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관석

장관석 논설위원

동아일보 논설위원실

구독 144

추천

정치권 소식을 세밀히 파악해 전하겠습니다. 2009년 입사 후 사회부 법조팀, 정치부 정당팀에서 근무했습니다.

jks@donga.com

취재분야

2025-11-06~2025-12-06
정치일반47%
칼럼37%
대통령10%
남북한 관계3%
러시아3%
  • “론스타 먹튀, 연극 팸플릿처럼 인물 캐릭터 설명해 주효”[데스크가 만난 사람]

    《“대한민국을 얕보고 덤비다간 큰코다친다.” 정홍식 법무부 국제법무국장은 26일 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와 13년 동안 이어진 투자자-국가 분쟁(ISDS) 사건 승소에 대해 “론스타가 청구한 배상 요구를 전부 막았고, 우리 책임으로 남아 있던 4000억 원까지 깨끗이 없앤 사건”이라며 이같이 강조했다. 론스타는 1997년 외환위기 뒤 부실에 빠진 외환은행 지분 51%를 2003년 헐값에 사들였다. 9년 뒤인 2012년 4조6000억 원의 차익을 남기고 외환은행을 하나금융에 되팔고 떠났다. 그때 이른바 ‘먹튀 논란’이 불거졌다. 2012년에는 오히려 “한국 정부가 매각 승인을 부당하게 늦췄다”며 46억8000만 달러(약 6조9000억 원)를 청구하는 ISDS 분쟁을 일으켰다. 금융위원회가 승인 절차를 일부러 늦추고 매각 가격을 깎도록 압박해 이익이 줄었다는 주장이다. 중재에 나선 세계은행 산하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 중재 판정부는 2022년 8월 론스타가 청구한 금액의 4.6% 정도에 해당하는 2억1650만 달러(당시 약 2900억 원)를 한국 정부가 론스타에 지급하라고 판정했다. 이 중재를 두고 한국과 론스타가 2023년 모두 불복했고, 마침내 이달 18일 ICSID 취소위원회가 원래의 중재 판정을 통째로 취소하면서 한국 정부의 배상 책임은 ‘제로’가 됐다. 정 국장, 론스타와의 네 차례 구술 심리에 모두 참석했던 김지언 서울중앙지검 국제범죄수사부장을 이날 법무부 청사에서 함께 만나 13년간 이어진 론스타 ISDS의 속사정을 들었다.》―이번 취소 결정, 한마디로 어떤 의미인가.“말 그대로 완전 승소다. 2022년 시작된 중재 판정 전체가 사라졌다. 양쪽이 각자 패소한 부분을 동시에 취소해 달라고 신청한 이례적인 사건이었는데, 우리 신청만 받아들여졌다. 론스타가 이번에 이겼더라면 청구액이 다시 6조 원대까지 커질 수 있었다. 그런 ‘2차전’ 가능성이 사실상 닫혔다. 펜싱으로 치면, 상대가 얼굴을 향해 찌르는 공격을 피하는 동시에 우리가 가슴을 찔러 경기를 끝낸 꼴이다.” ―국제중재 전문가들은 어떻게 평가하나.“원래 판정을 내렸던 3명, 이번에 판정을 취소한 3명 모두 국제중재계에서 이름만 대면 아는 사람들이다. 동료들이 10년 걸려 내린 판정을 뒤집는 건 굉장히 부담스러웠을 거다. 그럼에도 ‘이 정도 절차 위반이면 취소해야 한다’고 본 거다. 변호사들이 절차를 가볍게 보고, 온갖 기교를 쓰는 시도에는 더 이상 눈감지 않겠다는, 일종의 ‘반칙하지 말라’는 메시지다. 강력한 ‘예방 주사’ 격이다.” ―중대한 절차 위반이라고 본 핵심은 뭐였나.“문제가 된 사건은 국제상업회의소(ICC) 산하 중재였다. 론스타와 하나금융, 민간 회사들끼리의 분쟁인데, 외환은행을 하나금융에 넘기는 과정에서 정당한 이유없이 금융위원회의 승인을 지연시키는 ‘부당한 압박’ 등 불공정 대우를 한국 정부에 당했다는 게 론스타 주장이었다. 그런데 이런 주장을 뒷받침할 만한 직접 증거나 증언은 거의 없었다. 그럼에도 2022년 8월 ISDS 원 중재 판정부는 한정된 정보로 작성된 ICC 중재 판정문에 적힌 사실관계를 거의 그대로 가져와 한국 정부에 일부 책임이 있다며 론스타에 일부 승소 결정을 했다. 돈을 물어내야 하는 한국 정부는 정작 ICC 사건의 당사자가 아니라서, 거기서 나온 증인·문서에 대해 질문할 수도 없었고 반대신문도, 추가 증거 제출도 할 수 없었다. 쉽게 말해 한국 정부가 참여하지 못한 다른 민간 중재 사건에 담긴 내용을 ‘기정사실’처럼 받아들인 뒤, 론스타와 한국 정부의 ISDS 사건에 끌어다 쓴 셈이다. 당시 인수 가격 인하를 정부가 ‘사실상’ 압박했다는 언론 보도 등이 주요 근거였는데 이는 사실이 아니라는 정부 설명이 받아들여졌다.” ―그렇다면 3년 전 2억1600만 달러 배상액은 어떻게 나왔나.“원 중재판정부는 금융위의 부당한 매각승인 지연과 가격인하 압박으로 론스타가 입은 손해를 약 4억3000만 달러로 산정했다. 그러나 론스타 주가조작도 금융위의 승인 지연을 야기한 공동 책임을 인정해 이 금액의 절반인 2억1600만 달러를 지급하라고 최종 판정한 것이다. 우리는 애초에 주가조작으로 인해 금융위가 바로 결정을 못한 것이었으니 이것조차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중재인 구성은 어떻게 판을 갈랐다고 보나. 곁에 있던 김지언 부장이 설명을 이어갔다. “배심 재판에서 배심원 선정이 승패를 좌우하듯, 중재 사건에서는 중재인이 승패를 좌우한다. 보통 ISDS 사건의 중재판정부는 3인 체제다. 투자자와 국가가 한 명씩 중재인을 지명하고, 의장 격인 세 번째 중재인은 양측 합의나 기관 지정을 통해 선임한다. 로펌과 상의해 과거 판정문을 분석했고, 국가의 정책적 재량을 무겁게 보는 프랑스 국적의 브리짓 스턴을 우리 쪽 중재인으로 선임했다. 국제공법의 대가다. 그가 절차 위반을 강하게 지적하는 의견을 갖고 있는데, 이번 취소 신청의 핵심 논리로 더 발전시켰다.”● 연극 팸플릿처럼 만든 ‘먹튀 설명서’ 김 부장은 미국 워싱턴,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구술심리를 두고 “2015, 2016년 4차례에 걸쳐 금융·조세·관할 등을 쟁점으로 강도 높은 심리를 열었다”며 “론스타와 우리 측 증인, 중재 측 인사로 발디딜 틈이 없었다”고 했다. ICSID가 있는 미 워싱턴 소재 세계은행 청사의 정식 심리실이 사건 규모에 비해 너무 좁았다. 결국 지하에 있는 100명 정도 들어갈 수 있는 어두운 회의실로 내려가서야 심리를 열 수 있었다고 했다. ―중재인들에게 어떻게 설명했나.“론스타 사건은 한국인들도 이해하기 어렵다. 쉽게 설명하는 방안을 고민하다가 인물, 배역, 시나리오가 담겨 있는 ‘연극 팸플릿’을 떠올렸다. 중재인들이 잘 알 수 있도록 인물과 론스타 사건에서 전현직 관료 등 주요 증인의 이름과 역할 등을 정리한 론스타 ‘팸플릿’을 만들었다. 중재인들이 ‘이게 어떤 Eat and Run(먹튀) 사건인지’ 직관적으로 보이게 하려는 전략이었다.” ―투자조약에 나온 영어 단어도 쟁점이 됐다고 했는데….“외환은행에 직접 투자한 주체는 텍사스에 있는 론스타 본사가 아니라, 론스타가 벨기에에 세운 특수목적법인들이었다. 론스타는 이 법인들이 ‘벨기에 국적’임을 앞세워 1976년 체결된 한-벨기에 투자협정을 근거로 ISDS를 제기했다. 이 협정에 ‘industry’라는 표현을 두고 양측이 충돌했다. 론스타는 ‘금융업도 industry에 포함된다’고 주장했다. 반면에 우리는 1976년 당시 한국 상황을 보면 industry는 ‘산업·공업’으로 보는 게 맞다고 봤다. 중재판정부도 한국 손을 들어줬다. 론스타와 다퉈야 하는 범위가 줄어든 것이다.”● 계엄 정국, 국제무대에선 ‘신뢰 공격’ 당해 올 1월 취소 구술 심리는 영국 런던에서 열렸다. 심리에 직접 참여했던 정 국장은 “유리한 곳에서 심리하기 위한 양측의 신경전 탓”이라고 했다. 론스타는 심리 장소로 미국 워싱턴을, 우리는 싱가포르를 원했다. 그러다가 제3의 장소인 런던이 선택됐다. ―그 당시 계엄 정국이 실제로 부담이 됐나.“론스타와의 구술 심리가 열리기 바로 직전 주에 싱가포르에서 또 다른 ISDS 사건을 심리했다. 상대방 대리인이 ‘불과 한 달 전에 대통령이 계엄을 선포한 나라의 정부 결정을 믿을 수 있느냐’는 식으로 한국 정부를 공격하더라. 국내 정치 상황이 곧바로 국제무대에서 공격 소재가 된 셈이다. 국제 중재 무대가 얼마나 냉혹한지 실감했다. 비상계엄 정국이라 법무부에 장관도 없는 상황이었다. 1월 런던 특유의 축축하고 어두운 날씨까지 겹쳐 위축됐던 건 맞다.” ―런던 취소심리에서는 어떤 기류가 느껴졌나.“론스타 측 주장은 변론도 짧게 듣고 질문도 많지 않은 느낌이었다. 반대로 우리가 집중적으로 파고든 ‘적법 절차 위반 부분’에 대해서는 위원들이 질문을 많이 했다. 특히 ‘한국 정부의 절차 위반 주장이 받아들여진다’는 전제 아래 3페이지 이내로 의견서를 내라고 할 때 깜짝 놀랐다. 이런 요청 자체가 이례적이었기 때문이다.” ―선고 당일, 정부는 어떻게 움직였나.“승소와 패소를 가정한 여러가지 시나리오를 만들었다. 결정문이 오면 즉시 전파해 판결문을 분석하고 관계 부처 회의를 이어 가려 했다. 그런데 생각보다 일찍 법무부 국제투자분쟁과 이메일로 결정문이 왔다. 마지막 페이지의 전부 승소 내용을 확인하는 순간 가슴이 뛰더라.” ―발표는 법무부 장관이 아니라 국무총리가 했다.“처음 세운 계획은 법무부 장관이 결과를 발표하고, 우리가 그 뒤에 상세 브리핑을 하는 구도였다. 그런데 여러 부처가 이뤄낸 경사니 총리가 먼저 ‘정부 공식 입장’을 발표하고, 다음 날 법무부가 법적 의미와 세부 내용을 설명하는 방식으로 정리가 됐다. 그날 오후엔 결정이 안 나올 줄 알았다. 급히 캐비닛에 있던 여름 정장 상의를 꺼내 입고 바로 총리실 브리핑장으로 향했다.” ―승소 이후 정치권이 공을 다투고 있다.“특정 정치인들을 언급할 수는 없다. 이 사건은 13년 동안 계속된 수많은 사람들의 보이지 않는 노력이 함께 만들어 낸 집단지성의 성취라고 본다. 정권이 다섯 번 바뀌는 동안 의사 결정은 합리적이었다. 로펌 변호사, 정부 변호사 역할을 맡은 검사들이 ‘뼈를 갈아 넣는다’는 표현이 과장이 아닐 만큼 많이 뛰었다. 배임·횡령 같은 형사 사건에서 나온 사실관계를 잘 끄집어내 우리 쪽 반박 근거로 쓰는 작업도 중요했다.” 이 대목에서 김 부장은 “숟가락을 많이 얹으면 잔치는 커지는 법”이라며 “이번 기회에 한국의 ISDS 대응 역량을 점검하고 강화하는 계기가 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론스타 측은 본질은 달라진 게 없다고 한다. 그들이 이의를 제기할 수 있나.“론스타가 2차 중재를 청구하는 걸 막을 수는 없다. 그렇다 해도 이번에 기각된 95.4% 부분은 다시 다툴 수 없다. 우리는 조기 각하를 신청할 거다.” ―정책적 연속성을 유지하는 데 어떤 어려움이 있나.“장기전이다 보니 정치적 오해를 받고 공격받는 일도 생긴다. 이런 공격이 반복되면 정확한 판단을 내리기 어렵다. ISDS가 남발되는 경향도 있다. 선진국 중에선 한국이 제소를 많이 당한 편이다. 지금 한국에는 해상풍력 개발에만 100조 원대 해외 투자가 들어오고 있다. 향후에 분쟁이 더 많아질 수 있다는 얘기다.”정홍식 법무부 국제법무국장△2006년∼현재 중앙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싱가포르국제중재센터(SIAC), 중재인 패널△국제상업회의소(ICC) 국제중재법원, 중재인△세계은행 산하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 조정위원△홍콩국제중재센터(HKIAC), 중재인 패널장관석 논설위원 jks@donga.com}

