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취로 ‘블랙아웃’된 10대와 모텔간 男 …대법 “동의해도 성추행” 첫판례

  • 동아닷컴
  • 입력 2021년 2월 21일 12시 51분


코멘트
상대방이 성적 관계를 맺는데 동의했다고 해도 음주 등으로 상황을 기억하지 못하는 ‘블랙아웃’의 상태였다면 강제추행죄가 인정된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3부(주심 민유숙 대법관)은 준강제추행 혐의로 기소된 A 씨의 상고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유죄 취지로 파기하고 사건을 수원지법으로 돌려보냈다고 21일 밝혔다.

앞서 2017년 2월 새벽 경찰 공무원인 A 씨는 당시 18세였던 피해자 B 양을 우연히 만나 안양시 한 모텔로 데려간 뒤 입을 맞추고 신체를 만졌다.

B 양은 평소 주량보다 술을 많이 마신 상태였고 친구들과 노래방에 갔다가 외투와 휴대전화를 노래방에 둔 채 화장실을 갔다가 A 씨를 만난 뒤 일행에게 돌아가지 않았다. 이에 B 양의 친구가 경찰에 실종 신고를 했다.

친구의 신고로 경찰은 현장에서 A 씨를 체포했고 그를 준강제추행혐의로 기소했다. 피해자가 음주 등의 영향으로 저항할 수 없는 상태임을 이용해 강제추행을 했다는 것이다.

1심에서 재판부는 A 씨의 혐의를 인정하고 징역 10개월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B 양이 추운 겨울 외투도 입지 않은 채 함께 노래방에 간 일행을 찾아갈 생각도 하지 못한 점 등에 비춰 정상적인 판단 능력을 잃은 상태”라고 봤다.

재판부는 이어 “피고인은 ‘첫눈에 서로 불꽃이 튀었다’는 변명으로 일관하고 있어 엄중한 처벌을 받아야 한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그러나 1심과 달리 2심에서 재판부는 A 씨에게 무죄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모텔 CCTV상 B 양이 비틀대거나 부축을 받는 모습 없이 자발적으로 이동했으며, 모텔 직원도 “두 사람이 편안히 모텔로 들어갔다”고 진술한 점을 근거로 B 씨가 심신상실 상태가 아니라고 봤다.

하지만 대법원은 2심을 뒤집고 유죄판결을 냈다.

재판부는 B 양이 당시 일행과 소지품을 찾지 못했고, 처음 만난 사람과 모텔에서 무방비 상태로 잠든 점 등을 비춰 심신상실 상태라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당시 친구의 신고를 받은 경찰이 모텔방으로 찾아온 것을 알면서도 B 양이 옷을 벗은 상태로 잠든 점을 언급하며 “판단 능력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 상태”라고 지적했다.

이어 재판부는 “피해자가 의식상실 상태는 아니지만 알코올 영향으로 추행에 저항할 수 있는 증력이 떨어진 상태였다면 준강간죄나 준강제추행죄를 적용할 수 있다”고 판시했다.

다만 재판부는 “필름이 끊겼다는 진술만으로 알코올 블랙아웃의 가능성을 쉽게 인정해선 안 된다”며 충분한 심리를 통해 심신상실 여부를 가려야 한다고 말했다.

이번 판결은 알코올 블랙아웃을 심신상실 상태로 인정할 수 있다고 본 첫 대법원 판례다.

조유경 동아닷컴 기자 polaris27@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오늘의 추천영상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