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최병호]포괄수가제, 이제부터가 문제 정부-의료계 불신부터 없애야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7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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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병호 한국보건사회연구원장
최병호 한국보건사회연구원장
의사협회가 포괄수가제의 적용을 받는 질환에 대한 수술거부를 철회함으로써 사태는 일단락됐다. 다행스럽고 현명한 선택이다. 그러나 수술거부 철회가 포괄수가제를 수용하겠다는 의미는 아니라고 한다. 1년 후에 재평가해서 제도의 존폐를 판가름 내자고 한다. 판가름을 하는 의사결정구조도 바꾸자고 한다. 병원협회는 경증질환 중심의 7개 수술에 대한 포괄수가제 적용은 조건부로 찬성했지만 중증 및 복합질환으로 포괄수가제를 확대하는 데에는 반대한다고 밝혔다. 정부는 이제 작은 산을 하나 넘은 셈이다. 앞으로 넘어야 할 크고 험준한 산이 기다리고 있다.

백내장, 편도, 맹장, 탈장, 항문, 제왕절개, 자궁적출 등 7개 질환에 대한 포괄수가제 시행은 사실상 199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시범사업을 거쳐 2002년에 제도화하려 하였으나 의료계의 반대로 원하는 의료기관만 참여하는 선택형으로 도입되었다. 의료기관 임의로 참여하는 선택형 포괄수가제는 의료제도의 한구석에 늘 불편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포괄수가제를 전면 도입하든 폐기하든 언젠가는 결단을 내려야 할 제도였다. 10년이 흐른 2012년, 개원의와 중소병원에 한정되었지만 제도로 의무화한 데에 큰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그러나 포괄수가제의 앞날은 편치 않다. 내년 7월에는 종합병원을 대상으로 시행한다. 시행 1년 동안 의료현장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알 수 없다. 더구나 내년 2월에는 새 정부가 출범한다. 이미 정부와 의사협회 간에 감정의 골은 깊어져 있다. ‘비용의 낭비를 줄이고 의료의 질도 담보하자’는 좋은 정책적 의도로 시작한 포괄수가제가 시간이 지날수록 정치적인 세(勢)싸움으로 변질되었고 언어폭력이 난무하는 사태에까지 이르렀다. 마음의 상처는 기억에서 지우기 어렵다. 서로 마음을 열기까지에는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현재 가장 큰 문제는 정부와 의료계의 불신으로 보인다. 정부는 이미 2009년부터 포괄수가제를 보완한 신포괄수가제에 많은 공을 들여왔다. 신포괄수가제란 정찰제에 대한 비판을 보완하기 위하여 의사의 의료행위에 대해서는 행위별 수가를 인정하고, 장기입원을 요하는 환자에 대해 입원일수에 비례해 보상하는 것이다. 이미 공단 일산병원과 지방공공병원을 대상으로 실험하고 있고 금년 7월부터는 553개 질환을 대상으로 시범사업을 시행하고 있다. 그러나 의료계는 신포괄수가제에 대해서도 줄곧 반대 입장을 내고 있다.

포괄수가제를 성공적으로 도입하려면 의·정 간에 서로 입장을 인정하는 데에서 출발해야 한다. 정부는 의사의 자존심을 세워주어야 하고 의사협회도 국민의 편에 서 있다는 신뢰를 심어주어야 한다. 또 건강보험은 세금과 다를 바 없는 보험료로 재원을 조달하는 사회보장제도임을 인정해야 한다. 따라서 건강보험재정을 운영하는 정부의 입장을 이해해야 한다. 의사들은 포괄수가제가 싫으면 예산제약 속에서 해볼 수 있는 다른 수가제도를 제안해야 한다. 어떤 수가제도이든 간에 궁극적으로는 비용과 질의 문제로 귀착한다. 어쩌면 새로운 대안의 제시 이전에 서로의 가슴 속에 남아있는 증오를 걷어내는 것이 더 중요할지 모른다. 누가 이기고 누가 지는 게임이 아니다. 모두가 이기는 상생의 게임이 진정한 선진의료의 미래상이다.

최병호 한국보건사회연구원장
#기고#최병호#의료#포괄수가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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