    • 2025-11-27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횡설수설/장관석]한덕수의 ‘선택적 망각’

    내란 우두머리 방조 혐의로 기소된 한덕수 전 국무총리는 줄곧 12·3 비상계엄 선포 이후 자신의 행적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런데 계엄 선포 직후 용산 대통령실 대접견실에서 한 전 총리가 당시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과 16분간 대화하는 장면이 24일 서울중앙지법 법정 스크린에 떴다. 이를 두고도 한 전 총리는 ‘대화를 나눈 사실을 영상을 보고서야 알았다’고 했다. 국정 2인자의 기억에서 비상계엄 직후 16분이 통째로 지워진 셈이다. ▷폐쇄회로(CC)TV가 조작된 것은 아니다. 한 전 총리가 문건을 손에 들고 움직이는 모습도 보인다. 그런데도 한 전 총리는 그런 기억이 없다고 한다. 재판에서 보인 그의 입장을 따져보면 ‘나는 잘 모르겠는데, 그런 내 모습이 CCTV에 보이고 있다’는 관찰자 시점이다. 자신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계엄 결심을 듣는 순간 정신이 무너지는 ‘멘붕(멘털 붕괴) 상태’였다는 것이다. 발신자 표시가 ‘윤석열입니다’였다는 윤 전 대통령의 전화를 받고 대통령실로 향한 경위는 비교적 또렷하게 기억하는 것과 대조적이다. ▷해당 문건은 대통령 집무실에서 들고나온 것이다. 한 전 총리는 특검 조사 때 계엄 포고령을 받은 사실은 인정했는데, 법정에 나와서는 다시 기억이 흐릿해졌다. 대통령 집무실에서 참모가 자기 문건도 아닌 서류를 들고나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이런 추궁에도 ‘사후적으로 보면 제가 영상에 있었던 것으로 나온다’는 어정쩡한 답변을 했다.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과 함께 손가락으로 숫자를 헤아리는 장면이 국무회의 정족수를 세는 모습이라는 특검 주장에도 ‘눈은 뜨고 있었지만 무엇을 봤는지 분간이 안 됐다’고 한다. 황당할 정도로 선택적인 기억력이다. ▷기억이 다 사라진 것은 아니다. 비상계엄이 경제와 대외 신인도를 망칠 것 같아 재고를 요청했다는 주장, 최상목 전 경제부총리에게 대통령을 말려 달라고 귀띔했다는 대목은 비교적 소상히 설명했다. 정작 군이 국회에 투입되는 상황은 확인조차 하지 않았느냐는 물음에는 답을 흐렸다. 국회의 계엄 해제 의결 뒤에도 국무회의 소집을 서두르지 않았다. 재판장이 “결국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 아니냐”고 물은 이유일 것이다. ▷특검은 26일 한 전 총리에게 징역 15년을 구형했다. 올해 76세인 한 전 총리에게는 최악의 경우 남은 인생의 상당 부분을 교도소에서 보내야 할지도 모르는 무거운 구형량이다. 특검은 중형을 구형한 이유로 “비상계엄을 말릴 수 있는 ‘키맨’이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 의무를 저버리고 범행에 가담했다”는 점을 들었다. 한 전 총리는 혼자 막을 도리가 없었고, 절벽에서 땅이 끊어진 것처럼 기억은 맥락도 없고 분명치도 않다고 했다. 하지만 ‘멘붕’이라는 말로 계엄의 밤을 지우기엔 CCTV에 남은 행적이 너무 또렷하다.장관석 논설위원 jks@donga.com}

    • 2025-11-26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횡설수설/장관석]‘사실 적시 명예훼손죄’ 72년 만에 폐지될까

    배드파더스라는 단체가 양육비를 주지 않는 부모의 얼굴과 이름, 주소를 공개했을 때 사회적 공분이 일었다. 양육비 미지급 실태를 알리는 공익 제보라는 명분이었지만, 사이트 운영자가 일부 부모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재판을 받게 됐다. 1심은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며 무죄를 선고했지만, 2심은 “공공의 이익보다 비방의 목적이 인정된다”며 유죄로 판단을 뒤집었다. 대법원도 이를 확정했다. 사실을 말했는데도 죄가 되는 형법상 ‘사실 적시 명예훼손’ 논란을 촉발한 대표적 사례다. ▷폐지론자들은 “사실을 말하는 게 왜 형사처벌 대상이 되느냐”고 묻는다. 다른 사람의 범죄나 잘못을 고발하는 활동까지 형사범죄로 취급하면 개인의 자유를 지나치게 침해할 수 있다. 도둑질을 해놓고, 알려지지 않은 덕에 유지되는 명예를 보호할 가치가 있느냐는 물음도 이어진다. “진실이 드러나 훼손될 명예는 보호할 가치가 없다”는 주장도 나온다. 1953년 제정 이후 달라진 게 없는 이 조항을 손질할 때라는 것이다. ▷반대로 내 표현의 자유만큼 다른 사람의 명예도 중요하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더욱이 악성 댓글과 무차별 비난에 시달리는 이들에게 명예훼손죄의 존재는 ‘마지막 보루’라는 호소가 나온다. “이것마저 없으면 아무런 방어 수단이 없다”는 것이다. 사실에 근거한 비판이라도 개인의 사회적 평가와 인격을 무너뜨릴 수 있는 만큼, 타인의 명예를 보호할 장치는 필요하다고 말한다. 명예훼손 표현의 전파 속도와 파급력은 온라인 시대에 훨씬 더 커졌다. 민사소송만으로 충분한 보상이 어렵다는 견해도 많다. 2021년 헌법재판소가 5 대 4로 사실 적시에 따른 명예훼손 조항을 합헌이라고 본 배경이다. ▷그사이 성폭력·학교폭력 피해자가 되레 이 조항으로 고소당해 벌금형을 선고받는 사례가 잇따랐다. 성추행 피해를 알리기 위해 A 씨가 인스타그램에 판결문을 올렸다가 가해자의 개인정보 일부가 보였다는 이유로 벌금 300만 원이라는 형사처벌을 받은 사건도 있었다. 명예훼손 분쟁을 피하려는 심리가 커지면서 공무집행 방해 혐의 공소장에서 피해를 입은 경찰관 이름이 익명 처리되는 현실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11일 ‘사실 적시 명예훼손죄 폐지’ 검토를 지시하면서 오래된 논쟁이 다시 불붙었다. “형사가 아니라 민사로 해결할 일”이라고도 했다. 실제로 이를 형사처벌까지 하는 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한국과 일본 정도다. 미국 영국 등 대부분 국가는 민사소송을 통해 손해배상 책임을 묻는다. 억울한 피해를 어떻게든 알리려는 사람들에게는 말할 통로를 열어 두되, 누군가를 사회적으로 매장시키려는 행위에는 실효성 있는 억제책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장관석 논설위원 jks@donga.com}

    • 2025-11-12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횡설수설/장관석]“복수해야지, 안 되겠네”

