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송평인]대통령 2명의 베네수엘라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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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인과 석유의 나라 베네수엘라. 2000년 이후 미스 유니버스를 두 번 이상 차지한 다른 나라는 없는데 베네수엘라만 세 명 배출했다. 엘 시스테마 같은 빈곤층 청소년 음악교육 프로그램으로 LA필하모닉의 최연소 음악감독이 된 천재 지휘자 구스타보 두다멜을 낳기도 한 창의적인 나라이기도 하다. 풍부한 석유자원도 갖고 있다. 다만 그 수입이 외국계 석유회사와 국내 과두 계층에 편중됐던 게 문제다.

▷석유는 이 나라의 축복이자 저주다. 우고 차베스는 2000년 집권 이후 석유회사를 국유화하고 나머지 제품은 석유를 수출한 돈으로 수입해 국민에게 싸게 공급하는 포퓰리즘 정책을 썼다. 유가가 높을 때는 그런 정책이 가까스로 유지가 가능했으나 2014년 유가가 급락하자 경제는 나락으로 떨어졌다. 차베스가 2013년 암으로 사망하면서 정치적 위기까지 더해졌다. 차베스는 니콜라스 마두로를 후계자로 지명했으나 마두로는 관권선거로 집권 초부터 정당성 시비에 휘말렸다.

▷베네수엘라 경제는 2013년 말 이후 초(超)인플레이션에 시달리고 있다. 물가는 한 주 만에 몇만 %씩 올라 더 이상 세는 의미가 없어졌다. 석유의 나라에서 무려 인구의 10%인 300만 명이 먹고살기 위해 나라를 떠나는 진기한 엑소더스가 벌어지고 있다. 국민 평균 체중이 2016년과 2017년 사이에 10kg 이상 줄었다는 충격적인 조사 결과도 있다. 차베스 치하에서 무기 보유가 확산돼 2014년 미스 베네수엘라 출신의 여배우 모니카 스페아르가 노상강도의 총격에 사망하는 등 치안도 더 불안해졌다.

▷최근 수만 명의 시민이 반(反)마두로 시위에 나서고 이에 호응해 야당 지도자 후안 과이도 국회의장이 과도정부를 선언했다. 미국과 유럽연합(EU), 남미 주요국들은 과이도 의장을 임시 대통령으로 인정한 반면 중국 러시아 등은 마두로 지지를 밝혀 대통령 2명이 공존하는 불안한 정국이 이어지고 있다. 일부 군인들의 쿠데타 시도는 진압되고 군부 전체가 동요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지만 차베스 없는 차베스주의가 종말을 향해 가고 있음은 틀림없는 듯하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베네수엘라#니콜라스 마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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