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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셋 젊은 나이에 ‘옷 벗은’ 시인, ‘꽃을 안고 뒹굴었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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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셋 젊은 나이에 ‘옷 벗은’ 시인, ‘꽃을 안고 뒹굴었다’는데…

이준식 성균관대 중어중문학과 교수입력 2019-08-15 16:19수정 2019-08-15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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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관 안 챙긴 지 근 반 년, / 물과 구름 그윽한 곳에서 꽃을 안고 잠드네.
평생 간직했던 벼슬 없는 즐거움, / 유월 한더위에도 세상없이 통쾌하다.
(不着衣冠近半年, 水雲深處抱花眠. 平生自想無冠樂, 第一驕人六月天.·불착의관근반년, 수운심처포화면. 평생자상무관락, 제일교인유월천.)-‘더위를 식히며(소하시·銷夏詩)’(원매·袁枚·1716~1797)

‘옷을 벗는다’는 건 자유이면서 동시에 엄혹한 현실에의 도전이다. 무모한 객기로 끝날 수도 있지만 반대로 삶의 한 혁명이 되기도 한다. 삶은 본질적으로 영욕이 서로 얽히고설키기 마련, 필부필부(匹夫匹婦)가 얼핏얼핏 옷을 벗고 싶은 유혹에 이끌리면서도 선뜻 결행하지 못하는 이유다. 평생 자연에 묻혀 사는 즐거움을 노렸던 시인은 서른 셋 젊은 나이에 스스로 관직을 떠났고, 유월 염천(炎天)에도 의관을 정제해야 하는 굴레를 ‘세상없는 통쾌함’과 맞바꾸었다. 자유분방한 기질로는 공무의 판박이 생활이 혹독한 한더위만큼이나 버거웠는지도 모른다.

관직을 버린 시인은 남경 인근의 소창산(小倉山) 자락에 위치한 폐원(廢園)을 사들여 자기 취향에 맞는 공간으로 가꾸었고 수원(隨園)이라 이름 붙였다. 관료 세계의 명리(名利) 다툼에서 벗어나 자연 속에서 ‘꽃을 안고 뒹굴었지만’ 그렇다고 고답적인 은둔 생활을 고집하지는 않은 듯하다. 수원에는 시인의 제자와 친구, 소문을 들고 찾아온 인사들로 문전성시를 이뤘다. 사대부로서는 드물게 그는 제법 상술도 뛰어나 수원 연회에서 자주 미희(美姬)의 가무를 연출했고, ‘수원전집’ ‘수원식단(隨園食單)’ 등 책도 판매했다. 수원식단은 미식가였던 시인이 요리 비법과 금기 사항을 정밀하게 기술해 놓은 이채로운 요리 전문서다.

시의 진솔한 감정과 개성미를 중시했던 원매, 동시대 문인들의 복고주의적 폐단에 대해 “죽은 용은 산 쥐만 못하다”거나 “모란 작약이 아무리 화려하다 해도 꺾어놓으면 들풀이나 아욱만 못하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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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식 성균관대 중어중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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