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브라피시, 실험실 쥐의 자리를 빼앗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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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년 2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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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상용 물고기서 유전연구-환경독성평가 활용 크게 늘어

다 자란 제브라피시는 3∼4cm 크기로 몸에는 얼룩말처럼 가로 줄무늬가 있다. 알과 배아가 투명하고 세포분열이 빨리 진행돼 배아발달을 연구하기 적합하고, 척추동물이기 때문에 신약 후보물질 검증이나 인간유전체 연구에 많이 쓰인다. 왼쪽 아래는 생후 24시간 지난 제브라피시 배아. 김철희 충남대 생명과학부 교수 제공
다 자란 제브라피시는 3∼4cm 크기로 몸에는 얼룩말처럼 가로 줄무늬가 있다. 알과 배아가 투명하고 세포분열이 빨리 진행돼 배아발달을 연구하기 적합하고, 척추동물이기 때문에 신약 후보물질 검증이나 인간유전체 연구에 많이 쓰인다. 왼쪽 아래는 생후 24시간 지난 제브라피시 배아. 김철희 충남대 생명과학부 교수 제공
은회색 바탕에 검은 가로 줄무늬가 선명한 물고기. 얼룩말을 닮은 무늬가 아름다운 데다 기르기도 쉬워 물고기를 좋아하는 이들에게 인기 있는 관상어. 바로 제브라피시(Zebrafish)다.

알부터 배아, 치어(稚魚) 단계까지 온몸이 투명하게 보이기 때문에 배아가 발달하는 과정은 물론이고 각종 약물이 생체에서 어떻게 반응하는지 관찰할 수 있다. 최근에는 관상어 수준을 넘어 생명과학자들이 주목하고 있다.

○ 천연신약 개발의 첨병

해외에서는 1990년대부터 제브라피시를 이용해 생물 발달과정은 물론이고 당뇨·암·정신질환 관련 신약 연구, 환경독성평가, 뇌신경 연구를 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요즘 들어 실험동물로 제브라피시에 관심을 갖고 있다.

한국한의학연구원 한약연구본부 당뇨합병증 연구팀은 2010년에 제브라피시 사육실을 따로 만들었다. 한약재를 이용한 천연신약 후보물질을 찾을 실험동물로 제브라피시를 이용하기 위해서다. 김진숙 책임연구원은 “당뇨합병증에 효과 있는 한약재를 찾는 과정에 제브라피시를 활용하면서 연구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고 말했다.

당뇨로 인한 고혈당이 계속되면 망막 내 혈관이 망가져 시력을 잃게 되는데, 연구진은 이를 예방하고 치료하기 위한 신약 후보물질을 한약재에서 찾고 있다. 제브라피시는 후보물질들의 약효 검증에 쓰인다. 물고기에 당뇨를 일으킨 뒤 다양한 한약재를 이용해 망막의 상태를 살피는 방식이다. 제브라피시는 온몸이 투명하기 때문에 혈관만 초록색 형광물질이 빛나게 만들면 당뇨합병증으로 인한 비정상적 혈관구조를 관찰하기가 편하고, 특정 한약재에 대해 혈관이 반응하는 것도 관찰하기 용이하다.

김 책임연구원은 “원래 쥐를 이용했는데, 마리당 70만 원 정도로 비싸서 제브라피시를 활용하기 시작했다”며 “제브라피시로 여러 신약후보물질을 먼저 검증한 뒤 다른 실험 동물로 확인하면 비용은 줄이고 정확도와 효율은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말 가습기 살균제의 독성 원인을 밝힌 영남대 단백질센서연구소 조경현 교수도 실험동물로 제브라피시를 썼다. 또 한국화학연구원의 김성환 연구원은 생후 9일 된 제브라피시에 레티놀을 주입해 뼈가 더 많이 생성되는 것을 알아냈고, 윤태진 경상대 의대 교수는 생후 2일 된 제브라피시로 미백효과가 있는 물질을 찾기도 했다.

이처럼 제브라피시는 신약 후보물질 발굴은 물론이고 암과 간질, 골다공증, 비만, 이명 등의 질병 원인을 밝히는 등 다양하게 쓰이고 있다.

조만간 문을 열 삼성유전체연구소는 연구소 개원 초부터 실험용으로 쥐 등과 함께 제브라피시를 선택했다. 이지은 성균관대 삼성융합의과학원 교수는 “제브라피시는 수정란을 대량으로 확보할 수 있어 신약 물질을 검증하는 데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 인간 유전질환 연구에 도움

이처럼 다양한 분야에서 제브라피시가 각광받는 가장 큰 이유는 ‘뼈대 있는 물고기’이기 때문이다. 제브라피시는 쥐나 인간처럼 척추동물이기 때문에 유전체 구조가 사람과 닮아 서로 비슷한 유전체의 기능을 연구할 수 있다. 또 체외수정으로 한 번에 200∼300개의 알을 낳기 때문에 대량의 유전체 기능 분석이나 신약 후보물질 검증에도 적합하다. 성체의 크기도 3∼4cm에 불과해 좁은 공간에서 대량으로 사육할 수 있어 유지비용이 훨씬 적게 든다.

제브라피시 연구로 유명한 김철희 충남대 생명과학부 교수는 “제브라피시는 초기 세포분열이 15분 간격으로 진행되며 수정 후 24시간이 지나면 대부분의 주요 장기와 기관이 형성된다”며 “간, 췌장, 지라, 흉선 등 면역계 대부분의 기관이 있고 돌연변이 연구에서 나온 여러 결과가 인간의 유전질환과 매우 유사하다”고 말했다.

제브라피시는 투명한 몸 덕분에 뇌 속 뉴런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관찰할 수 있어 신경과학 분야에서도 각광 받고 있다. 실제로 지난달 말 ‘네이처’와 ‘커런트 바이올로지’에는 살아 있는 제브라피시의 뇌 속을 들여다보는 방법이 실려 화제가 됐다. 미국 하버드대 플로리언 엥거트 박사는 물이 담긴 배양접시에 마비된 제브라피시를 올리고 뇌를 촬영하는 장치를 만들었다. 배양접시 아래에서 빛을 쏴 배경을 바꾸면 제브라피시가 헤엄치듯 꼬리를 움직이는데, 이때 뉴런이 어떻게 활성화되는지 볼 수 있다는 것. 일본 국립유전학연구소 가와카미 고이치 박사팀도 제브라피시 치어에 GCaMP라는 유전자를 주입해 뉴런을 반짝이게 만든 뒤 짚신벌레를 잡아먹을 때 제브라피시의 뇌를 촬영하기도 했다. 김철희 교수는 “뇌 활동을 세포 수준에서 실시간으로 관찰할 수 있다는 점에서 획기적”이라고 평가했다.

이렇게 다양하게 쓰이고 있는 제브라피시지만 국내 보급은 더디다. 유전자변형생물체(LMO) 규제법에 걸려 외국에서 이미 형질전환한 연구용 제브라피시를 국내로 쉽게 들일 수 없기 때문이다.

박태진 동아사이언스 기자 tmt1984@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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