    한 유튜브 매체 기자와의 7시간 통화 녹음, 한 재미교포 목사로부터 디올백을 받는 영상, 보궐선거 공천 개입 의혹을 뒷받침하는 명태균과의 문자…. 김건희 여사가 동영상, 통화 녹음, 문자와 메신저 캡처본 공개로 구설수에 오른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런데 김건희 게이트에 대한 재판과 국정감사가 동시에 진행되면서 다시금 4탄, 5탄, 6탄이 줄줄이 쏟아져 나올 조짐이다. 15일 서울중앙지법 법정에선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과 관련해 김 여사와 증권사 직원이 나눈 대화 음성이 공개됐다. 증권사 자동 녹음 장치에 담긴 것으로,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이 진행되던 2010년 말부터 2011년 초 무렵이었다. ▷녹음 속 김 여사는 “사이버 쪽 사람들과 셰어(공유)해야 한다” “내가 40% 주기로 했어” “거기서 달라는 돈이 2억7000이에요”라고 말했다. 김건희 특검은 이 대목을 작전세력과의 수익 공유를 암시하는 뜻으로 해석했다. 김 여사가 그동안 주장했던 것과 달리 단순히 통장과 돈을 맡긴 것만은 아니었다는 의심이 드는 대목이다. ▷하루 전 14일 국회 국정감사장에서도 김 여사의 육성이 공개됐다. 파일 속 김 여사는 “기자님 다 파볼까 한번, 나도 그러면?”이라고 말했다. 자신의 허위 이력 기재를 취재하던 YTN 기자와 2021년 12월 나눈 전화 통화였다. 자신이 이력서를 돋보이게 하려 했지만 이를 범죄나 굉장한 부도덕으로 몰아가선 안 된다는 식의 주장도 했다. 김 여사는 그로부터 13일 뒤 대국민 기자회견에서 허위 이력 문제를 사과하면서 “조용한 내조”를 약속했다. YTN 기자와의 통화와 대국민 사과 중 어느 쪽이 김 여사의 진짜 생각이었을까. ▷같은 음성파일 속 김 여사는 기자를 향해 “내가 공무원입니까, 공인입니까. 진짜 너무 억울해요”라고 했다. 김 여사는 당시 제1야당 대선 후보의 배우자였다. 당연히 공적 감시의 대상이건만, 자신이 그런 처지라는 것도 잊은 듯했다. 그러면서 “좋아, 저도, 진짜 나도 복수를 해야지”라며 집권하면 손보겠다는 뜻을 노골적으로 내비쳤다. 1개월 전쯤 다른 유튜브 매체 기자와 나눈 통화에서 “내가 정권 잡으면 가만두지 않을 것”이라고 했던 김 여사다. 비단 이 두 건뿐이었을까. ▷김 여사를 만났던 이들은 “본인이 여론을 잘 다룬다고 착각하는 듯하다”고 기억했다. 그래서 그는 유튜버나 정치 브로커 등과 후환이 될 전화 통화를 해댔던 듯하다.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뒤에는 더욱더 도를 넘어 국회의원, 고위 공직자 등과 수시로 통화를 했다는 증언이 나오고 있다. 이런 김 여사의 그간 행적에 비춰 볼 때 얼마나 많은 ‘핵폭탄급’ 녹취가 추가로 터져 나올지 모를 일이다.장관석 논설위원 jks@donga.com}

    • 2025-10-16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횡설수설/장관석]‘후관예우’

    기업 법무팀이 소송에서 핵심적으로 살피는 것 중 하나가 재판부 배당이다. 담당 판사의 출신 대학과 인맥, 검사 경력 유무, 평판까지 꼼꼼히 본다. 요즘엔 하나가 더해졌다. 어느 로펌 출신이냐는 것이다. 재판부에 특정 로펌 출신 판사가 있으면 그 로펌 변호사를 소송팀에 끼워 넣는 경우가 적지 않다. 변호사가 같은 로펌 출신이면 유리하지 않겠느냐는 기대에서 비롯된 이른바 ‘후관예우(後官禮遇)’다. ▷이는 2013년 다양한 사회생활을 경험한 변호사 경력자를 법관으로 임용하는 법조일원화가 시행된 뒤 나타난 단면이다. 법관의 ‘친정’ 로펌 변호사를 기용하면 이들이 제출한 서면 하나라도 판사가 좀 더 신경 써서 읽어주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물론 대다수 판사는 “전혀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고 말하지만, 작은 개연성에도 솔깃해지는 게 송사를 받아든 사람들의 심리다. ▷“특정 로펌 출신 경력 법관이 생각보다 많다. 심지어 한 재판부의 좌우 배석이 같은 로펌 출신인 경우도 있었다.” 5년 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이런 지적이 나왔다. 국회는 2020년 형사소송법을 개정해 변호사 출신 판사가 퇴직 2년 이내 과거 근무 로펌 사건을 맡지 못하도록 했다. 하지만 퇴직 2년이 지난 변호사 출신 판사가 이미 수백 명을 넘는다. 이 조항만으로는 세간의 우려를 지우기 어렵다는 지적이 있다. 반면 민사소송법에는 이런 규정이 아예 없다. 법원 예규로 이를 제한하다 보니 ‘후관예우 방지 규정’이 제대로 적용되지 않은 사례가 있었다는 우려가 이어지고 있다. ▷최근 5년간 새로 임용된 법관 676명 중 로펌 변호사 출신은 355명(52.5%)이다. 김앤장을 비롯해 광장, 태평양, 세종, 율촌, 화우 등 대형 로펌 출신은 166명(24.6%)이었다. 4분의 1이 대형 로펌 출신인 것이다. 올해 임용된 법관 153명 가운데 로펌 변호사 출신과 대기업 사내변호사 출신만 83명(54%)에 이른다. 반면 국선 전담 변호사 출신은 16명이었다. 로펌도 소속 변호사가 법관에 임용되는 것을 반긴다. 로펌의 판사 배출 수는 의뢰인이나 예비 법조인의 로펌 평가 잣대로 작용하기도 한다. ▷이렇다 보니 후관예우를 막으려고 “대형 로펌 출신의 법관 임용에 상한선을 두자”는 주장도 나온다. 법원은 뽑고 보니 쏠림이 나타난 것으로 설명하지만 후관예우에 따른 재판 불공정, 이해 충돌 가능성을 그냥 둘 것이냐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한 사건 재판이 2년, 3년을 넘기는 사례도 있는 만큼 ‘퇴직 2년 제한’ 기준을 더 높이자는 목소리도 나온다. 법조일원화의 취지는 사회 경험이 부족한 젊은 판사들의 ‘책상머리 판결’을 줄이고 다양한 경험을 사법 판단에 반영하려는 데 있다. 법원이 법관 선발 기준과 절차를 더 촘촘히 다듬어야 한다는 의견에 더 귀 기울여야 한다.장관석 논설위원 jks@donga.com}

    • 2025-10-13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횡설수설/장관석]檢이 뭉갠 세무서장 비리, 13년 만에 1심 실형

    2012년 2월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대는 윤우진 당시 서울 용산세무서장에 대한 내사를 벌였다. 육류 수입업자 김모 씨로부터 금품 수수 의혹이 불거지면서다. 윤 전 서장은 경찰 수사가 본격화하자 같은 해 8월 태국으로 도피했다가 불법 체류 혐의로 체포돼 2013년 국내로 압송됐다. 이때만 해도 1심 판결이 수사 시작 13년 만에 나올 줄은 누구도 예상치 못했을 것이다. ▷옛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출신 검사들에게 윤 전 서장은 꽤 알려진 이름이다. 그는 윤대진 전 검사장의 친형이다. 윤석열, 윤대진 등 당시 특수수사통 부장검사 두 사람이 ‘대윤·소윤’으로 불리며 가깝게 지내던 때다. 검사들과 친분도 자연스레 넓어졌다. 윤 전 대통령은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장으로 근무할 당시 언론과의 통화에서 “변호사에게 윤 전 서장을 한번 만나 보라고 한 적 있다”고 말했다가 변호사법 위반 논란이 일기도 했다. 검찰 핵심 간부가 변호인을 소개하는 일은 일반인으로선 상상하기 힘든 일이다. ▷2년 뒤 2015년 서울중앙지검 형사3부가 윤 전 서장 사건에 내린 결론은 무혐의였다. 육류업자 김 씨가 직원을 통해 5만 원권 200매를 건넸다는 의혹에는 “제보자 진술이 바뀌어 의심스럽다”고 했고, 세무조사를 종결해 줬다는 특혜 의혹에는 “그렇게 볼 증거가 없다”고 했다. 이런 불기소 이유는 공개되지 않았다가, 6년이 흐른 뒤 불기소 결정서가 언론을 통해 공개되고서야 알려졌다. 법조계를 중심으로 “윤 전 서장을 기소해 법원 판단을 받아볼 여지가 충분했는데도 검찰이 관련자 진술의 신빙성을 낮게 봤다”는 비판이 나왔다. 검찰이 윤 전 서장이 접대를 받은 의혹이 있는 골프장 등에 대한 경찰의 압수수색 영장 신청을 여러 차례 기각한 점이 더해져 ‘수사를 뭉갠 것 아니냐’는 의혹이 커졌다. ▷무혐의 처분에 따라 서울행정법원은 2015년 그에 대한 파면 처분을 취소했다. 국세청도 항소하지 않아 윤 전 서장은 복직해 정년을 마쳤다. 퇴임 후 한 세무법인의 고문으로 활동할 때 “문지방이 닳을 정도”로 손님이 몰렸다는 말이 돌았다. “동생이 검사장으로 승진했으니, 형이 너무 왕성히 활동하면 동생이 오해를 살 수 있으니 해외로 나가 있으라”고 조언이 나왔을 정도였다. ▷결국 윤 전 대통령이 윤 전 서장에게 변호사를 소개했다는 녹음파일을 계기로 촉발된 재수사에서 윤 전 서장이 뇌물수수 혐의로 2021년 기소됐다. 서울중앙지법은 지난달 30일 윤 전 서장에게 징역 3년, 벌금 5000만 원, 추징금 4353만 원을 선고했다. 건강 상태를 감안해 법정 구속은 피했지만, 실형을 선고받은 것이다. 세무서장 시절 육류 수입업자 김 씨로부터 골프·식사 비용 대납을 받은 혐의가 이제야 유죄로 판단됐다. 검찰이 수사를 부당하게 뭉갰다는 사실을 법원이 확인한 셈이다.장관석 논설위원 jks@donga.com}

    • 2025-10-01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횡설수설/장관석]“기업총수 국감에 마구잡이로 부르지 말자”

