碑文없는 비석앞 공무원들 머리숙이는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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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2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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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때 38년 관직에도 청빈 전남 장성 박수량 선생 묘
명종 “비문없는 白碑 세워라”… 공직자 청렴교육 코스로

황희, 맹사성과 함께 조선시대 3대 청백리로 꼽히는 아곡 박수량 선생의 묘 앞에 세워진 ‘백비’. 백비는 청백리 고장으로 거듭나고 있는 장성군의 상징이다. 장성군 제공
황희, 맹사성과 함께 조선시대 3대 청백리로 꼽히는 아곡 박수량 선생의 묘 앞에 세워진 ‘백비’. 백비는 청백리 고장으로 거듭나고 있는 장성군의 상징이다. 장성군 제공
7일 오후 전남 장성군 황룡면에 자리한 아곡 박수량 선생(1491∼1554)의 묘. 비문이 없는 하얀 비석 앞에 공무원 100명이 머리를 숙였다. 이들은 ‘청념 교육’을 받기 위해 장성을 찾은 중앙공무원교육원 5급 승진자 과정 교육생. 장성군 문화해설사로부터 ‘백비(白碑)’가 세워진 사연을 들은 교육생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묘비를 만졌다. 환경부에 근무하는 고삼상 씨(53)는 “백비를 보면서 청렴을 생명으로 삼고 실천하는 공무원이 되겠다는 마음을 새롭게 다졌다”고 말했다.

백비가 세워진 것은 아곡 선생의 청렴함을 높이 산 조선조 명종의 왕명(王命) 때문이었다. 아곡은 38년간 공직생활을 하면서 비가 새는 낡은 집에서 기거할 정도로 청빈한 삶을 살았다. 63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 그는 묘를 크게 쓰지 말고 비석도 세우지 말라고 유언했다. 명종은 운상비가 없어 고향으로 가기 어렵다는 말을 듣고 장례비를 마련해 주고 서해안의 하얀 화강암을 골라 비를 하사했다. ‘청백함을 알면서 비석에 글을 새긴다면 이름에 누가 될지 모르니 글자 없이 세우라’고 해 지금의 ‘백비(白碑)’가 됐다.

‘청백리(淸白吏)의 혼’이 살아 숨쉬는 장성군에 옛 선현의 청렴사상과 강직함을 배우려는 공직자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중앙공무원교육원 5급 승진자 과정 교육생들은 이날 9월, 11월에 이어 세 번째로 장성을 찾았다. 교육원은 1박 2일간 장성에서 청렴교육과 현장 체험학습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교육생들은 아곡의 16대손인 한학자 박래호 씨(69)에게 ‘아곡 박수량의 생애와 공직관’을 주제로 특강을 들은 뒤 백비를 참배했다. 이튿날에는 조선 중종 때 명신(名臣)인 지지당 송흠 선생(1459∼1547)이 지은 관수정(觀水亭)을 둘러봤다. 51년간 관직생활을 한 지지당은 중종 때 5차례나 청백리로 뽑힌 명신이었다. 이들은 옛 선비들이 들었던 ‘청백리 밥상’도 맛봤다. 김치와 전, 두부조림, 나물 등으로 차려진 1식 5찬을 들며 청렴사상을 되새겼다.

장성군이 ‘청백리 고장’으로 알려지면서 내년에 견학 및 체험 프로그램을 진행하겠다는 기관 및 단체가 줄을 잇고 있다. 지방행정연수원을 비롯해 생산성본부, 기술보증기금, 한국품질재단, 국민권익위원회 등이 이미 청렴 교육 일정을 잡았다.

장성=정승호 기자 shj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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