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각은/최대현]수사-기소 분리가 ‘사법인권’ 키운다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2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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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대현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
최대현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
형사사법 시스템에는 다양한 가치들이 공존한다. 범죄인은 반드시 유죄 판결을 받아야 하지만 그 과정에서 무고한 사람이 억울하게 유죄 판결을 받아서는 안 된다. 피해자를 보호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피의자의 인권 역시 보호받아야 할 대상이다. 그런데 형사 절차가 추구하는 다양한 가치들은 서로 양립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사회질서 유지를 중시하는 정치권력 아래에서 인권 보호는 상대적으로 덜 중요한 것으로 여겨질 수 있다.

다양한 가치들이 공존하는 형사사법 시스템을 평가하는 도구로 현재까지 가장 많이 사용되고 있는 모델이 허버트 패커의 범죄통제 모델과 적정절차 모델이다. 범죄통제 모델은 효율성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여기며 범죄 수사의 결과가 그대로 재판의 결과로 이어진다는 특징을 가진다. 반대로 적정절차 모델의 가장 중요한 가치는 무고한 시민이 유죄를 받지 않도록 하는 국민의 기본권 보호이다. 최근의 한 연구에서 두 모델과 민주주의와의 연관성을 전 세계 111개 국가의 형사사법 시스템을 중심으로 분석했는데 민주주의의 평가 점수가 높은 나라일수록 적정절차 모델의 가치가 더 중요하게 강조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반면 우리나라의 형사사법 시스템은 범죄통제 모델에 훨씬 더 가깝다. 수사, 기소, 재판의 결과가 사실상 검사에 의해서 결정되고 있다. 검찰은 수사권과 기소권을 독점적으로 행사한다. 이 때문에 검찰이 수사한 내용은 별다른 통제 없이 기소로 이어진다. 기소된 사건의 대부분은 검사의 의견대로 유죄 판결을 받고 있는 것이다.

민주주의가 발전함에 따라 한국의 형사 절차는 범죄통제 모델에서 적정절차 모델로 그 중심이 이동하고 있다. 그러나 적정절차를 보장하기 위한 노력들은 주로 피의자나 피고인의 인권 보장을 위한 개별적인 법률 조항을 만드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검찰의 권한은 늘어나는 방향으로 변화를 거듭해 왔다.

검찰 권한이 확대되면 피의자나 피고인의 헌법상 기본권이 보장되기보다는 침해받을 가능성이 높다. 검찰을 독립된 기소기관보다는 경찰의 수사를 보충하거나 직접 수사를 담당하는 또 다른 수사기관으로 만들고 있다. 결국 경찰과 경쟁 관계가 형성되거나 경찰을 보조적 수사기관으로 전락시키면서 수사에 대한 경찰의 책임감을 감소시키고 결국 형사 절차의 효율성마저 떨어뜨리고 있다.

수사와 기소의 기능 분리를 통해 검찰은 평가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경찰이 1차 필터로 사건을 평가하고 검찰이 객관성을 가진 2차 필터로 수사 결과를 검토한다면 형사 절차는 인권 보호를 위한 매우 효과적인 ‘장애물’을 가지게 될 것이 틀림없다.

검찰 개혁의 핵심은 검찰 권한의 분산과 공소권자로서의 역할의 재정립이며 이는 한국 민주주의의 발전에 중요한 전제임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최대현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
#사법인권#형사사법 시스템#허버트 패커#범죄통제 모델#검찰 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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