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란히 태극마크!” 1살 터울 신인왕 이정후·강백호의 유쾌한 수다

  • 스포츠동아
  • 입력 2019년 2월 1일 05시 30분


한국프로야구 2017년 신인왕 이정후(키움 히어로즈·오른쪽)와 2018년 신인왕 강백호(KT 위즈). 이들은 차례로 등장해 KBO리그의 신인 관련 각종 기록을 갈아 치웠다. 야구 팬에게는 큰 선물과도 같았다. 한국야구의 현재이자 미래인 이들은 평소 돈독한 우정을 과시한다. 스포츠동아DB
한국프로야구 2017년 신인왕 이정후(키움 히어로즈·오른쪽)와 2018년 신인왕 강백호(KT 위즈). 이들은 차례로 등장해 KBO리그의 신인 관련 각종 기록을 갈아 치웠다. 야구 팬에게는 큰 선물과도 같았다. 한국야구의 현재이자 미래인 이들은 평소 돈독한 우정을 과시한다. 스포츠동아DB
2017년, 한국야구는 새로운 타격 기계의 등장으로 환호했다. 그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인 2018년, 이번에는 괴물 같은 장타력을 갖춘 이가 나왔다. 신인 관련 각종 기록은 지난 2년간 대부분 새로 쓰였다. 이정후(21·키움 히어로즈)와 강백호(20·KT 위즈)의 등장은 한국야구계에 큰 선물이었다.

이들은 그라운드 위에서 누구보다 진지하지만 경기장 밖으로 나오면 매일같이 연락을 주고받는 한 살 터울의 ‘절친’이다. 2017년 신인왕 이정후와 2018년 신인왕 강백호는 때로는 가벼운 농담으로 서로를 공격하지만, 때로는 진지하게 서로의 길을 응원한다. 스포츠동아는 설 연휴를 맞이해 이들의 대화를 글로 풀었다.

● 엇갈린 첫인상, 나란한 야구행로

-이제 설 연휴가 시작되지만 두 선수는 스프링캠프에서 한창 시차 적응할 시기다(웃음). 설에 얽힌 추억이 있나?

이정후(이하 이) :
“스포츠동아 독자 여러분들 모두 풍족한 설 연휴 보내시길 바란다. 설은 딱히 기억이 없다. 지금 내가 그렇듯 아버지(이종범 LG 트윈스 2군 총괄)가 늘 스프링캠프를 떠나있었다. 야구를 시작하면서는 나도 운동을 하며 보냈던 것 같다. 대신 친척집은 평소에 자주 찾아뵀다.”

강백호(이하 강) :
“나도 마찬가지다. 야구를 시작하기 전에는 아버지와 국내 여행을 떠난 기억도 있다. 운동을 시작한 뒤부터는 명절에도 딱히 쉰 적이 없다.”

-이정후와 강백호 모두 어엿한 KBO리그의 스타로 자리매김했다. 둘이 기억하는 서로의 첫 인상은?

강 : “정후 형을 초등학교 때 처음 봤다. ‘이종범 아들이 야구를 한다’는 말에 나뿐 아니라 우리 학교 사람들 모두 놀랐다. 그런데 웬걸, 천재가 그라운드에 있었다. 당시만 해도 ‘아버지 그림자에 가리지 않을까’ 했는데, 지금은 이종범 아들이 아닌 이정후 그 자체가 되지 않았나. 이기적인 유전자에 노력까지 엄청 하는 형이다.”

이 : “아 정말? 나는 초등학교 때 백호를 본 기억이 없다. 딱히 인상적이지 않았나보다(웃음). 휘문고 2학년 시절 연습경기에서 서울고 1학년이던 백호를 처음 봤다. 프로선수가 온 줄 알았다. ‘살벌하게’ 굵었던 허벅지가 유독 기억에 남는다. 첫인상을 보고 쉽게 못 친해질 거로 생각했는데, 2016년 대표팀(제11회 아시아 청소년야구선수권대회)에서 친해졌다. 첫인상과 다르게 착한 동생이다.”

