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신인감독’ 김윤석 “군더더기 싹 빼고, 연기할 맛 나게!”

  • 스포츠동아
  • 입력 2019년 4월 10일 06시 57분


배우 김윤석이 11일 개봉한 영화 ‘미성년’을 통해 감독으로 변신했다. 그는 “힘든 때는 정말 많았다”면서도 “끝까지 붙잡고 늘어지니 결국 영화가 완성됐다”며 감격스러워했다. 사진제공|쇼박스
배우 김윤석이 11일 개봉한 영화 ‘미성년’을 통해 감독으로 변신했다. 그는 “힘든 때는 정말 많았다”면서도 “끝까지 붙잡고 늘어지니 결국 영화가 완성됐다”며 감격스러워했다. 사진제공|쇼박스
■ 영화 ‘미성년’으로 감독 데뷔

어른들 잘못, 아이들이 해결하는 얘기
어려운 순간 마주했을때 용기가 필요
순간 평범한 사람들도 비범함이 나와
손해 안 봐야 은퇴작이 안 될 텐데…
둘째가 ‘미성년’ 보고 재미있다네요


배우 김윤석(51)이 영화감독이 됐다. 느닷없는 일은 아니다. 몇 년 전부터 그가 영화 연출을 구상한다는 이야기가 영화계에서 흘러나왔다. 고향인 부산의 극단에서 연극연출가로 먼저 출발했으니 새로운 ‘도전’은 아니다. 그보다 10년 넘도록 한국영화 주연으로 활약해 온 정상의 배우가 택한 ‘모험’에 가깝다.

11일 연출 데뷔작 ‘미성년’(제작 영화사 레드피터)을 내놓는 김윤석은 “데뷔작이 은퇴작이 될지 모른다”는 농담을 몇 번씩 꺼냈다. 8일 오전 서울 삼청동에서 만난 그는 긴장감과 부담감, 책임감, 설렘이 교차하고 있는 듯했다. “요즘 마음이 두근두근”이라며 “손해를 안 봐야 은퇴작이 안 될 텐데”라면서 크게 웃었다.

● “평범한 사람들의 비범함, 그건 용기”

김윤석은 2014년 젊은 연극인들의 창작극 무대에서 ‘미성년’의 이야기를 처음 접했다. “어른들의 잘못을 아이들이 해결하는” 이야기에 마음을 빼앗겼다. 곧장 희곡을 쓴 이보람 작가와 만나 “영화 시나리오로 만들어보자”고 제안했다. 제작사도 정해지지 않은 상태에서 그렇게 두 사람의 작업이 시작됐다.

“우리끼리 시작했어요. 제가 운이 좋았습니다. 30대 초반 젊은 작가의 시선이 정말 신선했어요. 제가 한 수 배웠죠. 좋은 경험이기도 합니다. 희곡 작가와 배우 감독의 콤비네이션이 가진 시너지를 얻었으니까요. 좋은 선례를 가진 거죠.”

‘미성년’은 고등학교 2학년 동급생이 서로의 아빠, 엄마의 불륜 사실을 목도한 뒤 겪는 이야기다. 하필 통속적인 불륜 소재일까 의문이 일지만, 영화는 그보다 어른들이 벌인 문제에 정면으로 맞닥뜨린 두 소녀를 통해 ‘용기’에 대해 이야기한다. “가장 잘할 수 있는 이야기를 오랫동안 찾았다”는 김윤석은 “평범한 사람들의 비범함을 얘기하고 싶었다”고 했다.

“힘들고 괴롭고 외로워서 부딪치고 싶지 않은 순간이 누구에게나 있잖아요. 우리처럼 평범한 사람이 그런 어려움을 마주해 뛰어넘을 수 있는 힘, 그건 바로 용기입니다.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에게 다가가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것도 바로 용기이죠. 장르적으로 엄청나고 멋있는 영웅보다, 저는 평범한 이들의 용기에 매력을 느낍니다. ‘쇼생크 탈출’ 같은 영화는 열 번 봐도 질리지 않잖아요. 인간의 드라마가 만드는 이야기의 생명력이 그만큼 길어요.”

2014년 작업을 시작해 2017년 투자가 결정되고 이듬해 촬영에 나서기까지 김윤석은 ‘미성년’에만 몰두한 것도 아니다. 그 사이 배우로서 ‘검은 사제들’부터 ‘남한산성’ ‘1987’ ‘암수살인’까지 시대극과 사극을 넘나들고 장르물에도 분주히 나섰다.

“영화 촬영이 끝나면 조용히 집에서 썼어요. 셀 수도 없을 만큼 고쳤어요. 힘든 때요? 와…, 정말 많았죠. 내가 과욕을 부린 건가, 상업영화로서 과연 이점이 있나. 감독들과 제작자들한테 계속 자문을 구했어요. 그러면서도 한편으론 접을까, 많이 생각했죠. 끝까지 붙잡고 늘어지니 결국 완성됐습니다.”

