 했다. 닛산자동차는 6월 장쑤성에서 운영하던 공장을 폐쇄했다. 글로벌 자동차·철강 기업들이 중국을 빠져나가는 것은 금융 자본이 빠져나가는 것과는 사뭇 의미가 달라 보인다. 금융 자본의 이동은 일상다반사다. 하지만 거대한 장치 산업인 자동차·철강의 이동은 회사의 명운과도 직결된 일이다. 가장 보수적으로 움직일 수밖에 없다. 이들이 움직인다는 것은 결국 세계의 성장을 견인했던 세계의 공장 문이 닫히고 있다는 뜻이다. 자동차·철강 기업들의 이런 움직임은 중국이 갈수록 경직되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중국이 세계의 공장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지난 30여 년 동안 ‘흑묘백묘(黑猫白猫·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를 앞세운 철저한 실용주의적 개혁개방 노선을 택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글로벌 기업들에 예측 가능한 경영 환경도 제공했다. 마음 놓고 일할 수 있도록 만들어준 셈이다. 하지만 지금 중국의 모습은 과거와는 달라 보인다. 중국의 변화에 대해 우리가 왈가왈부할 수는 없다. 대비하고 대처해야 할 뿐이다. 다만 불행 중 다행인 것은 자동차·철강을 포함해 많은 한국 기업들이 ‘사드 사태’라는 예방주사를 맞고 중국의 변화를 빨리 눈치챘다는 점이다. 고통스러웠지만 다른 나라보다 더 빨리 대처할 수 있게 된 것은 다행이 아닐 수 없다.김기용 산업1부 차장 kky@donga.com}

    • 2024-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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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화문에서/김기용]‘차이나 프리’ 현대차의 약진… “中 없어도 성공” 증명해주길

    영어 단어 프리(free)는 명사 뒤에 붙어 ‘∼이 없는’이라는 뜻을 만들어 낸다. 슈거 프리(sugar free·설탕 없는), 듀티 프리(duty free·세금 없는) 등이다. 대체로 프리 앞에 오는 단어가 부정적이어서 프리가 붙으면 좋은 뜻으로 받아들여진다. 차이나 프리(china free)란 말도 있다. 2007년에 크게 유행했었다. 당시 중국은 명실상부한 ‘세계의 공장’이었다. 주변에서 중국산 아닌 걸 찾기 어려웠다. 그런데 독성물질이 포함된 중국산 식료품과 의료품, 생활용품 등이 세계적으로 파문을 일으켰다. 소비자들의 불안감이 커졌다. 그러자 일부 제품에 ‘차이나 프리’ 스티커가 붙기 시작했다. 중국산 원료·재료를 사용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하지만 확산될 것 같았던 차이나 프리는 오래가지 않았다. 중국을 배제할 경우 세계 경제가 돌아가지 않을 것이란 우려가 더 컸기 때문으로 보인다. 특히 한국에서는 더 그랬다. 중국과 붙어 있는 지리적 특성과 오랜 시간 중국의 영향을 받아온 역사적 특성까지 더해져 차이나 프리가 쉽지 않았다. 지금까지도 이런 분위기가 크다. 이런 상황에서 비자발적 차이나 프리를 경험한 현대차의 약진은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한때 중국에서 승승장구했던 현대차는 사실상 차이나 프리를 당했다. 2014년 1월 현대차의 중국 시장 점유율은 11.1%까지 치고 올라갔다. 2016년까지 4년 연속 연간 판매량 100만 대 이상을 달성하기도 했다. 하지만 2016년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사태 이후 중국 매체와 기관, 단체들이 혐한 감정을 부추기자 판매량은 급감했다. 6년 연속 판매량이 감소했고 시장 점유율은 1%대까지 하락했다. 지난해에는 약 24만 대 판매에 그쳤다. 2016년의 4분의 1 수준이다. 이제 더 내려갈 곳도 없다는 것이 현대차 베이징 주재원들의 인식이다. ‘중국 시장 없이 성공은 힘들다’는 인식에 비춰 보면 현대차는 지금 심각한 위기여야 한다. 하지만 그 어느 때보다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다. 중국에서 승승장구 할 때도 글로벌 5위에 머물렀던 현대차는 지금 글로벌 3위에 올랐다. 1위는 도요타, 2위는 폭스바겐이다. 일부에서는 현대차가 곧 세계 1위에 오를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중국 판매 비중이 높은 도요타와 폭스바겐이 최근 중국에서 위기를 맞고 있어서다. 현대차의 이른 중국 의존도 축소는 선견지명이 아니라 우연이다. 이렇게 얻은 성과는 쉽게 사라진다. 이제 우연이 아닌 실력으로 입증해야 한다. 현대차는 최근 미래차 선도 계획을 속속 발표하고 있다. 미국 제너럴모터스(GM)와 포괄적 협력을 하기로 했고, 구글에 자율주행용 차량을 공급하기로 했다. 또 중국이 아닌 인도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중국을 제치고 세계 1위 인구 대국에 오른 인도에서 성공한다면 현대차의 세계 1위 가능성도 더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테슬라나 애플의 최고경영자(CEO)들은 틈만 나면 중국 칭송에 바쁘다. 중국의 영향력이 그만큼 세기 때문이다. 이런 속에서도 현대차가 ‘중국 없이도’ ‘차이나 프리’여도 성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면 큰 의미가 있을 것이다.김기용 산업1부 차장 kky@donga.com}

