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원, 악한돼버린 살인미소 “욕먹고 힘내는 변태 느낌”

  • 뉴시스
  • 입력 2019년 1월 28일 06시 2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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탤런트 김재원(38)은 ‘살인미소’라는 수식어를 벗는 데 꼬박 18년이 걸렸다. 그래도 다 벗지는 못했다.

OCN 드라마 ‘신의 퀴즈: 리부트’(신의 퀴즈 시즌5)로 절반의 성공을 거뒀다. ‘브레인 또라이’라는 새로운 별명을 얻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브레인은 아니”라면서도 “캐릭터를 연구한 성과 같아서 기분이 좋다”며 미소를 지었다.

김재원이 연기한 ‘현상필’은 홍콩 구룡 최대 조폭 조직의 넘버2다. 법의관 사무소 촉탁의 ‘한진우’(류덕환)를 장애물처럼 여겼다. 파격적인 헤어스타일에 화려한 문신, 살기 가득한 눈빛까지…. 김재원의 선한 이미지가 익숙한 대중에게는 낯설 수밖에 없었다.

“처음에는 삭발을 하려고 했다. 강아지 상이라서 어떻게 해도 얼굴이 선해 보이더라. 사람을 죽이는 악랄한 역이니까 ‘확실하게 보여주자’고 마음먹었다. 짧은 머리는 전에도 많이 해서 욕을 먹더라도 ‘시원하게 밀어보자’고 생각했다. 옆머리를 확 밀었는데 다들 놀라더라.”‘신의 퀴즈’는 OCN에서 가장 오래된 시즌제 장르물이다. 2010년 시즌1을 첫 선 보인 후 시청률은 1~2%대로 높지 않았지만 ‘한국의 CSI’라는 호평을 받았다. 김재원은 ‘신의퀴즈5’에 새로운 캐릭터로 투입된 만큼 오랫동안 형성된 마니아층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의식한다고 달라질 게 없더란다.

“아무도 캐릭터에 대해 알려주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팬들까지 의식하면 혼동이 생겨 캐릭터 중심을 못 잡을 것 같았다”면서 “실존 인물이라고 생각하고 시청자들에게 공감을 얻기 위해 노력했다”고 설명했다.

시즌 1~4까지 집필한 박재범 작가는 이번에 크리에이터로만 참여했다. 시즌5는 강은선, 김선희 작가가 썼다. 중간에 또 작가가 바뀌는 등 우여곡절을 겪었다. 악역이라도 이유가 타당해야 시청자들의 공감을 사는데, ‘도대체 왜 죽이는 걸까?’라는 의문이 계속 들었다.

“악행을 저지르는 이유를 정확하게 알아야 하지 않느냐. 아무 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연기하는 게 가장 어려웠다”며 “내용이 계속 바뀌어 ‘대체 무슨 캐릭터일까?’ 생각했다. ‘비하인드가 있냐?’고 물으면 감독님도 ‘모른다’며 ‘때로는 모르고 연기하는 게 더 좋을 때도 있다’고 했다. 끝날 때까지 이유를 몰랐다”고 씁쓸해했다.
종방 2주 후 만난 김재원은 아직도 ‘상필’ 캐릭터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듯 했다. 정신·육체적으로 많이 망가져 “만신창이가 됐다”며 웃었다. ‘신의 퀴즈5’ 출연을 후회하는 것은 아닐까. 손사래를 치며 극구 부인했다. 이제 “욕먹는 건 두렵지가 않다”며 “왠지 욕먹으면 힘이 생긴다. 변태가 된 느낌”이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데뷔 20년 차가 다 됐지만, 아직도 연기자로서 한참 배워가고 있다. 처음 장르물에 도전해 악역을 맡았는데 대중들과 너무 동 떨어지지 않고 호흡할 수 있었다. ‘김재원이 선한 역할만 하는 게 아니구나’, ‘이런 연기를 한다고? 한 번 볼까?’하는 고리만 생기면 된다고 생각했다. 처음부터 욕심을 크게 부리지 않았다. 새로운 역할에 접근할 수 있는 문이 열려서 만족한다.”

그렇다면 김재원에게도 악한 면이 있을까. “없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고 되물은 그는 한참 동안 생각에 빠졌다. 한때 사기를 당하고, 사람들에게 모함 받으면서 “‘대체 왜 저 사람이 나한테 그랬을까?’ 생각하니 화가 나더라. 살면서 억울한 일은 한 번씩 당하지 않느냐. 법률적, 제도적으로는 아무도 도와주지 않고, 얘기 하면 ‘어쩔 수 없어’, ‘그냥 네가 참아야 돼’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 때 나도 모르게 악한 기운이 올라오더라. ‘상필’의 감정이 이해 됐다”고 짚었다.

김재원은 ‘상필’을 연기하며 공황장애로 힘들었다. 전작 SBS TV ‘그녀로 말할 것 같으면’ 촬영 때도 공황장애로 다른 연기자들과 대화도 나누지 못할 정도였다. 그럼에도 ‘상필’이라는 어려운 역을 택한 데는 “두려움의 노예가 되고 싶지 않아서”다. 오히려 “공황장애를 이겨낼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했다. 아직도 공황장애를 다 극복하지는 못했지만, 약에 의존하지 않고 버티는 힘을 배웠다.

김재원은 2001년 SBS TV 시트콤 ‘허니허니’로 데뷔한 후 2002년 ‘로망스’ ‘라이벌’ ‘내 사랑 팥쥐’가 연달아 성공하며 스타덤에 올랐다. 지난해 SBS 연기대상에서 주말극 최우수상을 받은 후 “2002년에 장나라씨와 신인상을 탔는데”라며 추억에 젖었다. 두 사람은 ‘내 사랑 팥쥐’에 함께 출연한 인연이 있다. “장나라씨와 지난해 연기대상에서 나란히 최우수상을 타니 감회가 새롭더라”며 “같이 연기한 배우들 중에 그만둔 분들도 많다. ‘내가 시상식에 앉아 있을 자격이 있나’ 싶었는데, 상 받고 나서 ‘잘 버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전했다.

불혹에 가까운 나이에도 순수한 미소는 여전하다. 전성기가 그립지는 않을까. “신인 때는 의도한 게 하나도 없었다. ‘살인미소’라는 수식어를 가질 수 있었던 것은 아무 생각 없이 환하게 웃었기 때문이다. 내가 ‘연기자를 한다고?’ ‘주인공을 시켜주네?’ 싶더라. 최선을 다하니 많은 사랑을 받았다. 어느 순간 주변에서 내 모습이 아닌 다른 것을 강요하더라. 지금은 불필요한 상념들이 덕지덕지 붙어 있는데, 조금씩 걷어내고 싶다. 예전처럼 맑은 미소는 안 나오겠지만 하하.”

【서울=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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