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달면 다쳐!… 對北 초강경 볼턴, 백악관 입성뒤 누그러진 까닭은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5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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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5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를 백악관 오벌오피스(집무실)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이 회동을 지켜본 인물은 존 켈리 비서실장이 아닌 존 볼턴 국가안보보좌관(가운데)이었다. 볼턴이 북-미 정상회담에 낙관적인
 트럼프 대통령의 귀를 사로잡기 위해 대북 ‘초강경’ 성향을 일부 접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도널드 트럼프 인스타그램 캡처
지난달 25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를 백악관 오벌오피스(집무실)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이 회동을 지켜본 인물은 존 켈리 비서실장이 아닌 존 볼턴 국가안보보좌관(가운데)이었다. 볼턴이 북-미 정상회담에 낙관적인 트럼프 대통령의 귀를 사로잡기 위해 대북 ‘초강경’ 성향을 일부 접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도널드 트럼프 인스타그램 캡처
“어느 쪽 볼턴을 믿어야 하는 거죠?”

지난달 29일 폭스뉴스 앵커 크리스 월리스는 존 볼턴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인터뷰하던 도중 대뜸 이 질문을 던졌다. 과거 볼턴이 백악관에 들어가기 전 폭스뉴스에 출연해 “입을 움직이는 것만 봐도 북한이 거짓말한다는 걸 안다” “(김씨) 정권을 끝내는 것만이 유일한 외교적 해결책이다”라며 초강경 대북 발언을 거리낌 없이 내뱉던 장면을 모아 스튜디오에서 직접 보여준 직후였다.

폭스뉴스는 볼턴이 2006년부터 10년 이상 평론가로 출연해 온 방송사로, 다른 어떤 언론사보다 그의 발언에 익숙하다. 그런 폭스뉴스의 대표 앵커 귀엔 북-미 정상회담에 대해 핏대를 올리며 반대하지 않는 볼턴의 태도가 다소 생소하게 다가온 것이다. 이날 인터뷰에서 볼턴은 ‘리비아식 해법(선 핵폐기, 후 보상)’을 강조하며 북한에 대한 철저한 비핵화 검증을 요구하면서도 “첫 회담에서 (북한이 마음을 바꾼) 증거를 찾고 싶다”며 회담 결과를 지켜보자고 말했다.

북-미 정상회담이 임박한 상황에서 많은 이들이 ‘초강경파’ 볼턴의 입을 주목한다. 그의 입에서 낙관적인 전망이 나온다면 북-미 정상회담의 ‘청신호’로 이보다 더 확실한 건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폭스뉴스 앵커가 짚어낸 볼턴의 미묘한 태도 변화는 북-미 정상회담이 별다른 내부 반발 없이 원활하게 준비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이 같은 현상이 ‘직언’하기 어려운 트럼프 백악관의 현실을 반영한다는 분석도 있다.

○ ‘생존’ 위해 ‘자제’ 택한 볼턴

볼턴은 트럼프 대통령의 ‘귀’를 잡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나이지리아 대통령과 함께 진행한 기자회견에서 북-미 정상회담에 대한 자신의 낙관적인 전망을 밝히며 “조금 전까지 존 볼턴과 (북-미 회담 관련)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고 말했다. 북-미 대화 논의를 위해 볼턴과 긴밀히 대화하고 있다는 사실을 공개적으로 밝힌 것으로 백악관 내 볼턴의 위상을 잘 보여준 장면이었다. 지난달 말 CNN은 볼턴이 존 켈리 비서실장을 거치지 않고 트럼프 대통령에게 ‘직보’하고 있다고 전하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달 말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와 오벌오피스(집무실)에서 만났을 때도 둘의 회동을 옆에서 지켜본 건 켈리 실장이 아니라 볼턴이었다.

하지만 트럼프 백악관에서 ‘초강경파’ 볼턴이 대통령 최측근으로 떠오른 것은 그가 오래 지켜온 ‘소신’을 다소 굽혔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관측이 나온다. 자신의 전임자 허버트 맥매스터 전 보좌관과 외교 수장이던 렉스 틸러슨 전 국무장관이 모두 트럼프 대통령과의 의견 충돌로 해임당한 상황에서 그만의 백악관 ‘생존 전략’을 찾아낸 모양새다.

볼턴은 지난달 29일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프리랜서 시절엔 내 생각을 맘껏 표현할 수 있는 사치를 누리며 많은 얘기를 했지만 이제 그건 내 일이 아니다”라며 “지금은 단지 보좌관일 뿐이다”라고 말했다. ‘초강경’ 입장을 트럼프 대통령 앞에선 고집하지 않는다고 우회적으로 시인한 것이다. 볼턴은 이날 자신의 과거 초강경 발언을 영상으로 지켜보며 머쓱한 듯한 미소를 짓기도 했다.

○ 그래도 남은 그의 ‘야성’

하지만 볼턴이 그의 ‘야성’을 모두 버린 것은 아니라는 정황도 있다. 지난달 19일 CNN은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회담 도중 테이블을 박차고 나오는 가능성을 (볼턴 보좌관이) 제기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김정은이 미국의 기대에 못 미치는 조건을 제시했는데도 (트럼프 대통령이) 테이블에 남아 있을 필요는 없다”고 조언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지난달 29일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과거에 비해 대북정책에 대한 입장이 부드러워졌다는 질문에 “사적으로는 조언을 건넨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참모의 조언을 일부 수용한다는 듯 지난달 30일 기자회견을 “개인적으로 (북-미 정상회담은) 성공이 될 거라고 예상하지만 만약에 그렇지 않다면 정중하게 회담장을 떠나겠다. 아주 간단하다”고 말하며 마쳤다.

한기재 기자 record@donga.com
#볼턴#트럼프#북미 정상회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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