失明 아버지 그리며… 은행 퇴직뒤 10년 넘게 점자 자원봉사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1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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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발랑탱아우이 시각장애인협회 내 박물관의 미레유 뒤엔 씨

파리 발랑탱아우이 시각장애인협회 내 박물관에서 10년 넘게 자원봉사 활동 중인 미레유 뒤엔 씨.
파리 발랑탱아우이 시각장애인협회 내 박물관에서 10년 넘게 자원봉사 활동 중인 미레유 뒤엔 씨.
아버지는 딸을 볼 수 없었다. 제2차 세계대전 때 실명한 시각장애인이었기 때문이다. 딸은 그런 아버지를 보며 언젠가 장애인을 위한 일을 하겠다고 다짐했다. 은행에서 40여 년간 일하고 퇴직한 뒤 시각장애인 박물관 자원봉사를 지원했다. 그렇게 10년 넘게 박물관에서 자료를 정리하고 점자의 역사를 소개하는 일을 맡고 있다. 파리 7구 발랑탱아우이 시각장애인협회 내 박물관에서 자원봉사를 하고 있는 미레유 뒤엔 씨(70) 이야기다.

1886년 문을 연 이 박물관은 시각장애 관련 희귀 사료 및 기구를 약 5000점 소장하고 있다. 100m² 남짓한 박물관 내부에는 시각장애인용 점자(손가락으로 더듬어 읽도록 만든 시각장애인용 문자) 관련 자료로 가득했다. 프랑스는 물론이고 미국 영국 스위스 등의 점자 소개 책자들이 전시돼 있었다. 1954년 유네스코가 전 세계에 보급한 점자 책자에는 한국의 점자도 수록돼 있다.

점자의 역사는 18세기 말 프랑스의 발랑탱 아우이가 거리에서 한 어린 시각장애 악사를 만나면서 시작됐다. 아우이는 악사가 동전을 손으로 만져보고 얼마짜리인지 확인한 것에 착안해 시각장애인 책을 만들었다. 알파벳을 입체로 만들어 시각장애인이 만져서 읽을 수 있도록 한 것. 아우이는 1786년 최초로 시각장애인을 위한 학교를 세운 교육가다.

그 후 세 살 때 사고로 시력을 잃은 루이 브라유가 알파벳을 점자로 바꾼 점자 가이드 책을 내면서 시각장애인들도 일반인과 동등하게 교육받을 길이 열렸다. 점자는 발전을 거듭해 장애인이 점자를 송곳으로 찍어 직접 편지를 쓸 수 있는 기구를 비롯해 점자 타자기, 점자 컴퓨터가 개발됐다.

발랑탱아우이 박물관은 2017년 6월 말 이후 문을 닫은 상태다. 전임 박물관장이 퇴직한 뒤 후임자를 찾지 못한 데다 재정이 부족해진 탓이다. 하지만 뒤엔 씨는 지금도 박물관에 출근해 사료를 정리하고 가이드 역할을 하고 있다.

뒤엔 씨는 “올해에만 480명이 우리 박물관을 견학했다. 한국인 단체 방문도 올해 세 번이나 있었다”며 “박물관이 재개관할 때까지 이곳을 떠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파리=황태훈 기자 beetlez@donga.com
#파리 점자 박물관#파리 발랑탱아우이 시각장애인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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