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시집 ‘그래서 당신’ 펴낸 섬진강 시인 김용택

  • 입력 2006년 4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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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덟 번째 시집 ‘그래서 당신’을 펴낸 김용택 시인. 그는 “시가 사람들의 아픈 마음을 위로해 주고 절망 속에서 불리는 희망의 노래라는 신념은 언제나 변함없다”고 말했다. 김재명 기자
여덟 번째 시집 ‘그래서 당신’을 펴낸 김용택 시인. 그는 “시가 사람들의 아픈 마음을 위로해 주고 절망 속에서 불리는 희망의 노래라는 신념은 언제나 변함없다”고 말했다. 김재명 기자
“시집 낼까 말까 겁나게 고민해 부렀어야.”

시의 감동은 더디고 느리게 오는데 요즘 사람들은 감동을 기다리지 않는다는 생각에 김용택(58) 시인은 망설였다고 했다. 두 권 분량의 원고 중 시집으로 묶기로 한 짧은 시 50여 편을 추려내 다듬으면서도 그는 생각이 많았다.

“탁 치면 감동이 바로 튀어야 하는 게 요즘 세상인데 시는 그렇지 않은 게지. 다들 끊임없이 질주하잖아,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사회도 그렇지만 시인들도 문제가 있지. 현실과 너무 멀어져 있다고.” 11일 만난 김 씨의 얘기다.

그렇지만 시인은 시를 써야 사는 법이다. 김 시인이 새 시집 ‘그래서 당신’(문학동네)을 냈다. 2002년 ‘연애시집’ 이후 4년 만이다. 시집이 가뿐하다. 한 편 한 편 말수가 적은 대신 여백이 많다. 당연히 함께해야 할 작품해설도 없다. 산문시가 대부분인 요즘 시풍을 거스르는 시집이다. “(해설도) 군더더기인 것 같더라고. 시가 길어지면 지루해 보이고.”

과연 ‘미니멀리즘’이라고 할 만하다. ‘바람이 불면/내 가슴속에서는 풀피리 소리가 납니다’(‘그리움’)가 한 편, ‘밤길을 달리는데/자동차 불빛 속으로 벌레들이 날아와 유리창에 부딪쳐 죽는다//필사적이다’(‘사랑’)가 한 편이다. 짧지만 무엇을 노래하는지 명쾌하게 와 닿는다. 언어를 채우기보다는 비우고, 현란하게 쓰기보다는 버리고 쳐내는데 감정은 한결 또렷하다.

‘달’이라는 시는 이런 비움의 절정이다. ‘그래, 알았어/그래, 그럴게/나도…응/그래’가 시의 전부다. 어느 날 달을 보고 있는데 전화가 왔다. 사랑하는 사람이다. 응, 응, 전화하고 내려놓았는데, 가만 돌아보니 짧은 말 몇 마디에 사랑이 듬뿍 묻었다. 살면서 사랑한다는 게 그런 것이다. 그 ‘사랑하는 사람’이 시집에서 실명으로 등장하기도 한다. ‘은영아! 하고 산에 대고 부르고 싶지요/나는 혼자 바람 부는 산을 보며 진짜 그렇게 부를 때가 있답니다.’(‘내 여자’에서)

“은영이? 우리 각시”라면서 김 시인은 웃음을 터뜨린다.

김 시인은 연애시의 절창으로 꼽히는 ‘그 여자네 집’ 등을 통해 사랑과 연애의 감정을 그가 초등학교 선생님으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는 섬진강 풍경에 버무려 왔다. 그는 “지금껏 연애에 대한 아기자기한 이야기를 시로 풀어썼지만 새 시집에서는 사랑의 열정과 인생에 대한 성찰을 함께 담았다”고 설명한다. 예순이 가까워지면서 마음에 묵혀 뒀던 삶에 대한 생각들을 시로 내보이고 싶다는 것이다. 가령 ‘때로는 오래된 산길을 홀로 가는 것 같은 날이 있답니다’나 ‘인생은 한번 피었다가 지는 꽃이야’라는 시구가 그렇다.

시인은 항상 시대로부터 망명해야 한다고 믿는 김용택 시인. 그가 보기에 오늘날 시인이 저항해야 할 대상은 탐욕과 오만이 치달리는 ‘치욕스러운 지구’다. 말을 아끼고 아껴 수수하고 소박해 보이는 그의 시편들은 숨 가쁜 세상에 대한 저항이다.

‘잎이 필 때 사랑했네/바람 불 때 사랑했네/물들 때 사랑했네/빈 가지, 언 손으로/사랑을 찾아/추운 허공을 헤맸네/내가 죽을 때까지/강가에 나무, 그래서 당신.’(‘그래서 당신’)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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