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슨 인식표로 68년 만에 돌아온 아버지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8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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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무병으로 6·25 참전 맥대니얼
1950년 평북 운산전투서 실종… 7월 北이 인식표 보내와
유품 건네받은 백발의 두 아들 “이름표만이라도 찾은 건 큰 행운”


“전혀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아버지의 유품 소식을 듣고 나니) 눈물이 나더군요. 한동안 감정을 추스르기가 힘들었습니다.”

찰스 맥대니얼 주니어(71)는 아버지가 6·25전쟁에 참전하기 위해 집을 떠났던 1950년에 고작 세 살이었다. 그는 8일(현지 시간) 떨리는 손으로 아버지의 군번과 이름이 적힌 녹슨 인식표를 받아들고는 감정에 북받친 듯 이렇게 말했다.

미 국방부 전쟁포로 및 실종자확인국(DPAA)은 이날 국립묘지가 있는 버지니아주 알링턴의 한 호텔에서 1950년 11월 평안북도 운산전투에서 전사한 것으로 추정되는 육군 상사 찰스 맥대니얼의 인식표를 두 아들인 찰스와 래리 맥대니얼(70)에게 전달했다. 전사한 지 68년 만에 가족에게 전달된 이 인식표는 북한이 6·12 북-미 정상회담 합의 이행 차원에서 지난달 27일 미국에 돌려보낸 미군 유해 상자 55개에 들어있던 것이다. 인식표는 이것 하나뿐이었다.

두 아들은 아버지의 인식표를 찾은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이라며 감격에 겨워했다. 형 찰스는 “(북한에 있는 6·25전쟁 전사자) 유해가 약 7000구나 되는데 그중 55개의 상자만 돌아온다고 해서 별로 기대를 하지 않았다. 인식표라도 가지게 된 것은 아직 우리밖에 없지 않나. 우리는 매우 큰 행운을 얻은 셈”이라고 말했다. 동생 래리는 “아버지에 대한 아무런 기억도 없다”면서도 “아버지의 애국심과 헌신이 매우 자랑스럽다”고 했다.

인식표 주인인 찰스 맥대니얼은 미 육군 제1기병사단 제8기병연대 3대대 소속 의무병으로 6·25전쟁에 참전했다. 8기병연대는 1950년 11월 평양에서 북쪽으로 약 100km 떨어진 운산에서 중국군의 기습 공격을 받아 많은 병력을 잃었다. 맥대니얼이 전투 중 숨졌다는 목격자 증언이 나중에 나왔으나 실종자로 분류돼 하와이에 있는 실종자추모공원에 이름이 새겨졌다.

인식표 주인인 맥대니얼의 유해가 이번에 전달 받은 55개의 상자 속에 들어 있는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DPAA는 정확한 확인을 위해 이날 전달식 도중 두 아들의 입속을 면봉으로 닦는 DNA 채취 작업을 진행했다.

존 버드 DPAA 연구실 소장은 이날 “1990년대 초반에 북한으로부터 208개 상자를 받았는데, 당시 약 400명의 유해가 상자에 들어 있던 것으로 확인됐다”며 “과거의 경험이 반복된다면 (55개 상자에서) 55명 이상의 신원을 확인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DPAA는 현재 하와이에서 유해의 신원을 확인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한기재 기자 record@donga.com
#6·25전쟁#미군 유해#인식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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