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마당]사형제도 폐지

  • 입력 2007년 1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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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5년 대통령 긴급조치 위반 등의 혐의로 사형이 집행된 ‘인민혁명당 재건위원회’ 사건 관련자 8명에 대해 서울중앙지법이 23일 무죄를 선고했다. 정치권력이 저지른 ‘사법 살인’이 재조명되면서 사형제 폐지에 대한 논란이 이어졌다. 인혁당 사건과 같은 한 건의 오류 때문에 범죄 억지력이 큰 사형제를 없애기 곤란하다는 주장과 사형제는 범죄를 줄인다는 근거가 없고 정치적으로 악용되기 쉽다는 반박을 소개한다.》

【찬】 ‘인혁당 사건’ 같은 사법 살인 예방을

사형의 反인륜성 세계가 공감

무죄 밝혀져도 되살릴수 없어

인혁당 재건위 사건 재심에서 무죄가 선고됨에 따라 ‘사법살인’의 비극이 32년 만에 실체를 드러냈다. 진실은 밝혀졌지만 사형제(제도 살인)에 의해 목숨을 잃은 이들을 살려낼 방법은 없다. 희생양이 된 8명과 유족에게 사회적 차원의 속죄와 보상이 뒤따라야 하는 이유이다.

필자는 ‘제도 살인’에 대한 반성으로서, 국회 법사위에서 잠자는 사형폐지 특별 법안이 조속히 통과되길 기대한다. 인권과 민주주의 사각지대에서 희생된 고인의 뜻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재적 과반수의 국회의원들이 발의한 이 법률안은 엽기적 살인사건이 터지기만 하면 되살아나는 ‘인과응보’의 일그러진 정의 관념과 시민사회의 무관심 때문에 심리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세계 118개 국가가 사형을 폐지했다. 사형제를 존치시키는 국가의 2배이다. 유럽연합(EU)에 가입하려면 먼저 사형제를 폐지해야 한다. 유엔과 로마 교황청이 사형폐지를 적극 권장하고, 국제사면위원회는 한국을 ‘사형폐지 집중대상국’으로 지정해 세계여론을 환기시키고 있다. 국내에서도 국가인권위원회가 사형폐지 의견서를 국회에 제출했다. 사형제 폐지는 거역할 수 없는 대세이며, 국가의 총체적인 인권 수준의 척도로 평가된다.

사형제 존치론자는 사형에 강한 범죄억지력이 있다고 주장한다. 그 주장은 과학적으로 증명된 바가 없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사형제가 없는 유럽이 사형제를 존치한 미국보다 더 안전하다. 캐나다의 경우 1976년 사형제를 폐지한 후 살인사건이 40% 감소했다는 보고가 있다.

사형제를 폐지해야 하는 근본 이유는 반인륜성, 정치적 악용, 오판 가능성, 그리고 무자비성 때문이다. 사형제는 한 인간의 목숨이 전 지구를 합한 것보다 더 무겁고 소중하다는 보편적 진리에 거역한다. 사형은 인간의 생명권을 근본적으로 부인하며, 범죄인을 교육하고 교화하여 건전한 사회인으로 복귀시키는 것을 내용으로 하는 형벌의 본질에 반한다.

인혁당 사건에서 보듯 사형제는 ‘정치적 악용’이라는 문제점을 낳고 있다. 21세기에도 이런 현상은 현재진행형이다. 아프리카, 아시아, 남미의 일부 국가에서 사형은 여전히 정치적 억압수단으로 악용돼 신체고문과 제도적 살인(사형)이 끊이지 않는다.

재판관에 의한 오판 가능성은 상존한다. 미국에서도 사형이 확정됐다가 ‘무죄’로 밝혀져 석방된 사람이 114명이나 된다고 한다. 무엇보다 사형제는 무자비하다. 사형이 집행되고 난 후에는 어떤 보상과 조치로도 이전의 상태를 회복할 수 없는 불가역적 상황이 초래된다. 유일한 해결책은 사형제의 ‘완전 폐지’뿐이다.

