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경제 상호의존성을 정치 무기화… 한국 급소 정확히 겨눠”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8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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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먼 美 조지타운대 교수 인터뷰

“한국에 대한 일본의 수출 규제 조치 같은 ‘상호의존성의 무기화(weaponization of interdependence)’는 앞으로 더 늘어날 것이다. 글로벌 경제 시스템의 효율성을 일부 포기하더라도 핵심 기술의 대외 의존도를 낮추는 대비책이 필요하다.”

에이브러햄 뉴먼 미국 조지타운대 교수(사진)가 일본의 화이트리스트 배제와 관련해 내놓은 전망과 제언은 이렇게 요약된다. 그는 최근 헨리 패럴 조지워싱턴대 교수와 공동으로 워싱턴포스트(WP)에 낸 기고문에서 ‘무기화된 상호의존성’의 틀에서 한일 간 통상 분쟁을 분석해 주목받았다.

뉴먼 교수는 6일(현지 시간) 조지타운대 교수실에서 동아일보 기자와 만나 “일본은 공급망을 펼쳐놓은 뒤 한국에 대한 ‘초크 포인트(choke point)’를 정확히 겨냥해 막았다”고 설명했다. 초크 포인트는 소수 선진국과 기업만 가질 수 있는 글로벌 공급망의 핵심 부품이나 기술을 뜻한다. 그는 “한일 간 사례에서 보듯이 한 국가가 정치적 목적을 위해 초크 포인트에 대한 통제력을 행사할 수 있다”며 “기업들이 구축한 공급망이 정권의 정치적 무기로 이용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상호의존성을 무기화한다는 것이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인가. 어떤 사례들이 있나.


“우리가 국제적 ‘상호의존성’의 3대 요소로 보는 것은 국제금융체계, 인터넷, 그리고 핵심 기술과 부품 공급망이다. 일본의 이번 조치나 미국이 중국 통신장비업체 화웨이를 규제한 것이나 이란 제재 과정에서 글로벌 금융결제를 위한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망을 차단한 것 등이 모두 이에 해당한다.”

―글로벌 경제의 상호의존성은 지금까지 잘 유지돼 왔다. 왜 이 시점에 이를 무기화하는 현상이 많이 나타나고 있나.

“지금까지도 부분적으로 무기화한 사례들은 있었다. 의식하거나 신경 쓰지 않았던 것뿐이다. 서로 얽혀 있는 현재의 글로벌 경제 시스템은 그리 오래된 것은 아니다. 불과 25년 정도의 역사를 갖고 있다.”

―최근 부쩍 노골화되는 추세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나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 같은 ‘스트롱맨’의 등장 때문인가.

“그런 측면이 있다. 다만 일본은 아베 총리가 스트롱맨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글로벌 협력이나 동맹 관계에 대한 근본적 인식 변화라는 틀에서 봐야 한다. 미국의 러시아나 이란 제재만 해도 과거에는 유럽 동맹국들과 협의 속에 제한적으로 진행했지만 이제는 독자적으로 밀어붙이고 있다.”

―한국에 대한 일본의 수출 규제 조치는 향후 어떤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나.

“한국인이 이렇게 강하게 대응할 줄은 일본도 예상 못 했을 것이다. 극렬한 반발이 일본 조치의 효과를 약화시키고 있다. 상호의존성의 무기화를 효과적으로 진행하려면 부작용을 최소화해야 하는데 일본이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면서 역풍을 맞고 있다.”

―한국 정부는 핵심 부품의 국산화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유럽도 미국 주도의 네트워크에서 벗어나기 위한 대안을 모색 중이다. 효율성에 바탕을 둔 글로벌 협업 시대가 끝나는 것인가.

“기존 체제를 극단적으로 모두 포기할 필요는 없다. 글로벌 공급망 체계는 여전히 작동하며 대체재가 존재하는 분야도 많다. 그러나 핵심적인 초크 포인트에 대해서는 앞으로 다른 관점으로 볼 필요가 있다. 어딘지 정확히 파악하고 집중적으로 투자해야 한다. 정치적으로 이용될 가능성에 대한 리스크를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

―하지만 국산화라는 게 말처럼 쉽지 않다. 효율성을 따지지 않고 모든 것을 국산화하는 나라는 결국 과거 공산주의 국가와 다를 바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물론 국산화가 쉽지 않은 기술들이 있다. 비슷한 상황에 놓인 국가나 기업끼리 연대하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 예를 들면 일본의 기술 무기화로 피해를 볼 가능성이 있는 다른 국가나 기업들과 전략적 동맹을 맺는 식이다.”

―당신은 상호의존성의 무기화가 미래 글로벌 경제의 작동 방식을 바꿔 놓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이 될 것으로 보나.


“우리는 지금까지 효율성을 바탕으로 한 경제 체제에 익숙해져 있지만 앞으로는 달라질 것이다. 이에 대응하려면 지금까지 누려온 효율성도 때로는 포기해야 한다.”

워싱턴=이정은 특파원 lightee@donga.com
#수출 규제#일본 경제 보복#화이트리스트#상호의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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