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퓰리즘에 두 손 든 伊경제장관… 재정확대 예산안 우려 증폭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9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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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예산안 발표 앞두고 촉각
“적자규모 GDP 2.4%로 높여라”
의회 장악 극좌-극우 연정 압박에 GDP 1.6% 계획했던 경제장관
기본소득 도입-은퇴연령 단축 수용

유로존(유로화 사용국) 3위 경제대국 이탈리아의 재정에 다시 빨간불이 켜지면서 글로벌 금융시장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조반니 트리아 이탈리아 경제장관(사진)은 내년도 예산안 발표를 하루 앞둔 26일 밀라노 행사에서 “나는 오로지 국가의 이익만을 위해 일할 거라고 맹세했다”며 재정 지출 확대를 요구하는 포퓰리즘 정권과의 전투 의지를 다졌다. 하지만 점점 힘겨운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

트리아 장관은 지난주까지만 해도 “국가 부채가 하향 곡선을 그리는 예산을 짜겠다. 내년도 재정적자 비율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1.6% 수준이 될 것”이라고 말해 왔다. 이탈리아가 감내할 수 있는 재정적자 수준의 마지노선을 GDP 대비 2% 이하로 본 글로벌 금융시장은 그나마 안도했다. 전임 정부는 당초 2019년 예산의 재정적자 규모를 0.8%로 설정한 바 있어 1.6%도 예상보다 높은 수치였다.

하지만 극좌 오성운동-극우 동맹당 포퓰리즘 정권이 자신들의 선거 공약인 기본소득 도입, 은퇴 연령 단축, 감세를 이끄는 단일 세율 도입 등을 반드시 예산안에 포함시키라며 트리아 장관에게 지속적으로 압력을 가하면서 재정적자 비율은 우려 수준으로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트리아 장관은 “너무 많은 걸 담으려고 돈을 빌리면 높은 이자를 물어야 한다”며 호소했지만 루이지 디마이오 오성운동 대표는 “내년 예산에 기본소득이 담기면 역사상 처음으로 절대 가난이 영원히 사라질 것”이라며 복지 확대를 기정사실화했다. 오성운동과 동맹당은 만약 거부할 경우 예산안을 통과시키지 않겠다고 협박했고, 두 정당이 트리아 장관을 사퇴시키려 한다는 소문도 파다했다.

버티기에 한계를 느낀 트리아 장관은 26일 “내년도 예산에 가난한 이들을 위한 기본소득을 보장하는 정책을 포함시킬 것이며 사람들이 더 빨리 은퇴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물러섰다. 포퓰리즘 정권의 요구를 대거 반영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되면서 재정적자의 폭이 예상보다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이탈리아 안사통신에 따르면 오성운동은 내년도 예산안 재정적자 규모를 GDP의 2.4%로 올리도록 트리아 장관에게 압력을 가하고 있다. 미국 경제전문방송 CNBC는 “글로벌 금융시장이 이탈리아의 새 예산안을 놓고 좌불안석”이라며 “시장의 변동성을 키울 수 있다”고 우려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어떤 예산안을 발표하더라도 이탈리아의 부채는 이미 충분히 높고 투자자들의 신뢰는 낮다”며 이탈리아 경제 앞길에 강한 우려를 표했다.

글로벌 금융시장은 6월 서유럽 최초로 탄생한 포퓰리즘 정권이 첫 예산안에서 재정을 지나치게 확대할 것으로 걱정해 왔다. 이미 이탈리아는 GDP 대비 부채비율이 131%로 그리스에 이어 유럽연합(EU) 내에서 두 번째로 높기 때문이다. 포퓰리즘 정권의 선거 공약을 실현하려면 1000억 유로(약 131조 원)가 들어 GDP 대비 재정적자 6%가 더해질 거라는 카를로 코타렐리 전 국제통화기금(IMF) 디렉터의 추산까지 더해지면서 불안감은 더 커졌다.

로마대 교수 출신의 트리아 장관은 5월 두 포퓰리즘 정당이 내세웠던 반EU 성향의 경제장관 후보자를 친EU 성향의 세르조 마타렐라 대통령이 승인을 거부하면서 대신 경제장관 자리에 올랐다. 이후 지나친 재정 확대를 경계하는 트리아 장관과 포퓰리즘 정당들이 사사건건 충돌해 왔다.

파리=동정민 특파원 ditto@donga.com
#포퓰리즘#이탈리아 경제장관#재정확대 예산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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