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 이야기]가이아와 인류세(人類世)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9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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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상민 케이웨더 공기지능센터장
차상민 케이웨더 공기지능센터장
1960년대 초, 미국항공우주국(NASA)은 화성 탐사에 앞서 화성에 생명이 있는지를 알아보기로 했다. 생명체의 특징인 에너지와 물질을 흡수하고 노폐물을 내보내는 대사(代謝)의 흔적을 화성 대기에서 찾는 일에 제임스 러브록이 초청됐다. 러브록이 파악한 것은 이미 모든 화학 반응이 완료되어 평형을 이루고 있는 죽어 있는 화성의 대기였다.

그는 오히려 이와 대비되는 지구 대기의 역동성에 주목했다. 지구 대기에는 화학 반응이 매우 쉽게 일어나는 산소와 메탄이 상당량 유지되고 있는데 이는 끊임없는 생성과 반응의 순환이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다. 러브록은 이러한 순환의 원동력이 생명이라고 결론짓고 지구가 스스로를 조절하는 살아있는 것으로 보았다. 러브록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대지의 여신의 이름을 따서 지구를 ‘가이아(Gaia)’라 칭했다.

러브록이 발표한 가이아 이론의 핵심은 지구가 자기 조절에 의해 항상성을 유지한다는 것이다. 지구온난화와 관련하여 가이아 이론이 종종 언급된다. 배경에는 인간이 배출한 온실가스가 지구의 자기 조절 능력에 의해 줄어들기를 바라는 소망이 반영된 것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인간에 의해 지구의 자기 조절력이 위협받고 있다는 것을 강조하는 측면도 있다. 특히 후자 측은 온실가스의 요인인 산업화가 가이아의 자기 조절력을 훼손하는 암적 존재라는 극단적 주장을 하기도 한다.

가이아 이론에서 인간은 생물과 무생물로 이루어진 지구 순환계의 일부를 구성하는 존재에 지나지 않지만 그 영향력은 이미 자연 순환의 범위를 훨씬 넘어서고 있다. 이러한 인간의 영향력은 지질시대 구분에서조차도 그 흔적을 뚜렷이 보일 터인데 이 시대를 ‘인류세(人類世)’라 불러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1995년 노벨 화학상을 받은 네덜란드의 화학자 파울 크뤼천은 새로운 지질시대로 인류세(Anthropocene)라는 개념을 2000년에 처음으로 주장했다. 약 1만1000년 전에 시작된 홀로세(Holocene)에 이은 것으로 인간이 원인이 되어 지구환경 체계가 급격하게 변하게 된 현재 시대를 칭하는 것이다. 플라스틱, 콘크리트 등 ‘기술화석(technofossils)’의 퇴적, 인간이 배출한 이산화탄소의 농도가 홀로세 평균보다 50% 이상 높고 이로 인한 지구온난화가 날씨를 교란시켜 전 지구의 생명 체계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 등이 그 특징으로 거론되고 있다.

가이아 이론과 인류세 주장은 아직 과학계에서 정식으로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그러나 지구온난화로 지구의 자기 조절 능력이 위협받고 있으며 인간에 의한 지구온난화의 흔적이 지질시대의 기록에 뚜렷이 남으리라는 것에 대해서는 대부분의 과학자가 동의하고 있다.

먼 훗날 외계인이 지구 생명의 흔적을 찾기 위해 지구를 탐사한 후 내린 결론이 “지구 대기는 죽어 있으며 지구의 생명 순환을 멈추게 한 인류의 이름을 따서 지구의 마지막 시기를 ‘인류세’로 불러야 한다”는 일이 없기를 바랄 뿐이다.
 
차상민 케이웨더 공기지능센터장
#인류세#가이아 이론#기술화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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