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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만 10년 차 미만 젊은 교사 626명이 학교를 떠났다. 사립학교 교사를 포함하면 퇴직 교사 수는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최근 5년간 학교를 떠난 10년 차 미만 교사 수는 2848명, 젊은 교사들의 ‘대퇴사(great resignation)’ 현상이다. 교사들의 대퇴사는 더 나은 조건을 위한 이직, 젊은 교사들의 나약함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구조적 문제점을 안고 있다. 학부모와 학생의 갑질, 학생들로부터 폭행을 당해도 보호해 주지 않는 학교 시스템, 크고 작은 사고를 막기 위한 과도한 행정업무 등으로 교사들은 본업인 교육에 집중할 수 없다고 토로한다. 권한은 작고 책임은 무거운 구조가 이들을 옥죄고 있다. 민원-안전사고 ‘모든 책임은 교사에게경기 지역 초등학교 이모 교사는 “아이들과 학교 바깥 활동을 할 때마다 솔직히 두려웠다”며 “‘사고가 나면 모두 내 책임, 명예퇴직도 불가능하겠다’는 생각에 결국 퇴사를 선택했다”고 한다. 2022년 11월 강원 속초시 체험학습 현장에서 초등학생이 버스에 치여 사망하자 인솔 교사들이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기소됐다. 사건은 대법원의 최종 판단을 기다리고 있지만, 이 사건 이후 서울 초중고 현장 체험학습은 올해 8월 기준 지난해 대비 약 36% 줄었다. 교사노동조합연맹이 올해 5월 스승의날을 맞아 전국 교사 8000여 명을 대상으로 벌인 설문조사는 교사들의 고립감과 교직에 대한 회의감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교사라는 직업이 우리 사회에서 존중받는지 묻는 질문에 ‘그렇지 않다’는 답이 64.9%, ‘최근 1년간 이직이나 사직을 고민한 적이 있다’고 답한 교사는 2명 중 1명(58.%)이었다. 사직을 고민하게 만든 가장 큰 이유는 ‘교권 침해와 과도한 민원’(77.5%)이었다. 현장에서 만난 교사들은 ‘정당하게 일하다 어려움에 처해도 학교가 나를 보호해 줄 것이라는 확신이 없다’고 말했다. 이러한 교직 환경은 이른바 ‘진상 고객’에게 아무런 보호장치 없이 노출된 콜센터 상담원과 다를 바 없다. 교사들이 의지하는 최소한의 안전장치가 교권보호법이다. 그러나 이마저도 현장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있었다. 교권보호위원회를 열지만 교사를 폭행한 가해 학생과 분리조차 제대로 되지 않아 교사들이 개인 휴가를 쓰며 피하는 것이 현실이다. 법적으로 학부모 민원은 ‘학교장 또는 전문 민원팀’으로 일원화하도록 규정했으나 책임 회피나 인력 부족으로 일선 교사들은 여전히 학부모들의 크고 작은 민원을 직접 응대한다. ’최소한 ‘교권보호법’ 실효성 있어야코로나19 유행 직후 직장에 대한 회의감으로 ‘대퇴사’ 현상이 세계적으로 일었을 때 많은 컨설팅기업과 연구기관이 유능한 직원을 붙잡을 수 있는 방안을 내놨다. 그중 ‘심리적 안정감’이라는 장치는 교사들의 사기 진작을 위해 교육 당국이 살펴볼 만하다. 보스턴컨설팅그룹이 16개국 2만8000명을 조사해 지난해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의견을 제기하거나, 실수를 해도 문책당하지 않을 것이라 믿는 ‘심리적 안정감’이 퇴사율을 낮춘다. 심리적 안정감이 낮은 그룹은 퇴사 위험이 4배 이상으로 높았다. 이들은 번아웃을 겪었으며, 창의성을 발휘하지 못했다고 한다. ‘심리적 안정감’의 첫걸음은 교권보호법의 유명무실한 부분을 현장 교사들의 의견을 들어 보완해 실효성 있는 보호장치로 작동하도록 하는 것이다. 교권이 존중 받지 못하는 교실에서 인성 교육이 이뤄질 리 없고, 교사가 떠나는 교실에 미래가 있을 수 없다. 책임감을 가지고 교육하면 학교와 제도가 보호해준다는 믿음만이 교사들의 대퇴사 현상을 막을 수 있다.이서현 정책사회부 차장 baltika7@donga.com}

동아일보가 지난달 인터뷰한 미국 인공지능(AI) 기업 팔란티어 최고경영자(CEO) 앨릭스 카프의 이력은 독특하다. 독일 괴테대에서 공격성과 언어, 사회규범을 다룬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철학자다. 팔란티어를 엔비디아, 테슬라와 나란히 하는 빅테크로 성장시킨 모델 ‘온톨로지’는 그의 학문적 기반에서 왔다. 철학의 ‘존재론(ontology)’에서 출발한 온톨로지는 데이터를 통계적으로 분석하는 것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 AI를 활용해 여러 데이터 간 관계를 정리하고 이를 체계적으로 연결한다. 부서별로 파편화된 데이터를 관계 기반으로 재정의해 기업이 최적의 의사 결정을 할 수 있도록 돕는다. 업무용 메신저 슬랙을 창업한 스튜어트 버터필드도 영국 케임브리지대에서 철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여러 인터뷰에서 “논증 그 자체, 언어의 사용, 주장을 명확하게 표현하는 철학 훈련은 비즈니스에서도 매우 유용하다”고 강조했다. 정답이 없기 때문에 오히려 깊이 생각해야 답에 도달하는 철학적 사고의 과정이 스타트업의 제품 개발 과정과 같다는 것이다. AI가 일상에 뿌리내리기 시작하면서 사회 곳곳에서 AI 활용을 두고 본질적이고 철학적인 질문에 직면하기 시작했다. 소버린(주권) AI와 그래픽처리장치(GPU) 확보도 중요하지만, 이미 선두 주자들은 기술 그 자체만큼 ‘AI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를 고민하고 있다. 이는 ‘AI로 인류사회를 어떻게 재구성할 것인가’라는 존재론적 질문과 맞닿아 있다. 그러나 정작 이러한 질문에 답을 줄, 나아가 기술 발전에 창의성을 더할 대한민국 ‘문사철’은 구조조정 중이다. 교육부에 따르면 2022년부터 올해까지 서울 시내 대학에서 통폐합된 문학 역사 철학 전공학과는 300여 개. 2011년에도 국내 80개에 불과했던 철학과는 올해 55개로 줄었다. 덕성여대는 올해 불어불문학과와 독어독문학과 신입생을 뽑지 않았고, 다른 대학들도 어문 계열 학과들을 묶어 지역 문화권 학과로 재편하는 추세다. 입학하자마자 취업 전쟁에 뛰어들어야 하는 학생들의 이과 선호 현상은 더욱 뚜렷해졌다. 한국교육개발원 통계에 따르면 2016년 국내 대학 재학생 중 인문계열 전공생 비율이 14.1%에서 2025년 11.3%로 줄어든 반면에 공학계열 전공생 비중은 24.3%에서 27.6%로 늘었다. 인문학을 발전시킬 정부의 고민이 필요한 이유다. 구글 등 빅테크를 거쳐 미국 실리콘밸리 벤처 캐피털리스트로 활동하는 스콧 하틀리는 많은 스타트업을 지켜본 결과 “시대를 초월하는 인문학적 질문과 인간 욕망에 대한 성찰이야말로 기술 개발에 필요한 요소”라고 강조한다. 팔란티어가 데이터를 철학적 관점에서 바라보고 AI와 결합한 것처럼 ‘공학 대 인문학’, ‘문과 대 이과’라는 이분법에서 벗어나야 혁신을 이뤄낼 수 있다. 엔비디아가 고성능 GPU 26만 장을 한국에 공급하기로 하면서 정부는 소버린 AI 추진에 더욱 속도를 낼 수 있게 됐다. GPU 확보는 시작일 뿐이다. 기술과 인간을 잇는 철학적 통찰을 지닌 인재를 길러낼 때 그 목표를 이룰 시점을 앞당길 수 있을 것이다. 이서현 정책사회부 차장 baltika7@donga.com}

2026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9월 모의평가를 앞둔 8월 말, 국회에서 ‘수능 킬러문항 방지법’ 통과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이 열렸다. 킬러문항은 교과 범위를 벗어난 수능의 초고난도 문항을 말한다. 교육과정을 벗어난 문항으로 ‘불수능’ ‘물수능’이 갈리니 매년 수능이 끝나면 ‘하버드대 교수님이 풀어본 수능 영어’ ‘수능 화학 킬러를 풀어본 화학과 교수’ 같은 동영상이 등장해 한국 입시를 풍자한다. 결국 공교육 정상화 촉진 및 선행교육 규제에 관한 특별법(공교육 정상화법) 조항을 개정해 수능을 선행 규제 대상에 포함시키는 ‘킬러문항 방지법’까지 등장했다. 과도한 선행학습을 방지하는 이른바 ‘초등의대반 방지법’도 발의됐다. 학원이 정규 교육과정에 앞서는 내용을 가르치거나, 학원생 선발 과정에서 학교급별 교육과정을 벗어난 내용을 출제해선 안 된다는 규정이 현행 공교육 정상화법에 추가됐다. 36개월 미만 영유아를 대상으로 교과 교습과 국제화(영어) 교육을 금지하는 ‘학원의 설립·운영 및 과외교습에 관한 법률 개정안’도 국회에 계류 중이다. 이른바 ‘영어유치원(영유) 금지법’이다. 지난달 말 국회에서 열린 ‘영유아 사교육 문제점과 규제 방안 토론회’에서 각 가정의 사교육비 지출 상한선을 두는 ‘사교육 총량제’를 도입하자는 의견이 나오기도 했으니 조만간 ‘사교육비 지출 총량제법’이 등장할 가능성도 있다. 이런 법안의 배경에는 약 30조 원에 이르는 막대한 사교육비가 있다. 교육부와 통계청이 조사한 지난해 초중고교 사교육비 총액은 29조2000억 원. 지난해 이미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는데 사교육 대상 연령대가 영유아와 N수생으로 넓어지고 있으니 내년에 발표될 올해 지출액 역시 최고 기록을 세울 가능성이 크다. 저출생으로 학령인구는 점점 줄어드는데 대한민국 전체 국가 연구개발(R&D) 예산(2024년 26조5000억 원)보다 큰 비용을 사교육으로 지출하는 기이한 현상이 벌어지는 것이다. 법안이 통과되면 사교육을 줄일 수 있을까? ‘영유 금지법’이 발의되고 정부가 이른바 ‘4세 고시’로 불리는 영어유치원 입소 전 레벨테스트를 금지하자, 서울 강남 지역의 유명 영어유치원은 최근 변경된 정책을 학부모들에게 통보했다. 같은 계열 어학원의 영어 준비반 출신만 입학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학부모들은 법안의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법을 통한 규제가 결국 사교육 시장에 진입하는 연령대만 더 낮추는 방식으로 작동할 것을 우려하고 있다. 법 개정으로 사교육 수요를 당장 억누를 수 있을진 몰라도 공교육에 대한 신뢰가 바로 서지 않으면 ‘영어유치원 진학을 위한 또 다른 영어학원 등록’ 같은 악순환은 반복될 가능성이 높다. 사교육에 국가 R&D 예산 규모의 돈이 몰리는 이유는 사교육을 신뢰해서가 아니라 학생과 학부모 모두 공교육을 믿지 못해서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11월 한국교육개발원은 사교육 과열 현상을 진단한 보고서에서 ‘입시정책의 지속성 부족에서 오는 불신은 사교육에 의존해 정보를 확보하려는 경향으로 나타난다’고 분석했다. 일관성 없이 오락가락하며 학생과 학부모의 불안감만 키우는 입시정책이 계속되는 한 아무리 새로운 이름의 법안이 등장해도 사교육 과열을 막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서현 정책사회부 차장 baltika7@donga.com}

