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신간]“자연재해가 역사를 바꾼다”

  • 입력 2005년 1월 11일 18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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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말 남아시아를 강타한 지진해일(쓰나미)은 15만 명의 인명 희생과 막대한 재산 피해를 가져왔다(사진). 역사적으로 이런 큰 자연재해는 인간과 자연에 큰 영향을 끼쳤고 역사의 흐름을 바꾸어 놓기도 했다.

미국의 고고학 저널리스트인 데이비드 키즈 씨는 세계 각국의 사료를 조사해서 쓴 저서 ‘대(大)재해(Catastrophe·2000년)’에서 서기 535, 536년에 걸쳐 전 세계적으로 대기가 혼탁해지면서 태양을 가려 큰 기근과 홍수가 나고 전염병이 창궐해 구시대가 몰락하고 새 문명의 싹이 트기 시작했다고 주장했다.

1815년 인도네시아 숨바와 섬의 탐보라 화산 폭발로 수십만 명이 숨졌다. 대기를 뒤덮은 150만 km³의 화산재와 먼지는 지구의 기온을 낮췄고 이듬해 1816년은 유럽인들에게 ‘여름이 없었던 해’로 기억됐으며, 전 세계적으로도 흉작이 이어졌다.

1845년 여름 아일랜드에서는 3주 동안 내린 큰비와 습한 날씨 때문에 감자페스트가 퍼졌고, 이 비는 이듬해 봄까지 계속됐다. 결국 주식인 감자 농사를 망친 수많은 아일랜드 인들이 굶어죽고 200만 명 이상이 이후 10년간 미국으로 이민을 떠났다. 이렇게 갑작스러운 대규모 자연재해가 인류역사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을 학자들은 ‘파국이론(Catastrophism)’이라고 부른다.


전 세계적으로 대기근과 각종 민란, 전쟁이 끊이지 않아 ‘위기의 시대’라 불린 17세기도 자연재해 때문이라는 주장이 설득력 있게 제기되고 있다.

서울대 이태진 교수(한국사)는 병자호란(1636년) 당시 중국 동북지역에서 기온이 떨어져 대기근이 일어나자 농민반란을 일으킨 만주족이 남쪽의 곡창지대를 찾아 남하해 명나라를 멸망시키고 한반도에까지 쳐들어왔을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한다. 그는 ‘조선왕조실록’을 분석한 결과 유성 혜성 등 ‘하늘의 이상 현상’과 지진 해일 수해 가뭄 등 자연재해가 ‘소빙기(小氷期·지구의 기온이 상대적으로 낮았던 14∼18세기 기간)’의 중심이었던 1500∼1750년에 조선에서도 집중됐음을 증명했다.

이 교수는 “16∼17세기 유럽을 휩쓸었던 ‘마녀사냥’ 광풍도 흉작, 전염병 등의 원인을 ‘마녀’에게 돌리고 있다는 점에서 소빙기에 발생한 자연재해가 그 원인이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국내외 학계는 이번 남아시아의 대규모 자연재해가 아시아는 물론 전 세계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흐름에 미칠 영향을 주의 깊게 관찰하고 있다.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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