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겁게, 유머러스하게 그린 ‘나와 너’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6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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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연 개인전 ‘나를 드립니다’
지방서 내공 쌓은후 서울 전시… 회화-조각 등 20여점 선보여

캔버스에 먹과 아크릴을 섞어 그린 대형 회화 ‘존재’. 포스코미술관 제공
캔버스에 먹과 아크릴을 섞어 그린 대형 회화 ‘존재’. 포스코미술관 제공
서울 강남구 포스코미술관에서 13일 개막하는 기획 초대전 ‘김상연의 그림―나를 드립니다’는 미술관 안쪽에 위치한 아카이브 공간을 먼저 보기를 추천한다. 회화, 조각 등 20여 점이 전시된 가운데 아카이브 공간이 최근 작품들의 출발점을 소개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카이브 공간에 들어서면 정면에 추사 김정희의 ‘부작란도(不作蘭圖)’가 보인다. 가까이 보면 추사의 그림을 작가가 목판으로 본떠 만든 작품이다. 김상연 작가는 “동양화 전통이 선대의 회화를 임모(臨模·모방해 그리는 것)하며 그 정신을 배웠던 것처럼 추사의 그림에서 그의 정신과 지적 유희를 학습했다”고 설명한다. 그 결과 나온 회화는 전시장의 회화 작품으로, 목판은 설치·조각 작품으로 다양하게 변주된다.

서울에서 김 작가의 개인전은 2011년 마이클슐츠갤러리에서 열린 뒤 8년 만이다. 독일 기반이었던 이 갤러리가 한국에서 철수한 뒤 작가는 중국과 독일, 한국에서 간간이 전시를 열었다. 그간 광주의 한 축사를 개조한 작업실에서 쌓아온 내공을 오랜만에 확인하는 자리다.

대형 조각 ‘나는 너다’와 벽면의 목판 설치 ‘풀다’, 회화 작품 ‘나를 드립니다’, 목판을 채색한 ‘말씀2’(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 포스코미술관 제공
대형 조각 ‘나는 너다’와 벽면의 목판 설치 ‘풀다’, 회화 작품 ‘나를 드립니다’, 목판을 채색한 ‘말씀2’(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 포스코미술관 제공
전시장 가운데 뫼비우스의 띠 형상을 한 붉은 조각 ‘나는 너다’는 나와 타인의 관계를 이야기하는 작품이다. 내가 온전한 자아를 갖고 타인을 이해하면 그 사람은 ‘남’이 아닌 나와 같은 존재가 된다는 의미를 담았다. 작가는 이런 공감과 이해를 통해 평화를 추구할 수 있다고 봤다. 광주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경험도 작품에 반영됐다.

‘나는 너다’의 뒤쪽 벽면을 장식한 ‘풀다’는 소와 유사한 형상인 작은 동물 조각들이 떼를 지어가는 모습이다. ‘20세기 최고 퍼포먼스’라고도 불렸던 1998년 ‘정주영 소 떼 방북사건’과 2008년 광우병 사태와 연관이 있다. 고 정주영 회장이 북한에 돈이 아닌 소 떼를 데려간 상징적 의미, 그리고 광우병 사태 때 오로지 먹거리로만 소를 생각하는 사람들의 사고방식에 받은 충격에서 탄생한 작품이다.

‘나를 드립니다’라는 제목처럼 전시 작품들은 작가가 몸으로 느낀 솔직한 감각을 때로는 무겁게, 때로는 유머러스하게 풀어내고 있다. 대형 회화 작품 ‘존재’가 타인의 흔적을 짙은 먹으로 무겁게 그렸다면, 나무 조각 ‘나를 드립니다’는 작가의 몸에 고인 다른 대상의 흔적을 농담을 던지듯 재미있게 표현했다. 중국 전통 판화기법인 ‘수인판화’를 재해석한 수인회화 작품 ‘존재―손’도 처음 공개한다. 7월 9일까지.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김상연 개인전#나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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