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가족의 조건… 유전자보다 함께 보낸 ‘시간’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8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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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아버지가 된다/고레에다 히로카즈, 사노아키라 지음·이영미 옮김/304쪽·1만3800원·블루엘리펀트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와 소설에 등장하는 주인공 료타(왼쪽)는 생물학적 유전자만큼이나 함께 보낸 ‘시간’이 가족을 이루는 요소란 사실을 깨닫는다. 동아일보DB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와 소설에 등장하는 주인공 료타(왼쪽)는 생물학적 유전자만큼이나 함께 보낸 ‘시간’이 가족을 이루는 요소란 사실을 깨닫는다. 동아일보DB
‘6년간 아들이라고 믿었던 아이가, 사실은 생판 모르는 남의 자식이라면?’

막장 드라마에나 나올 법한 출생의 비밀이 소재지만, 작품이 던지는 메시지는 매우 묵직하다. 일과 사랑엔 성공했지만 어딘가 좀 서툰 주인공을 보고 있노라면, ‘부모가 된다는 것’의 의미를 조용히 자문하게 된다.

영화 ‘걸어도 걸어도’, ‘공기인형’, ‘태풍이 지나가고’ 등을 연출했으며, 지난해 칸영화제에선 ‘어느 가족’으로 황금종려상을 받은 일본 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자신의 동명 영화를 소설로 옮겼다. 2013년 칸영화제 심사위원상을 비롯해 산세바스티안영화제, 밴쿠버영화제 등 유수 국제영화제에서 수상하며 작품성과 흥행성을 동시에 인정받은 작품이다.

일류 대학을 졸업한 뒤 대형 건축회사에서 승승장구하던 주인공 료타는 어느 날 병원으로부터 여섯 살 난 아들 게이타가 출생 당시 뒤바뀌었다는 사실을 전해 듣는다. 료타는 전혀 다른 삶을 살아온 친아들의 가족을 만나고, 현재 아들 게이타와의 관계를 돌아보며 고민과 갈등에 빠진다.

“료타의 마음속 어딘가에는 게이타를 마주하기 꺼려지는 두려움이 있었다. 게이타의 얼굴을 살펴보면서 부부 어느 쪽이든 닮은 부분을 찾게 되고, 게이타의 말과 행동에서 자기와 아내의 흔적을 끄집어내려 애썼다. 그러다 게이타와 자기의 차이를 발견하고 낙담하고 말았다.”

감각적인 문체가 돋보이는 소설은 영화에선 직접적으로 드러나지 않았던 인물들의 속내와 과거로 꽉 채워져 있다. ‘친자식과 키운 자식 모두 데려오라’는 직장 상사의 말을 큰 의심 없이 실행에 옮기려던 료타의 심리나, 자신의 어린 시절 모습과 다른 게이타를 어쩐지 아쉬워하는 마음, 뒤바뀐 아이를 두고 겪는 부부의 괴로움 등이 훨씬 설득력 있게 그려진다.

물론 소설의 이런 측면이 영화가 지녔던 여백미를 좋아하는 이에겐 오히려 TMI(Too Much Information·불필요하게 많은 정보를 뜻하는 신조어)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감독이 얼마나 탄탄한 짜임새를 바탕으로 상상력의 세계를 구축해 영화로 만들었는지 들여다보는 재미가 크다.

실제로 고레에다의 영화는 특별히 오디오나 비디오를 활용하지 않고 담담히 상황을 보여주기 때문에 다분히 텍스트적이었다. 감독 특유의 잔잔하고 관조하는 분위기는 모든 작품에서 마찬가지. 알고 보니 그는 일본 와세다대 제1문학부 문예학과 출신이다.

소설과 영화의 큰 줄기는 크게 다르지 않다. 결국 료타는 상대 가족에게 보냈던 게이타를 찾으러 간다. “빌어야 할 잘못은 산더미 같다. 다 말할 수 없을 정도다. 그러나 그걸 다 털어놓는다고 해도 게이타가 과연 용서해줄까”라고 걱정하면서.

자신을 데리러 온 료타에게 게이타는 “아빠는 아빠도 아니야”란 말로 서운함을 토로한다. 그제야 료타는 지난 6년 동안 그들이 가족이었음을 인정하고 고백한다. 감독이자 저자는 이 명대사로 앞서 던진 질문에 대한 힌트를 제시하는 친절을 베풀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6년 동안은…. 6년 동안은 아빠였어. 부족하긴 했어도 아빠였잖니.”

조윤경 기자 yunique@donga.com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고레에다 히로카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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