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보사태’ 정태수, 영욕의 95년…도망자 신세로 해외서 마감

  • 뉴스1
  • 입력 2019년 7월 4일 16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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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도피 생활 21년 만에 붙잡혀 국내로 송환된 정한근씨의 부친인 정태수 전 한보그룹 회장은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의 도화선이 된 ‘한보사태’의 장본인이다. 한보사태는 건국 이후 최대 금융비리 사건으로 꼽힌다.

4일 검찰에 따르면, 10년 넘게 해외도피 생활을 했던 정 전 회장은 지난해 12월 에콰도르에서 만성신부전으로 숨지며 파란만장한 생을 마감했다.

1923년 경남 진주에서 태어난 정 전 회장은 국세청 세무공무원으로 근무하며 20여년간 전국 각지의 땅을 사들인 뒤 1974년 한보그룹의 시초인 ‘한보상사’를 설립했다.

1976년 한보주택을 세워 서울 강남구 대치동에 은마아파트를 지어 분양하며 성공 가도를 달렸다. 1980년엔 한보철강을 창업하며 한보그룹은 대기업 반열에 올랐다.

그러나 재계서열 14위까지 올랐던 한보그룹은 1997년 부도가 나며 5조원대 특혜 부실대출을 받은 사실이 드러났다. 이처럼 불법대출을 받을 수 있었던 배경엔 정치권과 금융계 고위 인사 등을 대상으로 한 각종 로비가 있었다.

이에 그해 국회에선 국정조사가 열렸고, 김영삼 전 대통령 차남인 김현철씨가 연루된 사실이 드러나 구속되기도 했다.

같은 해 4월 서울구치소에서 열린 ‘한보 청문회’ 당시 정 전 회장 발언은 두고두고 회자되기도 했다. 수의 차림에 휠체어를 타고 나타난 정 전 회장은 한보그룹 임원과 자신이 밝힌 비자금 액수가 차이난다는 지적에 “자금이라는 것은 주인인 내가 알지. 머슴이 어떻게 압니까”라고 말했다. 회사 임직원을 ‘머슴’으로 지칭한 것이다.

정 전 회장은 그해 9월 특정경제가중처벌법상 횡령 혐의로 징역 15년을 선고받고 복역하다 수감 6년만인 2002년 12월 병보석으로 특별사면됐다.

이후 정 전 회장은 2007년 자신이 이사장으로 있던 영동대 교비 65억원을 횡령한 혐의로 다시 법정에 섰다.

1심에서 징역 3년을 선고받은 그는 2심 재판 중이던 2007년 5월2일 일본에서 암 치료를 받겠다며 법원에 낸 출국금지 집행정지 신청이 받아들여지자 곧바로 출국해 이후로 행방이 묘연해졌다. 이 사건은 정 전 회장 궐석 상태로 진행돼 2009년 5월 대법원에서 징역 3년6월이 확정됐다.

일본이 아닌 말레이시아로 출국한 그는 카자흐스탄과 키르기스스탄을 거쳐 2010년 에콰도르에 정착했다. 수사당국은 2008년 카자흐스탄, 2009년 키르기스스탄에 각각 범죄인인도를 청구했으나 정 전 회장 소재불명을 이유로 무산됐다.

정 전 회장은 2010년 7월 고려인으로 추정되는 키르기스스탄인의 인적사항을 이용해 여권을 부정하게 발급받은 뒤 같은달 15일 에콰도르 제2의 도시 과야킬로 이주했다. ‘츠카이 콘스탄틴’이란 이름의 1929년생 키르기스스탄인으로 위장한 그는 과야킬 인근에서 유전개발 사업을 진행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검찰은 설명했다.

한근씨는 지난해 12월1일(현지시간) 부친이 숨지자 이튿날 장례식을 하고 시신을 화장한 것으로 조사됐다. 가족 중 장례식에 참석한 사람은 한근씨뿐이었다. 부자 모두 남의 인적사항을 빌려 서류상 가족관계가 인정되지 않아, 사망처리는 무연고 외국인으로 진행됐다.

영욕이 점철된 정 전 회장의 95년간 삶은 도망자 신세로 해외에서 초라하게 마무리됐다.

정 전 회장이 사망하며 확정된 징역형 집행은 불가능해졌다. 천문학적인 국세 체납액도 환수도 사실상 불가능할 전망이다. 국세청에 따르면 정 전 회장은 증여세 등 2225억원대 세금을 체납해 현재 고액 상습 체납자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서울=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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