    지난해 10월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대한 국정감사에는 KT, 구글, SK텔레콤, 애플코리아, 삼성전자, 현대자동차그룹, 넷플릭스 등 기업 경영진이 대거 출석했다. 국회 과학기술방송정보통신위가 역대 최대 규모의 증인·참고인(161명)을 채택했기 때문이다. 국감장이 의원과 보좌진, 부처 장차관, 산하 기관 사람들로 빼곡했다. 상당수는 국감장 밖에서 대기해야 했다. 비단 과방위만의 얘기가 아니었다. 여타 상임위들도 경영 현안을 챙겨야 할 기업인들을 대거 불러냈던 것이다. ▷하지만 올해부턴 기류가 바뀌는 듯하다.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 등 지도부가 최근 “야당 때처럼 기업 총수를 국감 증인으로 마구잡이 신청하지는 말자”고 의원들에게 당부했다고 한다. 다음 달 13일 시작하는 국정감사에서 대기업 총수에 대한 증인·참고인 신청을 할 때 “국정의 책임 있는 주체인 여당답게 하자”고 했다는 것이다. 민주당이 갖고 있던 반기업 이미지에 대한 개선 필요성도 작용했을 것이다. ▷대통령실도 같은 생각이라고 한다. 10월 말 예정된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와 국정감사 시기가 겹친다. 왕성하게 진행될 민간 외교에 기업인들의 참여와 도움이 필요한 때이기도 하다. 한미 조선 협력 마스가(MASGA) 프로젝트를 비롯해 관세, 공급망, 안보 등 외치는 물론이고 청년 채용 등 민생분야에서도 정부와 기업의 협력이 진행 중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재계 총수들을 만나 ‘원팀’ 정신을 강조한 것도 이런 이유일 것이다. ▷그럼에도 재계에서는 아직 안심할 수 없다는 반응이 나온다. “일부 ‘강경파’ 의원들이 어디로 튈지는 알 수 없는 것 아니냐”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재계 총수와 대표들을 일단 부르고 보는 식의 증인 채택 관행에 따라 마구잡이로 불려 나왔던 기억과 맞닿아 있다. 이들이 나올 때마다 카메라 세례를 받으며 장시간 대기하지만, 정작 의원들의 질의는 핵심을 비켜간 일이 많았다. 기업 총수나 대표를 불러 놓고는 호통치며 질책하는 사진과 영상을 남겨 의정 활동에 활용하려는 구태가 재연될 수 있다는 우려다. ▷국감을 준비하는 의원들은 “그나마 국감이라도 있어서 이들이 출석을 하고, 자료를 제출하는 면이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국회가 영향력을 과시하거나 민원 해결의 창구로 활용하기 위해 기업인들을 국감 증인 또는 참고인으로 소환하는 관행은 이제 재고해야 할 때가 왔다. 다짜고짜 사람을 불러 호통치는 국감이 아니라 쟁점을 정확히 파고드는 국감이라야 신뢰를 얻는다. 꼭 필요한 사람은 증인으로 불러야겠지만 질문이 겉핥기에 그치거나 호통만 칠 거라면 차라리 안 부르는 게 더 나을 것 같다.장관석 논설위원 jks@donga.com}

    • 2025-09-23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횡설수설/장관석]‘성공보수 약정 무효’ 10년… ‘전관 시장’은 여전

    대검찰청 차장검사를 지낸 임정혁 변호사와 부동산 개발업자인 정바울 아시아디벨로퍼 회장이 2023년 6월 변론 계약을 맺었다. 백현동 개발 비리 수사로 구속 위기에 몰리자 다급해져 고위 검찰 출신 변호사를 찾던 때였다. 착수금으로 1억 원, 검찰이 구속영장을 청구하지 않으면 9억 원을 ‘변호사 보수’로 지급한다는 ‘특약’을 맺었다. 사실상의 ‘성공보수’ 계약이었다. ▷당시 검찰을 떠난 지 8년이 된 임 변호사가 한 일은 대검 청사를 방문해 대검 간부를 만나 “정 회장 건강이 좋지 않으니 불구속 수사를 요청한다”는 의견서를 낸 것이다. 서울중앙지검 수사팀을 두 차례 찾았지만 방문 변론이 거절당한 뒤였다. 그가 이 밖에 무엇을 더 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검찰 내부 사정을 들여다볼 수 있는 전관(前官)의 활동은 잘 드러나진 않는다. 이들이 보이지 않는 힘을 써줄 거라는 환상은 구속은 면하고픈 의뢰인의 욕망을 자극했을 것이다. ▷기대와 달리 정 회장은 구속됐고, 임 변호사까지 기소됐다. 임 변호사가 “내가 대검에 연락해 사건을 덮어줄 테니 수임료나 넉넉히 준비하라”고 제안했다는 누군가의 진술이 있었는데, 이게 변호사법 위반이라고 했다. 총 10억 원이란 액수가 컸을 뿐만 아니라, 검사가 구속영장을 청구하지 않게끔 임 변호사가 영향력을 행사하거나 청탁하려는 성격이 있다고 본 것이다. ▷이 무렵 정 회장이 경찰, 검찰 단계에서 전관 변호사 10여 명에게 쓴 비용만 28억 원을 넘는다. 7억7000만 원, 6억6000만 원을 받은 변호사도 있다. 말 그대로 ‘서초동 변호사 쇼핑’을 했다. “전관이 너무 많아 오히려 검찰이 안 좋게 본다”는 걱정까지 할 정도였다. 하지만 이런 큰 변호사 수임료는 2심 재판부가 “임 변호사의 수임료가 다른 변호사에 비해 과도하지 않다”며 무죄를 선고한 배경이 됐다. “정당한 변론 활동 범위를 넘었다”며 유죄를 선고한 1심이 뒤집혔다. 임 변호사 기소에 결정적인 진술을 했던 사람의 말이 조금씩 달라진 사정도 감안됐다.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형사 사건 성공보수 약정은 무효’라고 판단한 지 10년이 흘렀다. 하지만 현실에선 변종 계약이 넘쳐난다. 일부 의뢰인들은 형사 성공보수 약정을 체결하고 좋은 결과를 얻은 뒤 오히려 무효를 주장하며 수임료 지급을 거부하기도 한다. 이럴 땐 오히려 변호사가 돈을 떼이는 사례도 있다. 법조계에선 “차라리 양성화하자”는 주장도 나온다. 전관 변호사들은 더 좋을 것이다. 심지어 법원조차 “착수금 1억 원, 성공보수 9억 원은 유효, 무효를 떠나 흔히 체결되는 수임 계약”이라고 판단했다. 구속만 면하게 해주면 보너스 9억 원이라니, 전관 변호사 시장은 여전히 도박판을 닮았다.장관석 논설위원 jks@donga.com}

    • 2025-09-18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횡설수설/장관석]그날의 한덕수

    12·3 비상계엄의 밤, 국정 2인자였던 한덕수 당시 국무총리의 행적에는 모호한 대목이 많다. 그는 계엄 포고령을 “받은 기억이 없다”고 했고, 계엄 선포문은 “계엄 해제 후 사무실로 출근해 양복 뒷주머니에 있는 것을 그때 처음 봤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비상계엄 선포 직전 국무회의가 열린 대통령실 5층 대접견실과 복도 폐쇄회로(CC)TV에 담긴 영상에는 해명과 다른 게 여럿 있었다. ▷특검 설명에 따르면 영상에서 한 전 총리는 김용현 당시 국방부 장관과 함께 계엄 선포를 위한 국무회의 참석 인원을 세는 듯했다. 김 전 장관이 손가락으로 넷과 하나를 표시했는데, 특검은 국무회의 정족수까지 “4명 남았다”, “이제 1명 남았다”는 대화 장면으로 해석했다. 한 전 총리는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에게 전화해 국무회의 참석을 독촉했다고 한다. 그날 밤 국무회의가 끝나자 한 전 총리는 “회의 참석 의미로 서명하는 게 맞지 않겠나”라며 장관들에게 계엄 선포문 서명까지 권했다. ▷조태열 전 외교부 장관이 계엄에 반대하며 문건을 회의실에 두고 나가자, 한 전 총리가 이를 직접 수거하는 장면도 CCTV에 찍혔다. 그는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과 단둘이 남아 16분 동안 계엄 관련 문건을 검토했다. 이 포고령에는 국회 폐쇄, 정치활동 전면 금지, 언론·출판 통제, 전공의 처단 등 듣기만 해도 수용할 수 없는 위헌·위법적 내용이 다수 적혀 있었다. 계엄 선포 전인 오후 8시경 대통령 집무실에서 포고령을 가장 빨리 받은 사람도 그였다. ▷12월 4일 오전 1시 2분 국회는 계엄 해제를 가결했다. 한 전 총리는 즉시 국무회의를 소집했어야 하지만, 소집을 건의하지 않았다. 국무조정실장이 “계엄을 해제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묻자 한 전 총리는 어떤 이유에서인지 “기다리라”며 시간을 끌었다. 야당은 이런 시간 끌기를 추가 계엄 가능성 모색 아니냐는 의심을 해 왔다. 결국 계엄 해제 국무회의는 오전 4시 27분에 열렸다. 선포는 재촉하고 해제는 지연했다는 게 특검의 판단이다. ▷한 전 총리는 결국 불법 비상계엄에 절차적 정당성을 보탠 ‘내란 우두머리 방조’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그는 경제기획원 사무관으로 출발해 경제부총리, 주미 대사, 두 번의 국무총리를 거친 50년 관료다. 50년 공직 본능일까. 그는 위헌적 계엄에 제동을 걸기보다는 절차를 따르는 쪽을 택했다. 기억이 없다며 얼버무렸던 해명도 특검이 CCTV를 들이민 뒤에야 “윤석열 전 대통령에게 선포문을 받았다”고 실토했다. 2022년 5월 국회 인준 직후 “책임 총리로서 혼신의 힘을 다하겠다”던 그였다. 불법 계엄의 밤, 대통령의 폭주를 막을 ‘최고 헌법기관’인 그에게서 책임지는 모습은 끝내 찾아보기 어려웠다.장관석 논설위원 jks@donga.com}

    • 2025-08-31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횡설수설/장관석]건진법사 관봉권 띠지 잃어버렸다는 검찰

    검찰은 지난해 12월 건진법사 전성배 씨 자택에서 5만 원권 3300장(1억6500만 원)을 압수했다. 그때 검찰이 돈보다 더 주목한 것은 지폐를 묶어놓은 띠지였다. 띠지에는 일련번호와 출처가 기록돼 있는데, 돈의 출처를 밝혀내고 전 씨가 친분을 앞세우던 김건희 여사의 이권 개입 의혹을 밝혀낼 중요 단서였다. 이 가운데 5000만 원은 ‘한국은행’이 적힌 비닐로 포장된 관봉권(官封券)이었다. 그러나 돈을 묶는 띠지들이 검찰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일반인에게 생소한 관봉권은 한국조폐공사가 한국은행에 납품한 그대로의 돈다발이다. 관봉 띠지에는 검수 날짜, 담당자 코드, 사용 장비까지 표시돼 있다. 압수한 띠지에는 ‘2022년 5월 13일’이라는 날짜가 찍혀 있었는데, 윤석열 전 대통령 취임 사흘 뒤다. 과거 대통령실 특수활동비 사건에서 관봉이 종종 등장했기에 “대통령실 특수활동비 아니냐”는 의문이 나왔다. 당시 전 씨가 그 큰 액수를 놓고도 “누구에게서 받은 돈인지 기억나지 않는다”고 답하던 때였다. ▷사라진 것은 띠지만이 아니다. 관봉권을 비닐로 포장한 뒤 붙이는 스티커도 함께 없어졌다. 그나마 스티커는 사진 촬영을 해 뒀는데, 띠지는 그마저도 없었다고 한다. 증거품인 돈다발은 현재 고무줄로만 묶여 있다. 서울남부지검은 “경력이 짧은 직원이 현금만 보관하면 되는 줄 알고 실수로 버렸다”고 해명했다. 그 직원은 금융범죄 수사 중점 검찰청의 핵심 부서인 가상자산범죄합동수사부 소속이었다. 이런 곳에서 초보적 실수가 나왔다는 말을 얼마나 믿어야 할지 모르겠다. 검찰 내부에서조차 “검찰 직원인 게 부끄럽다”는 말이 나올 지경이다. ▷현금 뭉치는 김건희 특검이 수사하는 국민의힘과 통일교 유착 의혹에 관련됐을 가능성도 있다. 그런데도 검찰은 이를 수사하는 김건희 특검에 넘기지 않았다. 증거가 사라진 걸 파악한 것도 압수 4개월이 지나서였고, 감찰도 흐지부지됐다. 당시 수사 지휘부와 대검찰청 지휘부가 쉬쉬한 것 아니냐는 의혹까지 제기된다. 사태의 심각성을 파악한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19일 주요 단서 유실과 부실 대응에 대한 진상 규명과 책임자 감찰을 지시했다. ▷한때 검찰은 가혹하고 혹독하게 수사한다는 뜻에서 ‘가찰(苛察)’로 불린 때가 있었다. 그랬던 검찰이 뇌물 사건의 수사 단서를 잃어버리는 잘못까지 하는 지경이다. 띠지 정보로 자금 경로가 곧장 드러나지 않는다 해도 수사 단서 분실 자체가 검찰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리는 일이다. 게다가 이런 무능함이 왜 검찰총장 출신 윤석열 전 대통령 부부 사건에서 드러났는지도 의심스럽다. 검찰의 기본이 이렇게 흔들린다면, 여권의 ‘검찰 해체’ 목소리에 무슨 말로 스스로를 변호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장관석 논설위원 jks@donga.com}

