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정원수]국회의 19년째 직무유기… 13번째 특검 충돌의 비극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5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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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수 정치부 차장
정원수 정치부 차장
“특별검사 수사는 법리적으로나 논리적으로 일반 검찰의 임무와 중복되고, 경제적으로는 나라의 국부를 낭비하는 것으로… 다시는 또 다른 특검이 임명되는 일이 없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1999년 12월 20일 이른바 옷로비 의혹사건의 특검인 최병모 변호사가 당시 김대중 대통령에게 전달한 보고서 중 일부다. 2개월 동안 4억1400만 원을 투입한 수사 결과를 종합한 326쪽 분량 보고서에서 국내 1호 특검인 최 변호사는 역설적으로 처음이자 마지막 특검을 강하게 희망했다. 그걸 가능하게 하기 위해 “형사사법이 오로지 주권자인 국민의 의사 표현인 헌법과 법률에 따라 올바르게 행사된다”는 한 가지 전제조건만 달았다. 국민적 의혹을 권력의 눈치를 보지 않고, 성역 없이 수사해 주기를 바라는 국민의 염원이기도 했다.

그러나 ‘불행한 역사’는 이후 19년째 이어지고 있다. 요즘 국회는 13번째 드루킹 사건 특검 도입 문제로 두 달째 마비 중이다. 두 야당은 단식투쟁과 철야농성을, 여당은 “대선불복 특검”이라며 대치하고 있다. 댓글 여론조작 사건 특검이 출범한다면 국정농단 특검 사무실이 아직 문을 닫지 않았으니, 역대 세 번째 ‘쌍(雙)특검’ 시대를 맞게 된다. 현 정권 실세 주변을 수사하는 특검과 전 정권 비리를 설거지하는 또 하나의 특검이 동거하는 모습이 연출될 수 있다.

잦은 특검이 검찰이나 경찰의 무능 탓일까. 특검 무용론이 처음 나온 건 재임 중 5번이나 특검을 마주한 노무현 전 대통령 시절이었다. 취임식 다음 날 국회에서 대북송금 특검법이 통과된 데 이어 취임 만 9개월을 앞둔 2003년 11월 노 전 대통령 측근 비리 특검법이 야3당 주도로 통과됐다. 대통령이 “검찰 수사를 좀 더 지켜보자”며 거부권을 행사하자 야당은 “하야”까지 언급하며 국회 재적의원 3분의 2의 동의가 필요한 재의결을 강행했다. 헌정 사상 법안 전체에 대한 첫 재의결은 이듬해 3월 사상 첫 대통령 탄핵 가결의 복선과도 같았다. 그러나 18억 원을 들여 90일 동안 수사한 특검 성적표는 초라했고, 특검 무용론만 불거졌다. 대선을 이틀 앞둔 2007년 12월 17일엔 이명박 당시 한나라당 대선 후보의 개인비리 특검법이 육탄전 끝에 통과됐다.

우리보다 21년 먼저 특검을 도입한 미국에선 “대통령직 탈환을 노리는 정당만 지지하는 제도”라는 비판이 있다고 한다. 마치 우리 정치권을 향한 촌평 같다. 국정농단 특검 등 몇 차례를 제외하곤 여당은 수비수로, 야당은 공격수로 역할을 나눠 충돌했다. 특검의 추천권은 대한변협→대법원장→국회 등으로 법이 생길 때마다 바뀌었다. 국회 권한으로 정리하더라도 야당으로 할지, 여야 합의로 할지를 놓고 또 의견이 갈렸다. 미국은 특검 대상자 관련 모든 의혹을 철저히 수사하는 게 원칙이지만 우리는 법 제정 때마다 ‘관련’이나 ‘직접’을 넣고 뺄지에 대해 건건이 다툰다. 이번에도 똑같다.

어쩌면 특검법 정비보다 더 중요한 건 기존 수사기관의 중립성과 독립성 확보 방안이다. 그게 어렵다면 좀 더 중립적이고 독립적인 새 수사기관을 마련할 궁리를 해야 한다.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 신설과 검경 수사권 조정 법안 등은 국회 사법개혁특별위원회에 계류 중이지만 더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앞서 언급한 최병모 특검의 보고서는 이렇게 끝난다. “여야의 정치적 타협의 산물로 태어난 것인 바, 불완전한 부분이 많이 있다 … 그 문제점에 대한 충분한 토론과 정리가 요구된다.” 19년째 국회가 직무를 유기하고 있는 바로 그 대목이다.
 
정원수 정치부 차장 needjung@donga.com
#국회#특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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