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先비핵화는 말 앞에 수레 놓는 격”… 美에 안전보장 요구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0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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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 실무협상 결렬]1박2일 8시간 반 대화 ‘노딜’

대사관서 성명 발표하는 北 김명길 김명길 북한 외무성 순회대사(왼쪽에서 두 번째)가 5일 오후 6시 30분경(현지 시간) 스웨덴 스톡홀름 외곽 북한대사관 앞에서 이날 결렬된 북-미 실무협상에 관한 성명을 발표하고 있다. 권정근 전 북한 외무성 미국담당 국장, 김 대사의 성명서 낭독을 위해 램프를 들어 불빛을 비추고 있는 북한대사관 관계자, 김 대사의 성명을 영어로 통역한 김광학 북한미국연구소 연구사(왼쪽부터)도 동석했다. 스톡홀름=김윤종 특파원 zozo@donga.com
대사관서 성명 발표하는 北 김명길 김명길 북한 외무성 순회대사(왼쪽에서 두 번째)가 5일 오후 6시 30분경(현지 시간) 스웨덴 스톡홀름 외곽 북한대사관 앞에서 이날 결렬된 북-미 실무협상에 관한 성명을 발표하고 있다. 권정근 전 북한 외무성 미국담당 국장, 김 대사의 성명서 낭독을 위해 램프를 들어 불빛을 비추고 있는 북한대사관 관계자, 김 대사의 성명을 영어로 통역한 김광학 북한미국연구소 연구사(왼쪽부터)도 동석했다. 스톡홀름=김윤종 특파원 zozo@donga.com
5일(현지 시간)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열린 비핵화 실무협상에서 북한과 미국은 여전히 뚜렷한 간극을 확인한 채 돌아섰다. 북-미는 핑퐁식으로 성명을 내며 실무협상 결렬에 대한 온도차를 드러냈다. 미국은 “좋은 대화(good discussion)를 나눴다”고 했지만 북한은 “이번과 같은 역스러운(역겨운) 협상을 할 의욕이 없다”며 냉담한 반응을 보였다.

○ 북, 선(先)비핵화는 “말 앞에 수레를 놓는 것”

북한 수석대표인 김명길 외무성 순회대사는 5일 실무협상 직후 입장문을 통해 “우리가 선제적으로 취한 비핵화 조치들과 신뢰 구축 조치들에 미국이 성의 있게 화답하면 다음 단계의 비핵화 조치들을 위한 본격적인 논의에 들어갈 수 있다”고 밝혔다. 김 대사는 북한의 선제적인 비핵화 및 신뢰 구축 조치로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 중지 △북부 핵시험장(풍계리) 폐기 △미군 유골 송환 등을 꼽았다.

그러면서 지난해 싱가포르 정상회담 이후 이어진 15건의 추가 대북제재, 연합 군사훈련 재개, 한반도 주변 첨단 전쟁 장비 전개 등을 일일이 거론하며 “우리의 생존권과 발전권을 위협했다”고 지적했다. “미국의 위협을 그대로 두고 우리가 먼저 핵 억제력을 포기해야 생존권과 발전권이 보장된다는 주장은 말 앞에 수레를 놓아야 한다는 소리”라고도 했다. 제재 완화와 한미 연합 훈련 중단 등에 미국이 먼저 성의를 보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미국은 “북한의 논평은 8시간 반의 협상 내용이나 정신을 반영하지 않고 있다”며 북한의 반응과는 거리를 뒀다. 모건 오테이거스 미 국무부 대변인은 김 대사의 발표 후 3시간 만에 내놓은 성명에서 “싱가포르 성명의 4가지 조항을 진전시킬 수 있는 새로운 구상(new initiatives)들을 많이 선보였다(preview)”고 말해 생산적인 논의였음을 강조했다.

그러나 약 15시간 만에 북한이 6일 외무성 대변인 담화를 통해 이를 또 뒤집었다. 담화는 “미국이 우리 대표단의 기자회견이 협상의 내용과 정신을 정확히 반영하지 못하였다느니, 조선 측과 훌륭한 토의를 가지였다느니 하면서 여론을 오도하고 있다”고 재반박했다.

○ 美 “2주 이내 보자” vs 北 “사실 무근”

이번 실무협상은 그동안의 입장 변화 여부를 확인하는 한편 비핵화 협상의 밑그림을 그리는 전초전 성격이 강했다. 그러나 북한은 하노이 정상회담 이전으로 되돌아간 모습이었다. ‘새로운 방법(new method)’을 꺼냈던 미국은 이번 실무협상에서 ‘창의적인 방안들(creative ideas)’ 등을 제시했지만 북한은 영변 핵시설 폐기 등 구체적인 비핵화 조치에 대해 언급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그런데도 북한은 되레 미국이 빈손으로 협상에 임했다고 주장했다. 비핵화 최종 단계를 먼저 합의한 뒤 상응 조치들을 단계적으로 논의하자는 미국의 제안을 거부한 것으로 보인다. 북한 외무성 대변인은 “미국 측은 기존 입장을 고집했으며 아무런 타산이나 담보도 없이 연속적이고 집중적인 협상이 필요하다는 막연한 주장만 되풀이했다”며 “당리당략을 위해 조미(북-미) 관계를 악용하려 하지 않는가 하는 생각을 가지게 됐다”고 밝혔다.

미국은 일단 북한을 협상장으로 불러들였다는 데 이번 협상의 의의를 두고 있다. 오테이거스 대변인은 성명에서 “집중적인 관여(intensive engagement)의 중요성에 대해 논의했다”면서 좀 더 지속 가능하고 정기적인 대화의 룰을 마련하고자 했음을 시사했다.

다만 후속 회담 가능성은 미지수다. 미국은 이번 실무협상 장소를 제공한 스웨덴이 “2주 이내에 스톡홀름에서 (북-미가) 다시 만나자”고 초청한 사실을 공개하며 즉각 수락 의사를 밝혔지만 북한 외무성은 “양측이 두 주 내에 만난다는 것은 사실과 전혀 무근거한 말”이라고 반박했다. 앞서 김 대사가 “(미국에) 연말까지 좀 더 숙고해볼 것을 권고했다”고 한 발언은 하루 만에 외무성 대변인 담화에서 “조미 대화의 운명은 미국의 태도에 달려 있으며 그 시한부는 올해 말까지”라는 경고로 강경해졌다.

위성락 전 주러시아 대사는 “이번 스톡홀름 협상안에는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의중이 반영됐다고 봐야 한다. 그럼에도 합의가 되지 않았는데 2주 안에 바뀔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전망했다. 이도훈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은 이번 주 미국을 방문해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와 만나 대응 조치를 논의할 예정이다.

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 / 워싱턴=이정은 특파원
#북미 실무협상#비핵화 협상#실무협상 결렬#노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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