“우리나라 말이 중국과 달라 한자와는 서로 통하지 아니하여서 이런 까닭으로 어리석은 백성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있어도 마침내 제 뜻을 능히 펴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내가 이를 가엾게 여겨 새로 스물여덟 글자를 만드니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쉽게 익혀서 날마다 쓰는 데 편하게 하고자 할 따름이다” 이 ‘훈민정음 서문’은 세종대왕이 직접 지은 글입니다. 세종대왕은 한문으로 이 내용을 작문하고 ‘훈민정음(훈민정음 해례본)’이라는 책 맨 앞에 실었습니다. 우리가 학교에서 배우는 ‘나랏말ᄊᆞ미’로 시작하는 ‘세종어제 훈민정음(世宗御製 訓民正音)’은 세종의 아들 세조 때만든 우리말 번역문인 언해본입니다. ● 백성에 대한 측은지심이 만든 훈민정음 훈민정음은 자랑스런 우리 글자의 이름임과 동시에 책의 이름이기도 합니다. 글자를 만들고 반포하면서 어떻게 만든 글자인지, 어떻게 사용하면 되는지를 매우 자세히 기록한 책이지요. 우리 한글이 과학적이라고 자부심을 갖는 것은 창제 이론이 이 책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마치 새로운 학설을 세상에 내놓기 위해 논문을 발표하는 학자처럼 공들여 세밀하게 작성한 것이 특징입니다. 세종대왕은 이 책의 머리말과 논문 초록 같은 앞부분을 직접 쓰고, 집현전 학자들에게 자세한 설명을 집필하도록 독려했다고 해요. 한글 창제를 반대하던 학자들을 설득해서 함께 책을 출간한 모습이 매우 흥미롭지요. ‘우리글’이 없어도 당시 지식인들은 전혀 불편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예전부터 사용했던 한자로 얼마든지 글을 쓰고, 시를 짓고, 상소를 올렸으니까요. 이런 상황에서 임금님이 별로 필요하지도 않은 ‘우리글’을 만든다고 시간과 공을 들이며 글자 제작에 열을 올리고 있는 모습이 어떤 지식인들에게는 정말 이해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중요한 일을 돌보지 않는다며 비판하는 말들도 많았을 거예요. 게다가 백성들에게 글을 가르치다니! 그런 일을 해서 좋을 게 무엇이냐고 신하들이 뜯어말리는 모습도 그려집니다. 서문의 첫 문장은 ‘우리나라 말이 중국과 통하지 않는다’입니다. 얼마나 기백이 넘치는 문장입니까. 문자가 서로 통하지 않기에 어리석은 까막눈 백성들이 무엇인가를 주장하고 싶어도 문서화하지 못하고, 공무원들이 붙여 놓은 ‘방(안내문)’도 읽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통탄했음이 느껴집니다. 글을 몰라서 벌어지는 일들이 삶의 질을 떨어뜨리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세종대왕은 이를 가엾게 생각합니다. 그가 가졌던 측은지심(惻隱之心). 백성을 돌보는 마음, 그들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에서 모든 것이 시작되었던 것입니다. 그 따스한 연민이 축적되어 모든 수고로움을 감수하고 글자를 만들게 된 것이겠지요. ● 세상만물을 표현할 수 있는 ‘28자’ 세종대왕과 집현전 학자들의 한글창제 과정을 소재로 한 드라마 ‘뿌리깊은 나무’(2011)를 보면 글자를 만들었다는 세종대왕에게 한 신하가 질문합니다. “한자 5만 자 중 1000자를 배우는데도 오래 걸렸는데, 전하의 글자는 몇 자나 됩니까. 5000자, 3000자, 아니면 1000자입니까?”이 질문에 세종대왕은 ‘28자’라고 답합니다. 28자로 10만 개, 그 이상도 표현할 수 있다고 하면서요. 뜻 글자인 한자 중심의 사고를 하는 사람이 어떻게 소리 글자를 창제했던 걸까요? 반나절이면 익힐 수 있는 한글을 창제한 창의성과 합리성은 실로 대단해 보입니다. 쉽게 익히고, 날마다 쓰게 하고자 온 힘을 기울여 만든 글자. 한글. 세종대왕은 백성들의 삶을 ‘편안케 하고자 할 따름’이라고 문장을 끝냅니다. 반대를 무릅쓰고, 시간을 쪼개가며, 신하들을 설득하고, 발음 기관의 모습과 하늘과 땅, 사람을 본따 만든 글자. 인고의 시간을 버텨 만들고, 반포하는데 3년이나 걸린 한글. 한 사람의 노력과 의지가 세상을 바꾸었습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백성들을 생각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 한 사람의 정성으로 약 580년이 지난 뒤에도 우리는 고유의 문자로 공부를 하고, 시를 쓰고, 책을 읽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세상이 엄청난 속도로 변하고 있습니다. 누구를 위한 창조이고, 누구를 위한 변화인지도 모른 채 허덕이며 쫓아가기 바쁜 일상 속에서 한글을 만든 세종대왕의 글은 묵직한 감동을 줍니다. 그가 백성을 위해 보낸 인고의 시간, 용기, 결단력, 그리고 리더십을 생각해 봅니다. 이제 곧 한글날입니다.이서현 채널A 기자 baltika7@donga.com조현정 세종과학고 교사}

경기도에서 교사로 근무하던 20대 A 씨는 최근 사직서를 쓰고 공인회계사 시험공부를 시작했다. 어릴 때부터 교사를 꿈꿨지만, 학교는 사명감만으로 버티기엔 훨씬 힘든 곳이었다. 크고 작은 학부모 민원에 시달렸고, 소신을 가지고 아이들을 가르쳐도 정작 문제가 생기면 학교가 나를 보호해 줄지 늘 의문이 들었다. 수도권 초등학교 교사직을 그만두고 올해 하반기 기업 공채에 지원 중인 B 씨도 진로를 바꿨다. 교사로 임용된 이듬해 서울 서이초 교사 사망 사건이 발생하며 동료 교사들의 사기가 크게 꺾였다고 했다. 애초에 소득보다 명예를 보고 선택한 직업이었지만, 기업에 입사한 고교 친구들과의 급여 차이를 체감하자 한 살이라도 젊을 때 새로운 길을 찾아야 한다고 판단했다. 교육부가 집계한 자료에 따르면 중도 퇴직 교원 수는 2020년 6704명에서 지난해 7988명으로 늘었다. A 교사와 B 교사 사례처럼 근속 연수 5년 미만 교사 퇴직자는 같은 기간 290명에서 380명으로 31% 증가했다. 퇴직 교사 중 저연차 비율은 계속 늘어나는 추세다. 안정적 직장의 상징이었던 대한민국 학교는 어째서 젊은 교사들에게 저임금과 불합리한 노동을 뜻하는 ‘블랙기업’으로 전락했을까. 교사들이 평생직장을 저버리는 이유는 악성 민원과 과도한 행정 업무, 그에 비해 적은 급여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학급 단체 사진을 찍을 때 아이가 싫어하는 친구 옆에 세웠다고, 휴대전화를 사용하지 못하게 했다고 학부모에게 항의를 받는 건 예삿일이다. 점심시간 중 아이 옷에 음식이 묻으면 옷을 빨아 보내 달라는 주문을 받거나, 분노에 가득 찬 민원 메시지를 밤새 수십, 수백 통 받는 경우도 있다. 2023년 서이초 교사 사망 사건이 벌어지고 이른바 ‘교권 4법’이 통과됐지만 현장 교사들은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고 느낀다. 민원 대응팀을 신설하겠다고 했지만 1차 민원은 모두 현장 교사에게 쏠리고 본인만 귀찮아지기 때문에, 또 어차피 해결된다는 기대가 없어 교사들은 교권보호위원회까지 가는 것을 꺼린다. 교사노동조합연맹이 올해 4월 전국 교사 4068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응답자의 46.8%가 최근 1년 이내 악성 민원으로 교육활동을 침해당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25년 차 교사 C 씨는 “수준 높은 공교육은 교사와 학생, 학부모가 ‘원 팀’이 되어 함께 만들어 가는 것”이라며 “교사가 기피 직업이 되면 그 피해는 결국 학생들이 입게 된다”고 강조했다. 지난달 말 서울교대에서는 눈길을 끄는 행사가 열렸다. 미국 버지니아주 페어팩스 교육청에서 한국 교사 초빙 설명회를 연 것이다. 워싱턴 인근 명문 학군으로 꼽히는 이 지역은 교사 부족을 해결하고 다양성 확보를 위해 ‘앰배서더 티처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우수 교사를 미국 밖에서 적극적으로 영입하고 있다. 지난해 시범사업 형태로 한국 초등교사 10명을 선발했는데 현지에서 전문성과 교육 역량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았다고 한다. 학교가 젊고 유능한 교사들에게 블랙기업 같은 일터로 남는 한 학계와 산업계를 뒤흔들고 있는 해외 인재 유출이 교육계에서 벌어지지 않으리라는 법은 없다.이서현 정책사회부 차장 baltika7@donga.com}

