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인터뷰]김경희 교수 “틀 밖에서 놀게 하라”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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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의력 교육 전문가 김경희 교수

송은석 기자 silverstone@donga.com
송은석 기자 silverstone@donga.com
“모두 링컨 대통령이 노예를 해방했다고 말하죠. 그러나 저는 소설 ‘톰 아저씨의 오두막’에서 이미 노예해방이 시작됐다고 봐요. 의식과 관점의 변화가 그만큼 중요하다는 이야기죠. 한국의 교육 문제도 마찬가지예요. 의식을 바꾸면 입시지옥에서 해방될 수 있습니다.”

빨간 원피스에 빨간 머플러를 두르고 온 그는 가방에서 빨간색 명함을 꺼냈다. 첫인상부터 톡톡 튀었다. 지난해 12월 30일 서울 마포구 포르체출판사에서 만난 김경희 미국 윌리엄메리대 교육심리학과 종신 교수(56)는 2시간여의 인터뷰 시간 내내 ‘틀’이라는 단어를 되풀이했다. 지금의 한국 교육 ‘틀’을 깨지 못하는 이상 창의력 교육은 머나먼 이야기라는 것이다.

김 교수는 영재 및 창의력 교육의 세계적인 권위자다. 미국 영재아동교육연합 창의력회 회장을 지냈다. 현재 미국심리학회 창의력분과 외국인 연구자회 회장, 세계행동과학저널 공동편집장 등도 맡고 있다. 앞서 1980년대와 90년대에는 국내에서 영어교사로 재직하기도 했다. 30여 년간 창의력 교육 연구에 몰두해온 김 교수는 지난해 12월 연구와 경험을 집대성한 책 ‘틀 밖에서 놀게 하라’를 출간했다. 주요 서점 가정·육아 분야 베스트셀러 1위에 꼽힐 정도로 반응도 뜨겁다. 김 교수에게 한국의 창의력 교육에 대해 물었다.


―한국 창의력 교육의 현주소는….

“날이 갈수록 경쟁이 더 심해지고 있다. 예전에는 고등학교 때 입시경쟁을 했다면 지금은 유치원부터 경쟁을 한다. 내 친구를 밟고서라도 올라간다는 인식이 강한 것 같다. 창의력 교육이 쉽지 않은 환경이다.

놀란 건 교육전문가들도 현장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스스로 ‘창의력 교육이 무엇인지 모른다’고 말하는 교수도 많다. 그렇다 보니 전 세계적으로 우수한 국내 교사 인력을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 교수 혁신이 어렵다면 교장이라도 교육해야 한다. 그래야 바뀐다.

한국 사회에 여전히 남아 있는 학벌주의도 창의력 교육을 저해하고 있다고 본다. 교육의 목적이란 기존 지식과 기술을 바탕으로 새로운 걸 만들어내야 하는데 지금의 한국 교육은 정해진 답대로 순응하기만을 바라고 있다. 이런 상황에선 창의력 교육이 있을 수 없다.”

―그렇다면 창의력은 무엇인가.

“아직 많은 사람에게 창의력의 정의조차 불분명한 것 같다.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다. 간단하다. 창의력은 곧 ‘밸류어블(Valuable·가치가 큰)’과 ‘유니크(Unique·독특한)’다. 가치가 있으면서 색달라야 한다. 가치가 있기 위해선 전문성을 쌓아야 하고 색다르게 만들려면 틀을 깨야 한다. 성공적인 창의력의 결과가 곧 혁신이다.”

―책 ‘틀 밖에서 놀게 하라’에서 창의력을 키우기 위한 방법으로 4S를 강조하고 있다. 4S를 설명한다면….

“창의적인 풍토 안에서 창의적 태도가 생기고, 창의적 태도에서 창의적 사고가 나온다. 풍토 없이 그저 남의 제도만 도입한다고 해서 창의적인 인재를 키워낼 수 있는 건 아니다.