어느 사회,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사형제가 폐지될 당시에 지지여론보다 반대여론이 훨씬 높았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조사 시기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60∼80%의 압도적 반대여론이 존재한다. 결국 사형제는 선구자의 부단한 노력과 투쟁, 입법자의 결단을 통해 폐지될 수밖에 없다. 국회에서 잠자는 사형폐지 특별법안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와 결단이 필요하다.

장유식 변호사·참여연대 운영위원회 부위원장


【반】 어떤 처벌보다 범죄 예방에 큰 효과

살인죄에 대한 벌은 사형밖에

민주화로 ‘정치적 남용’ 사라져

인혁당 재심 판결을 계기로 사형을 폐지해야 한다는 여당의 주장이 보도됐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인혁당 사건은 사형제도와 무관한 문제다. 최근에는 사형을 계획적인 살인에만, 또 여러 명을 죽이거나 범행수법이 잔인한 극소수에게만 선고한다. 현재 사형수 전원이 살인범으로 그중 80%가 2명 이상을 살해했다. 공안사범은 1명도 없다.

한국 정치의 발전과 국민 수준의 향상으로 수십 년 전에 벌어졌던 정치적 남용의 문제는 지금 상황에서 존재하지 않는다. 오판의 가능성이 있고 사형은 회복 불능의 벌이기 때문에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은 얼핏 설득력 있게 들리지만 폐지론자의 주장과는 관계가 없다. 그들은 죄가 있는 사람의 사형도 반대하니까. 많은 생명을 살리는 약이 드물게 치명적 부작용을 일으킬 때 약을 없애지 말고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방법을 연구해야 한다.

사형을 반대하는 가장 큰 이유는 사형이 비인간적이고 비인권적인 벌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인간의 존엄성을 무시하며 헌법이 보장하는 생명권의 침해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영국 철학자 존 스튜어트 밀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타인의 생명을 빼앗은 사람의 생명을 국가가 박탈하는 제도가 그의 생명을 존중하지 않는 셈이라면 범죄자에게 벌금을 부과하는 제도는 그의 재산권을 무시하는 조치이고 범죄자를 투옥하는 제도는 신체의 자유를 무시하는 조치인가?

인간의 가치와 권리는 무조건적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가치와 권리에 의해 제한된다. 타인의 살 권리를 박탈한 사람은 스스로 자신의 어떤 권리를 박탈해 버렸다. 자신의 행동에 의해 스스로 어떤 권리를 박탈해 버린 사람으로부터 그것을 박탈하는 제도는 재산권이나 자유권에 대한 부정이 아니다. 범죄자가 죄책을 초래했기 때문이다.

응보는 범죄에 의해 정당화된다. 죄를 범한 사람은 벌을 받아야 한다. 인간 생명의 독특한 가치 때문에 살인죄에 대한 벌은 이마누엘 칸트도 말했듯이 사형 외에 다른 대체 벌이 없다. 범죄자를 벌 받아 마땅하기 때문에 벌하는 제도는 그들을 도덕적으로 책임 있는 인간으로 존중하는 것이다.

살인죄에 대한 사형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근거는 인간의 존엄성이다. 사형은 실질적 이상의 중요한 상징적 의미를 갖는다. 사형을 인정하는 헌법 제110조 4항은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보장하는 헌법 제10조, 그리고 본질적 인권 침해를 금지하는 제37조 2항 단서와 상충하지 않는다. 헌재의 결정처럼 사형은 합헌이다. 오히려 헌법은 벌이 죄에 비례하도록 요구한다.

사형은 종신형을 포함한 다른 어떤 벌보다 상대적으로 더 큰 범죄 억지력을 갖는다. 어떤 범죄를 억제할 수 있는 유일한 벌이다. 종신형보다 강한 벌이 없다면 교도소에서 종신형 수형자가 다른 재소자나 교도관들을 두려움 없이 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붙잡히면 종신형을 받을 범죄자가 경찰관을 죽이거나 도주를 용이하게 하기 위해 목격자를 죽이는 추가 범죄를 저질러도 그가 받을 형량은 마찬가지로 종신형이므로 잃을 것이 없다.

신성자 총신대 교수 신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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