    • 2025-08-19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러 “동맹과 군사협력 확대” 北에 장거리미사일 지원 시사

    세르게이 럅코프 러시아 외교부 차관이 27일(현지 시간) “동맹국들과 군사 협력 문제가 상당히 확대됐다”며 러시아 장거리 미사일의 동맹국 이전을 거론했다. 정부는 러시아가 첨단 군사기술을 북한에 이전하는 ‘레드라인’을 넘으면 우크라이나 살상 무기 지원 검토로 맞대응하겠다는 방침이다. 북-러 밀착에 맞서 정부가 한미일 협력을 강조하고 나선 가운데 윤석열 대통령은 이날 방한한 애브릴 헤인스 미 국가정보국장(DNI)을 접견하고 공동 대응 방안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럅코프 차관은 27일 러시아 국영 방송사인 로시야1의 TV 프로그램에 출연해 장거리 미사일을 동맹, 파트너 국가에 이전하는 방안을 언급하면서 “러시아의 동맹들, 전략적 파트너들과의 군사 및 군사기술 협력 문제가 상당히 확대됐고, 논의 영역도 지리적으로 넓어졌다”고 했다. 그는 “동맹과 전략적 파트너란 어느 나라인가”란 질문엔 “지도를 보라”며 “그걸 이해하기 위해 깊이 추론할 필요는 없다”고 했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러시아 발언에 일일이 대응하거나 반응하지 않겠다”며 “러시아 외교차관이 무슨 얘기를 하는지 모르겠지만 말과 실제 행동은 또 다른 이야기”라고 선을 그었다. 군 안팎에선 러시아가 북한에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실전 운용의 핵심인 다탄두 및 대기권 재진입 기술을 넘겨줄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순항 미사일인 ‘이스칸데르-K’를 넘겨줄 가능성도 거론된다. 윤 대통령은 미국 16개 정보기관을 총괄하는 ‘정보 수장’ 헤인스 국장을 용산 대통령실에서 접견했다. 헤인스 국장의 방한은 2021년 10월 이후 2년 8개월 만이다. 러, 北과 본격 군사밀착 시사… 韓日 “지역-세계 안보 위협” “전략적 파트너와 협력 주제 확대”러, 北에 순항미사일 제공여부 주목尹-美 DNI 국장과 협력 논의 등정부, ‘한미일 3각 안보협력’ 강화“최근 러시아와 동맹국, 전략적 파트너의 군사, 군사기술 협력 주제가 확대됐다. (군사 협력을) 논의하는 지역도 넓어졌다.” 세르게이 럅코프 러시아 외교부 차관은 27일(현지 시간) 러시아 국영 방송사 ‘로시야1’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밝혔다. 그는 러시아의 장거리 미사일을 동맹국에 이전하는 협상 상황에 대해 묻는 질문에 이렇게 답한 것. 북한은 최근 러시아와 ‘포괄적 전략 동반자 조약’을 맺으며 군사동맹을 복원했다. 럅코프 차관이 북한에 장거리 미사일을 제공하거나 기술을 넘길 가능성을 열어 놓은 것으로도 해석된다. 러시아가 북한과 군사 밀착을 이어가는 가운데 우리 정부는 한미일 3각 안보 협력을 강화하고 나섰다. 윤석열 대통령은 28일 미국 16개 정보기관을 총괄하는 ‘정보 수장’ 애브릴 헤인스 미 국가정보국(DNI) 국장을 만나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김홍균 외교부 1차관도 오카노 마사타카(岡野正敬) 일본 외무성 사무차관과 한일 차관 전략대화를 갖고 북-러 군사 밀착을 “지역과 세계 안보를 위협하는 행위”라고 규탄했다. ● “北에 미사일 제공 가능성 주시” 럅코프 차관은 인터뷰에서 미국이 최근 우크라이나에 중거리 다연장 로켓 발사대 등을 제공하겠다고 밝힌 사실을 언급하면서 “대응하는 군사·기술적 조치가 필요할지 고심하고 있다”고 했다. 럅코프 차관은 ‘(군사 협력을 논의 중인) 동맹과 전략적 파트너가 정확히 어느 나라인가’라는 질문에는 “지도를 보라”며 “깊이 추론할 필요 없다”고 답했다. 럅코프 차관이 러시아의 장거리 미사일을 동맹국에 제공하는 방안을 언급한 건 이달 들어 이번이 세 번째다. 그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 방북 직전인 18일과 당일인 19일 러시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여러 파트너 국가와 장거리 무기 배치를 논의 중”이라고 했다. 푸틴 대통령도 북-러 회담을 마친 뒤인 20일 “초정밀 무기의 대북 공급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군 전문가들은 러시아가 북한에 지상 발사 순항 미사일인 ‘이스칸데르-K’를 넘겨줄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이스칸데르-K’는 사거리가 500∼2500km로 알려져 있다. 러시아가 이 미사일을 북한에 제공한다면 북한은 북-러 국경 최북단에서 주한 미군기지는 물론 오키나와를 포함한 전체 주일 미군기지를 타격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군 안팎에선 러시아가 북한에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인 ‘토폴-M’이나 ‘야르스’ 기술을 제공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이춘근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초빙전문위원은 “북한이 러시아판 GPS인 글로나스(GNSS)의 도움을 받아 ICBM의 타격 정확도를 높이려 할 수 있다”고 했다. 럅코프 차관의 발언을 우리 정부의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 지원 가능성 등을 차단하기 위한 ‘협박 카드’로 봐야 한다는 의견도 외교가에선 나온다. 남성욱 고려대 통일융합연구원장은 “우크라이나 근처에 (서방의) 항공모함이 오는 것을 막기 위한 카드를 꺼낸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 정부 “러시아와 소통 결과 따라 대응 수위 정할 것” 정부는 러시아가 북한에 실제 군사 기술을 이전하는 등 한-러 관계의 레드라인을 넘길지 주시하고 있다. 정부는 주요 회담 후 관련국에 회담 내용을 공유하는 ‘디브리핑(Debriefing)’에 러시아가 회담 내용에 대한 설명을 해올 것으로 보고 있다. 소통 결과에 따라 정부는 추가 강경 대응이나 우크라이나 살상무기 지원 검토 등에 대한 수위를 조절해 나간다는 입장이다. 한미일이 대북 억제력 강화를 목표로 수상·공중·수중·사이버 등 다양한 영역에서 기간을 정해 동시다발적으로 훈련하는 ‘프리덤 에지(Freedom Edge)’ 훈련은 27일에 이어 28일에도 이어졌다. 27일 시작된 이번 훈련은 29일까지 진행된다. 고도예 기자 yea@donga.com장관석 기자 jks@donga.com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 2024-06-29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野 “尹, 극우 음모론 의지” 與 “김진표 왜곡 사과를”… 회고록 공방

    윤석열 대통령이 ‘이태원 참사가 특정 세력에 의해 조작된 사건일 가능성이 있다’는 취지로 말했다는 김진표 전 국회의장의 회고록 내용을 둘러싸고 여야가 28일 정면 충돌했다. 더불어민주당은 “국정 운영을 극우 유튜버 음모론에 의지하나”라며 윤 대통령이 직접 해명할 것을 요구했다. 국민의힘은 김 전 의장을 향해 “스스로 본인 명예를 훼손하고 있다. 관심을 끌려는 의도로밖에 해석이 안 된다”며 “왜곡된 발언을 취소하고 사과하라”고 반발했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도 “김 전 의장이 긴히 할 얘기가 있다고 해서 대통령과의 독대가 이뤄진 것으로 안다”며 “이 자리 대화를 꺼내 드는 건 국가 원로로서 할 행동이 아니다. 민주당스러운 행동이다”라고 비판했다. 국민의힘 곽규택 수석대변인은 이날 “회고록 내용이 사실이라면 지난 1년 8개월 동안 민주당은 왜 이 문제를 거론하지 않았느냐”고 비판했다. 박준태 원내대변인도 “민주당 출신으로, 국회의장을 지낸 분이 그런 말씀을 하니 너무 실망스럽다”고 했다. 국민의힘 당 대표 후보로 출마한 한동훈 전 비상대책위원장은 이날 부산 남구 유엔기념공원에서 기자들과 만나 “대통령실이 (대통령이) 그런 취지의 말씀을 하신 적이 없다고 단호한 입장을 낸 걸 봤다”며 “그 말을 신뢰한다”고 했다. 국민의힘 김재섭 의원은 “대통령과 국회의장이 나눈 이야기를 아직 대통령 임기 중에 이렇게 밝히는 것이 옳은가”라며 “당연히 김 전 의장이 잘못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대통령실이 (해석의 여지가 없도록) 분명하게 선을 그어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민주당은 총공세에 나섰다. 박찬대 당 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는 이날 “참사 이후 윤 대통령이 보인 비정상적인 행보를 보면 김 전 의장의 회고록 내용이 사실일 가능성이 매우 높아 보인다”며 “대통령실의 해명만 듣고 그냥 넘어가기 어렵다. 윤 대통령이 직접 입장을 밝혀야 한다”고 했다. 윤 대통령과 김 전 의장이 만났을 당시 민주당 원내대표였던 박홍근 의원도 페이스북에 “이태원 참사에 관한 대통령의 매우 잘못된 인식을 드러낸 대화도 저는 (당시 김 전 의장으로부터) 생생히 전해 들어서 지금도 메모장에 그대로 남아 있다”며 “2022년 12월 5일 국가조찬기도회에 두 분이 함께 참석한 뒤 오전 9시 15분경부터 30∼35분가량 따로 만나서 나눴다는 내용”이라고 주장했다. 민주당 이태원참사특별대책위원회도 기자회견을 열고 “국회의장 회고록의 무게를 생각하면 그런 얘기를 듣지도 않고 회고록에 쓸 리는 만무하다”며 “신속히 진상 규명을 해야 한다”고 했다. 김지현 기자 jhk85@donga.com김성모 기자 mo@donga.com장관석 기자 jks@donga.com}