“여기는 안전한가요?” 입시 문제집, 강의 자료 등을 불법 공유하는 ‘유빈아카이브’ 운영자가 검거됐다는 뉴스가 나온 이달 12일에도 인터넷 입시자료 카페 게시판에는 여전히 PDF 자료가 올라와 있었다. 자료 공유가 합법인지, 계속 공유해도 되는지 걱정하는 질문도 이어졌다. 유빈아카이브는 2023년 7월부터 대형 입시학원 수능 교재, 유료 동영상 강의, 모의고사 자료 등 1만6000여 건을 불법으로 복제하고 공유해 온 텔레그램방이다. 최근 문화체육관광부 저작권범죄수사대 단속에 적발되면서 폐쇄됐다. 불법 공유방이 개설된 지 2년 만에 33만 명이나 모인 배경에는 과도한 사교육비, 저작권에 대한 낮은 인식 등 입시와 교육을 둘러싼 한국 사회의 구조적 문제가 복합적으로 얽혀 있다. 이른바 ‘피뎁방’(PDF 파일 공유방)이라고 불리는 자료 공유방은 과거에도 누누스터디, 핑프방 등 이름만 달랐을 뿐, 없애면 다시 생겨났다. 유빈아카이브는 폐쇄됐지만 곧 유사한 공유방이 개설될 것으로 예상하는 수험생이 적잖다. 지난해 통계청 발표 기준 한국의 사교육비 지출은 29조 원. “학원비도 비싼데 부모님께 모의고사 세트까지 사달라 할 면목이 없다” “지방 학생들이 넘을 수 없는 강의 자료 수준 차이를 유빈아카이브 접속해서 알았다”는 학생들의 항변도 이해 못 할 바는 아니다. 그렇다고 불법 공유에 따른 책임을 면할 순 없다. ‘사교육으로 인한 교육 격차를 교재 공유로 줄이겠다’는 그럴듯한 명분을 내세운 유빈아카이브는 문체부 조사에서 ‘소수방’이라고 부르는 유료 공유방을 따로 만들어 수익을 챙긴 것으로 확인됐다. 운영자는 뒤로 수익을 챙기면서 학생들을 저작권법 위반 범죄에 내몬 셈이다. 무너진 저작권 보호 의식은 대학가라고 예외가 아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기를 기점으로 비대면 수업이 일반화되면서 수업 교재를 PDF 파일 등으로 불법 공유하는 문화가 대학가에 퍼졌다. 불법인 줄 알면서도 한 학기 사용하고 안 쓸 두꺼운 전공책을 사는 비용이 부담되고, 들고 다니기 번거롭다는 핑계를 댄다. 한국저작권보호원이 지난해 1학기 대학생 및 대학원생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대학 교재 중 불법 복제본이 저작권법을 위반한 것이란 사실을 ‘알고 있었다’고 답한 비율은 77.9%에 이른다. 불법 공유방을 폐쇄하고 개설자를 엄벌하는 것 못잖게 ‘불법 공유는 범죄’라는 인식을 심어주는 교육이 필요하다. 저작권보호원의 2024년 조사 결과 ‘저작권 교육을 받은 적이 없다’는 응답이 전체의 62.6%에 달한다. 저작권 침해 수준은 사회 전체가 콘텐츠와 교육 연구의 가치를 얼마나 가볍게 보는지 보여준다. 해외에서는 대학 입학 시 연구 윤리 교육 일부로 표절과 저작권에 대한 가이드를 의무적으로 한다. 우리도 학생들에게 콘텐츠를 합법적으로 이용해야 하는 이유를 알려주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걸리지 않으면 된다’는 안이한 인식, 정당하게 비용을 지불한 이가 오히려 손해 본다는 잘못된 생각에서 벗어나 ‘내가 애써 만든 콘텐츠도 나중에 누군가에게 도용당할 수 있다’는 관점으로 가르쳐야 또 다른 유빈아카이브를 막을 수 있다.이서현 정책사회부 차장 baltika7@donga.com}

서울의 고교 2학년 정모 양은 지난달 기대보다 못한 기말고사 성적표를 받고 한참 눈물을 쏟은 뒤 자퇴를 고민했다고 한다. 1학년 때 같은 반이었던 친구 일부는 검정고시를 택해 이미 학교를 떠났다. 또래 집단의 영향을 많이 받는 연령대라 친구들이 학교에서 사라질 때마다 남은 아이들 마음은 뒤숭숭하다. 중간·기말고사 성적이 나오면 ‘나도 자퇴할까?’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맴돈다고 한다. 대학 입시를 위해 공교육을 포기하고 전략적 자퇴를 택하는 고교생들이 늘고 있다. 한국교육개발원 교육기본통계에 따르면 고교 자퇴생 수를 집계한 2023년 ‘고교 학업 중단율’은 2%로 2011년 이후 최대치를 나타냈다. 2020년 1.1%였던 고교 학업 중단율은 최근 4년 사이 꾸준히 증가했고, 2021년부터 매년 2만 명이 넘는 고교생들이 학교를 떠났다. 고교 자퇴는 1, 2학년에 집중돼 있다. 중간·기말고사에서 기대보다 낮은 점수를 받으면 학생들은 정시에 집중하기 위해 자퇴한 뒤 입시학원에서 검정고시와 대입을 준비한다. 공교육을 떠나는 자퇴 결정이 합리적 선택이 되는 이유는 현재 고교 1학년 교실을 보면 드러난다. 대입 정책과 엇박자가 나는데도 올해 3월부터 시행된 고교학점제, 학기당 많게는 20개씩 몰려 학생들은 ‘수행 지옥’, 학부모는 ‘엄마 숙제’라고 부르는 수행평가, 그리고 내신 5등급제가 ‘삼중고’로 학생들을 옥죄고 있기 때문이다. 내신 5등급제가 시행되며 1등급(상위 10%) 구간이 9등급제(1등급 상위 4%)보다 넓어지면서 학생들에게는 ‘상위 등급에서 탈락하면 입시는 끝’이라는 부담감으로 작용하고 있다. 서울의 대형 입시학원 관계자는 “고교 1학년 때 자퇴한 학생들은 4월, 8월 검정고시와 그해 수능을 같이 준비한다. 검정고시에 합격한 뒤 이듬해부터 2년 연속 수능을 치면 수능을 사실상 3번 경험한 ‘현역’으로 유리한 위치에서 입시를 치르는 셈”이라고 말했다. 새 정부 첫 교육부 장관으로 지명된 이진숙 전 충남대 총장 낙마 직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는 ‘새 교육부 장관 후보’라는 제목으로 교사 출신 국회의원들 사진과 명단이 공유됐다. 게시글에는 ‘최소한 입시 현장은 알지 않겠냐’는 댓글이 이어졌다. ‘서울대 10개 만들기’로 사교육 부담을 덜어줄 것이라는 기대와 달리 교육정책에 무지함을 드러낸 모습에 실망한 여론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고교 1학년 학부모 이모 씨는 “인생에 학교는 반드시 필요한 곳이지만 지금 학교는 좌절과 낙담만 가르치는 곳이다. ‘학교는 바보 같은 선택, 자퇴는 현명한 선택’으로 몰아가는 환경에 근본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이 전 후보자가 청문회 당시 건네받은 ‘커닝 페이퍼’에는 ‘곤란한 질문에 즉답 X’라고 적혀 있었다. 새로 임명될 교육부 장관이 가장 먼저 답해야 할 곤란한 질문은 ‘입시를 이유로 공교육을 떠나는 아이들을 어떻게 붙잡을 것인가’다. 정부는 수행평가 수업시간 내 시행, 고교학점제 개편 자문단 구성 등 처방을 내놓고 있지만 이러한 단기 대책으로 학생들의 자퇴를 막을 수 있을까. 이 질문에는 반드시 즉답이 필요하다. 답변을 대신할 커닝 페이퍼도 없다.이서현 정책사회부 차장 baltika7@donga.com}

경기도 한 초등학교의 3학년 J 교사는 올해 1학기를 돌이켜보며 ‘맨땅에 헤딩’이라고 표현했다. 학교가 디지털 기반 교육혁신 연구학교로 지정되며 1학기 내내 인공지능 디지털교과서(AI교과서)로 수업을 진행하느라 애를 먹었기 때문이다. 인터넷 연결이 끊기거나, 기기 오류가 발생하면 교실 아이들이 너도나도 손을 들고 “선생님! 저 이거 안 돼요!”를 외치는 상황이 벌어졌다. 기기 고장이나 접속 불량으로 수업 흐름은 계속 끊겼고, 회원 가입부터 정보 제공 동의 절차도 까다로워 수업의 걸림돌이 됐다. AI교과서 기능을 설명하느라 수업시간을 허비하다 보니 아이들과 상호 작용은커녕 수업의 본질인 내용 전달조차 어려웠다. J 교사는 “아이들의 관심이 넘쳐 디지털을 활용하면 그동안 실행하지 못했던 다양한 시도를 교실에서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보다 ‘어떻게 작동시킬 것인가’에 에너지를 쏟은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올해 1학기 도입한 AI교과서를 교과서가 아닌 교육자료로 규정한 ‘초중등교육법 일부 개정안’이 국회 상임위원회를 통과했다. 이재명 정부가 AI교과서를 교육자료로 격하하는 방안을 공약한 데다 이달 말 본회의에서 개정안이 통과되면 올해 3월 처음 학교에 도입된 AI교과서는 넉 달 만에 교과서 지위를 잃게 될 가능성이 높다. 손실을 입게 된 교과서 발행사들은 11일 기자회견을 열어 “헌법소원과 행정소송 등 모든 법적 대응을 할 것”이라며 반발했다. 이미 AI교과서로 일부 수업을 진행한 현장의 교사들은 2학기 수업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다. 한국보다 앞서 AI교과서를 연구한 미국은 ‘AI’보다 ‘교과서’에 방점을 두고 장기적으로 고민해 왔다. 국가과학재단 주도로 2019년 ‘AI4K12 이니셔티브’를 발족해 만든 AI 활용 교육 가이드라인의 핵심은 ‘사람’과 ‘신뢰’다. ‘AI는 교사를 대체할 수 없다’는 전제에 정책 입안자, 교사, 교재 연구자 등 교육 주체 간 신뢰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에 비해 한국은 짧은 도입 기간에 논란만 낳으며 신뢰가 훼손됐다. 교사의 준비 시간뿐 아니라 학부모, 정책 입안자, 교재 연구자 간 신뢰를 쌓을 시간도 부족했다. AI교과서 검정 심사가 늦어지면서 교사들은 교육 연수에서조차 교과서를 제대로 보지 못한 채 1학기를 허겁지겁 준비해야 했다. 학부모들은 교실에서까지 디지털 기기를 활용하는 것에 여전히 부정적이다. 교과서든 교육자료든 AI가 장기적으로 교육 시스템의 한 축으로 활용될 것이라는 예측에 이견은 드물다. 이미 일부 학생들은 집에서 챗GPT, 제미나이와 상호 작용하며 수행평가 과제를 하고 있다. 문제는 정책의 추진 방향과 속도다. 교육부는 AI 활용 교육에 신뢰를 다지기 위해서라도 올해 1학기 일선 교실이 경험한 시행착오를 빠짐없이 점검해야 한다. ‘수업을 방해하지 않는 완전한 인프라’, ‘교사, 학생, 학부모 모두 납득하는 수업’, ‘현장 의견을 반영한 더 좋은 수업자료’. J 교사가 전해온 ‘1학기 오답노트’의 핵심은 이 세 가지였다. 오답노트를 복습하며 장기적 관점에서 정교하게 재설계하지 않으면 AI 활용 교육에 미래는 없다.이서현 정책사회부 차장 baltika7@donga.com}