    • 2024-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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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화문에서/김기용]창작 의욕 꺾는 무단 도용… 콘텐츠가 살아야 AI도 산다

    한국인 이승윤 씨(34)가 2022년 미국에서 창업한 ‘스토리’라는 회사는 기업 가치가 3조 원에 이른다. 창업 2년 만에 유니콘 기업(기업 가치 1조 원 이상 비상장 기업)이 된 것이다. 한국에서 중고거래 신드롬을 일으킨 ‘당근마켓’과 비슷한 규모다. 스토리는 콘텐츠를 만드는 창작자들의 지식재산권(IP) 보호를 목표로 한다. 이렇게 보호된 IP를 통해 수익을 내는 것이다. 이 대표는 “빅테크 기업들이 인공지능(AI)을 학습시키려 콘텐츠를 무단 사용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모든 콘텐츠가 적절한 보상을 받을 수 있는 방안을 고민 중”이라고 했다. 스토리가 주목한 것은 기술은 빠르게 발전하는데 IP는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는 현실이었다. 그리고 이 문제가 더 심각해질 것이란 점이었다. 스토리는 최근 8000만 달러(약 1064억 원)를 투자받아 그 가치를 다시 한번 입증했다. 스토리의 성공은 역설적으로 콘텐츠의 위기를 뜻한다. AI의 등장으로 ‘콘텐츠 르네상스’라고 불릴 정도로 콘텐츠가 주목받고 있다. 하지만 AI 시대를 주도하는 빅테크들은 AI를 학습시킬 양질의 콘텐츠를 원하면서도 창작자들을 보호하고 생태계를 만드는 일에는 별 관심이 없어 보인다. 가비지 인, 가비지 아웃(Garbage In, Garbage Out). ‘쓰레기를 넣으면 쓰레기가 나온다’는 뜻이다. 정보기술(IT) 업계에서 많이 쓰는 이 말은 “입력 데이터가 좋지 않으면 출력 데이터가 좋지 않다”는 의미다. 최첨단 반도체와 최고 기술로 만들어진 AI라 해도 쓰레기를 입력하면 쓰레기가 나올 수밖에 없다. 반대로 좋은 콘텐츠를 많이 흡수한 AI는 더 강력해진다. 구글의 ‘제미나이’와 오픈AI의 ‘챗GPT’ 등 글로벌 선두권 AI들은 이미 지구상에 있는 모든 정보를 다 섭렵한 것처럼 보인다. 책과 백과사전, 뉴스 기사,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라온 대화와 게시물 등 디지털화할 수 있는 모든 자료를 학습하고 있다. 2032년에 AI 학습 자료가 고갈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온다. 문제는 AI가 공부한답시고 양질의 콘텐츠를 공짜로 무차별적으로 빨아들이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웹상의 정보를 무작위로 탐색하는 ‘크롤링’이나 ‘웹스크레이핑’ 등의 방법도 동원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행태들은 필연적으로 창작자들의 의욕 감소와 창작 포기를 불러온다. 일부 창작자들은 자신의 디지털 창작물에 일종의 독극물(독성 픽셀)을 풀어 놓고 AI가 이를 학습할 경우 바보가 되도록 함정을 파기도 한다. 21세기 디지털 고육지책(苦肉之策)이다. 이렇게 창작자들이 무너지면 그다음엔 AI다. 창작자들의 빈자리엔 쓰레기만 남고, 쓰레기로 학습한 AI는 쓰레기를 내놓을 수밖에 없다. 한국 정부는 1년여 전부터 AI 관련 저작권 제도 개선 연구를 시작해 지난해 말 ‘생성형 AI 저작권 안내서’를 발간하기도 했다. 하지만 너무 늦고 너무 느슨해 보인다. 창작자들을 보호하는 것은 AI 규제가 아니라 AI를 살리는 길이다. 콘텐츠와 AI의 선순환 생태계를 구축하는 것은 AI 강국으로 가기 위한 기본 조건이기도 하다. 한국 AI가 쓰레기를 학습하지 않도록 더 서둘러야 하는 이유다. 김기용 산업1부 차장 kky@donga.com}

