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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태규의 ‘직필직론’]‘알 권리’라는 미명하에 벌어지는 사생활 침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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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태규의 ‘직필직론’]‘알 권리’라는 미명하에 벌어지는 사생활 침해

동아일보입력 2013-07-11 03:00수정 2013-07-11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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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태규 단국대 교수·언론학
가수 장윤정과 그 가족을 계속 불러내 싸움을 붙이는 텔레비전 방송들은 도대체 어떤 언론윤리 의식을 갖고 있는가? 장윤정에 대한 어머니와 동생의 악담을 보는 것도 ‘시청자의 알 권리’라고 생각하는가? 장윤정 경우만이 아니다. 이른바 ‘국민의 알 권리’를 내세운 방송의 지나친 연예인 사생활 드러내기가 도를 넘은 지 오래다. 언론에 대한 존경은커녕 혐오마저 불러일으키는 심각한 지경이다.

일반적인 세상사의 법칙은 단순하다. 불미스러운 일을 저지르면 대가를 치른다는 것. 법의 응징이 아니라도 여론의 뭇매를 맞는다. 연예인의 법칙은 정반대이다. 말썽을 일으킬수록 대중은 더 그들을 쫓는다. 연예인들의 스캔들은 대중의 말초적 호기심을 자극한다. 그 때문에 연예인들이 돈을 벌고 사회적 지위를 계속 유지하는 역설적 상황이 일어난다. 그러기에 연예인들은 가지가지의 방법으로 대중의 호기심을 유발하려 한다. 여론의 뭇매가 오히려 이름과 얼굴을 알리는 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니 재능에 의존하기보다 특이한 행동과 말로 승부를 건다. 눈물로 범벅된 가족사를 털어놓는 것도 그들의 홍보수단이다. 그러한 연예인의 법칙을 이용하는 것이 선정성 재미 추구에 매몰된 텔레비전 방송들이다.

방송 관계자들은 어차피 대중의 관심 속에서 살기를 원하고 텔레비전의 조명 아래서 자신의 삶을 키워나가는 연예인들에 대해 어떤 것이든 알고 싶은 것이 대중이며, 그런 대중의 호기심과 욕망을 채워주는 것이 텔레비전 방송의 기능이라고 할지 모른다. 그러나 애써 연예인들의 가족 다툼에 대한 호기심까지 충족시켜 줄 권리나 의무가 방송에 있다고 보기 어렵다.

방송 등 언론들이 남의 사생활을 들춰낼 때 조자룡이 헌 창 쓰듯 내세우는 명분이 국민의 알 권리이다. 하지만 모든 것을 알 권리라는 이름으로 취재하고 보도할 수는 없다. 어느 누구와 마찬가지로 연예인에게도 보호받아야 할 사생활의 권리가 있다. 반면에 어떤 국민도 연예인의 사생활에 대한 정보까지 요구할 권리가 없기 때문이다. 호기심을 가진다고 해서 국민에게 당연히 알 권리가 생기지는 않는다. ‘알 권리’와 ‘앎에 대한 호기심’을 혼동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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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클린 오나시스는 존 F 케네디 전 미국 대통령의 부인이었으나 그리스의 대부호 아리스토텔레스 오나시스와 재혼했던 인물. 그는 연예인 못지않은 유명세를 치르며 언론의 시달림을 받았다. 오나시스는 마침내 자신과 어린 두 아이에 대한 파파라치의 집요한 접근을 막아달라며 소송을 냈다. 1973년 미국 법원은 “오나시스가 (어디를) 가고 오고, 발레를 좋아하고, 어떤 음식을 좋아하는지는 대중의 행복에 중요한 것이 아니다”며 “이른바 대중의 흥미는 어떤 권리도 가지지 못하는 단순한 대중의 호기심에 지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법원은 파파라치가 51.4m 이내에서 촬영하지 못하도록, 뉴욕 아파트의 91.4m 이내에는 접근하지 못하도록 했다. 알 권리와 호기심을 분명히 구별한 결정이었다.