《동아일보와 채널A가 제정한 ‘영예로운 제복상’ 제12회 수상자가 선정됐습니다. 이 상은 열악한 상황에서도 국민 안전을 위해 자신의 몸을 던지는 군인과 경찰, 소방공무원, 해양경찰 여러분의 노고와 희생을 기리기 위해 만들었습니다. 각 소속 기관의 추천을 받아 내외부 전문가로 구성된 심사위원단의 심사를 거쳐 수상자 11명을 선정했습니다. 시상식은 내년 1월 18일 오후 4시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 20층 국제회의장에서 열립니다.》‘국민 위한 헌신-봉사’ 수상자 명단 ● 대상(상금 3000만 원)윤종탁 경감(서울경찰청 송파경찰서)● 영예로운 제복상(상금 각 2000만 원)문기호 중령(국군의무사령부)김창곤 중령(육군 32보병사단)백성욱 경위(전북경찰청 서해지구대)양승춘 소방경(경기소방본부 성남소방서)이종욱 소방위(인천소방본부 중부소방서)김건남 경감(동해해양경찰청 포항해양경찰서)● 위민경찰관상(상금 각 1000만 원)신영환 경위(대구경찰청 광역수사대)이재원 경장(서울경찰청 문정지구대)● 위민소방관상(상금 1000만 원)신현혁 소방위(경기소방본부 안성소방서)● 위민해양경찰관상(상금 1000만 원)주진홍 경위(남해해양경찰청 수사과) 마약조직-음주운전자 붙잡다 부상 입고도 끝까지 검거 위민경찰관상 대구경찰청 광역수사대 국제범죄수사계 신영환 경위(41)는 지난해 10월∼올해 9월 독일에서 엑스터시, 필로폰 등 마약류를 국제 우편으로 밀반입해 서울 대구 경남 등 전국의 외국인 출입 유흥업소에 유통한 밀수조직 총책 등 51명을 일망타진했다. 또 올 3월 외국인 신분증 위조 사범 검거 중 달아나는 피의자를 붙잡으려다 우측 아킬레스건 파열 등 전치 29주의 상해를 입었음에도 퇴원 즉시 현장에 복귀해 수사와 재활 치료를 병행하고 있다. 서울 송파경찰서 문정지구대 이재원 경장(36)은 지난해 12월 음주 측정에 불응하는 피의자를 검거하려다 도주하는 피의자 차량에 치여 어깨와 목에 부상을 입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도주를 막고 피의자를 붙잡았다. 당시 그는 전치 3주의 부상을 입었지만 치료가 끝나기도 전에 현장에 복귀했다. 이 경장은 “앞으로도 이웃을 보호하기 위해 현장을 지키는 경찰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동료 3명 순직후 PTSD 딛고 현장에 자진 복귀 위민소방관상 안성소방서 신현혁 소방위(44)는 지난해 1월 경기 평택시 청북읍에서 일어난 냉동창고 화재를 진압하던 중 내부에 고립됐다. 앞이 캄캄한 상황에서 호스를 붙잡고 탈출하다가 화염이 폭발하며 몸이 튕겨져 나갔다. 당시 부상을 입었지만 그보다 더 힘든 건 동료 3명의 순직이었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진단을 받은 신 소방위는 공무상 요양 기간이 채 끝나기 전인 지난해 9월 자진해서 업무에 복귀했다. 신 소방위는 “평택 화재 당시 투입된 모든 팀원을 대표해 받은 상이라고 생각한다”며 “어려움 속에서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계기가 될 것 같다”고 말했다. 2005년 1월 용인소방서에서 처음 근무를 시작한 신 소방위는 18년간 여러 사고 현장에서 활약했다. 2019년 9월 경부고속도로 4중 추돌 교통사고 때는 차에 하체가 끼인 운전자를 구조하기도 했다.마약 조직 29명 체포… 검거 중 흉기에 부상 입기도 위민해양경찰관상 남해해양경찰청 주진홍 경위(41)은 2021년 11월 부산 중구 부둣가에서 “낚싯줄에 걸린 검은색 비닐봉지 안에 일회용 주사기가 들어 있다”는 신고를 받은 후 마약류 범죄라는 걸 직감했다. 이후 끈질기게 수사한 끝에 올 2월 마약류 투약 및 투약장비 해상투기 피의자 2명을 검거했다. 또 후속 수사를 이어가 폭력조직 부두목 등 조폭 5명과 운반책, 알선책 등 일당 29명을 일망타진했다. 이 과정에서 피의자가 휘두른 흉기에 부상당하면서도 끝까지 제압하는 투혼을 보였다. 주 경위는 2021년 1월 부산신항에 입항한 라이베리아 국적 컨테이너선에서 3일간 숙식하며 시가 1050억 원 상당의 코카인 35kg(약 100만 명 투약분)을 적발하기도 했다. 올해로 16년 차 해경인 주 경위는 “마약류 사범 척결에 힘을 보탰다는 사실만으로 자긍심을 느낀다”고 말했다.지뢰에 발목 부상 병사, 절단 않고 17시간 수술로 재건 제복상 문기호 중령 지난해 10월 표정호 병장이 국군수도병원으로 실려 왔다. 표 병장의 오른쪽 발뒤꿈치는 지뢰 사고로 완전히 절단된 상태. 이 경우 발목 전체를 절단해야 하지만 정형외과 전문의 문기호 중령(40·국군수도병원 국군외상센터 외상제2진료과장)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뒤꿈치를 살릴 방법이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뼈와 인대를 이식하고 허벅지 근육을 떼어내 뒤꿈치를 재건하는 수술은 17시간 동안 이어졌다. 결과는 대성공. 예비역이 된 표 병장은 현재 제자리 뛰기도 할 수 있을 정도로 건강해졌다. 문 중령은 올해 10월엔 왼쪽 다리 대퇴부 동맥 등이 파열돼 다리를 절단해야 할 상황이었던 민간인을 대상으로 수액줄로 파열된 혈관을 잇는 고난도 수술을 실시해 다리를 지켜냈다. 2019년 한 병사에게 국내 최초로 실시해 성공한 방법을 적용해 성공시킨 것. 그는 2011년 GOP(일반전초)에서 군의관으로 복무한 것을 시작으로 장기 복무로 전환해 군 의료에 헌신하고 있다. 그는 “군대에 있으면 좀 더 의미 있는 일을 하는 의사가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며 “이번 수상을 계기로 군인들이 전투력을 100% 발휘할 수 있게 해주는 의무부대 등 지원 부대원들에 대한 관심도 커졌으면 한다”고 했다. 서해 선박 밀입국 시도 중국인 22명 체포작전 지휘 제복상 김창곤 중령 올해 10월 3일 오전 1시 47분경. 충남 보령시 대천항에서 남서쪽으로 19km 떨어진 해상에 있던 수상한 선박 한 척이 우리 군 감시장비에 포착됐다. 육군 32사단 제7해안감시기동대대장으로 현장 지휘관인 김창곤 중령(40)은 레이더운용병 등을 통해 즉시 보고받은 후 부대 지휘통제실로 달려갔다. 김 중령은 폐쇄회로(CC)TV 등 각종 감시 장비로 어선 밀착 추적에 나섰고, 기동타격대 병력을 대천항 접안 지역으로 즉각 출동시켰다. 해경과 경찰에 상황을 전파한 후 협조를 요청하는 등 작전 전반을 지휘했다. 그 결과 이날 새벽 어선을 타고 밀입국을 시도하던 중국인 22명 중 21명이 현장에서 검거됐다. 나머지 1명도 해경, 경찰 등과 연계해 검거하는 데 성공했다. 김 중령은 지난해 12월 창설된 7해안감시기동대대의 초대 대대장으로 임명됐다. 그는 이번 밀입국 시도자 검거 작전을 성공시키며 빈틈없는 해안경계작전 지휘의 표본을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김 중령은 “결전 태세 확립 기조하에 장병들이 함께 실전 대비 훈련을 해온 것이 성공적인 작전 수행으로 이어졌다”며 “현장에서 묵묵히 헌신하는 대대원들에게 수상의 영광을 돌린다”고 말했다.논에 휴대전화 버리는 용의자 잡아 살인자백 이끌어 제복상 백성욱 경위 전북 군산경찰서 서해지구대에서 근무하는 백성욱 경위(35)는 올 5월 “극단적 선택을 시도하는 사람이 있다”는 신고를 접수하자마자 전북 군산시 동백대교로 출동했다. 바다쪽 난간에 한 남학생이 위태롭게 걸터앉은 걸 본 백 경위는 왕복 4차선 도로를 가로지르며 대화를 시도했다. 그런데 순간 남학생이 시야에서 사라졌고 내려다보니 대교 아래 위태롭게 매달린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백 경위는 같이 떨어질 수 있다는 생각을 할 겨를도 없이 팔을 뻗어 학생을 잡은 후 힘을 다해 끌어올렸다. 백 경위는 “당시는 학생을 꼭 구해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었다”고 돌이켰다. 올 9월에는 전북 군산시의 한 주택에서 “사람을 죽였다”는 신고를 접수하고 현장에 출동했다. 그리고 논두렁에 휴대전화를 버리는 남성을 붙잡은 뒤 “여자친구를 죽였다”는 자백을 이끌어내고 현행범으로 체포했다. 올해 경찰관 10년 차인 백 경위는 “큰 상을 주셔서 감사하다. 앞으로도 제복의 무게를 잊지 않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30년 화재현장 누벼… 한부모 가정 아이 12년 후원도 제복상 양승춘 소방경 경기 성남소방서에 근무하는 양승춘 소방경(58)은 1992년 소방공무원으로 임용된 뒤 30년 넘게 현장을 지킨 베테랑 소방관이다. 양 소방경은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 참사 당시 막내 구조대원으로 현장에 투입돼 무너진 건물 내부에서 시신을 수습했다. 양 소방경은 “현실인지 꿈인지 분간이 어려운 현장이었다”며 “163cm의 작은 키가 오히려 구조 활동에 유리했던 기억이 난다”고 했다. 양 소방경은 2008년 경기 이천시 냉동창고 화재 당시에도 내부에 진입해 불길을 진압하고 인명을 구조했다. 2011년 3월 동일본 대지진 때는 국제 구조대로 파견돼 현장 지원 활동을 펼치기도 했다. 한부모 가정 아이를 7세부터 대학에 입학할 때까지 12년 동안 후원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져 소방서 안에서 ‘키다리 소방관’으로도 통한다. 양 소방경은 “소방관이라면 누구나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인데 상을 받으니 부끄럽다”며 “지금까지 큰 부상 없이 일하고 퇴직을 앞둘 수 있게 된 점에 감사하다”고 전했다. 26년간 2961명 구해… 세월호 참사현장서도 구조활동 제복상 이종욱 소방위 인천 중부소방서 이종욱 소방위(57)는 1997년 11월부터 만 26년 동안 인천 지역에서 근무하며 화재 진압 4792회, 구조 출동 5630회를 기록했다. 2007년 7월 북한산을 등반하다 조난당한 여성 2명을 구조하는 등 근무 외 시간에 구조한 3명을 빼고도 총 2958명을 구했다. 이 소방위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현장은 2014년 세월호 참사라고 한다. 당시 현장에 파견돼 보트를 타고 실종된 시신을 수색했던 이 소방위는 “시신이 나올 때마다 유가족들이 슬퍼하는 모습을 바라보는 게 무엇보다 가슴 아팠다”고 회상했다. 이 소방위는 2010년 연평도 포격 도발 현장 당시에도 화재를 진압하고 지역 주민들에게 생수 등 생필품을 지원하는 대민 지원 업무를 했다. 2006년 7월에는 강원 평창군 수해피해 현장에 파견돼 인명구조 활동을 하며 3명을 구조하기도 했다. 이 소방위는 “근무 중 예상치 못한 수상 소식을 듣고 기뻤다”며 “이렇게 큰 상을 받게 돼 영광이고 깊이 감사드린다”는 소감을 밝혔다.밍크고래-대게-오징어 불법포획 조직 추적해 일망타진 제복상 김건남 경감 포항해양경찰서 김건남 경감(50)은 올 6월 초 밍크고래를 불법 포획하는 조직이 있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잠복근무를 시작했다. 그리고 6월 2일 오후 10시경 포항시 남구 양포항 남동쪽 6.4km 해상에서 불법으로 잡은 밍크고래를 육상으로 옮기던 일당 3명을 현장에서 붙잡았다. 이들은 시가 1억5000만 원 상당의 밍크고래를 해체해 트럭으로 옮기고 있었다. 김 경감은 후속 수사를 이어가 고래 고기 전문식당 운영자 등 59명을 검거하고 이 중 17명을 구속했다. 그는 검찰과 협력해 이들이 올 1∼8월 불법 포획한 밍크고래 17마리에 대한 범죄수익금 약 16억 원을 환수 조치하고 추가 범행을 막기 위해 선박도 추징 보전 및 몰수 조치했다. 해경에서 25년째 근무 중인 김 경감은 2021년 암컷 대게 2만1300마리를 불법 포획한 총책 등 7명을 붙잡기도 했다. 2018년에는 오징어 등 어족 자원을 싹쓸이하는 대형 트롤 어선 65척을 검거해 71명을 입건했다. 김 경감은 “안전한 바다를 만들기 위해 밤낮으로 고생하는 모든 해양경찰에게 공을 돌린다”는 소감을 밝혔다.어려운 여건서 국민 보호 성과 평가 이렇게 심사했습니다 ‘제12회 영예로운 제복상’ 심사에는 위원장인 김진태 전 검찰총장과 백경학 푸르메재단 공동대표, 이기일 보건복지부 차관, 정원수 동아일보 편집국 부국장, 임도현 채널A 부본부장이 위원으로 참여했다. 심사위원단은 후보자들의 공적 사항을 분석한 뒤 각 추천 기관의 설명을 청취했다. 공적 내용에 대한 질의응답 시간도 가졌다. 심사위원단은 어려운 여건에서도 국민을 보호하는 임무를 수행했는지를 중점적으로 평가했다. 또 일선에서 활동하는 제복공무원뿐 아니라 후방에서 국민을 위해 헌신하는 후보자들의 기여도도 고려했다.대구=장영훈 기자 jang@donga.com이채완 기자 chaewani@donga.com안성=사지원 기자 4g1@donga.com 포항=차준호 기자 run-juno@donga.com 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군산=박영민 기자 minpress@donga.com 성남=전혜진 기자 sunrise@donga.com 인천=전혜진 기자 sunrise@donga.com 이서현 기자 baltika7@donga.com}