    • 2024-06-29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野 “김홍일, 방송장악 쿠데타” 與 “특정정파 선동도구 막을것”

    야권이 김홍일 방송통신위원장 탄핵안을 발의한 지 하루 만인 28일 방송통신위원회가 KBS·MBC·EBS 공영방송 이사 선임 계획을 의결한 것을 두고 여야가 정면충돌했다. 더불어민주당 박찬대 원내대표는 “김 위원장이 끝내 방송 장악 쿠데타를 시도하고 있다”며 “강도가 경찰 출동하려 하니 불까지 지르겠다고 나선 것과 무엇이 다른가”라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국민의힘 이상휘 미디어특위 위원장은 “방송과 언론이 어느 정파의 특정 전유물, 선전·선동 도구가 되는 걸 막겠다”고 맞섰다. 이날 오전 방통위 전체회의가 열린 정부과천청사 앞에는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 소속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들이 서로 5m 간격을 두고 맞불 집회를 벌이기도 했다. 민주당은 김 위원장을 직권남용 등으로 고발하는 한편 다음 달 초 국회 본회의에서의 탄핵안 처리에 속도를 내겠다는 방침이다. 여권은 탄핵으로 인한 직무정지 사태를 막기 위해 김 위원장을 자진 사퇴시킨 뒤 후임자를 임명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野, ‘식물 방통위’ 노려” 민주당 과방위 간사인 김현 의원은 이날 “방통위가 이사 선임 계획을 의결한 건 국회와 맞짱을 뜨겠다는 것”이라며 “국회의원 187명이 탄핵안을 발의했는데, 회의를 통해 의사결정을 하겠다는 것은 정면 도전”이라고 했다. 민주당 의원들은 이날 과천정부청사를 항의 방문해 김 위원장과의 면담을 요청했으나 출입증을 발급받지 못했다. 민주당은 “5인 합의제 기관인 방통위가 ‘2인 체제’로 이날까지 총 75건의 안건을 의결한 것은 위법하다”며 김 위원장과 이상인 부위원장을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에 직권남용과 직무유기 혐의로 고발했다. 민주당 소속 최민희 과방위원장은 “방통위의 오늘 이사 선임 계획은 불법 절차에 의한 것인 만큼 오늘 결정은 무효”라고 했다. 김 위원장과의 면담이 불발된 것과 관련해서도 “김 위원장과 부역 공무원을 전원 고발할 것”이라고 했다. 야당은 과방위 차원에서 ‘방송장악 국정조사’도 실시하겠다고 예고했다. 민주당은 김 위원장에 대한 탄핵안 처리에도 속도를 낸다는 방침이다. 민주당은 전날 조국혁신당·진보당·사회민주당·새로운미래 등 야5당과 함께 발의한 김 위원장 탄핵안을 다음 달 3, 4일경 본회의에서 처리한다는 목표다. 탄핵안은 국회법에 따라 7월 2일 본회의에 보고된 후 24∼72시간 내 표결되는데, 이를 통해 방통위를 사실상 ‘식물 상태’로 만든다는 계획이다. 민주당 계획대로 김 위원장의 탄핵안이 가결될 경우 ‘2인 체제 방통위’에 이 부위원장만 남기 때문에 안건 의결 자체가 불가능해진다.● “與, 후임 위원장이 의결 셈법” 여권에서는 김 위원장 탄핵으로 인한 방통위 무력화를 막기 위해 김 위원장이 자진 사퇴한 뒤 새 위원장을 임명하는 게 현실적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8월부터 MBC 방송문화진흥회와 KBS, EBS 이사진 임기가 차례로 끝나는데, 김 위원장이 탄핵으로 직무 정지될 경우 정족수 부족으로 새 이사를 임명할 수 없다. 이를 피하기 위해 김 위원장의 자진 사퇴 후 후임자를 지명해 공영방송 이사 임기 만료 시점에 맞춰 의결에 나서겠다는 것. 이럴 경우 문재인 정부가 임명한 현 방문진 이사를 친여 성향 인사로 교체하는 게 가능해진다. 여권 관계자는 “김 위원장도 탄핵소추안 처리가 현실화할 경우엔 자진 사퇴할 의사를 내비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국민의힘은 야당의 탄핵안을 저지하기 위한 여론전에도 나섰다. 곽규택 수석대변인은 논평에서 “민주당이 또다시 습관성 탄핵 카드를 꺼내 들었다”며 “방통위를 마비시켜 공영방송을 장악해 손아귀에 틀어쥐겠다는 의도”라고 했다. 국민의힘 과방위 간사인 최형두 의원은 맞불 기자회견에서 “이재명의 민주당이 방통위를 방문해 물리력으로 겁박하겠다는 긴박한 상황”이라며 “(야당의) 불법적이고 겁박까지 행사하는 비겁하고 노골적인 행태를 반드시 저지하겠다”고 했다. 대통령실은 김 위원장의 거취 문제에 대한 언급을 자제하면서도 야당의 탄핵안에 대해 “방통위 무력화 시도”라고 비판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민주당이) MBC를 지키기 위해 정부 부처를 무력화시키고 있다”며 “김 위원장의 사퇴가 불가피해지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고 했다. 윤다빈 기자 empty@donga.com이승우 기자 suwoong2@donga.com장관석 기자 jks@donga.com}

    • 2024-06-29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러 “동맹과 군사협력 확대” 北에 장거리미사일 지원 시사

    세르게이 랴브코프 러시아 외무부 차관이 27일(현지 시각) “동맹국들과 군사 협력 문제가 상당히 확대됐다”며 러시아 장거리 미사일의 동맹국 이전을 거론했다. 정부는 러시아가 첨단 군사기술을 북한에 이전하는 ‘레드라인’을 넘으면 우크라이나 살상 무기 지원 검토로 맞대응하겠다는 방침이다. 북-러 밀착에 맞서 정부가 한미일 협력을 강조하고 나선 가운데 윤석열 대통령은 이날 방한한 애브릴 헤인스 미 국가정보국(DNI) 국장을 접견하고 공동 대응 방안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랴브코프 차관은 27일 러시아 국영 방송사인 로씨야1의 TV 프로그램에 출연해 장거리 미사일을 동맹, 파트너 국가에 이전하는 방안을 언급하면서 “러시아의 동맹들, 전략적 파트너들과의 군사 및 군사기술 협력 문제가 상당히 확대됐고, 논의 영역도 지리적으로 넓어졌다”고 했다. 그는 “동맹과 전략적 파트너란 어느 나라인가”란 질문엔 “지도를 보라”며 “그걸 이해하기 위해 깊이 추론할 필요는 없다”고 했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러시아 발언에 일일이 대응하거나 반응하지 않겠다”며 “러시아 외무차관이 무슨 얘기를 하는지 모르겠지만 말과 실제 행동은 또다른 이야기”라고 선을 그었다. 군 안팎에선 러시아가 북한에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실전 운용의 핵심인 다탄두 및 대기권 재진입 기술을 넘겨줄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순항 미사일인 ‘이스칸데르-K’를 넘겨줄 가능성도 거론된다.윤 대통령은 미국 16개 정보기관을 총괄하는 ‘정보 수장’ 헤인스 국장을 용산 대통령실에서 접견했다. 헤인스 국장의 방한은 2021년 10월 이후 2년 8개월 만이다.고도예 기자 yea@donga.com장관석 기자 jks@donga.com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 2024-06-28
    • 좋아요
    • 코멘트
  • 국세청장 강민수 지명… 국무1차장 김종문

    윤석열 대통령이 27일 김창기 국세청장의 후임으로 강민수 서울지방국세청장을 낙점하고 신임 국세청장 후보자로 지명했다고 밝혔다. 윤 대통령은 김종문 대통령국정과제비서관을 국무조정실 1차장으로 승진 발령했다. 신임 소방청장에는 허석곤 부산 소방재난본부장이, 기상청장에는 장동언 기상청 차장이 내정됐다. 윤 대통령은 이달 인사를 시작으로 다음 달까지 장차관급 주요 인선을 단행할 방침이다. 대통령실은 이날 오전 윤 대통령이 이 같은 내용의 차관급 인사를 단행했다고 공지했다. 여권 고위 관계자는 “윤 대통령이 강 청장을 신임 국세청장 후보자로 최종 낙점했다”고 밝혔다. 대통령실은 강 후보자에 대해 “세제정책 전반에 대한 풍부한 경험과 탁월한 소통 역량을 토대로 국세청 주요 과업을 내실 있게 추진해 나갈 적임자”라고 밝혔다. 경남 창원 출신의 강 후보자는 부산 동래고와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강 후보자는 행시 37회로 공직 생활을 시작한 후 국세청 법인납세국장, 징세법무국장, 기획조정관, 대전지방국세청장 등 주요 보직을 거쳤다. 국세청장은 차관급이지만 핵심 권력 기관장으로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쳐야 한다. 신임 국무 1차장에 내정된 김 비서관은 행시 37회로 국무조정실 규제조정실장, 규제총괄정책관, 기획총괄정책관 등 주요 보직을 두루 거쳤다. 대통령실 비서관으로서 윤석열 정부의 국정과제 추진을 총괄한 점을 인정받았다. 신임 장동언 기상청장 내정자는 미국항공우주국(NASA) 연구원 출신이다. 기상청 기획조정관 등 23년간 기상청 내 주요 보직을 거쳤다. 신임 허석곤 소방청장 내정자는 30여 년간 소방공무원으로 재직하며, 부산 소방재난본부장 및 인천·경남·울산 소방본부장을 지낸 소방안전 전문가로 평가된다. 장관석 기자 jks@donga.com}

    • 2024-06-28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단독]국세청장 강민수-국조실 1차장 김종문-기상청장 장동언

