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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연해주 독립운동 대부’ 최재형 선생 기념비 건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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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연해주 독립운동 대부’ 최재형 선생 기념비 건립

우수리스크=전승훈 기자 입력 2019-08-13 03:00수정 2019-08-13 0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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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의 난로 ‘페치카’ 애칭… 1920년 신한촌 참변때 체포 총살
러 우수리스크서 제막식 거행


1909년 10월 중국 하얼빈역에서 7발의 총성이 울렸다. 안중근 의사가 쏜 총탄은 이토 히로부미를 맞혔다. 법정에 끌려간 안 의사의 옆에는 세 명의 청년이 있었다. 유동하, 우덕순, 조도선 열사. 그들의 뒤에는 가장 큰 조력자 최재형 선생(1860∼1920·사진)이 있었다. 거사를 위한 사격 연습 장소부터 안 의사가 붙잡힌 후 러시아인 변호사를 구한 것, 그의 가족을 보살핀 것도 최 선생이다.

일제강점기 러시아 연해주에서 항일 독립운동을 주도한 최재형 선생의 기념비와 흉상이 광복 74주년을 앞두고 12일 현지에 세워졌다. 이 기념비는 안 의사가 사격연습을 하던 그의 고택에 세워졌다. 2.5m 높이의 비석은 한반도 모양으로 만들어졌고, 태극기 문양도 새겨졌다. ‘애국의 혼 민족의 별 최재형’이란 문구가 들어갔다.

러시아 우수리스크 최재형기념관에서 12일 연해주 독립운동의 대부 최재형 선생의 기념비와 흉상 제막식이 열렸다. 왼쪽부터 김재윤 전 국회의원, 정병천 국가보훈처 과장, 오성환 블라디보스토크 한국총영사, 안민석 국회의원, 소강석 한민족평화나눔재단 이사장, 최발렌틴 러시아독립유공자협회장, 문영숙 최재형기념사업회 이사장, 이블라디미르 우수리스크시의원. 우수리스크=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연해주 독립운동의 대부로 불리는 최재형 선생은 1920년 4월 블라디보스토크에 상륙한 일본군에 의한 신한촌 참변 때 연해주에서 체포돼 총살을 당해 순국했다. 아직도 그의 시신과 묘지는 찾지 못했다. 이날 비가 내리는 가운데 열린 제막식에는 최재형순국100주년추모위원회 공동대표인 소강석 한민족평화나눔재단 이사장, 안민석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장, 문영숙 최재형기념사업회 이사장, 최재형 선생의 손자인 러시아독립유공자협회 최발렌틴 회장 등 100여 명이 참석했다.

피우진 국가보훈처장은 축사에서 “일제강점기 추운 조국의 현실에 따뜻함을 전해주신 최재형 선생을 우리는 ‘페치카’라는 애칭으로 기억하고 있다”며 “오늘 제막하는 기념비 비문처럼 최재형 선생은 ‘애국의 혼, 민족의 별’로 오래도록 우리 곁에 머물 것”이라고 말했다.


소강석 이사장은 “오늘 추모비를 세움으로써 최재형 선생의 애국애족의 정신이 민족의 광야에 순백의 꽃으로 피어나고, 별처럼 빛나기를 기원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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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막식에는 최재형 선생 추모곡 ‘자유의 아리아’를 테너 박주옥 교수가 불렀고, 창원국악관현악단과 바이올리니스트 닐루파르 무히디노바 양의 연주와 헌화가 이어졌다.

1860년 함경북도 경원에서 노비의 아들로 태어난 선생은 연해주로 이주해 군납사업을 하며 부를 쌓았다. 전 재산을 항일 독립운동과 한인 동포 지원에서 쏟아부어 그에게는 러시아어로 난로를 뜻하는 ‘페치카’라는 애칭이 따라다녔다. 연해주에서 한인사회 대표 지도자로서 학교를 세워 인재 양성에 나섰고, 대동공보사와 대양보, 권업신문을 만들어 민족의 독립정신을 고취했다. 의병부대인 ‘동의회’를 조직해 안 의사의 하얼빈 의거를 지원했으며 대한국민의회 외교부장과 대한민국임시정부 초대 재무총장에 임명됐다. 정부는 1962년 대한민국 건국훈장 독립장(3급)을 추서했다.

우수리스크=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최재형#페치카#독립운동#연해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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