강원도 군 단위 지역에서 초등학생 남매를 키우는 A 씨. 이웃 중에는 아이들이 중고등학교로 진학할 무렵 강원도 내 강릉시나 춘천시, 원주시로 이사를 가는 경우가 적지 않다. 초등학교도 집에서 수 km 떨어져 있는 데다 보습학원이라도 보내려 하면 학교보다 더 먼 면사무소 근처까지 직접 운전을 해서 보내야 한다. 과외 교사를 구하려고 해도 주변에 대학생이 없다. 농사일에 바쁜 부모들을 대신해 학교가 영어, 예체능 등 방과후 수업을 제공하지만 교육열이 있는 부모들은 부족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고 한다. 지방 대도시 학부모들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전남 여수시의 학부모 B 씨는 아이들의 이번 여름방학을 앞두고 고민이 깊다. 틈만 나면 아이들과 여행을 즐기던 그가 올해 행선지로 고려하는 곳은 다름 아닌 서울의 ‘대치동 학원가’다. 수도권 주요 학군 지역 아이들과 대입에서 실력을 겨룰 수 있을지 불안한 마음이 들기 때문이다. 교육부가 13일 발표한 2021년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결과를 보면 도농(都農) 간 격차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 더욱 두드러져 지방 학부모들이 말하는 ‘부족한 마음’, ‘불안한 마음’을 짐작하게 한다. 중3, 고2 학생을 대상으로 치러진 국어 수학 영어 평가 결과를 보면 대도시와 읍면 단위 지역 학생 간 학습 격차는 더욱 벌어졌다. 코로나19를 기점으로 확연히 차이 나기 시작한 중위권 이상 학생 비율은 지난해 중3, 고2 모두 대부분 과목에서 그 격차를 더욱 키웠다. 하위권 학생들의 상황은 더 심각하다. 중3 수학에서 기초학력 미달인 ‘수포자’ 학생들의 비율이 대도시는 9.6%였던 반면 읍면 단위는 16.4%에 이르렀다. 고2 국어와 영어를 보자. 2019년만 해도 이 과목들의 기초학력 미달 학생 비율은 대도시에서 오히려 더 높았다. 그러나 지난해 평가에서 이 비율은 역전되거나 비슷해졌다. 코로나19로 어수선한 시기 학습 동기를 부여할 동력이 부족한 상황에서 읍면 단위 학생들은 사교육 등 대안이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지난해 나온 2020년 학업성취도 결과를 통해 코로나19로 인한 학습 결손이 확인된 이후에도 교육부는 ‘등교 확대’ 방침을 반복할 뿐 뾰족한 대안을 내놓지 못했다. ‘등교 확대’는 읍면 단위 지역에는 근본적 대안이 될 수 없었다. 이들 지역은 사회적 거리 두기 단계가 수도권에 비해 낮게 유지되어 등교 수업이 상대적으로 원활히 이뤄졌기 때문이다. 오히려 등교 수업이 유지됐는데도 성취도가 하락한 이유는 무엇인지, 학습 격차를 어떻게 해소할 것인지 근본적으로 점검해야 할 시기가 온 것이다. 교육부는 이번 결과를 발표하며 “코로나19로 인한 교육 결손과 격차는 긴 안목으로 국가적 역량을 모아 풀어 나가야 할 문제”라고 설명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코로나19 시기 발생한 격차의 원인을 더욱 세밀하게, 분석적으로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그래야 인프라가 부족한 지역에 사는 학생들에 대한 맞춤 지원이 가능할 것이다. 8월 발표될 기초학력 보장 대책에는 구체적이고 실효성 있는 내용이 담기기를 기대한다. 이서현 정책사회부 차장 baltika7@donga.com}

