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욱 교수의 과학 에세이]스마트폰 쓰는 데 빅뱅이 필요하다고?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5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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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의 기원

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김상욱 부산대 물리교육과 교수
김상욱 부산대 물리교육과 교수
‘사피엔스’의 저자 유발 하라리 교수의 한국 방문이 화제다. 저자는 호모사피엔스 종의 역사와 미래를 그만의 독특한 시각을 가지고 장대한 스케일로 서술한다. 농업혁명이 거대한 사기였다거나, 존재하지 않는 것을 상상하는 능력이 인간의 성공 이유라는 주장은 무척 흥미롭다. 물론 중세사 전문가에 불과한(?) 저자가 감히 인류 역사 전체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두고 비판하는 목소리도 있다. 저자의 모든 주장이 명확한 증거를 기반으로 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빅 히스토리’류의 이런 시도가 매우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 세상에 홀로 떨어져 존재하는 지식은 없기 때문이다.

현재 고등학교에서 진행 중인 통합 과학 교육은 과학의 모든 분야를 하나의 틀 내에서 다루려는 시도다. 과학 영역의 ‘사피엔스’라 볼 수 있다. 대학입시라는 괴물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이런 시도가 성공하기는 쉽지 않다. 생소한 내용과 평가 방법의 어려움 때문에 현장 교사들의 반대도 거세다. 통합 과학은 ‘빅뱅’ 우주론으로 시작한다. 의아할 수 있겠다. 우주가 한 점에서 시작되었다는 빅뱅이 우리의 삶과 무슨 상관이 있을까. 차라리 스마트폰의 원리를 가르치는 게 좋지 않을까. 자, 그럼 빅뱅이 왜 중요한지 생각해 보기로 하자.

스마트폰이 동작하려면 전기가 필요하다. 충전기는 발전소에서 보내준 220V의 전기를 5V로 바꾸어 스마트폰에 공급한다. 우리나라의 전기는 주로 화력이나 원자력으로 얻는다. 화력발전소에서는 석탄을 태워 수증기를 발생시키고, 그 수증기로 터빈을 돌린다. 수증기에 무슨 힘이 있냐고? 라면을 끓일 때 냄비 뚜껑이 덜컹거리며 움직이는 것을 보라. 터빈에 달린 자석이 회전하며 패러데이의 전자기 유도법칙에 따라 전기가 만들어진다. 결국 전기는 석탄에서 온 거다.

그렇다면 석탄에 들어있는 에너지는 어디서 왔을까. 3억 년 전 엄청난 양의 식물이 땅에 매장되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겠지만 식물이 리그닌이라는 물질을 진화시켰기 때문이다. 리그닌은 미생물에 의해 분해가 잘 안되기 때문에 식물이 분해되지 않고 그대로 땅에 묻힐 수 있었다. 이렇게 묻힌 식물의 시체(?)가 바로 석탄이며, 이 시기를 ‘석탄기’라 부른다. 즉, 석탄은 식물에서 온 것이다. 식물은 광합성을 통해 에너지를 만든다. 광합성의 원리는 간단하다. 이산화탄소에 전자를 몇 개 넣고 양성자를 첨가하면 유기물 ‘당’과 에너지원 ATP가 만들어진다.

이산화탄소는 당신과 같은 동물이 호흡할 때 내뱉는 것이다. 동물이 없으면 식물도 존재할 수 없는 이유다. 전자는 물에서 떼어 내어 얻는다. 어떻게 떼어 낼까. 여기에는 외부의 에너지원이 필요하다. 바로 태양빛이다. 빛에 강력한 에너지가 있다는 것은 해수욕장에서 등을 그을려 본 사람은 알 것이다. 결국 석탄에너지는 태양에너지가 식물의 형태로 땅에 묻혀 있는 것이다. 사실 땅속에 묻혀 있는 ‘죽은’ 유기탄소의 양은 지구상 생물체 전체보다 2만6000배 더 많다.

태양에너지는 어디서 온 것인가. 태양은 46억 년 전에 태어났다. 수소원자들이 중력으로 뭉쳐서 점점 커지다 보면 중심부는 엄청난 압력을 받게 되고 온도도 높아진다.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고 있지만, 온도가 1500만 도다. 이쯤 되면 수소 두 개가 하나로 합쳐지며 헬륨이라는 새로운 원자로 변환된다. 현대판 연금술이라 할 만하다. 이 과정에서 막대한 에너지가 쏟아져 나온다. 마술 같은 이야기지만 밤하늘에 보이는 별들이 대부분 이렇게 빛을 낸다.

태양을 이루는 수소원자는 어디서 온 것인가. 우주는 138억 년 전 빅뱅이라는 폭발로 시작되었다. 빅뱅의 순간 이 거대한 우주는 점 하나의 크기에 불과했다. 우주가 팽창하며 온도가 낮아졌다. 온도가 낮아지면 물이 얼음이 되듯이 뜨거운 우주 수프(?)에서도 양성자와 전자 같은 단단한 물질이 생겨났다. 온도가 더 내려가면 양성자 한 개와 전자 한 개가 결합하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수소다. 생각할 수 있는 가장 간단한 구조의 원자다. 우주를 이루는 물질의 75%가 수소이며 이들은 대부분 빅뱅의 부산물이다. 즉, 태양의 에너지원은 빅뱅이다. 결국 스마트폰은 시공간을 뛰어넘어 빅뱅과 연결된다.

이처럼 스마트폰의 에너지를 제대로 이해하려고 해도 전자기학, 고생물학, 생화학, 핵물리, 우주론이 필요하다. 과학을 공부하고도 세상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었다면, 그것은 전체를 보려는 노력을 안 했기 때문이다. 전문가가 자신의 영역을 넘어서는 순간 오류를 범하기 쉽다. 하지만 우주를 통합적으로 이해하고 인류가 직면한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서라면 그 정도의 위험은 감수해야 하지 않을까.

김상욱 부산대 물리교육과 교수
#사피엔스#유발 하라리#스마트폰#빅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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