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代 물려 읽는 동아일보는 온가족의 비타민”…3만호 이벤트 참여 독자사연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월 25일 18시 4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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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양시에 사는 회사원 겸 주부 강영미 씨는 둘째 딸 장혜진 양(18)이 태어난 2000년 6월 5일자 동아일보 지면을 18년째 소중히 보관하고 있다. 혜진 양이 성인이 되면 선물로 주기 위해서다.

강 씨는 “지난 18년 간 동아일보에 훈훈한 소식과 가슴 아픈 사연이 번갈아 실렸듯 딸도 종종 성장통을 앓으며 성인 문턱에 다다랐다”며 “고3 수험생이 된 딸이 올해 반드시 원하는 목표를 이뤘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어 “딸이 동아일보와 함께 자랐듯 더 많은 사람들의 성장에 밑거름이 되어 달라”고 당부했다.
○가족을 묶어주는 끈

동아일보 사회부 황성호 기자(31)의 부친 황해수 씨(63)는 두툼한 동아일보 기사 묶음을 들고 인증샷을 찍었다. 2013년 입사한 황 기자가 지난 5년간 쓴 기사들이다.

황 씨는 “매일 아침 동아일보를 넘기면서 아들이 쓴 기사를 발견할 때가 가장 행복하다”며 극진한 ‘아들 사랑’을 내비쳤다. 이어 “자식이 3만 호를 맞은 동아일보에 다닌다는 사실이 자랑스럽다”며 “앞으로도 국민들의 눈을 뜨게 하고 귀를 열게 하는 신문으로 자리매김 해 달라”고 주문했다.

인천광역시에 사는 김영준 씨는 어린 시절 소년동아 애독자였다. 그는 성인이 된 지금도 동아일보와 어린이동아를 동시 구독한다. 초등학교 2학년생인 아들 시우 군과 같이 읽기 위해서다. 시우 군이 식탁에서 어린이동아를 보는 사진을 보내 온 김 씨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현관에 나가 어린이동아부터 들고 오는 아들을 볼 때마다 어린 시절 내 모습을 보는 듯해 뿌듯하다”고 했다.

제주도에 사는 ‘딸부자 엄마’ 오연숙 씨는 동아일보로 세 딸을 키웠다. 그는 올해 고등학생이 되는 첫째 김유정 양, 중학교 입학을 앞둔 둘째 딸 현정 양,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막내 딸 윤정 양 셋을 모두 동아일보 애독자로 길렀다.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부터 어린이동아를 본 첫째 유정 양은 어머니 오씨와 함께 동아일보를 본 지 오래다. 언니에게 어린이동아를 ‘물려받아’ 읽던 둘째 현정 양도 중학교 입학을 앞두고 신문 구독자 대열에 합류했다. 막내 윤정 양은 새로운 어린이동아 구독자가 됐다.

오 씨는 “동아일보를 꾸준히 읽고 이를 소재로 글짓기를 했던 첫째와 둘째는 모두 교내외 글짓기 상을 휩쓸고 있다”며 “온 가족이 한 신문을 같이 읽자 대화 소재도 늘어났고 예전보다 더 화목한 가족이 됐다”고 자랑했다.
○인생의 터닝포인트

경기도 부천시에 사는 독자 조태욱 씨는 한 때 교통사고에 실직, 이혼까지 겹쳐 인생을 포기하고 싶었다고 했다. 동아일보는 그가 새로운 인생을 개척하기로 결심하고 5년째 금주를 이어오고 있는 데 큰 도움을 줬다.

조 씨는 “술에 의지해 하루하루를 버티던 중 동아일보에서 나보다 더 어려운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사는 사람들의 사연을 종종 접하면서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며 “이후 동아일보를 정기 구독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구독료 1만5000원이 적지 않은 돈이라 망설였는데 지금은 이렇게 훌륭하고 다양한 지식을 이렇게 싼 돈으로 볼 수 있어 감사하다”고 전해왔다.

경기도 안양시에 사는 4년 차 직장인 김준영 씨(31)에게 동아일보는 인생의 도우미다. 그는 대학 4학년이던 2012년 7월 5일 동아일보 투데이 면에 무려 249건의 대외활동에 지원한 대학생으로 등장했다. 당시 그를 인터뷰한 기자가 유명 소설가로 변신한 장강명 씨(43). 김 씨는 “고등학교 2학년이던 2004년 ‘동아일보-삼성 열린장학금’ 1기 장학생으로 뽑힌 적도 있다”며 “저를 세상에 알려주고 장학금까지 준 동아일보의 평생 애독자가 되겠다”고 강조했다.

충남 태안에 사는 배정자 할머니도 20년 애독자. 매일 2시간씩 동아일보를 정독한다는 배 할머니는 “신문을 읽으면서 시야가 넓어지고 마음이 차분해지는 것을 느낀다”고 이유를 밝혔다.

그는 2009년 동아일보에 실린 한양사이버대학 신입생 모집 광고를 보고 응시해 늦깎이 대학생이 됐고 2013년 졸업했다. 배 할머니는 “현재 거주하고 있는 곳은 대도시처럼 새벽에 신문이 바로바로 배달되지 않는다. 우편으로 신문이 오는 시간만 손꼽아 기다린다”며 ‘동아일보 바라기’ 면모를 과시했다.
○물려주고 싶은 보물

지령 3만호를 축하하는 독자들의 특별 선물도 속속 도착했다. 대구광역시에 사는 노대균 할아버지는 손수 지령 3만 호를 축하하는 만화를 그렸다. 그는 1962년 화폐개혁 직전에도 동아일보 독자만화란에 투고한 적이 있다. 노 할아버지는 “당시 기고료가 1000환이었다”며 “3만 호를 기념한 만화가 실린 동아일보를 예비 독자인 손자와 함께 보겠다”고 했다.

40년 애독자 신동수 할아버지는 1986년 10월 1일 발행한 동아일보 지령 2만 호 사진을 보냈다. 신 할아버지는 “2만 호에 이어 3만 호도 잘 보관하겠다”며 “내가 약 30년 후 발행될 4만 호를 볼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자손들이 이어서 4만 호까지 보관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서울에 사는 홍용표 할아버지는 동아일보로 4행시를 지었다. ‘’동‘녁하늘의 햇살과 같이, ’아‘시아의 중심 대한민국, ’일‘출로 국민의 삶을 밝혀 온 ’보‘배로운 동아일보, 영원히 빛나라.’

경기 수원의 이재형 할아버지에겐 동아일보 호외가 애장품이다. 그는 1977년 ‘이리역 폭발사고’,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당시 발행한 호외 지면을 찍어 보내왔다.

이 외 손님들이 무료하지 않도록 동아일보를 항상 매장에 비치해둔다는 미용실 운영자 김정남 씨, 한일관계를 자세히 다루는 기사가 많아 동아일보를 챙겨본다는 일본 교토 리츠메이칸대 박사과정 재학생 이마사토 하지메 씨, 신문 용지를 생산하는 회사에서 일해 동아일보가 더 각별하다는 김춘일 씨…. 지령 3만 호는 이 모든 독자와 같이 만든 합작품이다.

김아연 기자 ay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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