    윤석열 대통령이 27일 김창기 국세청장의 후임으로 강민수 서울지방국세청장을 낙점하고 27일 신임 국세청장 후보자로 공식 지명했다. 아울러 윤 대통령은 김종문 대통령국정과제비서관을 국무조정실 1차장으로 승진 발령하는 인사를 단행했다. 기상청장에는 장동언 현 기상청 차장이, 소방청장에는 허석곤 부산시 소방재난본부장이 내정됐다.여권 고위 관계자는 이날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2022년 6월 임명된 김창기 국세청장 후임으로 강민수 서울지방국세청장이 검증을 받아온 결과 윤 대통령이 그를 최종 낙점했다”고 말했다. 경남 창원 출신의 강 청장은 부산 동래고와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행시 37회로 서울지방국세청 조사3국장, 기획조정관, 서울지방국세청장 등 주요 직위를 두루 역임했다. 국세청장은 차관급이지만 핵심 권력기관장으로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쳐야 한다. 대통령실은 “세제정책 전반에 대한 경험과 소통 역량을 토대로 국세청 주요 과업을 내실 있게 추진해 나갈 적임자”라고 소개했다.신임 국조실 1차장에 임명된 김 비서관은 1971년생으로 고려대 행정학과와 서울대 행정학 석사를 취득했다. 행시 37회로 국무조정실 규제조정실장, 규제총괄정책관, 기획총괄정책관 등을 두루 거쳤다. 대통령국정과제비서관으로서 윤석열 정부의 국정과제 추진을 총괄해왔다. 대통령실은 “풍부한 국정기획 경험, 추진력과 소통 능력을 바탕으로 국무총리를 보좌해 현안을 조율해 나갈 적임자”라고 설명했다.신임 기상청장에는 장동언 기상창 차장이 낙점됐다. 그는 기상청 기획조정관과 기획재정담당관 등을 지냈다. 1965년생으로 서울대 대기과학를 졸업했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나사) 연구원 출신으로 23년간 기상청 주요 보직을 거쳤다.허석곤 신임 소방청장은 부산대 해양학과 출신으로 30여년간 소방공무원으로 재직했다. 부산소방재난본부장 등 주요 보직을 지낸 소방안전 전문가로 평가된다.8월 10일 임기를 마치는 윤희근 경찰청장의 후임 인사를 위한 작업도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조지호 서울청장이 우선 유력한 후보로 거론된다. 경북 청송 출신인 조 청장은 정부 출범과 함께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 파견돼 인사 검증 업무를 맡았다. 경찰청 정보국장과 차장 등을 지냈다. 아울러 우철문 부산경찰청장이 비중 있는 경찰청장 후보로 거론되며 검증 절차가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여권 고위 관계자는 “폭넓게 알아보고 있는 상황”이라고 했다.장관석 기자 jks@donga.com전주영 기자 aimhigh@donga.com}

    • 2024-06-27
    • 좋아요
    • 코멘트
  • 국세청장 강민수-오호선 검토… 경찰청장 조지호-우철문 거론

    윤석열 대통령이 국세청장과 경찰청장 등 사정기관과 장차관급 주요 인선을 이르면 다음 달 진행할 것으로 알려졌다. 여권 고위 관계자는 26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2022년 6월 임명된 김창기 국세청장 후임으로 강민수 서울지방국세청장이 검증을 받고 있다”며 “최종 낙점과 발표 시기 등에는 윤 대통령의 결심이 남아 있다”고 말했다. 경남 창원 출신의 강 청장은 부산 동래고와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경쟁 상대로 거론되는 오호선 중부지방국세청장 등도 인사 검증을 마쳤다고 한다. 8월 10일 임기를 마치는 윤희근 경찰청장의 후임 인사를 위한 작업도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조지호 서울청장이 우선 유력한 후보로 거론된다. 경북 청송 출신인 조 청장은 정부 출범과 함께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 파견돼 인사 검증 업무를 맡았다. 경찰청 정보국장과 차장 등을 지냈다. 아울러 우철문 부산경찰청장이 비중 있는 경찰청장 후보로 거론되며 검증 절차가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여권 고위 관계자는 “폭넓게 알아보고 있는 상황”이라고 했다. 국회 원 구성 협상이 완료됨에 따라 대통령실은 다음 달 중순경 순차 개각을 단행한다. 인선 발표 시기는 외교 일정 등을 고려하면 7월 중순 이후가 될 전망이다. 교체 대상 장관은 정권 출범 때부터 함께해 온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이종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한화진 환경부 장관,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 등이다. 이상민 장관 등 일부 인사는 유임될 수도 있다. 방기선 국무조정실장이 이동할 경우 후임으로 거론된 김완섭 전 기재부 2차관은 국조실장보다는 다른 장관급 인선 풀에 포함돼 있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일단 유임으로 가닥이 잡혔지만 대통령 결심에 따라선 결론이 달라질 수도 있는 상태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에 거론되는 박성중 전 국민의힘 의원에 대해 한 여권 인사는 “인재풀에는 포함돼 있다”고 전했다. 장관석 기자 jks@donga.com전주영 기자 aimhigh@donga.com}

    • 2024-06-27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광화문에서/장관석]밤새 쓴 연애편지 같은 대통령 PI는 곤란하다

    “대한민국의 변화가 세계인들에게도 많이 알려졌고, 국가 이미지에도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대통령실이 23일 내놓은 ‘대통령실 국민제안 개설 2년, 국민의 목소리를 민생정책으로’라는 제목의 보도 자료에 담긴 내용이다. “올해 2월 별칭 김건희법으로 불리는 ‘개의 식용 목적의 사육·도살 및 유통 등 종식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된 이후 관련 민원 편지들이 완전히 사라져 한 통도 오지 않고 있다”고도 적었다. 보도자료에 ‘김건희법’이라고 썼다. 일부는 굵은 글씨체로 강조돼 있다. 김건희 여사가 개 식용 금지 화두를 던져 일어난 변화가 국격 상승에 기여했다는 평가다. 대통령실은 종종 윤석열 대통령 부부의 반려견 사랑을 홍보 포인트로 삼아 왔다. 이런 취향이 알려져 투르크메니스탄 정상으로부터 국견 ‘알라바이’를 선물받았다. 대통령실은 알라바이를 공수 받는 과정도 A4용지 4페이지에 이르는 상세한 보도자료에 사진을 담아 제공했다. “윤 대통령과 김 여사가 동물 생명과 동물 사랑에 대한 메시지를 꾸준히 전했던 만큼, 알라바이가 건강하고 행복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최선의 조치를 다할 것”이라는 대통령실 관계자 코멘트도 등장한다. 대통령실 대변인이 순방 중 기자들을 상대로 현안을 직접 설명한 사례도 알라바이 이야기가 유일했다. 검사 재직 시절부터 윤 대통령의 반려견 사랑은 유명했다. 사고를 당해 몸이 불편한 반려견을 위해 직접 개를 위한 보양식을 만들어 건강을 회복시키려 힘쓸 정도로 지극했다. 김 여사의 반려견 사랑도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대통령 부부의 반려견 사랑은 친근감 형성에 더해 이들이 생명을 존중하고 타인에 대한 공감능력을 갖췄음을 자연스럽게 부각할 수 있는 소재다. 그러나 핵심광물 공급망 확보·인프라 확대라는 중앙아시아 정상 외교의 본질보다 눈길이 더 갈 수도 있는 만큼 홍보 시기와 수위, 방법을 신중하게 생각해볼 일이다. 반려견 사랑에 개 식용 금지법을 얹어 의미를 부여하는 과정이 자칫 김 여사 치적 홍보 목적이라는 의심을 살 경우엔 대중이 없던 반감조차 가질 수 있다. 한-아프리카 정상회의 때도 김 여사 역할을 부각하는 보도자료와 서면 브리핑이 연이어 나온 터다. 국정 지지율 20%대, 고물가에 허덕이는 민생과 취업난에 신음하는 청년 세대가 도처에 있다. 대통령 PI(President Identity)에 직결되는 요소들이다. 새벽에 쓴 연애편지가 아침에 읽어보면 부끄러울 때가 있듯, 몇몇 보도자료에 보이는 상찬적 어조는 역효과가 날 수도 있다. 국정동력과 지지율 견인이라는 예쁨을 받으려면 대통령 내외가 듣기 좋은 말보다 국민들이 듣고 싶어 하는 말들이 더욱 담겨야 하지 않을까. “기업이 ‘우리 제품 최고’라고 하는 게 당연하지 않느냐”는 항변도 있겠지만, 검찰총장 윤석열에게 기대했던 사람들이 줄어 어느덧 부정 여론이 높은 상황에 대한 메타인지적 접근 자세도 필요하다. 여권 인사는 원자바오 중국 총리가 2006년 농가를 방문했을 때 주목받은 초록색 낡은 점퍼 얘기를 했다. 이 옷이 11년 전 지방 시찰 때도 입었던 옷이라는 사실이 한 ‘누리꾼’에 의해 알려져 13억 중국인에게 전파됐다. ‘공산당 관계자’ 코멘트나 보도자료를 통해 알려졌다면 이만큼 회자될 수 있었을까. 장관석 정치부 차장 jks@donga.com}

    • 2024-06-26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정부 “서민 위해 대출규제 미룬 것”… 일부 “가계빚 조장” 비판