키움 이정후(왼쪽)-KT 강백호. 스포츠동아DB
키움 이정후(왼쪽)-KT 강백호. 스포츠동아DB

-나란히 신인왕에 등극했는데, 서로를 평가한다면?

이 : “솔직히 나도 신인 때 어느 정도 잘했는데 백호가 나오면서 완전히 묻혔다. 첫 타석부터 홈런을 치는 임팩트를 무슨 수로 이기나. 고등학교 때부터 차원이 다른 타자라 적응하면 충분히 좋은 모습 보일 거로 생각은 했는데, 입단하고 1년 안 본 사이에 더 성장해서 나타났더라. 백호 덕에 신인 기록 대부분이 묻혔다(웃음).”

강 : “안타 기록은 못 깨지 않았나. 아니, 무슨 신인이 179개를 때리나. 매너가 없다. 너무 많이 쳤다. 억울해서 숫자도 정확하게 기억한다.”

-다른 선수들이 보기에는 둘 다 매너가 없을 것이다(웃음). 각자의 장단점을 비교하자면?

강 : “장타력은 내가 낫지 않나? 송구도 정후 형보다는 자신 있다. 고등학교 때 150㎞ 던졌던 건 어디 안 간다. 그런데 정후 형의 밸런스는 따라갈 수 없다. 선구안, 컨택 능력도 그렇고. 솔직히 내가 앞서는 건 파워뿐인 것 같다.”

이 : “백호는 우리나라 최고 홈런타자가 될 사람이다. 파워는 따라갈 수 없다. 파워도 파워인데, 멘탈이 가장 부럽다. 백호는 정말 능글맞다. 처음 보는 사람과도 쉽게 친해진다. 슬럼프도 훌훌 털어낸다. 나는 그게 잘 안된다. 선구안과 컨택 능력은 확실히 내가 더 괜찮다. 아, 외모는 확실히 내가 낫다. 백호는 듬직해서 형들이 좋아할 타입이고….”

키움 이정후(왼쪽)-KT 강백호. 스포츠동아DB
키움 이정후(왼쪽)-KT 강백호. 스포츠동아DB

● 베이징 키즈, 야구인생 동반자를 꿈꾸다

-1년 터울로 데뷔했으니 야구인생의 동반자가 되지 않을까. 서로 긍정적인 시너지를 낸다면 한국야구에도 큰 선물일 것 같다.


강 : “한 살 위에 정후 형 같은 선수가 있다는 건 내게도 축복이다. 긍정적 의미로 자극제다. 고등학교 3학년 때 형을 보면서 방향을 확립했고, 지난해 그대로 했을 뿐이다.”

이 :
“프로에 입단할 때 ‘동년배 중 최고가 되자’는 목표를 세웠다. 솔직히 동기 중에서 지금까지는 내가 제일 나은 것 같은데, 1년 후배인 백호가 너무 대단하다. 나에게도 좋은 자극제다. ‘그래도 한 살 형인데 지면 안 되지’라는 생각이 있다. 서로 친하기 때문에 긍정적인 시너지를 낼 수 있을 것 같다.”

-둘은 베이징 키즈의 선두주자로 꼽힌다. 이정후, 강백호뿐 아니라 동기들이 자리를 잡는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 같다.

이 :
“맞다. 특히 윤성빈·나종덕(이상 롯데 자이언츠)은 올해 좋은 모습 보일 것 같다. 성빈이는 지금도 나한테 ‘너는 포크볼 하나로 잡아낼 수 있다’고 말하는데 빨리 1군에 올라왔으면 좋겠다. 백호도 그렇고, 또래 선수들이 주는 자극만큼 강한 건 없다.”

강 : “한동희(롯데), 양창섭(삼성 라이온즈) 등 입단 동기들이 1군 경험을 많이 쌓았다. 다른 해에 비해 고졸 루키가 많이 나온 것으로 안다. 아직 모습을 보이지 않았지만 잘할 선수들이 많다. 1998~1999년생들이 KBO리그를 대표할 선수들로 성장했으면 좋겠다.”

