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의 환희]평창 압승 이끈 재계 3人, 그들만의 특별했던 승부수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7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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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OC위원 다 만난 이건희, 아들-딸-사위에도 “접촉하라” 독려

《 승부사에게는 그들만의 특별한 무기가 있다. 10년 뒤를 내다보는 폭넓은 시야,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미소, 한 번 결심한 일은 해내고야 마는 뚝심. 평창 겨울올림픽 유치라는 건곤일척(乾坤一擲)의 승부에서 자신만의 무기를 한껏 휘두른 3인의 승부사가 화제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박용성 두산중공업 회장. 2018년 겨울올림픽 개최지를 선정하는 제123차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총회 1차 투표에서 66%의 압도적인 지지를 얻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운 이들의 승부수는 무엇이었을까. 》
그의 눈물을 본 것은 처음이었다. 자식을 잃는 아픔에도, 모진 특검을 거치는 동안에도 그는 대중 앞에서 눈물을 흘린 적이 없었다.

자크 로게 IOC 위원장이 ‘평창 2018’이라는 종이를 들어 보이는 순간 현장의 한국 관계자들은 약속이나 한 듯 손을 번쩍 들고 환호했다. 단 한 사람만 예외였다. 이건희 회장은 몇 분간 정면을 가만히 응시했다. 그의 눈시울은 촉촉해졌다. 전혀 다른 공간에 혼자 남겨진 것처럼 보이기까지 했다.

그를 지근거리에서 오래 보좌했던 한 인사는 “걸음걸이도 편치 않으신데 일흔 노구를 이끌고 이 나라 저 나라 돌면서 100명이 넘는 IOC 위원을 모조리 찾아다닌 것은 소명감만으로 한 일은 아닐 거다. 마음의 짐이랄까…. 그런 게 컸던 것 같다”고 눈물의 의미를 설명했다.

이 회장이 평창에 거는 의미는 남달랐다. 2009년 12월, 평창 겨울올림픽 유치를 조건으로 특별사면을 받았다. 이 짐을 벗어야 한다는 부담도 있었지만 국익이라는 절박함이 컸을 것이다. 삼성 임원들은 “평창이라는 말만 들어도 소화가 안 된다”고 호소할 정도였다.

한 측근은 그를 “독한 분”이라고 표현했다. 지는 걸 참지 못한다. 느리게 말하고 천천히 움직이지만 10년 뒤를 생각한다. 타고난 승부사다. 지난해 2월 캐나다 밴쿠버 올림픽에 참석한 뒤 1년 반 동안 IOC 위원 110명을 모두 만났다. 세 번 이상 만난 위원도 있었다. 11차례 출국해 170일을 해외에 머물면서 21만 km를 이동했다. 지구 다섯 바퀴를 돈 셈이다. 2007년 평창의 두 번째 도전에서 1차 투표에 이기고도 결선 투표에서 러시아 소치에 져 2014년 겨울올림픽 개최권을 내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승부사 기질이 발동했다.

그는 IOC 위원을 식당에서 만날 때면 미리 해당 위원의 이름을 새겨 넣은 냅킨을 준비해 상대를 감동시켰다고 한다. 더반에서는 경쟁국의 집중 견제를 피해 한밤중에 IOC 위원과 만나느라 잠을 거의 못 잤다는 후문이다. 저녁식사를 약속했던 한 위원이 “다른 일정이 생겼다”며 약속을 취소하려 하자 이 회장은 “아무리 늦어도 좋다. 기다리겠다”고 한 뒤 2시간 가까이 기다려 결국 만나 그의 마음을 돌려놓는 집념을 보였다.

이 회장은 겨울올림픽 개최권을 따내기 위해 아들과 사위까지 뛰게 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사장은 매년 7월 초 미국 아이다호에서 열리는 국제 비즈니스인 ‘앨런&코 콘퍼런스’(일명 선밸리 콘퍼런스)를 포기하고 더반 일정에 합류했다. 2002년 이후 한 번도 빠진 적이 없는 행사다. 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회장을 비롯해 에릭 슈밋 구글 최고경영자(CEO),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CEO 등 거물들이 몰려드는 행사를 포기한 것은 이 회장의 지시 때문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더반에서 이 회장의 손을 잡고 보좌해 눈길을 끈 둘째 사위 김재열 대한빙상연맹 회장(제일모직 사장)은 지난해 12월 부사장으로 승진한 지 석 달 만에 사장으로 승진했다. 이 회장이 승진 인사를 지시한 것은 김 당시 부사장이 빙상연맹 회장이 된 것 외에 평창 유치운동을 돕는 것까지 고려했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에 앞서 올해 4월 영국 런던에서 열린 스포츠 어코드 행사에도 이 회장은 이 사장과 김 사장, 장녀인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을 총동원해 IOC 위원들과 접촉하도록 했다.

