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장진호 미군유해 다 찾아 남편유언 이룰 것”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6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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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위트컴 장군 부인 한묘숙씨, 전재산 바쳐 30년 발굴사업

1950년 장진호 전투에서 전사한 미군들의 유해를 찾기 위해 평생을 바친 고 리처드 위트컴 장군의 부인 한묘숙 위트컴희망재단 대표(오른쪽)가 22일 서울 주한미군 용산기지에서 자신의 꿈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왼쪽은 국군포로 송환에 힘쓰고 있는 사단법인 물망초 박선영 이사장.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1950년 장진호 전투에서 전사한 미군들의 유해를 찾기 위해 평생을 바친 고 리처드 위트컴 장군의 부인 한묘숙 위트컴희망재단 대표(오른쪽)가 22일 서울 주한미군 용산기지에서 자신의 꿈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왼쪽은 국군포로 송환에 힘쓰고 있는 사단법인 물망초 박선영 이사장.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2011년 7월 제임스 서먼 주한미군사령관의 취임식. 키 145cm의 가냘픈 할머니가 호명됐다. 참석자들은 ‘누구지?’ 하는 표정이었다. 서먼 장군은 “고 리처드 위트컴 장군의 부인을 소개한다. 평생 미군 유해 발굴에 힘써온 묘숙 위트컴 씨에게 감명을 받았다. 참석해줘서 영광스럽다”고 말했다. 한묘숙 위트컴희망재단 대표(88)를 향해 기립박수가 터져 나왔다.

위트컴 장군은 6·25전쟁 때 부산의 미군 2군수기지사령관을 지냈다. 1953년 부산역전(驛前) 대화재로 피란민들이 고통을 받을 때 군수물자를 풀어 도왔다. 이 일로 미국 의회 청문회에 섰을 때 “전쟁은 칼로만 하는 게 아니다. 그 나라 국민을 위하는 것이 진정한 승리”라고 말해 큰 박수를 받았다.

위트컴 장군은 1960년 충남 천안에서 보육원을 운영하던 한 대표와 만나 결혼했다. 위트컴 장군의 꿈은 1950년 혹한 속에서 12만 명의 중공군을 막아내다가 장진호 전투에서 전사한 미군의 유해를 가져오는 것이었다.

1982년 위트컴 장군은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그의 꿈은 부인인 한 대표가 이어받았다. 1989년 북한의 초청장을 처음 받은 한 대표는 이후 1990년대 초까지 북한을 23차례나 드나들었다. 미군 유해 발굴이란 진짜 방북 목적은 숨긴 채 북한산 송이버섯 판매 등 대북사업으로 ‘위장’했다. 그렇게 장진호 인근까지 간 한 대표가 북한 사람들에게 미군에 대해 넌지시 물었다.

“아, 장진호요? 거긴 못 갑니다. 참, 미국 놈들이 전부 죽을 때 ‘마미(mommy)’ 하고 죽었다던데, 마미가 무슨 뜻이오?”

머나먼 타국에서 마지막 순간 엄마를 찾은 장병들의 모습이 떠올라 눈물이 왈칵 쏟아질 뻔했다. 북한 사람들은 “미국 놈들이 배가 고파 서로 오줌을 받아먹었다. 2만 명이 죽었다고 한다”는 얘기도 별생각 없이 내뱉었다.

22일 동아일보 기자와 만난 한 씨는 “얼른 치웠으면 좋겠다며 나보고 제발 유골들을 가져갔으면 좋겠다고 하더라”고 전했다. 한 씨는 북한 사람들에게 몰래 돈을 주고 장진호 유골을 가져오기 시작했다. 판문점까지 유골을 가져오게 한 뒤 미군의 ‘전쟁포로 및 실종자 확인 합동사령부(JPAC)’에 전하는 방식이다.

한 씨는 한때 이중간첩 논란에 휘말려 1990년대 후반 이후 북한에 가지 못했다. 그는 포기하지 않고 중국 단둥(丹東)에 사무소를 차려 유해 송환을 계속 시도했다. 요즘은 유해를 가져오기 위해 만나는 대가만으로 5만 달러(약 5767만 원)라는 거액을 요구해 이마저도 중단됐다.

“이 일에 30년간 매달리며 전 재산을 다 바쳤어요. 어떻게든 찾아야겠다는 생각에…. 내가 바보죠.”

그러면서도 그는 “내가 북한에 가야지 누가 들어가. 난 유골 다 찾을 때까지 못 죽는다”고 말했다.

그 집념의 이유를 물었다. “전우들의 유해를 꼭 찾겠다는 남편과 굳게 약속했기 때문이에요. 연금 받아먹으며 편히 살 수도 있지만 안 돼, 나는 약속을 꼭 지켜야 해요.”

‘단 한 명의 병사도 적진에 내버려두지 않는다’는 JPAC의 구호가 곧 그의 삶 같았다.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한묘숙#미군 유해 발굴#위트컴 장군#6·25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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