창의적 풍토를 조성하기 위해 눈여겨볼 것이 바로 4S다. 사과나무를 예로 들어 설명해보자. 첫 번째는 햇살(Sun)이다. 나무를 키우기 위해선 햇살이 필요하다. 해는 날씨를 따뜻하게 해주고 또 나무는 햇살을 보고 자란다. 아이의 창의력을 키우기 위해선 호기심에 대한 따뜻한 격려가 필요하다. 또 부모는 아이의 첫 번째 롤 모델임을 잊지 않아야 한다.

두 번째는 바람(Storm)이다. 창의력을 위해선 때론 강인한 정신력도 필요하다. 아이에게 필요한 것과 아이가 원하는 것은 엄연히 차이가 있다. 때론 결핍이 창의력에 도움이 되기도 한다. 아이의 독립성과 회복탄력성을 키우는 방법을 부모가 익혀 둬야 한다.

세 번째는 토양(Soil)이다. 사과나무가 잘 자라기 위해선 흙에 여러 가지 성분이 섞여 있어야 하듯 사람도 창의력을 위해선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다양한 관점을 키워야 한다. 혼자서 자라나는 혁신가는 없다. 상상력과 비판력을 동시에 키우기 위해서는 교류가 필요하다. 다문화적, 전략적 태도를 익혀야 한다.

마지막이 바로 공간(Space)이다. 사과나무를 심는다고 바로 사과를 먹을 수 있는 게 아니다. 또 간격이 너무 빽빽해선 사과나무가 자라날 수 없다. 아이의 창의력 또한 깊게 생각할 수 있는 여유가 필요하고 마음껏 표현할 수 있는 자유가 필요하다.”

―특히 엄마의 역할을 거듭 강조하고 있다.

“어릴 때 산수 시험에서 30점을 맞은 적이 있다. 그때 어머니께서 혼을 내지 않고 어떻게 이런 문제를 풀었느냐며 자랑스러워하셨다. 그래서 나는 내가 공부를 잘한다고 생각했다. 사실 그때 혼이 났더라면 나는 공부에 흥미를 갖지 못했을 거다. 부모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지금의 우리 아이들에게도 마찬가지다. 엄마가 과거의 틀에 갇혀 시험 점수만 이야기해서는 아이가 새로운 생각을 할 수 없다. 엄마가 바뀌어야 세상이 바뀐다.”

―전 세계 다양한 교육현장을 둘러보며 느낀 점은….

“다양한 현장을 보면 볼수록 한국의 학생들만큼 불행한 학생들이 없다는 생각을 한다. 영재만 봐도 그렇다. 외국의 영재들은 지역사회의 문제를 해결하거나 미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러나 한국은 어떤가. 한국에서 영재는 그저 선행학습을 한 아이들을 의미할 뿐이다. 그마저도 99%가 열등감을 느끼며 산다.

결국 유대인의 교육을 말하게 된다. 유대인은 아이가 태어나면 병든 세상을 고치라고 가르친다. 그저 내 아이만 잘 키우면 된다는 우리 교육과는 차이가 있다. 부당한 권위와 권력에 저항하라고 가르치는 것도 눈여겨볼 만하다. 다윗과 골리앗의 이야기에 그들의 교육 철학이 담겨 있는 셈이다. 마지막으로 그들은 아이들에게 책을 읽으라고 권하지 않는다. 그저 부모들이 책을 끼고 산다. 우리 부모들이 눈여겨볼 부분이다.”

―앞으로의 계획은….

“지금 관심 있는 분야는 교사 교육이다. 현장을 나가 보면 창의력과 미래 교육에 관심을 갖고 있는 교사가 많다. 교사 교육의 효과는 무엇이 있는지, 또 그 부작용은 무엇인지 살펴보려고 한다. 최종적으로는 미국 교육부 장관이 돼서 나의 교육철학을 현장에 적용해 보고 싶다.”

강홍구 기자 windu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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