‘육아의 신’ 오은영 박사가 출연한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공익 광고를 두고 논쟁이 벌어졌다. 아이가 식당에서 소란을 피워도, 공원에서 뛰다가 낯선 사람의 옷에 음료를 쏟아도 ‘괜찮다’라고 말해주라는 ‘애티켓(아이+에티켓)’을 강조하는 내용 때문이다. “아이에 대한 배려가 저출산 해결의 시작”이라는 의견과 “부모의 사과 없는 배려는 문제”라는 의견이 맞선다. 그러다 결국 이런 비판까지 등장했다. “애티켓이 저출산과 무슨 상관이야?” 아동이든, 노인이든 사회 약자에 대한 이해와 배려는 성숙한 사회의 기본 조건이다. 그래도 의구심은 쉽게 가시지 않는다. 지난해 대한민국 합계출산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에서도 압도적 꼴찌인 0.81명. 더 무시무시한 예상은 올해 합계출산율이 작년보다 더 나빠져 역대 최저치를 기록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그 해결을 위해 가장 시급한 것이 ‘애티켓’인가? 아동을 포용하는 사회가 되면 출산율은 자연스럽게 늘어날까? 국회 입법조사처가 17일 내놓은 보고서 ‘4차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4차 기본계획)의 문제점과 개선 방향’을 읽어보면 ‘애티켓’이 좋은 내용임에도 왜 타깃을 잘못 정한 캠페인인지, 막대한 예산을 쏟는 정부의 저출산 대책이 어째서 ‘백약이 무효’라는 평가를 받는지 짐작할 수 있다. 입법조사처는 112쪽에 이르는 보고서를 통해 4차 기본계획을 조목조목 비판했다. 주된 내용은 한마디로 정책의 구체성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보고서는 서두에 “모든 국민의 ‘삶의 질 제고’라는 패러다임은 상이한 정책 대상과 정책 목표를 모두 원칙 없이 망라하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썼다. 보고서는 우선 235개에 이르는 방대한 세부 과제부터 정리해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그중 우선되어야 할 것은 결혼과 출산이 어디까지나 선택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모든 세대를 지원할 것이 아니라 ‘결혼하고 아이를 낳을 의사가 있는 청년’부터 정책 타깃을 좁혀 효율을 높이는 것이다. 정책 대상과 세부 과제의 우선순위를 정한 뒤에야 부모보험, 보육교사 처우 개선, 법정 근로시간 준수 등 시급한 현안부터 해결할 수 있다. 인구 절벽이 가속화하는 가운데 우리는 지난 2년 코로나19가 ‘산아 제한’ 정책처럼 기능하는 시기를 경험했다. 비단 우리만의 문제는 아니었던 것이 뉴욕타임스에는 지난달 말 ‘애를 더 낳으라고? 지난 2년을 보냈는데도? 됐어요’라는 발칙한 제목의 글이 실렸다. 코로나19로 일자리를 잃고, 공교육의 공백을 겪으며 양육 전쟁을 치른 부모들의 이야기, 그들이 팬데믹을 겪으며 계획하던 아이도 포기하는 과정은 한국의 상황과 다르지 않다. 뉴욕타임스 칼럼은 “나는 (아이 대신) 고양이를 들일 것이다”로 끝을 맺는다. 큰 예산을 무차별하게 소진하기보다, 널리 공감받지 못하는 캠페인을 지속하기보다, 고양이 대신 아이를 선택할 용기를 기꺼이 감수할 이들을 향해 정책 대상을 좁히는 것. 정부 정책의 우선순위는 거기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이서현 정책사회부 차장 baltika7@donga.com}

서울시교육청에서 시내 모든 중학교 1학년생에게 태블릿을 한 대씩 나눠준다. 디지털 역량을 향상시킨다는 ‘디벗’(디지털과 친구를 의미하는 ‘벗’의 합성어) 사업이다. 교육청은 학생용으로 약 7만2000대의 스마트 기기를 다음 달 초까지 보급할 계획이다. 첫해인 올해는 중1 학생들이 대상이며 2025년부터는 초등 5학년부터 고3까지 서울시내 모든 학생이 스마트 기기를 1대씩 지급받아 학습에 활용한다. 기기 지급이 본격 진행되자 학부모들 사이에서는 우려 섞인 반응이 나온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만 2년 내내 온라인 수업을 하느라 아이들이 집에서 컴퓨터 모니터만 바라보며 시간을 보냈기 때문이다. 학생들은 각 학교 방침에 따라 태블릿을 집에 가져가서 학습에 활용할 수도 있다. 게임 등 접속을 차단하는 프로그램이 깔려 있다지만 학부모들은 아이들이 집에서 스마트폰만 보고 있는 것도 답답한데, 이제 학교에서 태블릿까지 나눠준다니 디지털 기기에 과다 노출되는 것 같아 걱정이다. 이 사업을 위해 서울시교육청은 예산 600억 원을 편성했다. 당장 올해 6월 지방선거와 함께 치러지는 교육감선거를 의식한 선심성 정책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원격수업이 일상화되며 많은 학생들이 가정에 이미 스마트기기를 보유한 마당에 예산을 들여 무상으로 태블릿을 지급해야 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은 이달 14일 ‘디벗’ 보급 관련 기자간담회에서 3선 출마를 공식화했다. 문제는 아직까지 이 기기로 활용할 콘텐츠 구성이 옹색하다는 점이다. 교육청은 태스크포스를 통해 적응 교육 프로그램 11종 등을 개발하고, 학급회의 등 학생 자치활동과 해외 학생들과의 화상회의 등에 활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지만 이를 위해 막대한 예산을 들여 학생 1명당 기기 1개를 서둘러 보급할 일인지 의구심이 남는다. 일부에서는 코로나19 시기 더욱 벌어진 학생들 간의 격차를 들어 스마트기기 지급이 더 빨랐어야 했는데 오히려 ‘뒷북’이라는 의견도 있었다. 코로나19 시기 발생한 학습 격차가 아이들이 성년이 될 때까지 회복 불가능할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보급의 전제조건은 어디까지나 학습 격차를 좁힐, 첨단 기기에 걸맞은 콘텐츠다. 코로나19는 우리나라 디지털 교육 역량의 민얼굴을 드러냈다. 2년 전 전면 원격수업 초창기 웃지 못할 접속 오류 사태나 수업 시간 때우기용인 빈곤한 콘텐츠는 정보기술(IT) 강국이라는 말이 무색한 수준이었다. 학교 현장에서 일상 회복이 시작되는 지금이야말로 그동안 겪은 시행착오와 어렵게 쌓아 올린 노하우를 발판으로 공교육의 경쟁력과 디지털 교육 역량을 기초부터 정비할 시기다. 조 교육감과 교육청이 선거를 의식했다는 ‘포퓰리즘 논란’을 불식시키고 싶다면 콘텐츠로 증명하라. ‘무상 태블릿’이 선심성으로 보급된 빈 깡통으로 남을지, 디지털 교육의 전환점으로 남을지는 학생과 학부모가 판단할 것이다. 이서현 정책사회부 차장 baltika7@donga.com}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유행으로 학교가 실종된 지 벌써 3년째. 이달 초 개학 이후 3주 만에 유치원생을 포함한 학생 누적 확진자는 100만 명을 넘어섰다. 교사 확진자도 급증하면서 학교마다 대체 교사를 구하느라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개학은 했지만 교실 구성원 전체가 한자리에 모이는 날은 정작 손에 꼽을 법한, 비정상적인 일상이 이어지고 있다. 개학 첫 달 어수선한 학교의 상황을 취재할 때면 학부모들의 비판은 언제나 교육부의 무책임하고 일관성 없는 행정으로 향했다. 달라진 수업 환경에 대처하지 못하는 교사들에 대한 비판도 만만치 않지만 일부 학부모들이 “그래도 선생님이 책임감 있는 분이라”, “선생님이 챙겨 주신 덕분에”라고 말을 맺는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공교육의 경쟁력이 땅에 떨어졌다는 비판 속에서도 어떤 교사들은 여전히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며 노력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교실이 무의미해질수록, 친구들과 단절될수록 아이들에게는 선생님이 학교 그 자체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3년 차에 접어들어도 혼란스러운 코로나19 확산은 아이들과 학부모뿐 아니라 교사들도 지치게 만든다. 교육부의 모호한 지침 아래 교사들은 만 2년째 교육과 방역의 책임을 짊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른 아침부터 속속 도착하는 반 아이들의 확진 소식을 들으며 출근해 아이들에게 배부할 자가진단키트 수십 개를 일일이 직접 소분한다. 격리된 아이와 등교한 아이들이 실시간으로 같은 품질의 수업을 들을 수 있도록 ‘EBS급 수업을 제공하라’는 주문도 떨어진다. 같은 반 안에서도 2년간 눈에 띄게 벌어진 아이들 간 학습 격차를 챙기는 것도 교사의 몫이다. 열악한 조건 속에서도 책임감을 가지고 고군분투하는 교사들이 학교 전체에 대한 신뢰를 지탱한다. 경기 안성시의 한 학부모는 “반 아이가 원격수업에 계속 접속을 하지 않자 선생님이 직접 집에 찾아가 아이의 상태를 확인하고 챙겨서 수업에 참여시킨 적이 있다”고 말했다. 서울 송파구의 또 다른 학부모는 “새 학년 첫 주부터 아이가 확진되어 격리됐는데 선생님이 매일 진도를 안내하고 교과서도 언제든 볼 수 있게 학교 보안관실에 맡겨 주시더라”며 “격리돼 있지만 학교와 단절되지는 않았다는 걸 알려주려 애쓰시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다. 최근 출간된 ‘나의 덴마크 선생님’은 학교와 교직의 존재 이유에 대한 책이다. 지리산 대안학교 교사였던 저자가 불안과 우울로 삶의 길을 잃었던 시절 떠올린 곳은 다름 아닌 ‘학교’였다. 그는 덴마크의 시민학교에 늦깎이 학생으로 입학해 세계 각국에서 온 학생, 교사들과 질문을 던지고 경험을 공유한다. 그 수업들이 켜켜이 쌓이며 한줄기 빛이 비추는 것 같은 순간, 그의 입에서 이런 안도의 말이 나온다. “이 세상에 선생님이 있는 게 좋다.” 더 많은 아이들이 “이 세상에 선생님이 있어서 다행이다”라며 안도하는 날이 올까. 학교가 사라져가는 시대, 그 답은 사명감을 가진 교사들만이 쥐고 있을 것이다. 이서현 정책사회부 차장 baltika7@donga.com}

