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가 흐르는 한자]疾 病(질병)

  • 입력 2001년 12월 18일 18시 50분


疾 病(질병)

疾-병 질 病-병들 병 齒-이 치 傷-상처 상 猖-미칠 창 獗-날뛸 궐

다음 한자 단어들을 보자. 文字, 海洋, 言語, 道路, 官吏, 齒牙(치아), 世代 등…. 일상 생활에서 자주 사용되지만 과연 두 字간의 차이점을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글자가 다르므로 뜻도 다를 법한데 그 차이점을 구별해내기란 쉽지 않다. 물론 한자의 구조를 알면 쉽게 구별할 수가 있다.

疾과 病도 그런 경우라 할 것이다. 둘 다 ‘병들어기댈역’(녁)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병들어기댈역은 환자가 침대에 누워 있는 모습을 그린 다음 세워서 만든 글자로 ‘질병’의 뜻이 있다. 따라서 ‘병들어기댈역’이 들어 있는 한자는 모두 질병이나 아픔과 관계가 있다. 疲(피곤할 피), 痛(아플 통), 痲(마비될 마), 療(치료할 료), 疫(염병 역), 癌(암 암) 등.

疾은 병들어기댈역과 화살을 뜻하는 矢(시)의 결합이다. 甲骨文(갑골문)을 보면 사람의 겨드랑이에 화살이 꽂혀 있는 모습이다. 전쟁에서 화살에 맞아 부상당한 것을 뜻한다. 그러니까 疾은 화살(矢) 때문에 생긴 병(병들어기댈역)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겉으로 드러나는 병, 곧 外傷(외상)이 아닌가.

화살을 맞는 것이나 부상은 뜻하지 않게 당하게 된다. ‘쏜살같다’는 말이 있다. 옛날에는 가장 빠른 것이 화살이었으므로 矢는 ‘화살’이라는 뜻 외에 ‘빠르다’는 뜻도 가지고 있다. 곧 병(병들어기댈역)중에서 증세가 빨리(矢) 나타나는 것이 疾인 것이다.

그런데 증세가 빨리 나타나면 낫기도 빨리 낫는다. 곧 疾은 病보다는 좀 가벼운 것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疾患(질환), 眼疾, 痼疾(고질), 痔疾(치질)이 있다. 여기에서 疾은 ‘빠르다’는 뜻도 가지게 되었다. 疾走(질주), 疾風이 있다.

病은 병들어기댈역과 丙의 결합인데 丙은 본디 ‘불’을 뜻한다. 불이 있는 병(병들어기댈역)이란 체온이 올라가는 것을 뜻한다. 그것은 신체의 일부가 기능을 상실하여 열이 나는 것을 말한다. 또한 그것은 外傷에 의한 부상처럼 갑자기 생기는 것이 아니라 오랜 기간 동안 천천히 진행되어 왔음을 뜻한다. 따라서 병은 疾보다 더 무서우며 치료하기도 그만큼 어렵다.

이렇게 볼 때 疾이 급성, 외과적인 신체의 이상 상태라면 病은 만성, 내과적인 질환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痢疾(이질)의 특성을 어렴풋이나마 알 수 있을 것이다. 후진국형 전염병이라 할 수 있는 痢疾이 때아닌 겨울에 猖獗(창궐)하고 있다. 조금만 위생관념이 있어도 예방할 수 있다니 더욱 부끄러운 노릇이다.

鄭 錫 元(한양대 안산캠퍼스 교수·중국문화) sw478@yahoo.co.kr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