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베끼기?…정치·외교 안보문제로 ‘경제보복’ 난무하는 중동 국가들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8월 12일 16시 5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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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UAE), 카타르 같은 중동 주요 산유국들이 최근 지역 내 비(非)산유국과 정치나 외교안보 관련 갈등이 터지면 ‘경제지원 줄이기’ 같은 보복에 나서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 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에 일본이 반발해 ‘백색국가 제외’ 같은 경제보복 조치를 취한 것과 같은 이치다.

12일 이집트 언론 알아흐람에 따르면 사우디를 중심으로 UAE와 쿠웨이트는 올해 요르단에 25억 달러를 지원할 예정이었지만 현재까지 10억 달러만 전달했다. 석유와 천연가스가 거의 없고, 팔레스타인과 시리아 난민들을 대거 수용한 요르단은 중동 산유국들과 국제기구 등의 지원이 없으면 국가 운영이 어렵다.

사우디가 당초 계획보다 소극적으로 자금 지원에 나서고 있는 원인 중 하나는 트럼프 행정부가 ‘세기의 협상’이라고 강조하고 있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평화협상안에 요르단이 부정적이기 때문이다. 국민의 절반 정도가 팔레스타인계인 요르단은 팔레스타인 독립국가 설립보다 경제지원에 초점을 맞춘 ‘트럼프표 이·팔 평화협상’을 수용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반면 사우디와 UAE는 트럼프 행정부 들어 매우 적극적인 친미 행보를 보이고 있고, 지역 패권 경쟁 국가인 이란 경제를 위해 이스라엘과도 우호적인 관계를 구축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중동 외교가 관계자는 “요르단이 원하는 방향으로 움직이지 않자 아킬레스건인 경제지원을 가지고 사우디와 UAE가 압박하는 형국”이라고 말했다.

결국 요르단은 지난달 ‘카타르 단교사태(2017년 6월)’ 뒤 격하시켰던 카타르와의 외교관계를 정상화시키며 대규모 경제지원을 기대하고 있다. 카타르는 현재 사우디와 UAE로부터 단교를 당한 상태다. 사우디와 UAE는 요르단이 카타르와 완전히 단교하지 않는데도 불만이 컸고, 이 역시 경제 지원을 줄인 이유로 꼽힌다. 사우디와 UAE는 모로코가 2026년 월드컵 유치를 위해 뛸 때도 이 나라가 카타르 견제에 적극적이지 않는 것을 이유로 지원을 거부한 바 있다.

사우디는 지난해 10월 터키 이스탄불의 자국 총영사관에서 반정부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를 살해하는 과정에서 극한 외교대립을 벌인 터키에 대해서도 강경한 경제보복을 구사하고 있다. 중동전문매체 미들이스트아이(MEE)는 아랍에미리트(UAE) 싱크탱크 ‘메미레이트 정책센터’의 비공개 보고서를 통해 사우디가 대터키 투자와 교역을 축소하고, 자국민 관광객도 줄이려 한다고 전했다. 실제로 사우디 정부는 지난해 말부터 터키 내 △총기사고 △여권분실 현황 △반사우디 감정 등을 적극 알리고 있다. 이로 인해 올 상반기(1~6월) 사우디인들의 터키 방문은 전년동기 대비 15% 이상 줄었다.

중동의 소국이지만 천연가스 부국인 카타르에선 이집트인 취업자를 줄이려는 움직임이 두드러진다. 이집트가 사우디, UAE와 함께 단교에 나서자 자국에 거주하며 일반 사무직이나 노동자로 근무하는 이집트인들에 대한 거주 비자 발급을 제한하고 있는 것이다. 해외 근무자들의 송금이 절실한 가난한 나라 이집트에 대한 보복인 것. 카타르에서 3년간 거주하다 지난해 돌아온 한 이집트인은 “카타르 정부 관계자들이 노골적으로 ‘의사나 엔지니어 같은 전문직이 아니면 이집트인은 비자 받기 힘들다’는 이야기를 했다”고 말했다.

중동에서는 향후 산유국들의 경제보복을 이용한 비산유국 압박이 더욱 많아질 수 있을 것이란 분석이 많다. 산유국과 비산유국 간 경제력 차이가 크고,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 등 자국의 이익을 위해선 강경한 정책을 적극적으로 쓰는 리더들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카이로=이세형특파원 turt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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