1243일. 25일 기준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의 총 재임 일수다. 역대 가장 오래 재임한 이규호 전 문교부 장관의 재임 일수가 1241일(1980년 5월 22일∼1983년 10월 14일), 유 부총리는 건국 이후 최장수 교육장관이라는 기록을 썼다. 영광스러운 기록과 달리 최근 학교 현장에서는 어느 때보다 교육부와 부총리에 대한 비판이 들끓는다. 개학을 불과 한 달 남기고 오락가락 달라지는 등교 지침 탓이다. 교육부는 21일 ‘새 학기 오미크론 대응 비상 점검 지원단’을 가동한다며 3월 2일 개학 후 2주간은 각 학교에 원격수업 전환을 권고한다고 했다. 정확히 2주 전인 이달 7일 ‘새 학기 학사 운영 방안’에서 전면 등교수업을 원칙으로 강조하더니 180도 달라진 원칙에 학부모들은 분통을 터뜨렸다. 학교 현장의 불만은 원격수업이 아니다. ‘권고’라는 말로 모든 책임을 일선 학교에 떠넘기는, 원칙 없이 우왕좌왕하는 교육부에 쏠려 있다. 정부조차도 3월 초 하루 신규 확진자가 최대 27만 명까지 나올 것으로 예측하는 상황에서 마음 편히 자녀들을 매일 학교에 보내자고 주장할 학부모가 어디 있을까. 서울 성동구의 초등 학부모 이모 씨는 “교장이 교육부 지침이 나오자마자 3월 초 2주간 정상 등교를 통지했더니 학부모들 사이에 ‘용자(勇者)’로 불린다. 교장을 ‘용자’로 만드는 교육당국과 방역당국이 무능할 따름”이라고 꼬집었다. 또 다른 학부모는 “방역을 지자체와 보건소로 쏙 떠넘긴 방역당국처럼 교육부가 책임을 학교로 떠넘긴 것과 무엇이 다르냐”고 반문했다. 교육부와 유 부총리가 ‘양치기 소년’이 된 것은 하루아침에 벌어진 일이 아니다. 코로나19 발생 이후 교육부는 고비마다 우왕좌왕하며 학부모들의 신뢰를 잃었다. 2020년 코로나19 첫해는 온라인 수업 시행착오와 EBS 접속 장애로 학부모들이 속을 끓였다. 코로나19 2년 차였던 지난해 하반기에는 등교지침을 6개월간 다섯 번이나 수정했다. 소아 청소년 백신 접종이 자율임을 거듭 강조하더니 학원에 방역패스를 적용한다며 ‘백신 강제’ 논란을 일으켰다. 학교 확산세가 우려되는 상황에서 경기도지사 출마를 위해 사퇴한다는 설이 파다하자 유 부총리는 “온전한 학교의 일상 회복을 위해 교육부 장관으로 끝까지 책임을 다하겠다. 대통령과 함께 마지막 소임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부총리의 마지막 소임은 학교와 아이들의 안전을 지키는 것이다. 개학을 불과 1주 앞두고 신규 확진자 3명 중 1명이 19세 이하 아이들인 엄중한 상황이다. 오미크론의 확산세는 정부가 예측한 최악의 시나리오보다 더 나쁘게 움직이고 있다. 일선 학교에 방역 책임을 떠넘기지 않고 원칙과 책임으로 대응하는 것이 교육부에 대한 신뢰를 다시 세울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재임 시절의 공과(功過)는 임기 절반을 할애한 학교의 코로나19 대응으로 평가받을 것이다. 최장수 교육부 장관이라는 영예로운 이름 옆에 아이들을 지키는 데 실패한 ‘최악의 교육부 장관’이라는 오명이 뒤따르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이서현 정책사회부 차장 baltika7@donga.com}

겨울방학은 중요한 입시철이다. 지난해 12월 2022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성적이 발표되고 정시 일정도 끝나가는 마당에 뚱딴지같은 얘기로 들릴지도 모르겠다. 1, 2월은 ‘레테(레벨 테스트)’ 준비를 위한 시간, 학원들은 반 배정을 위해 학생들의 실력을 측정하는 시험을 치른다. 학생들은 새 학년 진학을 앞두고 학원의 상급반 배정이나, 혹은 다른 유명 학원으로 옮기기 위해 이 테스트에 매달린다. 유명 학원의 레벨 테스트를 준비하기 위해 학생들이 ‘학원을 위한 학원’에 다니거나, 레벨 테스트용 과외를 따로 받기 시작한 것은 최근 일이 아니다. 코로나19로 대면 수업이 불가능했던 데다 초등학교의 경우 학교에서 제대로 된 시험이 이뤄지지 않아 결국 자기 실력을 측정할 학생들은 학원으로 향한다. 이 모든 ‘레벨업’의 종착점은 결국 수능이다. 이르면 만 5세 무렵 영어 유치원 입학 테스트를 보는 경우도 있으니 아이들은 10년 넘게 온갖 시험으로 단련되는 셈이다. 수능은 이런 아이들을 평가하는 ‘끝판왕’ 시험이다. 지난해 수능 날 영국 BBC가 수능을 일컬어 ‘세계에서 가장 어려운 시험 중 하나’라고 보도한 것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10년여간 각고의 노력으로 각종 레벨 테스트를 통과하고, ‘망치면 대학뿐 아니라 직장, 결혼까지 끝이다’라는 긴장감으로 지난해 수능 시험장에 들어섰을 학생들은 과연 무엇을 겪었나. 입시는 매년 각양각색으로 논란이 됐지만 지난해 입시는 엉망진창의 종합판이었다. 헤겔 본인도 울고 갈 국어 영역 ‘헤겔의 미학’ 지문부터 문항의 전제 조건조차 맞지 않는 오류를 범한 생명과학Ⅱ까지. 결국 일부 학생들은 성적 통지 날 특정 과목이 공란인 성적표를 받아들었으며, 수시 일정은 연기되고, 한국교육과정평가원장은 고개를 숙이고 사퇴했다. 생명과학Ⅱ 20번 문항의 정답 효력 정지 신청을 낸 학생 중 한 명이 법원의 무효 결정 직후 한 말을 우리는 두고두고 새겨야 한다. “실수를 인정하고 잘못을 바로잡는 노력을 어른들이 해주리라 믿었다.” 해당 문항의 오류를 지적하는 의견을 낸 김종일 서울대 유전체의학연구소장의 말도 마찬가지다. “어른들이 어린 학생들에게 심어주는 불신은 수능 성적을 다시 매기는 것보다 훨씬 더 큰 손해를 우리 사회에 끼칠 것이다.” 2025년 고교학점제가 도입된다. 정부가 내세운 대의는 ‘적성과 진로를 존중하는 교육’이다. 하지만 수능이 바뀌지 않으면 2025년을 살아갈 아이들 역시 학교에서 ‘경제 수학’이나 ‘진로 탐색’ 수업을 듣고 저녁에는 학원으로 향할 것이다. 레벨 테스트로 배정받은 반에서 더 높은 등급 반으로 올라가야 한다는 압박으로 불면의 밤을 보낼 것이다. 교육부는 올해 2월까지 반복되는 수능 오류를 개선하기 위한 재발 방지책을 내놓겠다고 했다. 하지만 그게 본질이 아니란 것은 우리 모두가 안다. 이제 온 사회가 진지하게 고민할 때다. 우리 사회가 요구해 온 ‘수학 능력’이란 그동안 어떤 모습이었나. 입시에서 우리는 아이들의 어떤 자질을 평가해야 하는가. 이서현 정책사회부 차장 baltika7@donga.com}

학창시절 변변한 학원 하나 다니지 않고도 이른바 ‘명문대’를 졸업한 김모 씨(39). 아이를 초등학교에 보내기 전까지 그는 ‘사교육 무용론자’였다. “잘하는 애들은 알아서 잘한다”를 줄기차게 설파했던 그의 신념을 꺾은 것은 다름 아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2020년 코로나19가 발생하자마자 초등학교에 입학한 아들의 수업을 지켜보던 시절을 생각하면 그는 지금도 울화가 치민다. 선생님의 얼굴은 보지도 못한 채 EBS 화면만 줄기차게 지켜본 김 씨는 결국 1학기가 끝나자마자 아들의 손을 붙잡고 집 근처 학원으로 향했다. ‘아이를 이렇게 방치해서는 큰일 나겠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그리고 덧붙였다. “이럴 줄 알았으면 사립초에 지원이라도 해 볼걸, 입학 전에 선행학습이라도 확실히 시킬걸 그랬어요.” 올해 3월, 학교는 코로나19 속 세 번째 학년을 시작한다. 팬데믹 속에 입학한 아이들은 훌쩍 자라 벌써 3학년이다. 우왕좌왕하던 온라인 수업도 어느덧 자리를 잡았고 등교 수업도 일부 이뤄지고 있다. 그러나 학부모 중에는 여전히 김 씨처럼 공교육에 대한 불신을 지우지 못하는 사람이 더 많다. 2 대 1, 높아야 5 대 1에 불과하던 사립초등학교의 입학 경쟁률은 2021학년도에 이어 2022학년도에 평균 10 대 1 수준까지 치솟았다. 감염 우려로 온라인 전산추첨이 이뤄지면서 중복 지원이 허용된 이유도 있지만 공립초등학교 수업을 지켜보고 화들짝 놀란 선배 부모들의 입소문 영향이 컸다. 적어도 사립초등학교에서는 온라인으로나마 수업다운 수업이 가능하다는 기대 때문이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학원으로 향했다. 매 시간 방역하며 종일 수업을 제공하는 학원, 돌봄 교사를 집으로 보내주는 플랫폼 업체 덕분에 학부모들은 지난 2년을 버틸 수 있었다고 말한다. 지난해 12월 소아청소년 접종을 독려하기 위해 학원에 방역패스를 적용하겠다는 정책이 발표되자 많은 부모들이 울며 겨자 먹기로 아이들에게 백신을 접종시켰다. 백신을 신뢰해서가 아니라 학원이 아니면 답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학원조차 갈 수 없는 아이들, 생계가 빠듯해 자식 공부까지 챙길 여력이 없는 부모를 둔 아이들도 있어 학습의 격차는 2년 사이 더 벌어졌다. 교육의 역할이 전염병에 휘둘리는 사이 학교의 의미는 퇴색했다. 학교는 이제 더 이상 아이들이 성장 과정에 맞춰 사회 규범을 학습하는 곳, 친구들과 울고 웃으며 우정을 쌓는 곳, 평생 마음에 두고 따를 선생님을 만나는 곳이 아니다. 아이들은 학원에서 세상을 배우고, 온라인 강사를 멘토 삼아 꿈을 다진다. 올해는 현장의 교사들이 2년간 겪은 시행착오를 바탕으로 학교의 존재 의미를 입증해야 한다. 비록 만날 수는 없어도 아이들이 소속감을 느끼고 우정을 나눌 수 있도록 여러 아이디어를 짜낸 교사도 많다. 온라인 수업 역시 많은 노하우가 쌓였다. 부디 올해 아이들이 만날 학교는 지난 2년과 다르기를, 많은 아이들이 배움을 쌓는 곳이 되기를 기대한다.이서현 정책사회부 차장 baltika7@donga.com}

주말 내린 눈이 아직 녹지 않은 화단입니다. “목련 씨앗이 심겨져 있어요. 새싹을 기다려요.” 겨우내 좋은 꿈 꾸고 예쁜 싹 틔우길! ―서울 동작충효길에서 이서현 기자 baltika7@donga.com}