    정부가 25일 ‘스트레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의 2단계 도입을 불과 6일 앞두고 연기한 것은 가계대출 규제 강화가 서민금융 및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연착륙 정책에 ‘찬물’을 끼얹을 것이란 우려 때문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정부가 대출 규제를 돌연 미루면서 가계부채 관리 방향을 역행하는 ‘정책 엇박자’를 자초했다고 지적한다. 이번 조치가 가계대출뿐 아니라 수도권을 중심으로 한 집값 상승을 부추기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정책 엇박자 우려에 규제 강화 돌연 연기 스트레스 DSR은 향후 금리 상승 가능성에 대비해 변동금리 대출자에게 가산(스트레스) 금리를 더해 대출 한도를 산출하는 제도다. DSR은 금융권에서 받은 대출 총액의 원리금 상환액을 대출자의 연소득으로 나눈 값으로, 현재 은행권에서는 DSR이 40%를 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대출을 받을 수 있다. 한마디로 말해 스트레스 DSR은 나중에 더 이자 부담이 커질 수 있으니 이에 대비해 대출 한도를 미리 줄여놓자는 취지다. 지금은 은행권 주택담보대출에 기본 스트레스 금리(1.5%)의 25%(0.375%)만 적용하는 1단계 조치가 적용되는 상태다. 당초 금융위는 올 7월부터 기본 스트레스 금리의 50%(0.75%)를 적용하는 2단계 조치를, 내년 초부터 100%(1.5%)를 적용하는 3단계 조치를 시행하며 규제 강도를 단계적으로 높일 예정이었다. 그러나 이날 갑자기 2단계 조치를 7월에서 9월로, 3단계 조치는 내년 초에서 내년 하반기로 연기하겠다고 밝혔다. 대출 규제의 강화 시점이 6일을 남겨 놓고 돌연 미뤄진 것은 이번 조치가 자영업자와 서민들에 대한 금융 지원에 차질을 줄 수 있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현재 소상공인 대책도 마련 중인데 한쪽에서는 금융 지원 대책을 마련하고 한쪽에서는 대출을 조이는 정책을 펼치면 정책 엇박자가 날 수도 있다”며 “시점을 조금 늦추는 방안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대출 한도를 낮추는 것이 자칫 소생하는 서민 경기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는 우려가 작용한 것이다. 금융지주사의 고위 관계자도 “정부가 가계부채 관리를 강조하면서도 특례보금자리론, 신생아 특례 대출 등의 정책금융으로 오히려 주담대를 부추기는 정책을 펼치지 않았느냐”며 “일관성 없는 정책들을 교통정리 하는 과정에서 ‘일단 몇 달 미루고 상황을 지켜보자’는 의견이 대두됐을 수도 있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러나 대출 규제 같은 주요 금융정책을 예고 없이 뒤집는 것은 전례가 없다는 평가가 많다. 한 전직 고위 관료는 “정책 도입 시점을 6개월, 1년 단위가 아닌 2개월만 미룬 것은 처음 본다”며 “정책 실행의 우선순위가 갑작스럽게 뒤바뀐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 같은 지적에 대해 금융당국 고위 관계자는 “두 달만 미뤘다는 것은 그만큼 해당 정책을 시행하려는 의지가 크다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정부가 시한폭탄 가계 빚 조장” 전문가들은 정부의 이번 조치로 인해 정책 신뢰성이 크게 저하됐다고 비판한다. 서지용 상명대 경영학부 교수는 “하루아침에 정책 도입 시기를 미루면 정책 신뢰성이 크게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애초부터 서민, 자영업자들이 대출받지 못하는 상황을 걱정했다면 DSR을 일반 가계 대상으로만 적용하고, 취약계층에 대해선 소득 대비 가계대출 비율(LTI) 같은 대체 지표를 적용했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금융당국의 이번 결정이 안 그래도 급증하는 가계대출을 더 조장하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도 여전하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시행 연기 결정은) 가계에 두 달간 대출을 더 받으라고 부추기는 것으로 보인다”며 “정부가 취약계층의 어려움, 부동산 PF 부실 등을 근거로 제시했는데 이들이 담보대출과 무슨 상관이 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은행권에서도 전날 늦은 시간에 금융당국의 통보를 받고 당황하는 분위기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지난주에 내부 공문을 만들어서 7월부터 바뀌는 제도를 안내했고 이에 맞춰 현장에서 준비 중이었는데, 예고도 없이 정책 도입 시점이 두 달 미뤄져 황당하다”고 했다. 강우석 기자 wskang@donga.com김수연 기자 syeon@donga.com장관석 기자 jks@donga.com}

    • 2024-06-26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푸틴 “韓, 큰 실수 말라” 노골적 위협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0일(현지 시간) 한국의 대(對)우크라이나 살상무기 지원 검토에 대해 “한국이 우크라이나에 살상무기를 제공하면 큰 실수가 될 것”이라며 “그런 일이 일어나면 우리는 상응하는 결정을 할 것이고 이는 한국 지도부에 달갑지 않은 결정일 것”이라고 밝혔다. 푸틴 대통령이 직접 한국에 ‘고통스러운 방식으로 보복하겠다’고 위협한 셈이다. 유사시 러시아의 한반도 군사 개입 근거를 담은 북-러 조약 체결에 우리 정부가 우크라이나 살상무기 불가 원칙을 재검토하겠다고 발표한 지 24시간도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푸틴 대통령은 또 북한에 초정밀 무기를 공급하는 것을 배제하지 않는다며 우리 정부가 레드라인으로 규정해 온 ‘첨단 군사기술 이전’을 노골적으로 거론했다. 북-러 조약 체결에 따른 안보 위협을 엄중 항의하기 위해 우리 외교부가 21일 초치한 게오르기 지노비예프 주한 러시아 대사는 오히려 “러시아 연방에 대한 위협과 협박 시도는 용납될 수 없다”고 맞받았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여동생 김여정은 이날 담화를 내고 우리 민간 단체의 대북 전단 살포를 이유로 “분명 하지 말라고 한 일을 또 벌였으니 하지 않아도 될 일거리가 생기는 것은 당연하다”며 오물풍선 살포 재개 등 보복성 도발을 예고했다. 북한이 북-러 조약을 공개한 20일에는 북한군 여러 명이 중부전선에서 군사분계선(MDL)을 20m가량 침범했다가 경고 사격을 받고 되돌아갔다고 합참이 21일 밝혔다. 러시아가 한국의 새로운 안보 위협으로 떠오르며 한-러 관계가 격랑에 빠져드는 가운데 북-러가 동시에 보복 위협을 내놓자 한국 정부는 한미일 공동 대응을 강조하고 나섰다. 북-러 군사동맹이 불러온 안보 위협이 한-러 갈등은 물론 한미일 대 북-러 간 신냉전 대치를 가속화하는 양상이다. 다음 주 한미일의 다영역 연합훈련인 ‘프리덤 에지’에 미 해군의 핵추진 항공모함 ‘시어도어 루스벨트’가 참가한다. 한미일 3국 안보실장 또는 외교 국방 장차관급 소통도 확대할 방침으로 알려졌다. 다음 달 말 일본에서 개최되는 미일 2+2 외교·국방장관 회담에 한국이 참가하는 방안도 검토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고위 당국자는 “필요하면 우리도 참여할 수 있는 것”이라고 했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 제공 여부와 수준은 러시아가 어떻게 하느냐에 달렸다”고 말했다. 북-러 조약 체결 다음 날인 20일 조 바이든 미 행정부는 우크라이나군이 미국산 무기로 모든 국경 지역에서 러시아 본토를 공격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레드라인 넘겠다는 푸틴… 韓美日,내주 연합훈련으로 ‘경고장’[‘북러 vs 한미일’ 신냉전 가속화]푸틴發 안보위협, 한반도 긴장 고조푸틴 “北에 초정밀 무기 공급할수도”… 이행땐 北의 핵-미사일 위협 증폭韓 “우크라 지원 수준, 러 태도에 달려”… 한미일 내달 외교-국방 대화도 추진“러시아는 다른 나라에 무기를 공급할 권리가 있으며 북한과 맺은 합의에서도 이를 배제하지 않는다.” 블룸버그통신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0일(현지 시간) 북한에 초정밀 무기를 공급하는 것을 배제하지 않는다고 했다고 보도했다. 북-러 밀착에 대응해 대(對)우크라이나 무기 지원 재검토라는 초강수를 던진 우리 정부를 향해 “아주 큰 실수가 될 것”이라며 보복을 협박하는 동시에 대북 첨단 무기 공급 가능성을 공개적으로 언급한 것. 러시아가 넘지 말아야 할 레드라인으로 우리 정부가 규정한 대북 첨단 군사기술·무기 지원의 구체적인 방식을 노골적으로 거론한 것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정부는 북한에 대한 첨단군사무기·기술 지원이라는 레드라인을 넘는 러시아의 행동이 구체화되면 우리에 대한 심각한 안보 위협이 현실화되는 것이라고 보고 우크라이나 살상무기 지원을 포함한 전방위 외교·군사 대응에 단계적으로 나설 방침이다. 우선 ‘푸틴발’ 안보 위협에 맞서 한미일 고위급 회동이나 3자 연합훈련 실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와의 협력 강화 등으로 대응할 계획이다. 이에 따라 냉전시대 혈맹 수준 관계를 복원한 북-러 군사동맹 대 한미일 간의 신냉전 구도가 더욱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푸틴, ‘레드라인 넘겠다’ 노골화 정부는 러시아가 첨단 무기를 북한에 실제로 지원할 경우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이 더욱 커질 것으로 보고 있다. 핵 탑재가 가능한 신형 순항미사일 등이 한반도에 배치될 경우 기존 한미 연합 작전계획이나 방어태세를 전면 수정하는 것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 지원 검토 카드를 꺼내든 건 실제 북-러가 레드라인에 빠르게 근접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다만 이 관계자는 “무기 지원 수준은 러시아의 태도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정부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 지원 절차 등에 대한 법적, 행정적 검토를 마친 것으로 알려졌다. 러시아의 실제 행동이 포착되면 우리 정부가 살상무기 지원을 공식 발표한 뒤 무기의 위력별로 구분해 단계적 지원에 나서는 시나리오가 거론된다. 한국은 우크라이나에 절실한 ‘창(고위력 정밀타격무기)과 방패(방공무기)’를 모두 갖고 있다. 푸틴 대통령이 이날 우리 정부를 겨냥해 사실상 최고 수위의 경고성 발언을 쏟아낸 것도 한국의 무기 지원이 우크라이나 전황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창’은 휴대용 대전차 유도무기와 천무 다연장로켓 등이 대표적이다. ‘방패’는 휴대용 지대공 유도무기 ‘신궁’과 탄도미사일까지 요격할 수 있는 ‘천궁-2’ 등을 들 수 있다. 다만 전차나 전투기, 미사일 등의 운용에 병력이 필요한 전력들은 지원 리스트에서 후순위로 밀릴 것으로 보인다. 이들 무기를 운용하기 위해선 사실상 우리 군 파병이 동반돼야 해 긴장 수위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질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에 정부 안팎에선 우선순위 지원 무기들로 155mm 포탄이나 대전차 유도탄 등이 거론되고 있다. 병력 지원 없이 상호호환이 가능해 우크라이나군도 바로 전쟁에 투입할 수 있고, 살상 반경이 좁아 부담이 상대적으로 덜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북-러 밀착, 한미일 3국 안보에 중대 위협” 우리 정부는 당분간 양국이 서로의 레드라인을 주시하면서 긴장 국면이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살상무기 지원 가능성을 검토하면서도 단기적으론 한미일을 중심으로 한 외교·군사적 대응에 집중할 방침이다. 정부 당국자는 “일단 한-러가 ‘말’로 주고받았지만 우리나 러시아나 갈등이 다음 스텝으로 이어지는 걸 원하지 않는다”라면서 “비공식적 외교라인 소통을 이어갈 것”이라고 전했다. 한미일 군 당국은 미 해군의 핵추진 항공모함 ‘시어도어 루스벨트’호를 전개한 가운데 이달 말 해상·수중·공중·사이버 등 다영역에서 실시되는 군사훈련 ‘프리덤 에지’를 처음으로 실시해 북-러 밀착에 경고장을 날릴 방침이다. 다음 달 말 일본에서 개최되는 미일 2+2 외교·국방장관 회담에 한국이 참가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참석차 뉴욕을 방문한 조태열 외교부 장관은 20일 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에 이어 이날 가미카와 요코(上川陽子) 일본 외상과 전화통화를 하고, 북-러의 동맹급 밀착이 “한미일 3국 안보에 대한 중대한 위협”이라고 강조했다. 장관석 기자 jks@donga.com파리=조은아 특파원 achim@donga.com윤상호 군사전문기자 ysh1005@donga.com신규진 기자 newjin@donga.com}

    • 2024-06-22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