김윤석 감독이 지난해 ‘미성년’ 촬영현장을 지휘하는 모습. 사진제공|쇼박스
김윤석 감독이 지난해 ‘미성년’ 촬영현장을 지휘하는 모습. 사진제공|쇼박스

● “군더더기 싹 빼고, 연기할 맛 나게”

김윤석은 연우무대나 학전 등 극단에서 연출을 해왔기에 “언젠가 영화도 연출하겠다는 생각은 있었다”고 했다. 희곡도 직접 썼던 터라 시나리오 작업도 낯설지 않았다. 다만 투자 과정이나 배우 캐스팅을 진행하면서 처음으로 ‘감독의 마음’을 느꼈다.

“시나리오 다 쓰면 뭐해요, 투자가 돼야지. 하하하! 어떻게 투자가 이뤄지고 염정아 배우한테 시나리오를 건넸죠. 하루 만에 하겠다는 연락이 왔어요. 깜짝 놀랐죠. 배우들한테 많이 ‘빠꾸’ 맞을 줄 알았거든요. 지문도 없고 대사도 단답형으로 된 시나리오인데 행간의 의미를 전부 꿰고 있더라고요. 역시, 베테랑이니까. 고맙죠. 검증도 안 된 신인감독의 영화에 선뜻 나서 줬으니까요.”

감독 김윤석은 ‘미성년’을 통해 인간의 심리를 섬세하게 포착하면서 세상을 바라보는 통찰력을 과시한다. 메시지가 분명하지만 무겁지도 않다. 웃음이 자주 터지는 블랙코미디다. 영화를 이끄는 4명의 여성 캐릭터를 구현하는 솜씨도 예사롭지 않다. 남편의 불륜을 알게 된 영주(염정아), 불륜 상대인 미희(김소진), 동급생인 영주의 딸 주리(김혜준)와 미희의 딸 윤아(박세진)의 미세한 감정 변화는 물론 눈꺼풀의 떨림까지 카메라에 담아냈다.

그 자신 연기력으로 손꼽히는 배우여서일까. 김윤석은 4명의 배우에게 “당신의 마음으로 더 깊게 들어가자, 연기할 맛 나게 군더더기 싹 빼고 제대로 파고 들어보자”고 주문했다.

“역할과 배우가 완전하게 만나야 가능한 연기가 필요했어요. 나도 연기자이니 그런 면에선 유리했죠. 역할의 외적인 걸 파악하는 데 자꾸 시간을 쏟지 말고, 빨리 그 인물의 내면으로 쑥 들어가서 육화시키자고 했습니다. 이 작품의 유일한 무기가 있다면, 바로 그런 과정입니다.”

김윤석은 출연도 했다. 사건의 발단인 영주의 남편, 미희의 연인 대원 역이다. 사고는 자기가 쳐 놓고 우물쭈물 주변만 빙빙 맴도는 대원을 두고 김윤석은 “지질이”라고 칭했다.

“몇몇 배우에게 대원 역할을 읽어봐 달라고 건네기도 했어요. 사실 대원은 주로 뒷모습만 나와요. 다른 인물을 위해 철저히 기능적으로 작동하죠. 그러니 선뜻 이 역할을 누구한테 주기 어렵더라고요. 남한테 줄게 아니라 내가 하면서 호흡을 조절해야겠구나 싶었죠. 제가 맡아 연기하면 편집도 마음껏 할 수 있겠다 싶었고요.”

실제 고등학생과 중학생인 두 딸을 둔 김윤석은 자상한 아빠라는 사실을 부인하지 않았다. 매일 집을 나설 땐 아이들에게 오늘의 행선지나 촬영 내용을 이야기해준다는 그는 “둘째가 ‘미성년’을 보고 재미있다고 말해줬다”며 “우리 아이들이 지금까지 가장 좋아하는 내 영화는 ‘완득이’였다”고 했다.

‘미성년’ 이후 김윤석의 선택은 배우일까, 감독일까.

“일단 모든 걸 스톱했어요. 마무리를 잘해야죠. 그러다 잘할 수 있는 이야기를 만난다면 연출하고 싶어요. 물론 억지로 빨리 하기보다 묵묵하게 할 거예요. ‘미성년’처럼. 쉰 살 넘어 감독으로 데뷔해서인지 조급증은 없어요. 얼마나 다행인지. 하하!”

● 김윤석

▲ 1968년 1월21일생
▲ 1988년 연극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데뷔
▲ 1990년대 극단 연우무대, 학전 등 활동
▲ 2004년 영화 ‘범죄의 재구성’
▲ 2006년 영화 ‘타짜’·대종상 남우조연상
▲ 2008년 영화 ‘추격자’로 대종상·청룡영화상·대한민국영화대상 남우주연상
▲2012년 영화 ‘도둑들’로 첫 1000만 흥행
▲ 2015년 ‘검은 사제들’
▲ 2017년 ‘1987’·청룡영화상 남우주연상
▲ 2018년 영화 ‘암수살인’

이해리 기자 gofl1024@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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