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 발리볼] V리그에서 외국인 선수로 산다는 것은

  • 스포츠동아
  • 입력 2019년 1월 3일 14시 3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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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K저축은행 요스바니. 사진제공|KOVO
OK저축은행 요스바니. 사진제공|KOVO
V리그 OK저축은행은 최근 4연패의 수렁에 빠졌다. 봄배구 경쟁상대 삼성화재와 우리카드에 이어 새해 첫날 KB손해보험에게 완패 당했다. 3경기 연속 ‘완봉패’로 조짐이 좋지 않다. 차츰 상위권에서 밀려나는 추세다.

OK저축은행의 성적하락은 팀을 이끌던 요스바니의 부진과 관련이 많다. 시즌 초반 V리그에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외국인선수는 3라운드 중반부터 눈에 띄는 하락세다. 한때 70%가 넘나들었던 성공률은 최근 2경기 50% 밑으로 떨어졌다. 득점도 최근 3경기에서 22~13~14점에 그쳤다. 공격옵션이 많지 않은 팀 형편상 그에게 올라가는 공이 많을 수밖에 없는데 여기서 결정이 나지 않으면서 팀도 이기는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

● 외국인선수에게는 극한직업인 V리그

요스바니의 부진은 좋지 못한 몸 상태 때문이다. 어깨와 무릎이 아프다. 점프는 한창 때보다 낮아졌다. 강타의 위력도 줄어들었다. 그동안 팀 공격의 절반 넘게 책임지고 리시브까지 해주던 터라 고비가 올 것이라고 예상은 했다.

V리그의 외국인선수 대부분은 이런 슬럼프를 경험한다. 그만큼 외국인선수들에게 V리그는 극한직업 가운데 하나다. 빡빡한 일정과 자신의 배구인생에서 가장 많은 공격을 전담하는 부담감, 승패의 책임감이 그들을 힘들게 한다.

V리그 유일한 3시즌 연속 MVP였던 삼성화재 레오도 3번째 시즌 마지막에 “정신적으로 너무 힘들고 지쳤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치열한 경기준비 과정도 가끔은 외국인선수들을 질리게 만든다. 그래서인지 3~4라운드 때 이들의 부상발생 빈도가 유난히 높다. 가족과 함께 보내던 크리스마스 즈음에 향수병과 함께 몸에 이상신호가 자주 찾아온다. 요스바니도 일주일에 한 경기가 고작이었던 다른 리그와는 차원이 다른 빡빡한 일정과 엄청난 공격부담이 겹쳐지면서 탈이 난 것으로 보인다. 구단은 이런 요스바니를 위해 많은 배려를 해줬다. 스파를 유난히 좋아하자 훈련장에 따로 시설도 설치했다. 최근에는 몸 상태를 감안해 훈련을 빼주며 경기에서만이라도 최선을 다해주기를 기대했는데 결과가 나빴다. 스스로 충격을 받을 정도였다. 김세진 감독은 “부상의 두려움이 앞서는 것 같다”고 했다.

몸에 이상 증세가 왔을 때 우리 지도자들은 고통을 참고 극복하면 된다고 믿고 그렇게 선수들에게 말하지만 토종선수는 몰라도 외국인선수들은 다르다. 어릴 때부터 그런 경험을 해보지 않은 선수들은 우선 두려워한다.

● 요스바니의 최근 부진 원인은?

공교롭게도 요스바니는 함께 지냈던 가족들이 지난 12월 21일 돌아갔다. 아내 베로니카와 아들 로렌조는 그동안 많은 경기를 따라다니며 곁에서 힘이 돼 줬지만 이제는 요스바니 혼자다.

구단은 당초 한국에 입국할 때 시즌 끝까지 함께하도록 비자를 준비했는데 이런저런 이유로 관광비자로 바꿔서 빨리 입국시켰다. 아내가 이탈리아에서 벌여놓은 사업 때문에 오래 머물 수도 없었다.

구단은 요스바니 가족이 한국을 떠나기 전에 좋은 기억을 많이 남겨두길 바라며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잠실의 초고층 호텔에서 가족이 함께 지내며 서울의 멋진 야경을 오래 기억하도록 해줬다. 이탈리아에서 뷰티 샵을 운영하는 베로니카를 위해서는 서울의 유명한 마사지 샵에서 최첨단을 달리는 한국의 미용과 마사지, 스파를 두루두루 체험하게 해줬다.

가족만찬에도 돈을 아끼지 않았다. 해산물을 특히 좋아하는 요스바니를 위해 게 요리를 60만원어치나 사줬다. 이탈리아에서는 비싸서 엄두도 못 낸다는 싱싱한 굴 요리도 마음껏 먹게 해주면서 높은 점수를 땄다. 예전 삼성화재도 레오의 어머니에게 헬스클럽 이용권을 끊어주고 첨단 의료시설에서 다양한 치료를 받게 했다. 그 덕분인지 레오의 어머니는 아들이 오랫동안 삼성화재에서 뛰기를 꿈꿨다. OK저축은행도 요스바니의 가족들이 팀에 좋은 기억을 많이 가지고 오랫동안 인연을 이어가기를 바라면서 기꺼이 지갑을 열었다.

하지만 문제는 지금이다. 가족이 떠난 뒤 혼자 남은 요스바니가 얼마나 외로움을 느낄지는 누구도 모른다. 김세진 감독은 자주 면담을 하고 불편한 점은 없는지 묻고 있다. 그럴 때마다 요스바니는 “최근 부진은 가족이 떠난 것과 상관이 없다”고는 말하지만 걱정이 많다. 주축선수가 부진하면 주변에서는 온갖 이유와 해법이 나온다. 사실 어느 것이 진짜 이유고 해결책인지 모를 때도 많다. 단지 결과를 보고 추측할 뿐이다.

KB손해보험 펠리페(오른쪽). 스포츠동아DB
KB손해보험 펠리페(오른쪽). 스포츠동아DB

● 아내 출산을 위해 돌아간 펠리페

시즌 도중에 다시 V리그의 호출을 받은 KB손해보험 펠리페도 12월 24일 아내 나탈리아가 출산을 위해 브라질로 되돌아갔다. 임신 4개월의 몸으로 남편을 응원하기 위해 한국을 찾았던 그는 팀이 자주 패하고 남편도 기대만큼의 성적을 내지 못하자 더 미안해했다. 구단은 펠리페 가족을 위해 신혼집을 정성스럽게 꾸며줬다. 펠리페도 아내가 시즌 끝까지 함께 있어주길 바랬지만 그는 2세를 위해 친정이 있는 브라질로 돌아갔다. 다행히 혼자 남은 펠리페는 최근 상승세다. 구단과 동료들은 펠리페와 더욱 가까이 지내려 노력한다.

요스바니도 마찬가지다. 그는 최근 심기일전의 뜻으로 머리를 노랗게 물들였다. 주장 송명근에게 동참하자고 했다. 송명근은 집에서 혼자 염색을 하고 1일 KB손해보험 경기에 출전했다.

요스바니는 다음 염색할 선수로 부용찬을 지명했다. OK저축은행 선수들 사이에서 염색은 어려운 상황을 바꿔보기 위한 변화의 상징이다. 노란색 물을 들인 선수가 많아질수록 요스바니는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실감할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요스바니의 가족은 2월 재결합한다.

베로니카가 현지의 사업을 정리한 뒤 돌아와 남편과 시즌 끝까지 있기로 했다. OK저축은행이 그때까지만 잘 버틴다면 봄배구의 희망은 있다.

김종건 전문기자 marc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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