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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전 브아쟁이 잉태한 ‘프렌치 럭셔리 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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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전 브아쟁이 잉태한 ‘프렌치 럭셔리 카’

류청희 자동차 칼럼니스트입력 2019-01-25 03:00수정 2019-01-25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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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청희의 자동차 칼럼
초기 브아쟁의 차 가운데 디자인이 가장 파격적인 것으로 꼽히는 타입 C6 라보라투아. Veloce Publishing 제공
《 최근 낯선 자동차 브랜드 하나가 새롭게 국내에 첫발을 내디뎠다. 프랑스 자동차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완전히 생소한 브랜드는 아닐 것이다. 지난 수년간 시트로엥 브랜드에 포함되면서 국내에서도 몇 개 모델이 팔린 바 있기 때문이다. 프리미엄 브랜드를 표방하며 2017년에 시트로엥에서 독립한 DS 오토모빌이 그 주인공이다. 국내에서는 시트로엥에서 떨어져 나오기까지 시간이 조금 걸렸다. 프리미엄 브랜드라는 이미지를 뚜렷하게 보여줄 수 있는 새 모델이 필요해서다. 》


DS 오토모빌은 자사의 차들을 ‘프랑스의 럭셔리 노하우를 현대적으로 해석한 모델’이라고 이야기한다. 이른바 ‘프렌치 럭셔리’ 감각이 스며든 차라는 것이다. 사실 프랑스가 다양한 종류의 명품으로 잘 알려져 있는 데 비해, 프랑스 차들은 오랫동안 명성에 걸맞은 호화로움과 고급스러움을 느끼기 어려웠다.

DS 오토모빌은 대중차 위주였던 프랑스 차의 이미지를 끌어올리는 역할을 자처하고 있다. 그들의 첫 차인 ‘DS 7 크로스백’은 그래서 어깨가 무겁다. 프렌치 럭셔리 감각이 구석구석 제대로 구현되어 있어야 소비자들을 충분히 설득할 수 있기 때문이다.

DS 오토모빌은 자신들의 뿌리를 시트로엥의 명차인 DS에서 찾는다. 1955년 처음 선보였을 때 시대를 앞선 기술과 대담한 디자인으로 아방가르드가 무엇인지를 보여준 혁신적 차가 DS였다. 오랫동안 프랑스 차와 연관지어 생각할 수 없었던 럭셔리 카, 럭셔리 브랜드와의 연결고리가 되는 차가 첫 DS이다. DS를 설계한 엔지니어, 앙드레 르페브르가 몸담았던 ‘브아쟁(Avions Voisin)’이야말로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프랑스 럭셔리 카의 대표 브랜드였다.


브아쟁과 시트로엥의 토대를 다진 엔지니어 앙드레 르페브르.Veloce Publishing 제공
르페브르는 원래 항공기 엔지니어였다. 브아쟁을 설립한 가브리엘 브아쟁은 유럽 최초로 항공기를 만들어 비행에 성공한 인물로 항공기 역사 초기의 선구자 중 하나로 꼽힌다. 제1차 세계대전 때 군용기를 생산하며 부를 축적한 그는 전쟁이 끝나자 자동차로 눈길을 돌렸다. 철저하게 기계의 신봉자였던 그는 기술적으로 완성도 높은 차를 만드는 데 집중했다. 항공기 개발을 통해 익힌 기술과 지식을 고스란히 자동차에 반영했다. 그의 열정과 고집을 자동차로 구현하는 데 르페브르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브아쟁과 르페브르, 차체 제작을 맡은 앙드레 노엘은 당대는 물론 지금까지도 브아쟁의 차를 돋보이게 만드는 특별함을 만들어 냈다. 이들은 알루미늄 합금과 같은 경량 소재를 적극 활용하면서 최대한 단순한 면으로 이루어진 공기역학적 차체 형태를 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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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미엄 브랜드로 독립한 DS 오토모빌의 뿌리가 된 시트로엥 DS. 시트로엥 제공
브아쟁은 첫 차인 C1을 시작으로 그가 가진 수백 개의 특허를 활용해 기술적으로 돋보이는 차들을 꾸준히 만들어냈다. 무엇보다도 당시 차들과 뚜렷하게 구분되는 독특한 모습은 보는 이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르페브르가 설계에 참여해 1923년에 만들어진 C6 라보라투아르(Laboratoire) 경주차는 초기 브아쟁 차들 가운데 가장 파격적 디자인으로 손꼽힌다. 이 차는 항공기 설계를 응용한 모노코크 구조와 함께 항공기와 비슷한 프로펠러를 차체 앞쪽에 달아 엔진 냉각수 펌프를 돌리는 데 쓰는 등 파격적인 설계가 돋보인다. 옆에서 보았을 때 물방울을 반으로 잘라 놓은 듯한 차체 형상, 보닛과 앞바퀴를 덮는 펜더 사이를 잇는 지지대, 양 날개를 하늘로 치켜올린 새의 모습을 기계처럼 형상화한 엠블럼 등은 브아쟁 차의 상징으로 자리잡았다.

