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식의 한시 한 수]〈1〉해우물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4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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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명 무렵 어지러이 비 날리는데/길 가는 나그네는 심란하기만. 주막이 어디냐고 물으니/목동은 저 멀리 행화촌을 가리킨다. (淸明時節雨紛紛, 路上行人欲斷魂. 借問酒家何處有, 牧童遙指杏花村.) ―‘청명(淸明)’(두목·杜牧·803∼852)
 
청명은 자연의 생명력이 왕성해지기 시작하는 절기로 인간이 대자연과의 교감 속에서 한 해의 기운을 새롭게 맞아들이는 때다. 그래서 예로부터 이 무렵이면 봄 풀밭을 노니는 답청이나 성묘 등으로 가족, 친지들이 한데 어울려 흥겨움을 나누었다. 하지만 시인은 지금 그 대오에서 떨어져 있다. 어지러운 빗속에서 홀로 객지를 떠돌고 있으니 그 심사는 자못 울적하기만 하다. 고달픈 삶에 덜미라도 잡혔다면 그 위안은 이제 해우물(解憂物)―술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비도 피하고 심란한 마음도 달랠 겸 주막을 찾으려는 시인에게 목동은 무심한 듯 손짓으로 대꾸한다. 행화촌은 문자 그대로 살구꽃 피는 마을을 가리키는 일반명사이기도 하고, 시인의 행적과 관련지어 난징(南京) 부근에 있는 행화촌으로 특정하기도 한다. 행화촌이라는 지명이 중국 전역에 스무 곳가량 등장한다는데 한시에서는 주막의 대명사로 곧잘 쓰인다. ‘요(遙)’는 ‘멀다’는 뜻으로 시인이 찾는 목적지가 멀리서나마 눈에 띈다는 말인지, 아득히 멀어 적이 실망스럽다는 말인지는 알 길이 없다. 시 마무리가 ‘저 멀리가 행화촌’이라는 손짓 하나로 갑자기 끝나버렸기 때문이다.

시적 화자가 곰살궂게 해명하는 대신 독자의 상상력에 맡기는 이 수법은 한시 특유의 여운의 미(美)이기도 하다. 굳이 한자의 표면적 의미에 얽매일 필요는 없겠다. 촉촉한 봄비 속에 오버랩되는 연분홍빛 살구꽃, 객수(客愁)를 달래려 주막을 향하는 시인의 발길이 문득 바빠질 것 같다. 두목은 호방한 시풍과 풍류 넘치는 서정적 분위기를 고루 갖추었던 만당(晩唐)의 대표 시인으로, 대시인 두보에 비견되어 흔히 ‘소두(小杜)’로 불리기도 한다.

이준식 성균관대 중어중문학과 교수
#청명#두목#해우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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