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m 한지에 불화… 5년은 걸릴듯 예술로 성취? 수행의 일부분일 뿐”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1월 16일 01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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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도사 방장 성파 스님

성파 스님이 불화를 위해 제작한 대형 한지 위에서 붓을 들고 서 있다. 통도사 서운암 부근에 있는 스님의 작업실은 옻칠과 염료 작업 등으로 공방처럼 보인다. 뒤의 병풍도 옻칠로 작업한 스님의 작품이다. 양산=김갑식 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
성파 스님이 불화를 위해 제작한 대형 한지 위에서 붓을 들고 서 있다. 통도사 서운암 부근에 있는 스님의 작업실은 옻칠과 염료 작업 등으로 공방처럼 보인다. 뒤의 병풍도 옻칠로 작업한 스님의 작품이다. 양산=김갑식 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
13일 경남 양산시 영축총림 통도사 서운암의 장경각 마당에는 장관이 펼쳐졌다. 야구팀 동계훈련에서나 쓸 법한 대형 비닐하우스에 마련된 수조 틀에서 폭 3m, 길이 100m의 거대한 한지가 제작됐다. 지난달 24m 길이의 한지 4장을 붙인 것과 비교해도 업그레이드된 작업이다. 100m의 한지 제작은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다는 게 통도사의 설명이다. 닥나무 껍질을 이용해 종이를 떠서 2주간 건조한 뒤 이날 둥글게 마는 작업이 진행됐다. 2년 만에 만난 방장(方丈·총림의 가장 큰 어른) 성파 스님(81)은 “아무리 시간이 걸려도 옛날식으로 해야지”라며 “한지가 다섯 겹은 될 것”이라고 했다.

―100m 한지에 구경꾼들이 몰렸다. 어려움은 없었나.

“1983년 금니사경(金泥寫經) 전시회를 했는데 작업을 문헌의 감지(紺紙·쪽물을 들인 전통 한지)가 아닌 흑지(黑紙)에 한 것이 마음에 걸렸다. 당시 감지를 제대로 만들 줄 아는 사람이 없으니 방법이 없었다. 그 기법을 아는 분을 찾는 데 10년, 다시 몸으로 익혀 여기까지 왔으니 거의 30년이 걸렸다. 가장 큰 어려움은 시간, 세월이었던가 싶다. 허허.”

―대형 불화 작업은 어떻게 진행되나.

“불화는 폭 3m, 길이 24m의 한지에 작업한다. 과거 불화들은 비단에 채색하고 뒤에 한지를 붙였다. 통도사 불화는 반대로 한지에 작업하고 뒤에 비단을 붙이는 방식이다. 앞으로 산중 의견을 모으고 전문가들의 조언도 받아야 하는데 최소 5년은 걸릴 듯하다.”

―어떤 마음가짐인가.

“종교는 사람들에게 이로움을 주어야 한다. 종교인이 해야 할 의무도 있다. 우리가 정치나 경제를 하는 것은 아니니까, 문화예술로 사람들 마음을 편안하게 해줄 수 있어야 한다.”

불화와 한지 작업을 얘기하다 보니, 동서양 미술에 대한 스님의 평소 생각이 자연스럽게 언급됐다. 성파 스님은 “우리나라 불교 미술은 서양과 비교할 때 시기적으로도 앞서 있고, 예술적 품격도 높았는데 조선시대 숭유억불(崇儒抑佛) 정책으로 산중 스님들이 하는 것 정도로 취급됐다”고 말했다. 불화의 경우 티베트를 빼면 남방 불교는 벽화 위주이고, 중국도 불상과 벽화로 마무리하지 후불탱화나 괘불은 드물다는 게 스님의 말이다.

―한지에 대한 강한 집념이 느껴진다.

“이탈리아와 프랑스 등 서구에서 한지를 연구해 보니, 보존성과 질에서 월등히 뛰어나다고 한다. 한지의 전통을 살려 불화를 조성해봐야겠다는 원력이 생겼다.”

―30일까지 서울 나마갤러리에서 정양모 전 국립중앙박물관장과 함께한 ‘지음지교(知音之交)’전이 열린다.

“그분과는 오랜 인연이다. 통도사 성보박물관에서 옻칠 민화 특별전이 열렸는데 그분이 마음에 드는 작품 17점을 골랐다. 사람은 오래 봐도 모를 수 있고, 잠시 봐도 통하는 사이가 될 수 있다. 우리 둘은 살아온 길은 다르지만 지향하는 공통점이 적지 않다. 우리 미술과 민족문화에 대한 그분의 애착과 자부심은 존경받을 만하다.”

―예술가로서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데….

“예술가로서의 성취? 스스로 그런 뜻은 없다. 해보고 싶은 걸 하고, 어느 정도 되면 다른 쪽으로 찾아 맛만 봤으면 됐다는 식이다. 출가자가 본분이고 예술 작업은 수행의 일부분일 뿐이다.”

―한 분야에 몰두하면 벗어나기 어려운 것 아닌가.

“시계를 봐라. 핵심, 중심만 제대로 잡혀 있으면 물려 있는 톱니바퀴가 100개라도 째깍째깍 제대로 돌아간다. 중심이 있으면 한 부분에 몰두해도 빠져 죽지 않는다. ‘백옥투어니도 불능오예기색(白玉投於泥塗 不能汚穢其色)’이라 했다. 백옥은 진흙 속에 있어도 물들지 않는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장기화로 경제적, 정신적 어려움을 겪는 이가 많다.

“시대와 역사를 돌이켜보면 모든 것에는 흥망성쇠가 있다. 사람도 일도, 심지어 지구상의 모든 변화도 같은 이치다. 물은 배를 띄우지만 엎어버리기도 한다. 배가 전복되지 않으려면 뭍으로 나와야 하는데, 그러면 그것은 배가 아니다. 사람들도 배와 물의 관계처럼 아무리 어려워도 이 세상에서 살아야 한다.”

―좋은 경구를 들려주시면….

“어려움을 견뎌내면 봄이 온다. ‘지득설소거 자연춘도래(只得雪消去 自然春到來)’, 눈만 녹으면 자연히 봄이 오게 돼 있다. 내면을 잘 가다듬으면서 봄을 기다리자.”

양산=김갑식 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


#통도사#방장#성파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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