알 권리가 국민의 권리 가운데 하나로 정당성을 갖기 위해서는 단순한 호기심보다 훨씬 강한 법과 도덕의 호소나 상황의 필요성이 뒷받침되어야만 한다. 가령 정상 상황이라면 직장 동료가 지난밤에 누구와 술을 마셨는지 알 권리가 나에게는 없다. 본인이 스스로 이야기를 한다면 모르지만 내가 그 정보를 요구할 권한은 없다. 그의 사생활 보호권이 나의 알 권리에 우선한다는 뜻이 아니다. 나에게는 애초부터 그런 권리가 없다는 의미이다. 부모 자식처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있어야 누구와 술을 먹었는지 정도를 물어볼 권리가 생긴다.

또 알고자 하는 정보가 타인의 목숨이나 안전에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이라는 ‘부득이한 필요성’이 있어야 한다. 뺑소니차에 치인 사람의 가족에게 사고를 알려주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그의 지갑을 뒤져 신원을 알아내는 경우이다.

공직자나 정치인의 사생활은 국민의 삶과 행복에 직접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적절한 정보의 필요성과 권리에 대한 합법적 주장은 당연하다. 그들이 음주운전을 하다 경찰에 적발되었다면 국민은 그가 누구인지, 왜 그랬는지 알아야 한다. 그들의 지나친 음주는 당장 다음 날 국민 세금을 받은 공무 수행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미국 언론은 부통령과 뉴욕 주지사를 지낸 넬슨 록펠러가 복상사한 사실을 보도했다. 프랑스 언론은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에게 숨겨 놓은 애인과 딸이 있으며, 그들을 나라 돈으로 해외 순방에 데려간 것을 보도했다. 한국 언론도 김영삼, 김대중 두 전직 대통령의 숨겨진 딸과 관련해 보도한 적이 있다. 모두 사생활 보호와 관련한 논란이 있었으나 그들이 정치적 능력은 물론이고 도덕성을 내걸고 국민의 선택을 받은 만큼 부적절한 사생활은 보도되어야 한다는 논리가 우세했다.

연예인들의 사생활이 국민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그들의 시시콜콜한 일상사에 대한 호기심에 법과 도덕의 정당성과 필요성이 존재한다고 보기 어렵다. 장윤정과 그 가족들의 돈에 얽힌 싸움의 전말에 대해서는 국민의 알 권리가 존재한다고 볼 수 없다.

장윤정은 국민이 투표로 선택한 공적인 인물도 아니다. 아무리 연예인이라도 본인이 원하지 않는 한 사생활 보호를 받아야 할 개인일 뿐이다. 만약 있다면 일부 대중의 천박한 호기심이 있을 뿐이다. 오히려 계속 싸움을 부추기는 방송에 강한 비판을 하며 역겨움마저 호소하는 국민이 많다.

방송들은 장윤정의 어머니와 동생이 스스럼없이 가정사를 밝히는 상황이니 그것을 국민에게 알려주는 것이 무슨 문제냐고 할지 모른다. 하지만 무릇 언론이라면 국민이 알아야 할 필요가 있는 것과 국민이 말초적 흥미와 호기심으로 알기를 원하는 정보를 구별할 줄 알아야 한다. 무엇이든 알아야 한다는 대중의 욕심을 충족시켜 주는 것이 방송의 할 일이 아니다. 그것은 스스로 연예인의 도구가 되는 꼴이다. 이번처럼 많은 대중이 더이상 알고 싶지 않다는데도 가족들을 불러내는 것은 국민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도 아니다. 시청률에 목을 매 선정주의에 사로잡힌 텔레비전 방송들의 자제가 필요하다.

손태규 단국대 교수·언론학
#장윤정#사생황#가정사#알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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