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인종편견 고발…그녀의 ‘50년 침묵’ 과연 언제 끝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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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7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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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퍼 리의 소설 ‘앵무새 죽이기’ 내일 출간 50돌

미국이 자랑하는 ‘국보급 작가’ 하퍼 리(84·사진)의 소설 ‘앵무새 죽이기(To Kill a Mockingbird)’가 11일 출간 50주년을 맞는다. 유에스에이투데이 등 주요 외신들은 9일 “작품의 재조명을 위한 다양한 기념행사가 벌어지고 있다”며 “그러나 저자는 여전히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고 보도했다.

1960년 발표된 이 소설은 대공황기였던 1930년대 앨라배마 주를 무대로 백인 여성을 성폭행한 혐의로 무고하게 체포된 흑인을 변호하는 인권변호사 이야기를 그의 어린 딸의 시선으로 풀어 낸 소설이다. 소설의 무대인 ‘메이콤’은 실제 작가가 어린 시절을 보냈으며 지금까지 살고 있는 먼로빌이다. 작품에 소개된 인물들 역시 주변 이웃들의 모습에서 착안했다는 점에서 자전적 성장소설이라 할 수 있다.

외신들은 “먼로빌에는 매년 3만 명이 넘는 순례객이 찾고 있다”라고 전한다. 먼로빌의 모습은 많이 변했다. 당시 소설에서 묘사된 법원 건물은 지금은 박물관으로 쓰이고 있고, 작가 하퍼 리가 어린 시절에 살았던 집은 패스트푸드 식당으로 변모했다. 시대도 많이 변했다. 작품이 나온 1960년대는 흑인 민권운동이 갓 태동하던 시기였지만 지금은 흑인 대통령을 백악관에서 볼 수 있는 시대다. 하지만 평론가들은 “인종 편견이 미국 사회에 남아 있는 한 이 소설의 가치는 여전할 것”이라고 말한다.

앵무새 죽이기는 지금까지 40여 개국의 언어로 번역돼 4000만 권 이상이 팔려 나갔으며 지금도 매년 100만 권 이상 팔리고 있는 ‘스테디 베스트셀러’다. 1962년에는 그레고리 펙이 주연한 영화로 만들어졌고 최근엔 해리포터 시리즈를 제치고 미국 고교생이 가장 많이 읽은 책으로도 뽑혔다. 출판사 하퍼콜린스는 50주년을 기념한 특별 에디션을 출간할 예정이다.

출간일을 전후해 먼로빌을 비롯한 미국 전역에서는 소설 낭독회, 먼로빌 마을 투어, 다큐멘터리 상영 등 성대한 생일잔치들이 열린다. 정작 이 모든 행사에서 저자를 만나기는 어려울 것 같다. 하퍼 리는 인구 7000명의 이 한가로운 농촌 마을에서 언론 인터뷰나 외부 초청을 일절 거부한 채 50년째 은둔 생활을 계속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별판 출간-다큐상영 등 재조명 행사 잇따라 열려

“美 인종편견 남아있는 한 소설의 가치는 계속될것”


앵무새 죽이기를 ‘미국의 국민 소설’로 치켜세웠던 오프라 윈프리도 그를 무대로 끌어내려 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다. 최근 한 영국 언론사 기자가 “책에 대한 얘긴 절대 묻지 않겠다”고 약속한 뒤 초콜릿 선물을 사들고 방문했지만 “고맙다”는 몇 마디 말을 제외하고는 다른 코멘트를 듣지 못했다.

작가가 대중 앞에 나서기를 꺼리는 이유조차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문학평론가들은 작가가 출간 직후 걷잡을 수 없이 밀려드는 칭찬으로 부담감을 느꼈기 때문이라 추측하고 있다. 또 출간 당시 미국 남부의 보수적인 분위기 때문에 자신의 작품이 끊임없는 논란과 공격의 대상이 된 것도 이유가 됐으리라는 추정이다.

앵무새 죽이기는 초기의 짧은 단편 몇 개를 빼고는 그의 처음이자 마지막 소설이다. 하퍼 리 자서전을 쓴 또 다른 작가 찰스 실즈는 “다른 작품이 더 나올 것이란 추측도 있지만, 설령 그렇다 해도 그가 죽기 전에는 출판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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