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지로 재개발 재설계” 서울시에…상인들 “엎질러진 물” 불신팽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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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년 1월 17일 17시 4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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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체적인 방안 없어…이런 말 나오지 않게 진행했어야”
“옥바라지골목도 말과 달리 철거…‘백년가게’ 살려야”

‘일단 환영하지만 반신반의.’

17일 서울시 중구 청계천-을지로 주변 입정동 일대 세운3구역 재개발 철거공사가 한창인 가운데, 지역상인들과 시민들은 박원순 서울시장이 전날 “재개발 재설계 방안을 요청하겠다”고 한 발언과 관련해 일단 환영한다면서도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평양냉면 노포로 유명한 ‘을지면옥’에서 2대째 가업을 잇고 있는 이성민씨(59)는 “그래도 어차피 진행은 되는 것 아니냐”고 말문을 열었다. 그는 “상황이 이렇게 되고, 여론의 관심이 높아지자 일단 그렇게 말한 것일 뿐 이미 철거도 다 이뤄지고 있지 않느냐”면서 “(박 시장의 말은) 말이 안 되는 말이고, 믿지 않는다”고 고개를 저었다.

40년 가까이 ‘을지다방’을 운영해온 박옥분씨(62·여)는 “박 시장이 노포들을 위해 재개발 계획을 다시 보겠다고 말을 했지만 ‘어떻게’ 할 것이냐에 대한 말이 없다”고 지적하면서 “해답을 구체적으로 줘야 비로소 의미 있는 말이 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박씨는 이어 “애초부터 재개발 계획을 잘 잡아서 이런 말이 나오지 않게 했으면 좋았을 것”이라며 “서울시가 그동안 오래된 가게를 ‘오래가게’로 지정했던 것과도 앞뒤가 안 맞지 않느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이날 ‘청계천을지로보존연대’가 을지로-청계천 일대를 재개발로부터 지켜내자며 개최한 ‘청계천을지로 재개발 반대 총궐기대회’에 참가한 지역예술가와 상인들도 박 시장의 발언에 믿기 어렵다고 반응했다.

김영준 녹색당 서울시당 공동운영위원장은 서울시 서대문구 무악2구역 재개발 때 철거된 ‘옥바라지골목’을 언급하면서 “박 시장은 내가 고발당하는 한이 있더라도 개발을 막겠다고 말했지만 지켜지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이어 “(을지로 재개발과 관련해) 이번에 한 말이 사실이기를 정말로 믿고 싶지만, 이전에 말한 것이 우리를 믿지 못하게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지역에서 25년 동안 일해온 두루통상 사장 강문원씨(59)는 “종로1가 피맛길을 밀어버린 오세훈 전 서울시장과 박 시장이 뭐가 다르냐”고 박 시장에 대한 비판의 말부터 시작했다. 강씨는 지난달 7일부터 42일째 청계천 관수교 주변에서 재개발에 반대하는 천막농성을 벌이고 있다.

강씨는 “어제(16일) 발표한 재검토 계획에 깊은 감사를 드리지만 우리 소상공인들은 정말로 힘든 상황”이라며 “박 시장이 농성장을 방문해서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 함께 고민할 것을 요청한다”고 실질적인 행동을 보여줄 것을 제안했다.

김종민 녹색당 서울시당 위원장도 “뉴타운 개발의 광풍을 막자고 하며 도시재생을 내세운 덕분에 박 시장이 당선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면서 “박 시장이 어제 계획을 재검토하겠다고 했지만 행정은 그것과는 다르다”고 강조했다.

김 위원장은 “이미 사업시행인가가 났고 (철거 중인 지역은) 관리처분인가가 지난해 난 상황”이라며 “되돌리기가 정말 어렵고, 설계에서 몇 군데만 빼서 개발하겠다고 하는 꼼수를 부릴 생각이라면 정말 규탄하지 않을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전면 재검토란 역사를 살리고 백년 동안 만들어온 가게를 살리는 길이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배웅규 중앙대학교 교수는 “이미 물은 엎질러졌지만, 앞으로 엎질러질 물도 있으니 거기에 대해서는 보존방안을 고려하겠다는 말일 것”이라며 “물론 처음부터 보존 방향을 잡았으면 좋았겠지만, 이제라도 그쪽으로 가겠다고 했을 때는 일단 전향적 방향으로 갈 수 있게 지지를 해주는 것이 필요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원호 한국도시연구소 연구원은 “도시환경정비사업의 인허가권이 관할구청에 있으니 서울시에서 정확하게 파악을 못하고 있었을 가능성도 있다고 본다”며 “이제 와서 보존하겠다고 하는 데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을지면옥 이성민씨는 “냉면도 분위기와 전통이 있는 데서 먹어야 맛이 있지 휘황찬란한 곳에서 먹으면 맛이 제대로 나지 않는다”며 “이제 이집도 저집도 다 떠나는데 더불어서 사는 게 좋지 않겠나”라고 쓴 웃음을 지었다.

(서울=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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