정부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방역을 위해 내년 2월 1일부터 학원에도 방역패스를 적용한다고 3일 발표하자 주말 사이 청와대 국민청원이 이어지는 등 학부모들의 반발이 거세다. “학원 방역패스 다음은 ‘유치원 방역패스’일까요?” 서울에서 유치원에 다니는 아이를 키우는 A 씨는 뉴스를 보고 이렇게 되물었다. 지난달 말 문재인 대통령이 5∼12세 아동 접종을 검토하라고 지시했으니 조만간 ‘어린이집 방역패스’까지 등장하지 않겠냐는 것이다. 인터넷의 학부모 커뮤니티에서는 이러다 영·유아 기본접종에 ‘코로나19 백신 접종’이 포함될 것이라는 얘기까지 나온다. 대한민국에서 ‘학원’의 지위는 독특하다. 사교육 시설이면서 동시에 방과 후 돌봄을 책임지는 보육시설인 곳, 학교를 매일 가지 못했던 시기에 아이들이 또래와 어울릴 수 있던 유일한 공간. 학원 다니지 않는 아이를 찾아보기 힘든 세태에 학원 방역패스 적용을 두고 부모들이 사실상 접종을 강제당한다고 인식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부모들이 반발하는 배경에는 ‘고무줄 방역’에 대한 불신이 자리하고 있다. 올해 9월 소아·청소년(12∼17세) 접종을 예고할 때만 해도 정부의 기류는 분명 지금과 달랐다. 고3 학생들이 여름 단체접종을 시작했을 때도 방역당국은 조심스러웠다. 학부모들에게 소아·청소년 접종은 ‘자율’임을 거듭 밝혔다. 당시 브리핑에서 소아청소년과 전문의들이 접종의 이익과 잠재적 이상 반응에 대해 설명한 것도 학부모들의 우려를 반영한 것이었다. 교육당국도 마찬가지였다. 전면 등교 방침을 거듭 확인하며 학교가 가장 안전하다는 말을 반복했다. 미성년자에 대한 접종은 ‘권고사항’임을 강조하며 학교가 가장 안전하다고 했던 정부가 불과 접종 시작 후 두 달도 안 돼 학교가 위험하다며 사실상 ‘접종 강제’ 수순을 밟고 있는 것이다. ‘위드 코로나’ 시행 준비와 대응이 적절했는지에 대한 비판이 쏟아지는 가운데 부모들은 정부가 방역 강화책으로 설익은 ‘학원 방역패스’를 내세웠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소아·청소년 접종이 시작되던 시기 성인들의 접종률을 높이기 위해 방역패스 등이 논의됐었다. 당시 교육당국 관계자와 나눈 대화가 떠올랐다. 소아·청소년에게도 방역패스가 적용될 가능성이 있느냐는 질문에 그는 ‘교육받을 권리’를 내세우며 손을 내저었다. 접종 여부가 아이들에게 차별로 작용해선 결코 안 된다는 의미였다. 학부모들이 접종의 이익, 이상반응을 겪을 확률, 해외 접종사례 등을 모르는 것이 아니다. 부모들은 자신보다 내 자식 몸에 들어갈 백신에 더 민감하기 때문이다. 부모들의 분노에 불을 붙인 것은 아이들이 방역 실패 국면을 전환하기 위해 쓰는 ‘카드’로 활용되는 것처럼 비쳤기 때문이다. 아이들의 접종률을 높이고 싶다면 그동안 정부 방역정책이 국민들에게 신뢰를 주었는지 먼저 돌아봐야 한다. 학교와 학원에서 대규모 확진자가 나올까 가장 노심초사하는 사람들은 방역당국도, 교육당국도 아닌 부모들이다. 이서현 정책사회부 차장 baltika7@donga.com}

어린 시절 동네에 맨발로 쫓겨난 아이들이 있었다. 어떤 부모는 이따금 옷을 홀딱 벗겨 집 밖으로 내쫓았다. 아이들은 부끄러워 멀리 가지 못하고 발가벗겨진 채로 집 앞을 서성였다. 소설가 황정은은 지난달 발간한 에세이 ‘일기’에서 이런 장면을 묘사하며 ‘내 것이지만 고통은 공유하지 않는 몸’이라는 표현을 썼다. 부모의 소유물처럼 대접받는 아이들의 고통은 현재 진행형이다. 불과 지난주에도 광주 북구에서는 행인과 자동차가 오가는 거리에서 아이를 발로 걷어차던 여성이 경찰에 입건됐다. 아동권리보장원이 발간한 2020년 아동학대 통계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학대로 사망한 아이는 총 43명. 이 중 “때리지 마세요”라고 또박또박 말할 수조차 없는 3세 이하 연령의 아이가 29명이다. 물론 이 숫자는 드러난 피해자들의 기록일 뿐 통계조차 없이 사라진 아이들은 우리 사회가 가장 부끄럽게 여겨야 할 부분이다. 국민적 공분이 일면 각종 청원과 캠페인이 뒤따랐다. 소셜미디어에 피해 아동의 이름과 함께 ‘미안해’라는 글이 이어졌다. 분노의 크기만큼 아동학대에 대한 관심도 커진 것은 다행이다. 세이브더칠드런의 지난달 조사에 따르면 성인 1000명 중 915명이 ‘아동학대에 관심이 있다’고 대답했다. 맨발로, 혹은 벌거벗겨진 채 덩그러니 길에 서 있는 아이를 보면 ‘아이가 위험에 처했다’고 느낄 어른은 이제 많아졌다. 사회의 인식은 분명 아동에 대한 체벌과 방임은 범죄라는 것을 인지하는 방향으로 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심되는 사례를 본 적이 있지만 신고하지는 않았다’는 응답이 84.7%에 이른다. ‘훈육이라 생각했다’는 이유만큼이나 많았던 것은 ‘신고가 아이에게 정말 도움이 되는지 확신이 없다’는 답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제도는 아직도 국민의 정서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갓난아기를 변기에 넣고 동거녀를 협박한 한 남성은 최근 항소심에서 감형 받아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고 풀려났다. ‘신고해봐야 달라질 건 없다’는 냉소는 아동학대 해결의 가장 큰 적이다. 지난달 보건복지부는 영아에서 유아로 전환되는 만 3세 아동의 소재와 안전을 확인하기 위해 경찰청과 함께 전수조사를 시작했다. ‘이런다고 해결될까’가 아니라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울음 외에는 고통을 표현할 방법이 없는 아이들을 구조할 수 없기 때문이다. 황 작가의 에세이 한 토막을 전한다. ‘어른들은 이웃에서 어린이가 울면 주의를 기울이고, 어린이가 맞고 있지는 않은지, 정신적으로 궁지에 몰려 있지는 않은지 걱정할 것이고, 주저 없이 그의 부모를 의심할 것이고, 경찰에 신고할 것이고, 최소한 공권력이 도착하는 순간까지 그 집 기척에 귀를 곤두세울 것이다. 그렇게 하는 어른이 이웃에 살고 있다는 메시지가 되어줄 것이고 그 다음을 궁금하게 여기는 어른이 되어 줄 것이다.’ 어른들이 발견해주기를 기다리는 아이들이 지금도 곳곳에 있다. 귀를 기울이는 것만으로도 많은 것을 바꿀 수 있다.이서현 정책사회부 차장 baltika7@donga.com}

초등학교 1학년 아들을 학교 앞에 허겁지겁 내려줬다. 붐비는 도로에서 간신히 운전대를 돌려 회사로 향했지만 이미 지각은 확실했다. 간신히 사무실 근처에 도착해 숨을 돌리자 이번엔 아들의 학교에서 알림이 와 있었다. 2학년 학생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으로 전교생이 급하게 하교를 시작했으니 즉시 학교 앞으로 와 달라는 것이다. 황급히 조퇴를 한 엄마 A 씨는 그날 출퇴근길을 ‘등골이 서늘했던 순간’이라고 묘사했다. 최근 인터넷에서 ‘초등학교 교사가 본 워킹맘의 현실’이라는 글이 화제를 모으고 있다. 자신을 초1 담임교사라고 밝힌 필자가 A 씨와 같은 워킹맘들이 회사를 그만두는 고비를 조목조목 짚어 큰 공감을 샀다. 글에서 묘사된 엄마들이 일터에서 나가떨어지는 과정은 ‘커리어의 오징어 게임’이나 마찬가지다. 1단계: 점심 먹자마자 하교한 아이를 돌봐줄 사람이 없을 때, 2단계: 일을 그만둘 수 없어 아이를 오후 5시까지 학교 돌봄교실에 맡겨야 할 때, 3단계: 그 돌봄교실 추첨에서 탈락해 아이 혼자 학원을 전전하게 할 때, 4단계: 난이도 최상의 ‘끝판왕’. 학교 내 돌봄교실이 없거나, 매일 등교 대상도 아닌 3학년이 되어 만 9세 아이 혼자 집에서 밥을 챙겨먹고 원격수업을 들을 때. 그래서 일하는 엄마들은 오늘도 아슬아슬한 마음으로 출근길에 나선다. 혹시 아이의 학교에서 확진자가 나오면 어쩌나, 하교는 누가 해야 하나, 내가 일을 포기하면 모든 게 다 해결되지 않을까, 오늘이 마지막 출근은 아닐까. 인구보건복지협회가 지난달 발표한 워킹맘 1000명 대상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코로나19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의 전쟁 같은 일상이 통계로 뒷받침된다. 응답한 워킹맘 10명 중 4명 이상이 심리척도 검사에서 ‘우울 의심’ 상태였다. 코로나19 속 절반 이상(52.1%)이 돌봄 공백을 경험했고, 그중 20.9%는 돌봄 공백에 대처할 수 없었다고 한다. 출산·육아로 직장을 그만두려고 고민한 적이 있다는 응답은 63.1%였다. 이들의 평균 자녀 수는 1.64명. 이들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자녀 수는 2.09명이었다. 아이 둘을 낳아 잘 키우고 싶은 마음과 낳으면 아이에게 죄를 짓는 것 아닌가 하는 망설임, 그 사이에 약 ‘0.5명’이라는 간극이 있다. 일과 가정 사이를 외줄타기하며 첫째를 키워내도, 결국 둘째가 태어나면 또다시 식은땀 나는 출퇴근을 반복해야 한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정부가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 필사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면 코로나19 시기 퇴사한 워킹맘들의 ‘커리어 부검’을 제안한다. 넷플릭스에서 시작돼 여러 스타트업으로 전파된 ‘부검 메일(postmortem email)’ 문화는 퇴사자들이 남은 구성원에게 보내는 이메일로, 조직을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끄는 ‘부검’을 한다는 취지에서 시작됐다. 지난해 통계청이 조사한 여성의 고용률은 아이를 낳고 키우기 시작하는 30대에서 급락했다. 일터에서 조용히 사라진 이 30대 여성들의 커리어 부검이 우리 사회를 좀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지도 모른다.이서현 정책사회부 차장 baltika7@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