초기에는 외부 차체 제작업체(코치빌더)에서 만들었던 차체도 나중에는 회사 내부에서 직접 만들었다. 브아쟁의 고집 때문이었다. 자동차에 구현된 아르데코 양식의 전형이 바로 브아쟁이 선보인 자동차들이었다.

브아쟁의 기술적 완벽주의는 독특한 기술의 탄생으로도 이어졌다. 최대한 진동 없이 매끄럽게 작동하는 엔진을 만들기 위해 브아쟁은 이미 1920년대에 V12 엔진을 개발한 데 이어 1930년대에는 직렬 12기통 엔진을 만들었다. 직렬 12기통 엔진은 너무 길어 실내 일부까지 차지할 정도였다. 그는 수동변속기의 변속 조작도 번거롭고 불편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몇몇 차에 원시적인 구조의 자동변속기를 다는가 하면 전기장치로 변속을 돕는 변속기를 달기도 했다. 일부 모델에는 진공 배력 제동 시스템을 달아 작은 힘으로 브레이크 페달을 밟아도 충분히 제동이 이루어지도록 했다.

1934년에 나온 브아쟁 타입 C27 로드스터. 아르데코 스타일이 돋보인다. Salon Prive 제공
이렇게 만들어진 차들은 들어간 기술과 손길만큼 호화롭고 비쌌다. 그럼에도 브아쟁은 제대로 수익을 남기지 못했다. 1930년대 들어 세계를 휩쓴 경제 대공황의 여파로 럭셔리 카의 판매가 크게 줄었고, 브아쟁 역시 직원들에게 임금을 제대로 주지 못할 만큼 어려움을 겪었다. 오랫동안 함께 일한 르페브르도 이때 르노를 거쳐 시트로엥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런 어려움 속에서 브아쟁은 오히려 수익을 늘리기 위해 더 정교하고 호화로우며 더 값비싼 차를 만들었다. 그 정점에는 1934년부터 1937년까지 28대만 생산된 C25가 있었다. 부유층 엘리트들을 노리고 만든 C25의 값은 8만8000프랑으로, 당시 대표적 럭셔리 카 브랜드였던 부가티의 타입 57 갈리비에보다 1만8000프랑 더 비싼 것은 물론이고 시트로엥의 최신 모델이었던 트락숑 아방 11 4대를 살 수 있는 금액이었다.

잊혀진 프랑스 럭셔리 카 브랜드, 브아쟁의 첫 모델 중 하나인 타입 M1. 류청희 제공
브아쟁의 전략이 실패하면서 제2차 세계대전과 함께 럭셔리 카 브랜드로서 브아쟁의 생명도 끝나게 된다. 브아쟁의 자동차 생산은 전쟁이 일어난 1939년에 중단되었고, 전쟁이 끝난 뒤에는 정치적 혼란 속에 국유화와 기업 통폐합을 거치며 조용히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그 시기에 브아쟁뿐 아니라 프랑스 럭셔리 카 전반이 함께 사양길로 접어들었다. 1950∼60년대에 몇몇 브랜드가 부활을 꿈꾸거나 새롭게 시작하며 호화로운 차들을 선보이기도 했지만 대부분 1970년대 들어 벌어진 석유파동으로 좌절하고 만다. 결국 21세기에 접어들 때까지 프랑스 차에서 럭셔리 브랜드의 자리는 거의 빈 상태나 다름없었다. 그 자리를 이제 DS 오토모빌이 채우려고 나서는 것이다.

브아쟁을 상징하는 물방울 모양의 차체 형상과 평평한 측면이 잘 드러나 있는 C28 베를린. 류청희 제공
올해는 브아쟁이 자동차를 만들기 시작한 지 꼭 100년째 되는 해다. DS의 아버지라 할 수 있는 르페브르가 자동차와 맺은 인연의 첫 결실이 태어난 것도, DS의 뿌리라 할 수 있는 시트로엥이 첫 차를 만든 것도 100년 전의 일이다. 브아쟁을 떠난 르페브르는 시트로엥에서 일하며 트락숑 아방을 시작으로 2CV, DS에 이르는 인기 모델을 설계해 회사 규모를 키우는 데 공헌했다. 한 세기 전에 태어난 브아쟁을 떠올려 보면 프렌치 럭셔리 카의 새로운 시대를 기대하기에 이처럼 좋은 때도 없는 것 같다.

류청희 자동차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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