한나라당 정몽준 전 대표는 7일 평창의 겨울올림픽 유치와 관련해 “이건희 IOC 위원의 외교 파워를 보여준 것”이라고 평가했다.
▼ PT 개인과외로 ‘무대 울렁증’ 극복 ▼


평창 겨울올림픽 유치위원장인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은 좀처럼 화내는 법이 없다. 매사에 느긋하기로 유명하다. 그런 그에게는 남모를 고충이 있었다. 바로 무대 울렁증이다. 2009년 9월 유치위원장을 맡은 뒤 몇 차례 프레젠테이션을 하면서 무대 울렁증이 생겼다는 후문이다.

조 회장은 이를 극복하기 위해 영국의 연설 전문가에게 개인 교습을 받았다. 재계 총수 중에서도 영어를 잘하기로 소문난 그이지만 발음을 교정하고 억양을 조절하는 법까지 섬세하게 배웠다. 이번 프레젠테이션에서 여유 있는 면모를 과시할 수 있었던 것은 이 같은 남모를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또 그의 온화한 면모는 IOC 위원들의 마음을 사는 데 큰 강점이 됐다고 한다.

2월 IOC 실사 평가단이 내한했을 때였다. 위원들이 인천국제공항에서 평창으로 가는 버스에 올랐을 때 함께 버스에 탄 그는 마이크를 잡고 “이 버스의 수석 사무장으로서 여러분을 편히 모시겠다”고 고개를 숙여 박수갈채를 받았다. 이런 모습을 기억하는 IOC 위원들은 더반에서도 조 위원장이 다가오면 스스럼없이 얘기를 나눴다.

그의 개인적인 면모 외에 그가 회장으로 있는 한진그룹의 글로벌 네트워크도 큰 힘을 발휘했다. 한진그룹은 ‘평창동계올림픽 유치 추진 사무국’을 마련하고, 영어 프랑스어 등 외국어에 능통한 임직원 20여 명을 배치했다. 유치위에 30억 원의 후원금을 기탁하고, 3월에는 국내 최초로 남자 스피드스케이팅 실업팀을 창단해 겨울올림픽 열기에 불을 지폈다.

국적 항공사인 대한항공이 참여한 항공사 동맹체인 스카이팀을 활용해 IOC 위원과의 친분도 넓혔다는 후문이다. 39개국, 112개 도시에 취항하는 대한항공은 유치위원들에게 전세기를 제공하기도 했다. 좀처럼 접촉하기 어려운 중동의 IOC 위원을 섭외하기 위해 사우디아라비아의 아람코가 최대 주주인 에쓰오일의 네트워크를 활용하기도 했다. 그룹 비상장 계열사인 한진에너지가 에쓰오일의 2대 주주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 ‘적지’ 獨에 베이스캠프… 유럽표 공략 ▼


대한체육회장인 박용성 두산중공업 회장은 재계에서도 알아주는 뚝심의 사나이다. 한 번 마음먹은 일은 끝까지 해결해야 직성이 풀린다.

이런 뚝심은 평창 유치에서도 여실히 발휘됐다. 그는 일찌감치 5월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베이스캠프를 차렸다. 후보 도시였던 독일 뮌헨이 평창과 치열한 경쟁을 벌이자 독일의 심장부에서 유럽 표 공략에 나선 것이다. 유럽은 물론이고 중동, 아프리카에서 열리는 국제 스포츠행사는 모두 쫓아다니며 IOC 위원들을 만났다.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굴로 들어가라’는 말을 실천한 셈이다. 이에 앞서 3월에는 ‘방사능 피폭 위험이 있다’는 만류에도 불구하고 일본 도쿄를 찾아가 IOC 위원들을 만났다.

박 회장은 IOC 인맥도 탄탄하다. 2002년부터 2007년까지 국제유도연맹 회장 겸 IOC 위원으로 왕성하게 활동한 덕분이다. IOC 위원 110명 가운데 80명 이상과 오랜 친구처럼 지낸다고 한다. 이런 인맥을 바탕으로 그는 IOC 위원들의 표심(票心)을 사전 점검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평소 “IOC 위원들의 속내는 알 수가 없다”고 말하는 박 회장은 IOC 위원 본인은 물론이고 그의 지인까지 살펴 각 위원의 표심이 어디로 향해 있는지 수차례 확인했다고 한다.

국가올림픽위원회(NOC) 위원장도 맡고 있는 박 회장은 NOC 위원장 자격으로 참석할 수 있는 국제행사도 빠짐없이 챙기며 IOC 위원을 보유한 국가의 NOC 위원장에게까지 공을 들였다는 후문이다.

김희균 기자 foryou@donga.com@@@
더반=황태훈 기자 beetlez@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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