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조병창’ 끌려간 사람들 “규율 어기면 죽도록 맞았다”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2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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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제동원 증언집’ 간행… 피해자 12명 생생한 구술 담아

일제가 1941년 세운 인천조병창의 ‘기능자양성소’ 단체 사진. 국사편찬위원회 제공
일제가 1941년 세운 인천조병창의 ‘기능자양성소’ 단체 사진. 국사편찬위원회 제공
“잘못 걸리면 죽어요, 아주. 호되게 맞고….”

충남 청양군에 사는 일제 말기 인천조병창 강제동원 피해자의 증언이다. 인천조병창은 일제가 대륙 침략을 위해 1941년 인천 부평지역에 세운 무기제조 공장이다. 적어도 1만 명 이상이 동원된 것으로 파악된다. 국사편찬위원회(위원장 조광)는 인천조병창에 강제 동원됐던 피해자 12명의 생생한 구술 증언을 담은 ‘일제의 강제동원과 인천조병창 사람들’을 최근 간행했다.

조병창은 높은 담장과 철조망으로 둘러싸여 있었고 군인들이 항상 엄격하게 단속했다. 공장을 감시하는 헌병대는 “(군 내무반 같은 규율을 어기면) 데리고 가서, 죽는 소리 나게 때렸다”고 한다.

배고픔에 시달린 것은 물론이고, 부상이나 사고를 당한 이들도 적지 않았다고 피해자들은 회고했다. “기계 일하는 데서 어떤 사람은 다리가 잘려서 오고, 손목도 잘려서 왔다”고 했다. 국민학교를 갓 졸업한 아이들을 비롯해 나이 어린 학생들의 사고도 잦았다. 한 피해자는 “어떤 아이가 옷이 기계에 빨려 들어가는 바람에 팔 하나가 떨어졌다”고 증언했다.

그만둘 자유는 없었다. 12명의 구술자 중 3명은 광복 이전에 조병창을 탈출했다고 증언했다. 경기 여주에서 국민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조병창에 동원된 한 증언자는 “붙들리면 죽지 않으면 영창”인 상황에서도 죽기 살기로 탈출했다. 밤에 화장실을 간다는 핑계로 빠져나온 뒤 철조망을 뜯고 탈출해 산길을 열흘쯤 걸어 도망쳤다고 한다. 다른 사람의 휴가증을 위조해 탈출한 구술자도 있었다.

국사편찬위원회는 “국내 자료가 거의 남아있지 않은 인천조병창 관련 강제동원 진상 규명에 기여할 것”이라고 발간의 의미를 밝혔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인천조병창#일제 강제동원 증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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