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기생충, ‘할리우드 장벽’ 넘었다…평론가 “아카데미 수상도 기대”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월 6일 16시 4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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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단 하나의 언어를 쓴다고 생각합니다. 그 언어는 영화입니다.(I think we use only one language, Cinema)”

미국 로스앤젤레스 베벌리힐튼 호텔에서 5일(현지시간) 열린 제 77회 골든글로브 시상식 무대에서 골든글로브 트로피를 쥔 봉준호 감독의 수상 소감에 관객석에 앉은 할리우드의 유명 감독, 배우들 사이에서 일순간 박수가 터져 나왔다.

‘기생충’의 골든글로브상 수상은 지난해 프랑스 칸 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에 이어 한국 영화 역사 100년 사상 할리우드 영화계의 높은 벽을 넘은 사건으로 평가된다. 영화와 드라마를 아울러 한국 콘텐츠가 골든글로브에서 후보에 오른 데 이어 트로피까지 거머쥔 것은 ‘기생충’이 최초다.

봉 감독은 “자막의 장벽, 장벽도 아니다. 1인치 정도 되는 장벽을 뛰어넘으면 여러분이 훨씬 더 많은 영화를 만날 수 있다”는 수상 소감을 밝혔지만 세계 영화산업의 심장부 할리우드는 유독 자막을 읽어야하는 외국어 영화에 대한 관객의 심리적 장벽이 높은 곳이다.

그러나 ‘기생충’은 이미 ‘1인치’의 장벽을 뛰어 넘어 지난해 10월 북미에서 첫 개봉한 이후 상영하는 곳마다 뜨거운 반응을 이끌어냈다. ‘기생충’은 북미에서만 2390만 달러(약 280억 원), 세계적으로는 1억2974만 달러(약 1518억 원)를 벌어들였다. 이는 지난해 북미에서 개봉한 외국어 영화 중 가장 큰 규모다. 극중에서 기정(박소담)이 ‘독도는 우리 땅’을 개사해 부른 노래가 ‘제시카 징글(Jessica Jingle)’로 북미 관객들 사이에서 아카데미 주제가상으로 꼽히거나 핼러윈 코스튬으로 재생산되는 등 관객들 사이에서 활발하게 입소문을 탔다. 할리우드의 대표 배우 브래드 피트와 리어나도 디캐프리오도 골든글로브를 앞두고 열린 ‘기생충’ 파티에 참석해 봉 감독과 송강호에게 뜨거운 관심을 보였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2019년의 영화’로 꼽을 정도였다.

‘기생충’은 상업적 성공과 더불어 북미 평단의 찬사를 함께 받으며 골든글로브 수상에 대한 기대감을 키웠다. 4일 열린 전미비평가협회 최고상인 작품상과 각본상을 받기에 앞서 시카고, 뉴욕, 로스앤젤레스 등 미국 주요 비평가협회 상을 휩쓸며 전 세계에서 약 50개의 트로피를 안았다. 시상식을 앞두고 쏟아진 예측 기사에서도 외신은 골든글로브의 외국어영화상 부문은 ‘기생충’의 몫으로 평가했다.

봉 감독은 골든글로브 시상 직후 프레스룸에서 가진 질의응답에서 미국 관객들이 ‘기생충’과 사랑에 빠진 이유를 묻는 질문에 대해 “이 영화는 가난한 자와 부자, 자본주의에 관한 이야기로 미국이야말로 자본주의의 심장과 같은 곳이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기대를 모았던 골든글로브 감독상과 각본상 수상은 불발에 그쳤지만 외국어영화상 수상으로 다음달 9일(현지시간) 열리는 아카데미 시상식 수상 여부에도 관심이 쏠린다. 골든글로브 감독상은 1차 세계대전을 다룬 영화 ‘1917’을 만든 샘 멘데스 감독에게, 각본상은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의 각본을 쓰고 연출한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에게 돌아갔다. 전찬일 영화평론가는 “샘 멘데스와 쿠엔틴 타란티노는 최근 20년 간 미국인에게 가장 사랑받은 감독이라 이들의 수상에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수는 없을 것”이라며 “‘기생충’이 이들의 작품과 경쟁했다는 것으로도 대단한 기록이지만 외국어 영화사상 손에 꼽힐 정도로 대중적인 성공과 호평을 받은 것을 고려하면 아카데미 수상도 기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할리우드를 취재하는 외신기자들이 수여하는 골든글로브와 달리 아카데미상은 배우와 감독 등 영화제작에 직접 관여하는 8000여 명의 미국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AMPAS) 회원들의 투표로 결정된다. 이 때문에 회원의 일부가 아카데미 투표권을 가진 미국감독조합과 미국배우조합이 수여하는 상이 아카데미 수상 여부의 가늠자가 되는데 기생충은 ‘아이리시 맨’과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 등과 함께 미국배우조합의 작품상 격인 캐스팅 상 후보에 올라있다. 뉴욕타임스를 비롯한 외신들이 아카데미 작품상을 따낼 첫 외국어 영화로 기생충을 언급하는 이유다. 기생충은 이미 아카데미 국제영화상(옛 외국어영화상)과 주제가상 2개 부문에 예비 후보로 선정됐으며 13일(현지시간) 작품상과 감독상 등 전체 후보가 발표된다.

이서현기자 baltika7@donga.com
김재희기자 j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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