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우리 몸과 운동 이야기]종목별 체형과 경기력… 빠르면 약하고 힘 세면 느려

  • Array
  • 입력 2012년 3월 31일 03시 00분


코멘트

결국 훈련에 의한 체력이 좌우

2010년 밴쿠버 겨울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 체격이나 체형에 대한 통설을 깨뜨렸던 이승훈 선수. 동아일보DB
2010년 밴쿠버 겨울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 체격이나 체형에 대한 통설을 깨뜨렸던 이승훈 선수. 동아일보DB
우리나라 20대는 같은 키의 50대에 비해 2cm 정도 다리가 길다고 한다. 체형이 점차 서구화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사실 아직까지도 스포츠계에서는 긴 다리와 8등신(키를 머리의 수직 길이로 나눈 비율)으로 대표되는 서양 운동선수의 체형에 대한 동경이 적지 않다. TV 속 스포츠 해설위원들도 이 점을 해설의 단골메뉴로 쓴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고개를 든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체형이 서구화되는 만큼 운동 능력도 함께 향상되는 걸까. 대답은 ‘일부는 맞고 일부는 그렇지 않다’이다. 많은 종목에서 키가 크고 다리가 긴 체형이 유리하긴 하지만, 그렇지 않은 종목들도 있기 때문이다.

○ 체형? 힘과 스피드의 교환

우사인 볼트와 이봉주의 몸은 다르다. 장미란과 박태환의 몸도 다르다. 한눈에 확연히 구분된다. 그러나 같은 종목 선수들의 몸은 크게 차이 나지 않고, 거의 대부분 유사한 체격과 체형을 가지고 있다. 서로 다른 종목과 서로 다른 체형 사이에는 분명 과학적인 이유가 존재한다.

체형은 우선 근육의 주된 사용 목적에 따라 달라진다. ‘짧은 시간 안에 폭발적이고 강한 힘을 발휘하는 것(보통 파워라고 한다)’이 목적이라면 근육이 큰 것이 유리하다. 반대로 자신의 체중을 오랫동안 멀리 이동시켜야 한다면 가능한 한 가벼운 체중과 근육이 좋다.

장미란과 볼트는 경기장에서 10초 안에 자신의 모든 힘을 쏟아 부어야 한다. 지치는 것에는 크게 신경 쓸 필요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에게는 큰 근육이 필요하고, 당연히 체격이 클수록 경쟁에서 유리해진다. 하지만 마라토너는 2시간 이상을 달려야 한다. 근육이 크고 무겁다는 것은 더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큰 근육은 최소한의 에너지로 더 빨리, 더 멀리 달리는 데 짐만 될 뿐이다.

또 탁구나 체조처럼 재빠른 동작이 필요한 종목에서는 작은 체격이, 이종격투기처럼 파워와 근력이 승부를 가르는 종목에서는 큰 체격이 유리하다.

체형은 신체의 어떤 부위를 주로 쓰느냐에 따라서도 달라진다. 박태환은 어깨 폭이 꽤 넓다. 상체가 큰 반면 다리는 상대적으로 짧다. 수영은 물을 가르는 대부분의 추진력을 상체로부터 얻는다. 그래서 수영 선수들은 강한 어깨와 허리, 상대적으로 ‘빈약한’ 다리를 소유한다. 박태환에게 볼트나 이봉주의 허벅지를 줘봤자 부담만 생길 뿐이다. 그 파워와 지구력을 물속에서 활용할 방법도, 이유도 없는 것이다.

결국 특정 종목에 적합한 체형과 체격은 힘과 스피드의 교환이란 측면에서 이해하는 것이 쉬울 것이다. 다른 사람들보다 빠르기 위해서는 조금이라도 근육이 작고 가벼워야 하고, 센 힘을 내기 위해서는 크고 무거워야 한다. 따라서 특정 종목에 적합한 체격과 경쟁력 있는 체형은 힘과 스피드의 양 극단에서 시작해 서로 접점을 이루는 곳에서 정해진다.

○ 체형이 전부는 아니다

그렇다면 종목별로 적합한, 이상적인 체격이 있을까. 뭐라고 콕 꼬집어 말하기는 어렵지만 대략의 조건을 미뤄 짐작해 볼 수는 있다.

몇 가지만 살펴보자. 보스턴 마라톤 역대 우승자들의 키를 살펴보면 대부분 168∼175cm이다. 미국인들의 평균 신장에 비해 약간 작은 이 수준에서 아주 동떨어지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고 한다. 지난 100년 동안 미국 헤비급 권투 챔피언들의 평균 키는 185cm였다. 더 커봤자 속도만 느려져 불리하다는 게 과학자들의 해석이었다. 그리고 미국 메이저리그에서 이름을 날리는 장타자들은 키가 193cm를 넘지 않는다고 한다. 키가 더 커지면 투수의 볼에 민감하게 반응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몇몇 종목에선 체형적 특성이 확연히 눈에 띈다. 높이뛰기 선수들은 유독 다리가 길다. 역도 선수들은 짧은 다리와 짧은 팔이 두드러진다. 이와 다른 체형은 해당 종목에서 선수로서 큰 성과를 내기가 어렵다.

하지만 체격이나 체형 같은 외부적 형태만이 선수의 모든 것을 결정하진 않는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선수의 의지다. 볼트와 이봉주, 박태환, 장미란 같은 이들은 모두 자신에게 요구되는 스피드와 파워를 얻기 위해 그 누구보다도 열심히 훈련을 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훈련의 결과로 자신의 종목에서 가장 앞설 수 있는 체격과 체형을 얻을 수 있었을 것이다.

체격이나 체형이 무조건적인 조건은 아니라는 결정적인 증거가 하나 더 있다. 2010년 밴쿠버 겨울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던 이승훈 선수의 키는 178cm다. 세계가 놀랐다. 그가 쇼트트랙에서 스피드스케이팅으로 종목을 바꿔 남자 1만 m에서 올림픽 신기록으로 우승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이제껏 그 정도의 ‘작은’ 체구는 스피드스케이팅에 적합하지 않다고 믿어 왔기 때문에 더욱 놀랐던 것이다. 역사는 늘 새롭게 쓰이는 것이다. 체격이나 체형에 대한 무조건적인 맹신은 금물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커졌다. 체형도 달라졌다. 젊은 세대의 선수들은 앞으로 더 유리한 체격 조건과 체형을 가질 것이다. 사실 많은 종목이 큰 선수에게 유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체격이나 체형은 타고난 것일 수도 있지만 끊임없는 훈련의 결과일 수도 있다는 것을 잊지 말자. 게다가 경기력이란 것은 피나는 훈련에서 나오는 체력에 더 좌우되는 경향이 크다. 그런데 사실 우리나라에선 아직까지 체격, 체력 등을 따질 여유가 없다고도 볼 수 있다. 왜냐고? 거의 모든 종목에서 선수가 크게 부족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하나 더. 혹시 운동선수 중 누군가처럼 멋진 체형을 갖고 싶다면? 방법은 간단하다. 그가 주로 하는 훈련에 주목해 그대로 따라해 보면 된다.

이대택 국민대 교수(체육학) dtlee@kookmin.ac.kr
#O2#운동#체형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