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TS의 극기 노하우 ‘도망치지 말라’[Monday DBR]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2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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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 달리라고 누군 멈춰서라 해. 내 ‘그림자’, 나는 망설임이라 쓰고 불렀네. 걘 그게 되고 나서 망설인 적이 없었네. 무대 아래든 아님 조명 아래든 자꾸 나타나 아지랑이처럼 자꾸 날 노려보네…이게 내 영혼의 지도.”

2019년 발매된 방탄소년단의 앨범 ‘영혼의 지도: 페르소나(Map of the Soul: Persona)’에 수록된 가사의 일부다. 이 앨범은 사회적 가면과 진정한 자아 간 괴리에 힘겨워하는 방탄소년단 멤버들의 내적 고민과 갈등을 담고 있다. 그러나 수록 곡들은 단지 방탄소년단의 화려한 겉면에 감춰진 어두운 이면을 들추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 대신 멤버들이 오랜 투쟁 끝에 어떻게 그림자와의 싸움에서 이겼는지, 어떻게 그 소용돌이 속에서 평정을 잃지 않았는지 비결까지 전한다.

이 앨범의 모티브는 철학자 카를 구스타프 융(1875∼1961)의 이론이다. 페르소나는 사회생활을 하면서 쓰고 있는 가면을 뜻한다. 페르소나는 ‘참된 나’와 거리가 있다. 융은 사람의 정신세계에는 무의식이라는 심층이 존재한다는 프로이트의 이론을 계승했고, 무의식이라는 내면세계가 그림자를 통해 자신을 드러낸다고 믿었다.

그림자는 어둡고, 불안하고, 때로는 파괴적이다. 그림자를 접한 자아는 실망하기 쉽다. ‘내가 왜 이 모양이지’라고 자책하면서 회피하고 도망가려 한다. 그러나 그러면 그럴수록 그림자는 더 짙어진다. 현명한 방법은 맞서 싸우는 것이다. 그림자와 싸워서 이기려면 우선 냉철하게 그림자를 응시하고, 있는 그대로의 그림자를 받아들여야 한다.

그렇다면 방탄소년단은 어떤 그림자를 마주해야 했을까. 2013년 데뷔한 방탄소년단의 초기 작품들에는 영혼의 떨림이 있었다. 융의 용어를 빌리자면 ‘진정한 자아(self)’, 장자의 용어를 빌리자면 마음속 깊은 곳의 ‘진군(眞君)’에 다가가려는 노력이 작품에 묻어났다는 얘기다. 그만큼 음악 활동을 할 때 내면 깊은 곳에서 들려오는 영혼의 소리를 따랐고, 그 부름에 응답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러나 큰 성공을 거둔 후 이들의 자아가 분열되기 시작했다. 월드스타로 떠오른 후 팬들의 기대가 갈수록 높아졌고, 외부의 기대가 쉽게 떨쳐버릴 수 없는 심적인 부담으로 작용한 것이다.

그러나 방탄소년단은 이 분열을 극복했다. 자아에 대한 성찰을 통해 그림자와 싸워서 이기는 방법을 깨쳤다. 비결은 도망치지 않는 데 있었다. 그림자에 담겨 있는 선악의 양면을 모두 응시하고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인 것이다. 페르소나를 벗어던지는 대신 그것을 지혜로운 가면으로 만들었다.

그림자에는 선과 악이 공존한다. 부정적인 면만 있는 것이 아니라 긍정적인 면도 있다. 악을 자아의 또 다른 측면으로 수용하고 정신세계 안에서 선과 악이 하나 되게 하는 태도가 중요하다. 융은 이 과정을 개성화(individuation)라고 부른다. 인간은 내면세계에서 꿈틀대는 욕망인 그림자와 싸우는 과정에서 자신만의 인격을 완성해 나간다.

만약 방탄소년단이 그림자로부터 무작정 도망치려고만 했다면 탈진하고 말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회피하지 않았다. 또 그림자와의 싸움에서 흔히 저지르기 쉬운 잘못 가운데 하나, 즉 그림자를 상대에게 뒤집어씌우는 ‘투사(投射)’의 오류도 범하지 않았다. 보통 못난 남편은 아내에게, 못난 상사는 직원에게 자신의 그림자를 투사한다. 융에 따르면 이러한 행태는 정신병원으로 향하는 지름길이다. 방탄소년단은 자신의 그림자를 타인에게, 세상에, 팬들에게 투사하지 않고 오롯이 자신의 것으로 끌어안았다.

어두운 욕망이 마음을 흔들 때 가장 필요한 것은 마음속의 그림자를 차분하게 지켜보고 그림자가 던지는 영혼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다면 방탄소년단의 페르소나가 묘약이 될 수 있다. “Listen to Persona!”

이 글은 동아비즈니스리뷰(DBR) 291호에 실린 ‘무의식과 페르소나, 방탄소년단이 그림자 투쟁에서 이긴 비결’ 내용을 요약한 것입니다.
 
박영규 인문학자 chamnet21@hanmail.net
#방탄소년단#페르소나#영혼의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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