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 넘은 ‘평화의 첼리스트’… 지적장애인 배범준씨 첫 독주회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7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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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 잡으면 노련한 연주자로 돌변, 혼신의 연주에 관객들 “앙코르”
2014년엔 유엔본부서 인권연설도

장애인 첼리스트 배범준 씨가 6일 서울 강남구 밀알학교 세라믹팔레스홀에서 자신의 첫 독주회를 가졌다. 배 씨가 독주회에 앞서 리허설을 하고 있다.
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장애인 첼리스트 배범준 씨가 6일 서울 강남구 밀알학교 세라믹팔레스홀에서 자신의 첫 독주회를 가졌다. 배 씨가 독주회에 앞서 리허설을 하고 있다. 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앙코르, 앙코르!”

6일 오후 8시 50분, 서울 강남구 밀알학교 세라믹팔레스홀. 300여 명의 관객은 연주를 마치고 퇴장한 첼리스트 배범준 씨(22)에게 ‘앙코르’를 외쳤다. 무대 뒤 대기실에 있던 배 씨는 어머니 김태영 씨(52)에게 “너무 신나고 행복해요”라고 말했다. 1분이 채 지나지 않아 배 씨는 환한 웃음을 띤 채 다시 무대에 섰다. 앙코르 곡 연주까지 마친 배 씨는 협연한 연주자들과 하이파이브를 했다. 관객을 향해 ‘손가락 하트’를 만들어 보이기도 했다. 공연이 진행된 1시간 30분 동안 대기실에서 아들을 지켜보던 김 씨는 “앙코르는 유명한 음악가들한테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는데…”라며 눈물을 보였다.

무대에 서면 여느 첼리스트와 달라 보이지 않는 배 씨는 지적장애인이다. 그의 지적능력은 3세, 생활능력은 7세 수준이다. 3세 때 겪은 충격적인 사건으로 기억상실증과 무언증을 앓기 시작했고, 초등학교 입학 후 따돌림과 폭행을 당하면서 증세가 심해졌다. 배 씨는 대기실에서 아이 같은 모습을 보이다가도 활을 잡는 순간 프로 첼리스트로 돌변했다.

이번 연주회는 배 씨의 첫 독주회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이 후원하는 ‘장애인 문화예술 지원사업’에 선정돼 지원금 1000만 원으로 독주회를 열게 됐다. 배 씨는 초등학교 6학년 때 지역 교육센터에서 역사 강의를 하던 어머니를 기다리다가 센터 연습실에서 흘러나오는 첼로 소리를 듣고 첼로와 인연을 맺었다. 집안 형편이 어려워 강습을 제대로 받지 못했던 그는 유튜브에서 유명 첼리스트의 연주 영상을 찾아보며 독학했다.

그는 2014년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세계 장애인의 날’ 행사에서 한국의 다른 장애인들과 함께 연주했다. 4분간의 연설 기회도 얻어 장애인 인권에 대해 영어로 발표했다.

지난해에는 ‘정의란 무엇인가’의 저자 마이클 샌델 미국 하버드대 철학과 교수에게 직접 이메일을 보내 만남이 성사됐다. 여동생 지수 양(19)이 ‘정의란 무엇인가’를 읽는 것을 보고 샌델 교수에게 관심을 갖게 됐다고 한다. 그는 하버드대를 방문해 샌델 교수 앞에서도 연주했다.

배 씨는 12일 세 번째 미국행을 앞두고 있다. 테네시주에서 열리는 연주회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중증장애를 앓다가 사망한 미국인 소녀의 조부모가 장애인 청소년들을 초청해 손녀를 추모하는 음악회를 열기로 했다. TV 다큐멘터리를 통해 배 씨를 알게 된 노부부가 그를 초대했다.
 
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
#배범준#세라믹팔레스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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