    • 2024-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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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韓 우주탐사 목표는 블랙홀… ‘퀀텀 리프’로 5대강국 진입”

    5월 개청한 우주항공청이 우주탐사 목표로 ‘블랙홀’을 점찍었다. 22일 경남 사천 우주항공청 임시청사에서 만난 존 리 우주청 임무본부장(68)은 이 같은 계획을 밝히며 “국민들의 지지가 있어야 우주청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며 “국민들이 ‘와∼’ 하고 놀랄 만한 목표를 세우고 성과를 보여줄 것”이라고 했다. 리 본부장이 국내 언론을 만나 인터뷰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태양 질량 100만 배 거대 블랙홀 탐사 리 본부장이 언급한 블랙홀 탐사 계획은 국제 협력으로 진행될 예정이다. 현재 우주청은 영국, 호주,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10개 회원국이 참여하는 ‘평방 배열 거대전파망원경(SKAO)’ 프로젝트 가입 절차를 밟고 있다. SKAO는 호주와 남아공에 건설 중인 소형 안테나 13만여 개에서 수집되는 전파 데이터를 분석하는 초대형 프로젝트다. 완공 시 세계에서 가장 크고 성능이 좋은 전파망원경이 된다. 태양 질량의 100만 배 이상인 거대 블랙홀까지 감지가 가능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차기 노벨상 후보를 배출할 수 있는 거대 과학 장비로 손꼽힌다. 리 본부장은 그동안 한국의 우주 개발이 다소 보수적으로 진행돼 왔다는 점을 지적하며 “미국 항공우주국(NASA)을 쫓아가려고 생각하면 안 된다. ‘퀀텀 리프’를 해야 세계 7위 우주 강국에서 5위 강국으로 올라설 수 있다”고 했다. 블랙홀 탐사 역시 퀀텀 리프할 수 있는 주요 탐사 목표라는 것이다.● 韓 잠재력, 성장 아닌 폭발에 가까워 50여 년을 미국에서 살았고 NASA와 백악관에서 30년을 일한 리 본부장을 한국으로 이끈 것은 한국 연구자들의 잠재력이었다. 리 본부장은 “2009년 한국을 방문했을 때만 해도 NASA에는 ‘한국이 뭘 할 수 있겠냐’는 인식이 팽배했다”면서 “나도 확신이 없었지만 방문한 뒤 생각이 확 달라졌다”고 했다. 그가 찾은 한국항공우주연구원에는 당시 막 개발한 대형 열진공 체임버가 있었다. 열진공 체임버는 내부를 진공으로 만들어 우주 환경을 모사한 장비다. 위성을 실험하는 데 주로 사용된다. 당시 지름 8m급 이상의 대형 체임버를 소유한 나라는 미국, 러시아, 중국, 일본 등 7개국뿐이었다. 리 본부장은 “10m 크기의 체임버를 한국의 독자 기술로 개발했다는 것을 듣고 너무 놀랐다”며 “그때 한국은 기회만 있으면 폭발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언탭트 포텐셜(untapped potential·아직 터지지 않은 잠재력)’을 가진 엄청난 나라라고 생각했다”고 했다. 한국의 ‘브레인 파워’를 확인한 그는 이후 한국과 교류를 계속 이어왔고 올해 3월 중순 우주청의 영입 전화를 받자 ‘오케이’를 외쳤다.● 과학 연구가 경제에도 도움돼야 최근 우주청 직원들과 ‘피자 런치’를 기획하기도 한 리 본부장은 직원들과 격의 없이 소통하기로 정평이 나 있다. 리 본부장은 매일 오전 연구자들이 일하는 3층부터 자신의 집무실이 있는 9층까지 돌며 직원들과 인사를 나눈다. 직원들과 만나는 자리에서 리 본부장이 항상 강조하는 점은 연구의 경제적 파급력이다. 리 본부장은 “경제에도 도움을 줘야 국민들의 지지를 받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의 사무실 화이트보드에는 글로벌 우주경제 규모가 크게 쓰여 있었다. ‘2040년 27조 달러(약 3경 원).’ 우주청은 앞서 2045년까지 우주 경제 시장 점유율 10%를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한 바 있다. 리 본부장은 “통신, 반도체, 원자력, 제조업 등 한국이 강한 산업을 우주와 융합한다면 목표를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퀀텀 리프(Quantum leap)양자역학에서 유래한 말로 천천히 상태가 변하는 것이 아니라 마치 계단처럼 수준이 한 번에 도약하는 것을 의미.사천=김기용 kky@donga.com최지원 기자 jwchoi@donga.com}

    • 2024-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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