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땐 그랬었지?”… 이길여 산부인과 기념관 북적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8월 3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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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원 1년만에 2만4000명 방문
1950, 60년대 병원 모습 둘러봐… 영상실 등 복합 체험공간도 인기

인천의 한 유치원 교사가 ‘이길여 산부인과 기념관’을 찾은 어린이들에게 1960년대 병원 대기실 풍경을 설명하고 있다. 이 기념관에는 출산을 앞두고 진통을 호소하는 임신부와 가족을 밀랍인형으로 만들어 놓았다. 가천길재단 제공
인천의 한 유치원 교사가 ‘이길여 산부인과 기념관’을 찾은 어린이들에게 1960년대 병원 대기실 풍경을 설명하고 있다. 이 기념관에는 출산을 앞두고 진통을 호소하는 임신부와 가족을 밀랍인형으로 만들어 놓았다. 가천길재단 제공
인천이 고향인 이정분 씨(74)는 지난달 중구 우현로 ‘이길여 산부인과 기념관’을 둘러본 뒤 눈시울을 붉혔다. 불현듯 옛 생각이 났다. 이 씨는 1969년 첫딸을 임신했으나 생계가 막막해 아이를 낳아 기를 형편이 아니었다. 고민 끝에 낙태를 하려고 이길여 산부인과를 찾았다. 그러나 30대 젊은 의사인 이길여 원장은 “다음에 남편과 함께 오라”며 돌려보냈다. 다시 몇 차례 찾아가 “너무 가난해서 아이를 낳을 처지가 못 된다”며 애원했지만 이 원장은 “낙태는 절대 안 된다”고 단호하게 거절했다.

결국 이 씨는 ‘인생을 모두 바쳐서라도 아이를 낳아 기르겠다’고 마음을 바꿔 먹었다. 이듬해 딸을 출산한 뒤 없는 살림이지만 정성껏 뒷바라지했다. 그 딸은 20대 때 미국에 건너가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해 가정을 잘 꾸리고 있다. 이 씨는 “이 원장이 낙태를 만류해 딸을 얻었고 내 인생이 달라졌다”며 “기념관 앞을 지날 때마다 감사한 마음을 보낸다”고 말했다.

지난해 6월 개장한 기념관은 가천대와 길병원을 운영하는 가천길재단의 모태나 마찬가지다. 길병원 설립자인 이길여 가천대 총장이 1958년 자신의 이름을 붙여 이곳에서 산부인과를 개원했다.

인천의 50대 이상 시민들에게는 환자가 넘쳐나던 산부인과로 기억된다. 그래서인지 문을 열고 1년이 좀 넘은 현재까지 관람객이 2만4000명을 넘었다. 당시 사용한 3층 규모의 병원 건물을 복원한 기념관은 1950, 60년대 산부인과 모습을 고스란히 되살렸다는 평가를 받는다.

1층에는 의료진과 직원, 환자의 모습을 밀랍인형으로 재연했다. 의료 소품 등을 갖춘 대기실, 안내창구, 진료실도 있다. 1977년 의료보험제도 도입 이전 병원은 대개 환자에게 보증금을 받고 진료했다. 하지만 이길여 산부인과는 달랐다. 접수대 앞에서 돈이 없어 쩔쩔매는 환자에게는 진료비도 받지 않았다. 이 환자들은 진료를 받고 나중에 쌀이나 생선, 소금, 채소 등을 병원 앞에 두고 갔다. 이런 풍경도 재현해 놓았다.

1969년 인천지역 병원 최초로 엘리베이터도 설치했다. 엘리베이터를 보려고 병원에 몰려든 개구쟁이들의 모습도 꾸며놓았다. 태아의 심장 박동을 들려주는 초음파 기기 역시 인천에서 가장 먼저 설치됐다는 사실도 여기서 알 수 있다.

2층은 하루 24시간이 모자랄 정도로 환자들이 밀려들었던 수술실과 분만실, 입원실로 만들었다. 이 층에서는 특히 ‘부글부글 끓는 미역국’이란 주제의 전시공간이 눈길을 끈다. 산모가 몸조리를 위해 미역국을 먹는 오랜 풍습에서 착안해 당시 환자에게 미역국을 끓여줬다. 미역국이 맛있어 퇴원한 뒤에도 냄비를 들고 병원을 찾는 산모가 있었을 정도였단다.

3층은 복합체험공간이다. 영상실에서는 인천의 작은 산부인과에서 출발해 교육, 의료, 사회봉사 분야를 아우르는 공익재단으로 성장한 가천길재단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확인할 수 있다.

산부인과 현판 앞에는 기념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을 위한 포토존이 있다. 오전 9시∼오후 5시에 문을 열며 무료다. 단체관람을 예약하면 전문 해설사가 안내한다. 032-770-1355

황금천 기자 kchwang@donga.com
#이길여 산부인과#기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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