키움 이정후(왼쪽)-KT 강백호. 사진제공|이정후
키움 이정후(왼쪽)-KT 강백호. 사진제공|이정후

● 확실한 소망, 동반 태극마크

-이정후는 대부분 신인들이 겪는 2년차 징크스를 피해갔다. 강백호에게 좋은 참고가 될 것 같다.


강 : “신경이 아예 안 쓰인다면 거짓말이다. 올 시즌에 망하면 그야말로 큰일 나는 것 아닌가(웃음). 다른 동기들도 많지만 아무래도 나부터 잘하는 게 중요하다. 시즌이 다가올수록 정후 형이 2년차 때 해놓은 것들이 더욱 대단하게 느껴진다.”

이 : “지난해 워낙 잘했는데, 일어나지 않은 일을 벌써부터 걱정할 필요 전혀 없다. 다치지 않으면 충분히 잘할 것이다.”

강 : “형은 지난해 슬럼프가 찾아왔을 때 2년차 징크스가 두렵지 않았나?”

이 : “지난해 인터뷰 때마다 ‘2년차 징크스 신경 안 쓴다’고 했지만 실은 걱정이 됐었다. 슬럼프에 빠질 때면 다쳐서 2군에 내려가서 시간을 벌었다(웃음). 진지하게 말하자면, 마음먹기에 달린 것 같다. 시즌을 치르다보면 누구나 부진하는 시기가 있다. 그때 ‘2년차 징크스인가?’라고 생각하면 나락으로 빠질 수 있다. 스스로를 죽이는 생각이다. 나는 슬럼프 때마다 (김)하성이 형이 도움을 줬다.”

-각각 3년차, 2년차다. 올해 목표는?


강 : “2년차 징크스에 빠지지 않는 것?(웃음) 이제 신인이 아니다. 지난해는 ‘신인빨’이 있었다면 이제 동등한 프로 선수가 됐다고 생각한다. 같은 위치에서도 ‘잘한다’는 평가를 듣고 싶다.”

이 : “나는 다치지 않는 게 제일 중요하다. 지난해 부상을 겪으면서 ‘풀타임 출장’에 대한 욕심이 강해졌다. 그라운드에 나설 수 있어야 팀에 보탬이 될 수 있다.”

KT 강백호(왼쪽)-키움 이정후. 스포츠동아DB
KT 강백호(왼쪽)-키움 이정후. 스포츠동아DB

-오글거리는 질문으로 마무리하겠다. 서로에게 설 덕담 한마디씩 부탁한다.

강 : “지난해에 나와 동기들이 1군에서 뛸 수 있었던 건 전부 정후 형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일종의 벽을 정후 형이 뚫어줬기 때문에 우리에게도 기회가 왔다. 나는 그걸 이어간 것뿐이다. 그뿐 아니라 평소에 정말 잘 챙겨준다. 늘 고마운 마음뿐이다.”

이 : “다소 영혼이 없는 멘트 같다(웃음).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백호와 함께 태극마크를 달고 뛰고 싶다. 내가 1루에 살아나가고 백호가 나를 불러들인다면…, 생각만 해도 짜릿하다.”

프로야구 태동기인 1980년대를 경험한 ‘올드 야구팬’에게 선동열과 최동원의 맞대결, 이만수의 원년 개막전 홈런 등은 여전히 선명한 기억이다. 자료로만 그 시절을 접할 뿐인 젊은 야구팬들에게는 그저 부러움의 대상이다.

하지만 지금 팬들 앞에는 ‘이정후와 강백호의 동반 성장기’라는 또 하나의 스토리가 놓여 있다. 이들이 기대대로 성장한다면 수십 년 뒤 “이정후, 강백호가 신인일 때부터 지켜봤다. 선의의 경쟁이 정말 대단했다”라고 회상할 수 있을 것이다. 신인이라고 믿기 힘들 대기록들을 써내려갔지만 그 스토리는 이제 막 첫 페이지를 넘겼을 뿐이다.

최익래 기자 ing1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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